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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동의, 적극적 합의>③ 합의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성적 행위에서 ‘동의’에 대한 개념을 확산하고 새로운 성문화의 이정표를 만들기 위한 릴레이 토크쇼 <동의×동의, 적극적 합의>가 한국성폭력상담소 주최로 열리고 있다. 첫 번째는 ‘관계’를 주제로 열렸고(관련 기사: 성관계에서 ‘합의’하려면? 먼저 나를 알아야 한다 https://ildaro.com/9069) 두 번째는 ‘주체’에 관한 내용을 다루었다.
7월 22일 저녁 온라인으로 진행된 토크쇼는 『이기적 섹스』를 쓴 은하선 작가, 장애여성공감 진은선 활동가,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하영(얼룩) 활동가의 발언으로 채워졌다. 세 사람은 각각 자신의 위치와 정체성이 성적 행위에서의 합의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섬세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의 공통점은 ‘적극적 합의’가 개인 간의 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회문화적 맥락과 문화 그리고 사회 환경과 연결된 일이라는 것이다.
▲ 7월 22일 진행된 한국성폭력상담소 주최 릴레이 토크쇼 <동의x동의, 적극적 합의> 두 번째 ‘주체’편.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사회자 앎(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얼룩(하영) 활동가, 장애여성공감 진은선 활동가, 은하선 작가. |
양성애자이자 섹스칼럼니스트인 여성의 적극적 합의는?
은하선 작가는 “누가 나만 빼고 합의했지?”라는 흥미로운 제목으로 이야기의 포문을 열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원할 때만, 혹은 원하는 만큼 (성적 행위에서) 합의를 할 수 있다고 믿고 싶어하며, 원하지 않는 합의를 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모든 합의 안에는 “사회적 선입견과 편견이 내포되어 있다”고 말했다.
섹스칼럼니스트 그리고 커밍아웃한 양성애자로서, 은하선 작가는 성과 관련된 무례한 질문들을 자주 받는다고 했다. “보통의” 20~30대 이성애자 여성에게는 묻지 않을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는 것은 “상대방을 타자화하고 가십거리로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은 작가는 “이런 질문들에 ‘대답하지 않을 권리’조차 배제 당하거나 빼앗겼을 때, 과연 합의가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라고 했다. “내가 원하지 않는 질문을 하지 않고 나를 타자화하지 않는 사람과, 대화를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는데,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합의가 어려워지는 거죠.”
▲ 릴레이 토크쇼 <동의x동의, 적극적 합의> 두 번째 ‘주체’ 편에서 은하선 작가의 발표 중 |
은하선 작가는 자신이 미투(#MeToo) 운동에 참여하고 성폭력 피해 생존자로서 발언하기 시작했을 때 들은 말들도 털어놨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진위 여부’를 따지고 싶어 했는지를.
“섹스칼럼니스트니까 섹스를 많이 해 봤을 것이고, 본인이 원하는 대로 섹스에 합의하고, 본인의 욕망에 의해 섹스를 한 여성일 것이다. 그런 여성이 성폭력 피해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건 양립할 수 없다. 그러니까 ‘성폭력 피해는 거짓말이다’ 이렇게 단정하는 거예요. 그런데, 성폭력 피해는 거짓말이라고 쉽게 판단하면서, 반대로 섹스를 많이 해봤다는 가정이 거짓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왜 안 하는 걸까요?”
결국,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본다.” 이렇게 섹스칼럼니스트에 대한, 양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성적 행위에서 ‘적극적 합의’의 가능성은 낮을 수밖에 없다. 은하선 작가는 “개인인 내가 적극적인 합의를 이끌어 내겠다, 라고 하는 것만으론 적극적 합의를 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개인의 힘만으로 합의를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통념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기도 한다. “똑똑한 여성이 자신이 합의하지 않은 성관계를 성폭력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믿지 않아요. 똑똑한 여성이라면 합의를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단정하는 거예요. 성폭력 피해자는 똑똑하지 않고, 나약하고, 순결하고, 순수해 보여야 한다는 편견 때문이죠.”
