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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온 기후 편지] 유럽의 탈탄소 정책과 비행기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이래 두 번째 맞이한 여름, 유럽의 주요 도시들은 관광객들로 다시 붐비기 시작했습니다. 베를린의 유명 관광지인 박물관 섬 주변 슈프레 강에서도 유람선 운행이 재개되었죠.
2020년에는 전세계적으로 약 6억1천만 명이 해외여행을 했는데, 이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2019년 15억 명 대비 60% 감소한 수치입니다. 그동안 해외여행자 수는 해가 갈수록 늘어나 2019년 최대치였는데요. 중국, 미국, 독일이 가장 많은 지출을 한 상위 3개 국가입니다. 이들 나라 여행자들에게 가장 있기가 있는 국가는 프랑스, 스페인, 미국 순이었고요.(독일 통계청 2020) 같은 해 한국의 해외여행자 수는 2,871만 명이었다고 합니다.(한국관광공사 2021)
▲ 해외여행을 할 때 주로 이용하는 교통 수단이 비행기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기 전인 2019년까지 항공편 운항은 계속 증가했다. (사진 출처: pixabay) |
해외여행을 할 때 교통 수단은 많은 경우 비행기입니다. 분단으로 인해 사실상 ‘섬나라’인 한국에서처럼요. 해외여행이 증가하는 만큼 빠르게 성장하는 것이 항공 산업입니다. 2005년부터 2019년까지 국가 간, 도시 간 이동을 합해 항공편 운항은 세계적으로 거의 두 배 증가해서 2019년에는 총 45억 명이 항공기를 이용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항공편들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2020년 항공기 이용객수는 약 18억 명으로 60% 감소했죠.(국제민간항공기구 ICAO 2021)
세계 인구의 80%는 비행기를 타보지 못했다
국가간 이동이 비교적 자유로워서, 철도와 자동차를 이용해 해외여행을 하기 용이한 유럽의 경우에도 항공기 이용객 수는 점점 증가해서 2018년 전세계 항공기 이용객 중 유럽인의 비중은 26%에 달합니다.(44억 명 중 11억 명) 세계 인구 중 유럽인의 비율의 약 10%에 불과한 것을 생각하면 큰 수치죠. 전세계 인구의 약 17%를 차지하지만 항공기 이용객 비율은 2.1%인 아프리카와 대조됩니다. 해외여행이나 항공기 이용이 여전히 값비싼 활동임을 생각할 때 이러한 대조적인 숫자는 불평등한 세계화와 불균등한 부의 분배 문제와 관련이 있죠.
▲ 유럽연합의 항공기 이용자 수는 해마다 증가해왔다. 그 중에서 섬나라인 영국의 항공기 이용률이 가장 많다. 2018년 기준 영국의 이용자 수는 2억7220만 명, 그 다음이 독일 2억2200만, 스페인 2억2100만, 프랑스 1억6200만, 이탈리아 1억5300만 순이다. 출처: 유럽통계청 2019 |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의 빠른 경제성장과 더불어 이들 국가의 중산층에서 휴가철 비행기 여행이 늘어나고, 다른 지역에서도 비행기를 이용한 휴가가 점점 보편화되고 있지만, 사실 이런 라이프스타일은 여전히 소수에게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계층 격차’이기도 합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3%의 사람들만 반복적으로 해외여행을 하고 있으며, 세계 인구의 80%는 비행기를 한 번도 타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부유한 국가인 영국에서도 약 15%의 사람들이 항공편의 70%를 이용하며, 인구의 절반은 1년 동안 비행기를 전혀 타지 않는다고 합니다.(Flight Free, 2020)
탄소발자국 큰 비행기 타지 말자, ‘플라이트 셰임' 운동
비행기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다른 운송 수단과 비교해 시간 대비 가장 높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유럽환경청(EEA)에 따르면, 비행기 승객 1명당 1km을 이동할 때 이산화탄소 285g을 배출하는 셈인데, 이는 버스의 4배, 기차의 20배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약 2.5%가 비행기에서 나오는데요, 이용객 증가율을 감안하면 내년에는 3.5%로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현재 내연 자동차는 전체 배출량의 9%를 차지합니다. 게다가 비행기는 이산화탄소 배출뿐만 아니라 고도 8km 이상 높이 날 때 생기는 비행운으로 인한 온실효과 문제도 심각하죠.
