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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그 이후의 삶> 세월이 자동 해결해주지 않는 것들

-젠더폭력 생존자들이 기록하는 <폭력 그 이후의 삶>을 연재합니다. 젠더폭력을 단지 하나의 사건으로 바라보지 않고, 그 이후에도 계속되는 피해와 저항과 생존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본 기획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보도됩니다.

 

 

당신의 연애는 안전한가요

성인 여성의 절반 이상이 경험한다는 데이트폭력데이트 초기부터 헤어짐, 이별 후 과정까지 피해자의 눈으로 낱낱이 재해석하며, 데이트폭력이 일어나는 과정을 속 시원하게 보여주며 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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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5여 년 전 초등학생 시절, 성폭력을 당했다. 정확한 나이와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의 피해 경험은 생생하다.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나는 부모님의 요구로, 아침에 일어나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하고 학교에 가야 했다. 그날도 평소와 같았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조금 더 빨리 가기 위해 상가 안을 가로지른 게 다였다.

 

그때 한 고등학생이 다가와 중요한 물건을 잃어버렸다며 함께 찾아줄 수 있냐며 말을 걸었다.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 배웠기에 선뜻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학생이 앞장섰던 비상계단 반 층 정도 따라 올라갔을 때, 그는 갑자기 무섭게 표정을 바꾸며 내가 물건을 훔쳐갔다고 화를 냈다. 주머니에 숨긴 게 아니냐며 손을 넣었다. 그러곤 차츰 내 몸을 더듬고 만지더니 이내 자신의 바지까지 벗어 내게 만지라 강요했다.

 

그날의 경험은 당시에는 큰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동네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지만 스치듯 지나갔으니.

 

시간이 흘러 학교에서 성폭력에 관한 교육을 받았다. 너무나 내 얘기였다. 하지만 그 교육에는 성폭력을 당하고 바로 도움을 청하지 못한 피해자에 대한 내용이나, 늦게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은 없었다. 찜찜한 마음이 들어 엄마에게 말했지만, 괜찮다고만 할 뿐 어떠한 대처도 없었다. 단지 성폭력 피해 경험을 내가 완만히 넘기길 바라셨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남자에 대한 공포가 내 삶을 지배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많은 것들이 변화했다. 교복을 입었고 과목마다 선생님이 달랐다. 하지만 바뀌지 않은 게 있었다. 남자 앞에서는 여전히 어린 시절의 나로 멈춰 있다는 사실이다. 남성이라는 존재 자체는 날 작은 어린이로 만들었다. 이는 남자 중학생 고등학생뿐만 아니라 성인까지 확대되며 이어졌다.

 

▲ 상급학교에 진학하고, 몸이 커져도, 남자들 앞에서는 여전히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간 듯 했다. (일러스트 제작: 두두사띠)

 

1학년 때는 남녀 분반이라 조금 나았으나, 이후 합반이 되자 학교 가는 게 정말 싫었다. 담임선생님은 남녀가 짝이 되도록 자리를 배치했는데, 여학생이 한 명 더 많아서 딱 한 명만 여자 짝꿍이 될 수 있었다. 자리를 바꾸기 하루 전날은 침대에 누워 그 한 자리가 내 자리가 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여자 짝꿍이 된 적은 없었다. 남자 짝꿍의 팔이 내 책상으로 조금만 넘어와도 무서웠고, 모둠 활동으로 책상을 돌려야 할 때 남자아이들과 마주보는 것만으로도 정말 힘들었다. 복도에서 큰소리로 욕을 하거나 웃는 남자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모두 나를 겨냥한 것 같아 위축되기도 했다.

 

고등학교에 와서는 조금 나았다. 3년 내내 분반이었고, 원하는 대학에 가는 게 최우선이라 공부에 전념했기 때문이다. 나에 대해서도 더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내성적이라 생각했던 나는 사람을 만나고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며, 유쾌하게 부탁을 거절할 줄 알고, 부당함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중학교 때는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던 학급 반장을 3년 내내 맡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성격은 여자에게만 한정된 게 문제였다. 여전히 남자 앞에만 가면 작아졌고, 평가받는 기분이었다. 복도에서 지나갈 때 여전히 눈치가 보였으며, 야간 자율학습을 할 때 남학생 근처에 앉지 않으려고 온갖 노력을 했다.