은하선 작가는 개인들 간의 적극적 합의가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선 성/젠더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깨기 위한 움직임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중요한 포인트를 짚어줬다.
타인의 ‘보조’가 필요한 장애여성의 적극적 합의는?
장애여성공감 진은선 활동가는 ‘성적인 존재’에서 아예 배제되어 있는 장애여성의 적극적 합의, 그 가능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진은선 활동가는 장애여성의 합의에 관해 논의하기 위해서는 일단 “망한 섹스”를 포함하여 다양한 섹스 경험이 드러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적극적 합의를 이야기할 때, 어떤 완성된 결과가 아니라 적극적인 시도와 실패의 경험을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 우리의 ‘망한 섹스’ 또한 돌이켜 보면 어떨까 합니다.”
▲ 장애여성공감에서 제작한 성인 발달장애여성을 위한 성교육 교재 <장애여성, 성性을 밝히다>(2019)에 실린 일러스트. 출처: wde.or.kr 2018년에는 사회가 강요하는 ‘정상성’에 맞서 장애여성의 몸을 이야기하는 <어쩌면 이상한 몸>(장애여성의 노동, 관계, 고통, 쾌락에 대하여)을 출간했다. |
진은선 활동가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자신의 사례를 들며, 많은 일상 생활에서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털어놨다. 이는 “개인적인 영역인 몸을 드러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월경용품을 사용할 때도 지원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과정에서 활동지원사와 서로의 영역을 최대한 침해하지 않는 방법을 맞춰가기 위해 고심한다고 했다. “파트너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내 몸이 상대방에게 굉장히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상황에서, 장애가 있는 내 몸을 파트너가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그리고 섹스 전후에 필요한 보조는 어떻게 요청할 것인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이 과정을 함께 겪는 순간이 로맨틱하게 느껴질 것인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런 점들이 무척 중요하니까요.”
그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선 “파트너와의 솔직한 대화”가 필요했다. 진 활동가는 “파트너가 내 몸의 속도를 맞춰줄 수 있는지, 또한 ‘파트너니까 당연히 보조해야지’라고 대충 넘어가는 게 아니라 나의 고민을 나눌 수 있는지가 관계에서 굉장히 중요했다”고 밝혔다.
성관계 시 어떤 상황에서 보조가 필요하지 않는데도 상대방이 ‘내가 해줄게. 내가 해주는 게 더 편하겠다’고 하면서 (자신의 속도를) 답답해하거나, 혹은 보조가 필요할 때 아무것도 하지 않는 파트너와는 “섹스를 하기 어렵고, 더 이상의 관계도 지속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진은선 활동가는 관계에서 ‘주도권’에 관한 고민도 많았다고 했다. “파트너와 함께 있을 때 화장실에 가서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아서, 파트너와 만나는 날 아무것도 먹지 않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결국, 이런 상황들이나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상대방에게 설명하고, 왜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파트너가 이해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친밀한 관계라고 하더라도 몸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내 생각을 그 사람이 온전하게 다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소통하려는 노력이 실패할 수도 있지만,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것, 내가 욕망하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고, 또 그러한 과정을 통해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신뢰는 “내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했다.
▲ 릴레이 토크쇼 <동의x동의, 적극적 합의> 두 번째 ‘주체’ 편에서 장애여성공감 진은선 활동가의 발표 중 |
한편, 진은선 활동가는 파트너와의 관계뿐 아니라 장애여성의 성적 권리와 섹슈얼리티에 대해 더 많이 논의하기 위해선, 장애여성이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탐구할 수 있는 “사적인 공간이 필요하다”고 언급하며, 공간과 접근성의 문제도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사람의 삶에 대한 통제권을 제한해서 주체성을 상실시키는 시설화”의 문제를 짚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진 활동가는 “이 사회의 관계와 환경이 달라지지 않고, (장애 여성의) ‘성적 권리’만 따로 분리해서 이야기할 수 없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적 권리에 대한 고민은 ‘적극적 합의’를 위한 적극적인 시도 속에서 겪은 실패와 위험을 존중하고 지지하는 것으로 시작돼요. 계속해서 다음을 만들 수 있는 사회적인 지지 기반과 자원을 만들어야 하고, (장애 여성들이) 그런 경험을 더 많이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
‘19금’과 ‘여고생’ 사이에서, 여성 청소년의 적극적 합의는?