▲ 1km 이동할 때 승객 1명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비행기가 기차나 버스보다 크게 높다. 비행기는 다른 운송수단과 다르게 이산화탄소 배출뿐만 아니라 고도 8km 이상 높이 날 때 생기는 비행운으로 인한 온실효과 문제도 심각하다. 출처: 유럽환경청 2019 |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이 기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유럽 각 정부와 유럽연합 차원에서도 탈탄소 운송수단에 대해 고심하고 있습니다. 또한 시민사회에서는 항공기 여행을 줄이자는 ‘플라이트 셰임’(flight shame, 부끄러운 비행) 운동이 일어나고 있어요. 2018년 스웨덴에서 주도하고 있는 이 운동은 환경 의식이 있는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면서 느끼는 불편함과 부끄러움에 대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비행기 이용을 최대한 줄이자는 캠페인입니다.
“Vi håller oss på jorden”(우리는 땅에 머문다)라는 이름으로 조직된 한 단체는 2019년부터 전 세계인들에게 항공기 없는 삶에 서약하도록 독려하는 “Flight Free”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죠. 이 캠페인은 영국, 미국, 슬로베니아, 호주 등 여러 국가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유럽 국가들 중 항공객 이용자가 가장 많은 영국에서 “Flight Free UK” 캠페인이 퍼져나가는 것은 특히 주목할 만합니다. 2019년 스웨덴에서는 항공기 승객수가 5% 감소하고, 철도 이용객은 8% 증가했다고 합니다.(스웨덴 철도청 SJ)
“Vi håller oss på jorden” 단체의 설립자인 마야 로젠(Maja Rosén)은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는 것이 개인 차원에서 중요한 탄소 배출 절감 방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단거리 항공편 대신 기차 등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좋으며, 피치 못한 경우가 아니라면 해외여행을 줄이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겁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지속되면서 실제로 많은 국제회의나 교류행사가 온라인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에, 이미 경험치도 쌓였죠.
▲ 현재 진행 중인 ‘Flight Free 2021 캠페인’에서 66개국 1만1천여 명이 2021년에는 비행기를 타지 않겠다고 서약했다. 캠페인에 동참하고자 하는 독자들은 아래 사이트에서 등록하면 된다. https://flightfree.world 출처: Flight Free World |
항공노선을 기차로 대체…유럽 정부와 항공업계의 변화
항공업계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습니다! 최근 네덜란드 항공사 KLM은 고객들에게 “책임 있는 비행”을 이야기하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에만 항공기를 이용하라고 안내하기 시작했죠. 작년에는 네덜란드 철도회사와 이웃 국가인 벨기에 철도회사와 협력해서 암스테르담-브뤼셀 항공 노선을 기차로 대체했습니다.
역시 지난해 오스트리아 항공사도 자국 철도청과 협력해 대표 도시인 빈-잘츠부르크 구간 항공편을 폐지하고, 대신 두 도시를 연결하는 직통열차를 하루 최대 31편으로 늘리기로 했습니다. 프랑스 국적기인 에어프랑스는 국내 노선 수를 40% 감축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죠. 물론 코로나의 여파로 수지타산을 맞추기 위한 이유가 컸겠지만, 유럽연합의 탈탄소 정책에 발맞추는 결정이기도 합니다.
2016년에는 UN 산하 국제민간항공기구연합(ICAO)가 국제항공 탄소상쇄감축제도인 ‘코르시아’(CORSIA, Carbon Offsetting and Reduction Scheme for International Aviation)를 채택한 바 있는데요. 항공업계 스스로 탄소배출량을 2020년 수준으로 동결하고, 초과 배출한 항공사는 탄소 배출권을 구입해서 상쇄해야 한다는 데에 합의한 것입니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연료 효율이 높은 항공기를 개발하고, 폐기물을 감축하고, 바이오 연료를 개발하는 등의 방안도 진행 중입니다.
