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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땋기 기술을 가진 라이베리아 출신 오펠리아씨

 

라이베리아 출신으로, 출국기한 유예 상태에서 난민신청 중인 오펠리아씨는 2009년 남편과 함께 국내 입국했다.

오펠리아씨는 본국에서 머리 땋기를 배웠고 미용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한국에서 오펠리아씨는 미용실을 운영하는 다른 여성들과 함께 일을 해오다, 2012년 드디어 자신의 미용실을 오픈했다. 처음에는 건물 주인으로부터 임대를 거절당하기도 했고, 거울 하나와 사무 의자 하나를 두고 시작했다.

 

▲ 머리 땋기 기술을 가진 난민여성이 운영하는 미용실 모습.   ©강슬기  

 

2019년 즈음 시청에서 직원이 찾아와 미용실 등록을 해야 한다며, 등록하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한다고 경고했다.

오펠리아씨는 미용실 등록을 하기 위해 라이베리아 미용사 자격증을 들고 시청을 찾아갔다. 하지만 한국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는 답변을 받았고, 시청은 오펠리아씨에게 미용교육을 받을 수 있는 대학을 안내했다.

오펠리아씨는 대학교를 찾아갔지만, 대학 측은 오펠리아씨가 갖고 있는 머리 땋기라는 미용기술을 모른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사실 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었다 하더라도 애초에 오펠리아씨의 체류자격으로는 입학 자체가 불가능했다.

 

오펠리아씨는 미용실 문을 열지 못했고, 생계를 위해 예약손님이 잡히면 자신의 집에서 미용 작업을 해야 했다.

그러나 이 또한 오래가지 못했다.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미용실은 거의 문을 닫는 상황에 이르렀고, 결국 오펠리아씨는 공장 아르바이트 일을 찾아야 했다.

 

머리 땋기 기술을 가진 아프리카 난민여성들은 꽤 있지만, 오펠리아씨처럼 미용실을 운영하는 여성은 많지 않고 운영도 쉽지 않다. 미용실을 갖고 있는 아프리카 여성들은 머리 땋기 기술을 가진 다른 아프리카 여성들의 연락망을 갖고서, 함께 작업해야 할 때 파트타임으로 이들을 부르기도 한다. 파트타이머 여성들과 함께 손님 한 명의 머리를 같이 작업할 경우, 보통 네 등분으로 나누어 작업한다. 한 파트를 마무리할 경우 2만 원 정도를 받는다.

 

오펠리아씨는 코로나19로 인해 몇 년 간 미용실을 운영하지 못하고 밀린 월세가 몇 달째 쌓이며 공간만 갖고 있었다.

그런데 올해 4월, 사업장을 운영해온 것을 출입국관리사무소가 알게 되면서, 출입국관리법 위반으로 벌금 500만 원을 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서아프리카 식당을 개소한 쉐리프씨

 

역시 라이베리아 출신의 인도적 체류 허가자인 쉐리프씨는 2012년 딸과 함께 국내 입국했다.

입국하자마자 쉐리프씨는 유엔난민기구를 찾아갔고, 거기서 난민을 지원하는 기관을 소개받아 난민인정 신청을 할 수 있었다.

쉐리프씨는 난민인정을 신청한 지 6개월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딸을 위해 경제활동을 해야만 했다. 모녀를 도와주던 한 교회에서 비밀리에 과자제조공장 일자리를 소개해주었다. 그러나 일한 지 2개월만에 쉐리프씨는 안 되겠다고 판단해 6개월을 기다리기로 하고 그만두었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난 후에도 일자리를 찾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일자리를 구했어도 언어 문제로 일하기가 쉽지 않았다.

매주 주간과 야간 교대 업무를 해야 했고,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신경 쓰지 않는 사업주의 태도에, 3주를 일하고 그만두었다.

지인들의 연결로 다시 공장 일을 찾을 수 있었지만, 2년 반 정도 일했을 때 허리통증이 심해져 그만둬야 했다. 이후에도 쉐리프씨는 건강 문제로 공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쉐리프씨의 딸이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았다. 딸을 통해서 인도적 체류 허가자의 가족으로서 쉐리프씨도 체류자격을 얻을 수 있게 됐다.

