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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배경 청년의 목소리] 한국에 온 이주민, 난민들과 만나며(上)

※국제결혼 가정이나 이주민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한 청(소)년들, 아동 청소년 시기에 중도 입국한 청년 등 다양한 이주 배경을 가진 청년들이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좀처럼 가시화되지 않고 있습니다. 청년 담론 안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이주 배경 청년 당사자들의 시선과 목소리를 직접 들어봅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일다

우연히 29초짜리 인어공주와 관련한 틱톡 영상을 접하게 되었다. 1분도 안 되는 짧은 영상이었지만 매우 강하게, 그리고 눈물 나게 뇌리에 박혔다. 영상은 인어공주 트레일러를 본 흑인 아동, 청소년들의 반응을 모아 편집한 내용이었다. 아이들은 제각각 이렇게 외쳤다.

 

“I think she is brown.”(그녀의 피부가 갈색인 것 같아요)

“That is Ariel.”(저 사람이 아리엘이에요)

“She’s a black girl!”(그녀는 흑인 소녀에요!)

“I’m crying.”(눈물이 나요)

“She’s black!”(아리엘이 흑인이에요!)

 

트레일러 속 인어공주 역을 맡은 배우를 보고 아이들은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외침 속에서 가장 기억 남는 말이 영상 마지막에 나오는 소녀의 외침이었다.

 

“She’s like me!”(그녀는 나와 같아!)

 

▲ 디즈니 실사 애니메이션 ‘인어공주’ 트레일러 영상을 본 흑인 아동, 청소년들의 반응을 모은 틱톡 영상에서 캡쳐. 출처: https://tiktok.com/@armlina/video/7142550172550073606

 

그 외침을 듣자마자, 내가 지금 활동하고 있는 이주민센터 의정부EXODUS에서 2015년에 만난 8살 설이(가명)가 떠올랐다. 설이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내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나는 1986년 한국에서 이주노동자의 딸로 태어났다. 2005년에 대학교 진학을 위해 필리핀에 유학생으로 이주했고, 2010년에는 지역개발사업을 위해 남아공에 이주노동자로 파견되었다. 그리고 2014년부터 현재까지 한국에서 이주민과 난민을 직접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나는 아버지가 필리핀 출신이고, 어머니가 한국 출신이다. 아버지는 내가 중학생 때 귀화를 해서 이제는 한국 국적을 갖고 있다. 나와 반대로 설이는 어머니가 필리핀 출신이고 아버지가 한국 출신이다. 설이의 어머니가 상담이 필요해 내가 일하는 이주민센터를 방문했고, 어머니를 따라온 설이를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센터 근처로 이사를 오게 된 설이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꼭 센터에 들려서 놀다가 집에 갔다. 그렇게 설이와 자주 만나게 되었고, 설이는 나를 좋아해주고 매우 잘 따랐다.

 

어느 날 설이는 나에게 ‘학교 친구들 중에서 자신이 비행기를 가장 많이 타본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한 초등학생의 자랑거리 또는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로 들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설이의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고, 너무나도 신이 났다.

 

내가 딱 그랬기 때문이다. 내가 초등학생 때 설이처럼 우리 반에서 비행기를 가장 많이 타본 사람이었다. 29살의 나는 그 순간 8살의 슬기로 돌아가, 설이와 이야기를 하며 즐거움을 만끽했다. 비행기를 자주 탔다는 것이 즐거움을 만끽할 정도로 재미난 주제는 아니다. 이 주제는 설이와 나에게 단순히 가족의 일상적인 이야기 중 하나를 나눈 것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나에게는 이런 일상의 이야기를 그동안 나눌 사람이 없었다. 그런 내가 29살이 되어서 8살 친구에게 ‘공감’이라는 감정을 느끼며 신이 나서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물론 최초로 내뱉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내 단짝 친구들, 동생들, 엄마아빠 분명 누군가에게는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런데 설이에게 이야기했을 때는 뭔가 차원이 다른 감정과 가슴 벅참을 느꼈다. 내가 한국에서 살면서 처음으로 ‘소속감’이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나는 오랜 시간 내가 ‘특별’하다고 느껴서 위축되어 지내왔다. 하지만 설이를 만나고 나는 ‘특별’하면서도 ‘평범한’ 사람 중 하나임을 깨달았다. 나는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늘 벗어나고 싶었다. 한국이라는 테두리 안에 들어오면 보이지 않는 쇠사슬이 내 발목을 잡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쇠사슬을 풀어낼 수 있었다. 나와 같은 누군가가 있다는 것, 큰 위로와 힘이 되었다.

 

내가 설이를 만나 서로 공감하고 소속감을 느꼈듯이, 인어공주 트레일러 영상을 본 흑인 아동 청소년들의 반응은 인어공주가 흑인이라서가 아니라, 인어공주가 ‘나’와 같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설이를 통해 위로와 힘을 얻었듯이, 영상에서 본 아이들의 외침은 아리엘을 통해 얻은 위로와 힘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변화해야 한다고 이제는 진부할 정도로 많이들 이야기한다. 하지만, 누구든 소수자성을 가진 당사자들은 서로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목소리와 함께, 나와 ‘같은’ 사람들이 주변에 존재하며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또한 기억했으면 좋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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