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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쿠소 글, 키티 크라우더 그림 『내 안에 내가 있다』

 

그림책 『내 안에 내가 있다』(알렉스 쿠소 지음, 키티 크라우더 그림, 신혜은 옮김, 바람의아이들)를 처음 보고서 어딘지 간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나도 종종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노랫말을 흥얼거리진 하지만, 약간 자기애의 냄새가 풍긴달까? 그런데 어느 갑갑한 날, 이 그림책이 꽤 마음을 울렸다.

 

▲ 프랑스 그림책 『내 안에 내가 있다』(알렉스 쿠소 지음, 키티 크라우더 그림, 신혜은 옮김, 바람의아이들) 표지

 

첫 장면은 검은 망토를 두른 ‘나’가 허파 모양을 닮은 나무와 심장 모양의 강이 있는 겨울 들판을 헤매는 모습이다. 혹시 누군가는 이 그림들이 기괴하다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지만, 따스한 색감의 색연필로 밀도가 높지 않게 표현한 그림들이 나는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림 옆에 이런 글이 적혀 있다.

 

“내가 항상 나인 건 아니었다. 내가 되기 전까지, 난 내 안에 없었다. 다른 곳에 있었다. 다른 곳, 나를 제외한 모든 곳.”

 

책장을 넘길수록 ‘나’는 내가 되기 위해, 내 안의 적들을 만나고, 그 적들 사이로 내디디다가 내 안에 있는 괴물과 대면한다.

“내 안은 밤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 ‘나’는 자기 자신 속 ‘나’와 온전히 일치하기 위해 무척 격렬한 싸움을 계속해서 벌인다. 자기 안의 괴물을 똑바로 마주하고서 특별한 대결을 펼치기도 하고, 스스로 괴물에게 먹히기도 하면서 온전한 ‘나’와 구분되는 괴물의 실체를 탐험한다.

 

“내 안에 누군가 있다. 나를 잡아먹으려 하는 괴물, 우리는 둘 다 말이 없고, 내 입은 비밀을 풀어야 열리는 문이다. 그러나 사방을 헤매어도 비밀은 없다. 찾는 것은 공허뿐. 이제 남은 곳은 하나, 비밀이 내 안에 없다면 괴물 안에 있다. 나는 괴물을 찾아갈 것이다.”

 

‘나’가 말하는 괴물의 실체는 무엇일까?

 

▲ 알렉스 쿠소 지음, 키티 크라우더 그림 『내 안에 내가 있다』 (신혜은 옮김, 바람의아이들) 중에서

 

내일을 위해 방치된 ‘오늘의 나’

 

중학교 일학년 봄 소풍 때 일이다. “야, 너 예쁜데 되게 뚱뚱하다!” 수돗가에서 혼자 물을 마시고 있을 때 모르는 남자아이가 다가와 한마디를 던지고 도망갔다. 처음엔 무서움이 일었고, 그 아이가 멀리 갔다는 걸 확인하고는 헛웃음이 났다. 당시 친구들은 “지가 무슨 상관이야”부터, 모욕적인 기분이겠다며 나 대신 화를 내거나 위로해주었다. 그런데 사실 나는 그때 친구들의 반응에 좀 어리둥절했다. 수돗가에서 들은 말은 엄마가 내게 수시로 하는 말이었고, 어떻든 예쁘다고 한 거니까 기분이 나쁘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언젠가 날씬해져서 완벽히 예뻐질 수도 있는 내 존재를 알아봐 준 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더 어릴 적부터 어른이 된 지금까지 숱하게 들은 말 중 하나가 ‘살만 빠지면 예쁠 텐데…’이다. 가족과 친구는 물론, 몇 번 만난 적 없는 이들까지도 ‘다이어트가 성형보다 낫다’느니 ‘여자는 살이 없어야 매력적이야’ 같은 말을 무슨 조언처럼 하곤 했다. 그 말은 내게 여러 의미를 전해주었다. 예뻐야 한다는 당연한 목표에 이르도록 내가 노력해야 한다는 것과, 언젠가는 나도 예뻐질 가능성이 있지만 지금은 예쁜 존재가 아니기에 열등하다는 판정이었다.

