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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피해자의 행실 탓’하는 사회와도 싸웠다 (이은의)

 

사진 스튜디오에서 벌어진 사건

 

2018년 5월, SNS상에서 피해자가 직접 찍어 올린 ‘미투’ 영상이 순식간에 화제에 오르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영상을 올린 이는 그 당시만 해도 40대 이상 연령 층에게 낯선 단어였던 ‘유명 유튜버’ 혹은 ‘페북스타’라고 불리던 20대 초반의 여성으로, 10대와 20대 사이에는 제법 유명했던 양예원 씨였다.

 

그는 카메라 동호회 회원들을 위한 촬영에 필요한 모델 혹은 피팅 모델이라 설명 듣고 계약서를 작성하였다. 촬영일에는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남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스튜디오 안에 가득했는데, 촬영을 하며 심각한 노출을 요구받았고, 성기 사진까지 찍혔다고 했다. 그는 두려워서 도망치거나 거부하지 못하였다면서, 촬영 과정에서 추행을 당하기도 하였음을 폭로했다. 영상의 내용은 충격적이었고 사회적으로 파장이 컸다. 나도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영상을 보고 경악했고,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 달라고 댓글을 남겼다.

 

댓글을 보고 처음 내게 연락을 해온 건 양예원 씨가 아니라, 고등학생 조카였다. ‘이모 양예원 알아?’라고 물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페북스타’라고 말했다. 나는 ‘양예원’이 누군지도 몰랐고 ‘페북스타’란 말도 처음 들었다. 이 사건을 담당한 변호사는 내가 아니었다. 얼마간 뉴스로만 사건을 접했다.

 

양예원 씨의 ‘미투’ 영상이 불러온 파장으로, 서로 몰랐던 다수의 피해자들이 수사기관에 자신도 유사한 피해를 겪었다고 알렸다. 미성년자가 포함된 스무 살 전후의 여성들과 촬영계약을 맺은 후 비공개 촬영회를 열어, 여성들이 예상치 못한 심각한 노출 사진을 촬영하도록 주도한 스튜디오 실장과 부실장에 대한 수사가 시작됐다. 이들은 ‘비공개’를 전제로 촬영된 영상을 유출했고, 촬영 과정에서 피해자 다수를 추행했다.

 

한국 사회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방식의 범죄였던 이 사건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았다. 그런데 가해자들을 향해 분개하던 여론은, 어느 날 순식간에 방향을 틀었다. 스튜디오 실장이 핸드폰을 사적으로 포렌식해서 얻은 카카오톡 대화 내역이란 것을 공개했다. 촬영 일정 관련해서 양예원 씨와 나눈 대화도 있었다. 내용는 평이했고, 간헐적으로 피해자가 촬영을 문의하기도 했다. 스튜디오 실장은 양 씨와 나눈 카카오톡 대화 내역을 언론사에 뿌렸고, 일부 언론이 이를 검증도 없이 보도했다. 카카오톡 대화 내역이 공개되자, 피해자가 동영상을 올렸을 때만큼이나 파장이 컸다. 언론도, 대중도, 피해자에게 있었을 사정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세간의 화두가 된 피해 사건이, 졸지에 피해자가 거짓말을 한 사건으로 매도되었다.

 

양예원 씨를 직접 만나게 된 건 그 즈음이었다. 이십 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단발머리 여성은 창백했다. 내 또래의 여성과 동행했는데, 양예원 씨의 어머니였다. 양예원 사건에는 초반부터 복수의 변호사가 선임되어 있었지만, 연락이 안 되는 중이라고 했다. 스튜디오 실장이 양예원 씨와 과거에 나눈 대화 내역을 공개한 이후 오해와 억측이 난무했고, 여론재판에서 일방적으로 매도되고 있는 양예원 씨는 수사만이 아니라 언론 대응도 필요한 상황이었다. 조력자가 시급해보였다.

 

‘피해자다운 모습’이 아니다?

 

내가 양예원 씨의 미투 영상을 보고 댓글을 남길 때와는 많이 달라진 상황이었다. 피해자는 스튜디오 촬영에서 입은 피해에 더해, 사진 불법유출로 입은 피해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꽃뱀’이니 ‘거짓 미투’니 하는 여론으로 끊임없는 2차 피해에 시달리며 처음 사건을 호소할 때보다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었다.

 

▲ 2020년 4월 3일,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과 연세대학교 젠더연구소가 공동으로 개최한 〈미투운동 2020년의 정치가 되다〉 토론회에서 발언하는 양예원 씨. ‘미투’ 이후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사회의 시선과 목소리”였다고 밝혔다. (출처: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유튜브 채널)

 

사건 기록을 볼 때 양예원 씨는 피해자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가 사무실에 찾아온다고 상담을 예약했을 때, 나는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나는 성폭력 피해자 출신 변호사, 삼성을 이긴 변호사, 한류스타의 성폭행이 무고로 전락할뻔한 사건을 뒤집고 이긴 변호사 등 훈장 같은 수식어들을 어깨 위에 달고 있었다. 젠더폭력 사건에 대해 사회적 변화의 흐름 위에서, 박수받고 있었다. 사건 기록을 살펴볼 때 양예원 씨는 피해자가 분명했다. 하지만 이제 막 인지도를 쌓아가며 약진하던 변호사 입장에서는 리스크가 컸다.

 

아동이나 청소년이 피해자인 사건들과 달리, 성인 여성이 피해자인 성폭력 사건은 유독 ‘선입견’과 여론의 ‘쏠림’, ‘부침’이 심하다. 사건이 알려지면 한국 사회에서는 당장 ‘그런 일을 당하면 안 되었을 피해자’와 ‘그런 일을 당해도 싼 여자’라는 이분법이 적용된다. 후자의 경우 피해자가 오히려 손가락질을 당하고, 비난을 받기 일쑤다. 그러면 별반 관심 없는 사람들조차 사건을 들여다보지도 않은 채 피해자를 ‘문제 있는 사람’으로 쉽게 치부해버린다. 그렇게 피해자에 대한 낙인은 피해자의 이름 위에, 가슴 깊이 새겨진다. 그렇게 ‘낙인찍힌 피해자의 곁에 서는 것’이 어떤 일인지 알 것 같아 마음이 복잡했다.

 

직접 만나 함께 기록을 살피며 대화를 나누게 된 양예원 씨는. 내 조카의 최애 ‘페북스타’라는 이 유명한 젊은이는, 여느 또래와 다르지 않았다. 평범하고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대학생이었다. 기억력이 좋았고, 차분했다. 피해 사실을 객관화할 줄 알았고, 솔직했다. 그리고 많이 다쳐있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대체 어느 지점에서 양예원 씨에게 일어난 일이 범죄 피해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어떤 이유로 양예원 씨가 피해를 말할 자격이 없는 여성이라는 것인지, 과연 가해자들이 양예원 씨에게 저지른 짓이 우리가 허용할만한 일인지, 조금의 답도 나오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성폭력 사건 중 수사 과정이나 재판에서 가해자 측이 ‘피해자 탓’을 하지 않는 사건이란 게 있던가 싶기도 했다. 변호사라는 직업이 갖는 기본적인 소명은 피고인의 방어권에 있다. 죄가 있는 사람, 혹은 죄가 있을 수도 있는 사람도 변호를 하는 게 변호사인데, 피해자를 변호하지 못한다면 내 어깨에 금칠한 훈장이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더구나 ‘보호받을 만한 피해자’, ‘환영받을 만한 미투’ 같은 말 자체가 넌센스 아닌가! 그렇게 나는 양예원의 변호사가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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