쉐리프씨는 서아프리카 식당을 오픈했지만, 자신의 체류자격으로는 식당 등록을 할 수 없었다.

식당을 열고 1년 후에 첫째 딸이 성인이 되면서, 딸의 이름으로 식당을 등록했다.

사실 쉐리프씨가 식당을 열게 된 배경에는, 일을 하지 않는 남편도 한 몫했다. 남편은 일을 할 경우에도 돈 한 푼 가정경제에 보태지 않았다.

▲  서아프리카 대륙 출신의 난민여성이 운영하는 식당은 아프리카 사람들의 모임 장소가 되었다. 식당과 판매점이 위치한 거리 모습. ©강슬기

쉐리프씨가 운영하는 식당은 아프리카 사람들의 모임 장소가 되었다.

대부분의 손님들이 아프리카 사람들로, 식당은 이들에게 고향과도 같은 공간을 제공했다.

그러나 코로나19와 겹치면서 쉐리프씨는 식당 문을 닫아야 했다. 본국에서 베이커리를 운영했던 쉐리프씨는 한국에서도 베이커리를 운영하고 싶다고 한다. 자신의 베이커리를 운영하며 다른 난민여성들에게 베이킹 수업을 하는 것이 목표이다.

 

▶2살 막내 포함 다섯 자녀의 생계 책임지는 은고지씨

 

나이지리아 출신의 난민 불인정자 은고지씨는 매주 수요일부터 금요일 아침에 2살 된 막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는 1시간 30분 정도의 거리로 출근한다.

일찍 끝나는 날에는 오후 3시 정도, 늦게 끝나는 날에는 저녁 9시에 집으로 돌아온다.

 

은고지씨가 하는 업무는 중고의류 창고에서 옷을 분류하는 작업이다.

옷 종류에 따라 무게 별로 금액이 다른데, 기본 100kg에 2만~3만원 정도 받으며, 하루에 하는 작업 분량은 500~800kg 정도다.

작업량이 많아 하루에 수입이 많을 때는 20만 원까지도 번 적이 있다.

하지만 하루에 6만~8만 원도 벌지 못하는 날이 대부분이다.

 

▲ 난민여성이 운영하는 중고의류 창고 모습. ©강슬기

 

취업이 불가한 체류 상태에서 남편이 체류기간이 만료되어 본국으로 귀국한 이후, 은고지씨는 한국에서 홀로 자녀 다섯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이 일로는 생계비가 매우 부족한 상황이지만, 이제 2살인 막내와 초등학생 3명, 중학생 1명의 등교 시간을 챙기려면 출퇴근이 그나마 자유로운 중고의류 분류작업이 현재 은고지씨 상황에서는 최적의 업무인 것이다.

은고지씨는 막내가 더 크면 안정적인 공장으로 이직할 계획을 갖고 있다.

 

▶냉장고 하나 규모의 식료품 판매를 하는 이페오마씨

 

나이지리아 출신 이페오마씨는 난민 불인정 판정을 받고 미등록 체류 상태가 되었다.

남편도 미등록 체류 상태로, 부부 모두 안정적으로 노동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페오마씨의 남편은 아르바이트로 일이 있는 날에만 노동한다. 남편의 수입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가 힘든 상황이다.

 

이페오마씨는 구멍가게라고 불리기에는 규모가 매우 작지만, 아프리카 사람들을 상대로 집에서 아프리카 식료품을 판매하고 있다. 판매 식료품은 냉장고 하나의 규모다.

 

나이지리아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통해 아프리카의 말린 음식들을 받아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판매한다.

냉동실에는 한국 마트에서 산 아프리카 사람들이 먹는 생선들도 있다. 생선 3개가 들어있는 한 박스를 마트에서 1만 원에 구매하여 생선 한 피스에 1만 원씩 팔아 2만 원의 수익을 낸다.

 

아프리카 커뮤니티에서 세례식, 장례식 등의 행사가 있을 때에 이페오마씨에게 요리를 주문한다.

가게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알음알음 커뮤니티 사람들이 이페오마씨의 집을 찾아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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