 

나는 그 판정을 뒤집고 싶었고, 예뻐져야 한다는 의무와 가능성에 복무하고 싶었다. 아마도 그즈음부터 나는 마음속으로 진짜 나와 가짜 나를 구분 지었던 것 같다. 뚱뚱한 나는 가짜 나이고, 언젠가 날씬해진 나는 진짜 나일 거라는 생각! 그래서 옷을 살 때도 지금 내 몸에 잘 맞는 옷이 아니라 다음 달에 맞을 수 있는 치수 작은 옷을 샀다. 오늘 내가 마음에 안 드는 모습이나 행동을 하고 있어도 금방 용서했다. 이건 진짜 내가 아니라 가짜 나의 모습이니까! 내일의 나가 진짜 나일 테고, 내 마음은 내일의 뚱뚱하지 않은 나를 위한 열망과 사랑이 가득하니까.

 

그것은 비단 몸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하루 종일 누워서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유튜브 영상을 보며 별로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을 마구 먹는 나는 가짜인 나! 진짜 나는 내일 비건식을 만들어 먹을 것이고, 몸과 마음을 챙길 것이다. 지금 약속한 일들을 미루는 나는 가짜 나이고, 오늘 밤에 나는 더 완벽하고 꼼꼼하게 일을 처리할 것이기에! 이렇게 나는 오래도록 내 마음과 열망이 가 닿은 자리가 진짜 나라고 생각하면서 오늘의 나를 함부로 대해왔다.

 

인생에 한 번쯤 다이어트에 성공했다면, 나는 목표를 이룬 예쁜 존재로 거듭나서 진짜 나와 가짜 나의 합일을 이룬 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초등학교 사학년 이후 지금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덕분에 나를 이루는 여러 마음 안에 사회의 시선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고, 나는 나 스스로와 어떻게 줄타기하며 타협하고 있는지 종종 탐구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의 게으름과 불안함을 세상 탓으로 돌리려는 건 아니다. 다만 나를 운영해가는데, 더 이상 타인들의 시선과 가부장적인 시선에 시달리면서 휘청이고 싶지 않다는 얘기다. 그래서 내 마음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탐구하고 싶을 뿐이다. 내가 나를 멸시하는 건 그만 멈추어야 하니까. 지금 오늘, 내가 먹는 밥, 내가 입는 옷, 내가 쓰다듬는 고양이, 내가 하는 일, 만나는 당신에게 충실하고 싶으니까.

 

▲ 알렉스 쿠소 지음, 키티 크라우더 그림 『내 안에 내가 있다』 (신혜은 옮김, 바람의아이들) 중에서

 

내 안의 목소리를 찾아서

 

『내 안에 내가 있다』에 등장하는 ‘나’와 괴물의 만남과 대결은 은유가 가득해서, 보는 사람마다 해석과 의미 부여가 다를 것 같다.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하나의 힌트를 얻어본다.

 

“내 안에 무지개가 떴다. 그리고 낱말들, 온갖 색깔들이 생겨났다. 나는 쉬고 싶어졌다.”

 

이 책의 작가 키티 크라우더는 마음의 세계를 심장과 허파, 피와 뼈 등이 있는 몸의 세계로 표현했다. 그리고 내 안의 괴물과 마주하는 방법 중 하나로, 먹고 먹히는 힘의 겨루기가 아니라 말과 낱말, 다양한 색깔의 세계를 제시한다.

 

나는 혹여나 ‘자아’에 대한 탐구가 나르시시즘 같은 것으로 드러날까 겁이 난다. 하지만 오늘의 사회에서 여자아이들은 ‘여자는 날씬해야 한다’는 말을 들을 게 아니라, 자아에 대해 탐구하고 쓰고 이야기하자는 격려를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마음에 대해 스스로 묻고 말하고 듣는 연습을 하다 보면, 내 안의 목소리와 세상이 주입한 목소리를 구분할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되지 않을까.

 

*필자 소개: 안지혜 님은 그림책 『숲으로 간 사람들』(김하나 그림, 창비)을 쓴 작가입니다.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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