“청소년에게 유해한 결과는 누가 결정했을까?”라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하영 활동가 또한 적극적 합의가 사회적 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드러냈다.
▲ 토크쇼 <동의x동의, 적극적 합의> 두 번째 ‘주체’편에서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하영(얼룩) 활동가의 발표 중 |
하영 활동가는 먼저, 법적 ‘미성년자’로 분류되는 19세 미만 청소년들에게 ‘유해하다는 것’의 기준의 모호함을 지적했다. 인터넷 검색창에 콘돔이나 여고생을 검색하면 ‘노출하기 부적절한 검색결과는 제한한다’는 말이 등장하는데, “왜 여고생이라는 말이 부적절한 결과가 되었는지” 물었다. “사실 성이 정말 청소년에게 유해하다기보다, 청소년과 결부되는 성의 이미지가 문란하고 부적합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하영 활동가는 “여성 청소년의 몸은 이중잣대 속에서 왔다갔다 한다”고 했다. “성적 대상화되는 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순진하고 무결한 피해자와 같은 이미지”이기도 하다.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를 들었다. 한 여고생이 속에 흰색 나시를 입고 교복 와이셔츠를 입고 갔더니 교사가 “(와이셔츠 단추를) 잠궈도 선정적, 풀어도 선정적”이라고 말했다는 것. 하영 활동가는 “여고생이라는 존재 자체가 성적 대상화되어 있다”고 말하며, “이들의 몸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여고생에 대한 통제가 이루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성적 권리를 박탈하는 방식은 보호가 될 수 없다”고, 하영 활동가는 강조했다.
“여성들이 밤길을 조심한다고 해서 여성들을 향한 범죄가 사라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청소년들의 성적 권리를 박탈한다고 해서 청소년들에 대한 성적 착취는 사라지지 않아요. 오히려 청소년들을 욕망을 가진 존재로 인정할 때, 청소년들의 개별성이나 욕망을 박탈하는 방식이 아닌 인간다운 삶 자체를 보장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보호가 이루어질 수 있어요.”
▲ 섹슈얼리티에 대한 여성 청소년들의 직접적인 목소리를 듣기 위해,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는 자색고구마와 공동으로 작년 1월 30일~2월 2일 서울 갤러리 빈치에서 <콘돔 전시회 - 힐난도 수치도 자랑도 아닌>을 개최했다. 사진은 전시회 작품 스크랩북 일부. ©일다 |
그렇다면 여성 청소년들에게 ‘적극적 합의’란 어떤 의미일까? 하영 활동가는 “여성 청소년들이 속해 있는 사회문화적인 위치가 (비청소년 혹은 남성 청소년과) 다르기 때문에 협상 자체가 동등하게 시작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여성 청소년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적 대상화되면서도 동시에 나이주의 영향 아래에서 아이 취급을 받고, 또한 ‘소녀’일 것을 요구 받는다. 이런 상황들이 적극적 합의를 복잡하게 만든다”는 것.
때문에 “(성적 행위에서) 사회문화적 맥락과 일상을 함께 고려한 합의가 필요하고, (문제가 생길 시) 청소년 개인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맥락들, 그리고 규범과 규칙들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영 활동가는 아동청소년 대상 성교육이 ‘안돼요, 싫어요’를 가르치지만, 과연 아동청소년들의 ‘안돼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를 사회가 정말 잘 받아들이고 있는지 질문했다. “일상에서 청소년의 거절 의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건, 성적 상황에서도 이들이 합의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지 않은 것”이라는 중요한 지적이다.
덧붙여, 성적 행위에서 적극적 합의를 하기 위해서는 “청소년의 의사가 일상적으로 존중 받고, 청소년이 안전함, 불편함, 즐거움, 두려움 등 감각과 감정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이 수용될 수 있는 사회문화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박주연) 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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