사실 항공업계의 이런 노력은 ‘구속력 있는 정부 정책’이 동반되어야 탄력을 받을 수 있죠. 유럽연합은 2008년 유럽항공운항 지침을 개정해 2012년부터 EU 영토 내에 이착륙하는 모든 항공사를 대상으로 ‘탄소배출권 거래제도’(ETS)를 적용하기로 결정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7월 14일, 기존 유럽그린딜(2019년) 정책의 후속 정책인 탄소감축 입법안 패키지 “Fit for 55”를 발표했는데요.(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 1990년 대비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 40% 감축하려던 목표를 55%로 늘린 것이 골자.) 코르시아와 보조를 맞춰 항공분야 탄소 배출권 거래제를 강화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 지난 4월에는, 프랑스 국회가 단거리(2시간 30분 이내) 국내 항공 노선을 금지하기로 결정했어요. 프랑스 시민단체와 소비자협회 등이 주장하는 ‘4시간 이내 노선’에 비해서는 덜 급진적이긴 하지만 구속력 있는 법안으로써 효과가 기대됩니다. 프랑스 정부는 업계의 타격을 줄이기 위해 국적기 에어프랑스에 약 70억 유로(약 9조 3800억원) 차관을 제공합니다.
독일의 경우, 올해 9월 연방선거에서 총리가 배출되기를 기대하고 있는 녹색당은 기후보호를 위해 ‘국내선 항공기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과연 전면적 폐지가 가능할지 귀추가 주목되죠.
독일 공공서비스 노조인 베르디(Ver.di)는 초단거리 비행편을 감축하는 것뿐 아니라 항공권 최저요금 제도를 도입하자고 제안합니다. 저가 항공인 라이언에어와 이지제트를 예로 들면, 독일 베를린에서 스페인 바르셀로나까지 가는 편도 티켓을 9.99유로(약 만3천원)에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싼 값이 소비를 부추긴다는 맥락입니다. 최저 요금을 30유로 선으로 규정하면 항공권 충동 구매를 다소 줄일 수 있을 거라고 합니다.
기후위기 시대, 비행기 이용을 줄이자는 세계적인 흐름과 같이 한국도 변화의 움직임이 있을까요? 2018년, 한국의 항공교통 이용자는 1억1,755만 명(국내선 27%, 국제선 73%)으로 주요 유럽국가와 비교했을 때 뒤지지 않을 만큼 비행기 이용량이 아주 높은 수준입니다. 물론 육지로 국경을 넘을 수 없는 지형의 한계도 있지만, 비행기 운행을 줄이려는 노력은 필요합니다.
지난 7월에 국토교통부의 제주 성산읍 제2공항 건설안 ‘전략환경영향평가서’를 환경부가 반려한 이례적인 사례가 있었죠. 환경운동가들과 제주도를 사랑하는 많은 시민들이 제2공항 건설로 인한 생태계 파괴와 항공편 증설의 영향을 우려해 반대 운동을 벌여왔고요. 코로나 팬데믹과 더불어 기후위기의 시대, 앞으로 어떻게 여행을 하면 좋을지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실천했으면 좋겠습니다.
[필자 소개] 손어진. 정치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독일/유럽연합의 R&D 정책분석 일을 하고 있다. 독일 녹색당의 정치적 역동을 경험하고 싶어 베를린에 왔다. 지속 가능한 삶을 연구하는 움벨트(Umwelt) 모임 소속으로, 유럽의 녹색정치와 환경, 여성, 이민자 영역에서 다양한 만남을 통해 존재의 확장을 경험 중이다.
[필자 소개] 하리타: ‘에코워리어’들이 많이 사는 환경 도시 프라이부르크에서 환경 거버넌스학 석사과정을 밟았다. 탈서울 녹색전환을 위해 독일에 왔다. 다양한 종(種)과 성(性)이 공존하는 대안 공동체, 자연과 더불어 소박하고 소신 있게 사는 것이 일관된 관심사. 관련 저서 <뜨거운 지구 열차를 멈추기 위해 - 모두를 위한 세계환경교육 현장을 가다>(공저, 202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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