 

한 번은 체육대회 출범식에 학급 대표로 깃발을 들고 행진해야 할 일이 있었다. 전교생이 보는 앞에 나서야 한다는 생각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모든 남학생이 나를 두고 평가할 것만 같았다. 어떻게 하면 피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끝에 결석을 택했다.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체육대회였지만 전교생, 특히 남자아이들 앞에 나서는 건 죽기보다 싫었기 때문이다. 한동안은 옷장 속 반티를 보면 체육대회를 도망쳤다는 생각에 부끄러웠다. (지금은 그것이 나를 지키기 위한 자기 돌봄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지방에 있는 사범대에 진학했다. 거리가 멀어 기숙사 생활을 할 수밖에 없어 처음으로 집을 떠나게 됐다. 부모님과 떨어져 살게 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걱정했던 것보다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여자’ 기숙사는 나름의 안전한 공간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함께하는 룸메이트와 공감대를 나누며 친하게 지냈다.

 

하지만, 여전히 남자는 무서웠다. 우리 과 동기들은 남녀가 터울 없이 어울렸는데 나는 그 분위기가 정말 싫었다. 싸웠거나 하는 등의 어울리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단지 남성이라 다가가기 힘들었을 뿐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같은 과 동기들이 아닌 기숙사 룸메이트들과 어울렸다.

 

한 번은 엠티에 가게 되었는데 신입생이라는 이유로 춤을 춰야 했다. 고등학교 체육대회보다 더 싫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싫다고 빠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조로 구성되었기에 내가 빠지면 다른 조원들이 곤란해지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춤 추는 걸 안 좋아한다며 빠지겠다고 얘기하는 동기를 비난하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니 무서웠다. 엠티 당일이 되었고, 순서가 되자 무대에 올라갔다. 뭐가 좋다고 맨 뒤에서 웃으며 감상하는 교수들에게 정이 떨어졌다. 또 소리치는 남자 선배들의 모습도 싫었다. 그날 일을 계기로 학교에 정을 못 붙이게 된 나는 겉돌고 겉돌다 결국 자퇴를 했다. 그리고 다른 대학에 진학했다.

 



▲ 집단상담 중에 ‘관계 속의 선’을 시각화한 활동이다. 보이지 않는 선도 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털실을 골랐다.  ©이레

 

15년 만에 첫 문턱을 넘다: 도움 요청하기

 

서울로 대학을 진학한 뒤, 2년 동안 학교 선배와 홈 쉐어링을 하며 지냈다. 하우스메이트와 함께 생활하면서 모르는 분야에 대해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여성 인권에 대해서도 공부하기 시작했다. 여성이 사회적으로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음지에 숨어 있는 성폭력 피해 여성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되었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조금 더 조심해야 했다’라는 식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사회의 낯짝을 들여다보니, 페미니즘은 학문으로서만이 아니라 생존 수단으로서 존재해왔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늦었지만 성폭력 피해에 대해 나를 침묵하게 한 모든 상황으로부터 사과받고 싶었다.

 

용기를 내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전화를 걸었다. 상담소에 전화하기까지 정말 많은 고민과 용기가 필요했다. 한 번은 학교상담센터 상담사에게 “너무 힘들어서 성폭력상담소에 도움을 요청하고 싶어요. 그런데 혹시나 상담 기록이 남을까 걱정돼요. 나중에 교사가 되는 데 걸림돌이 되지는 않겠죠?”라고 물었을 때 “글쎄요. 아마 괜찮지 않을까요?”라는 답변을 들었다. 사실 상담 기록은 어떠한 상황에도 노출되지 않으며 교직 생활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걸, 나도 알고 있었다. 내게 필요한 말은 “도움을 요청하는 건 용기 있는 일이다”라는 한 마디였다. 하지만 “글쎄요”라는 상담사의 대답은 또다시 나를 나락으로 몰았다. 성폭력 피해자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문턱이 얼마나 높은지 뼈저리게 경험했다.

 

전화 상담은 안전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성폭력 사건으로부터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에 대한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됐고, 피해 사실을 증명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있는 그대로의 내가 존중받는 기분이었다. 자그마치 약 15년 만에 겨우 첫 문턱을 넘게 되었다.

 



▲ 첫 상담 받으러 갈 때 길목에서 찍은 사진이다. 의도치 않은 꽃길이 펼쳐져 있어서 기분 좋게 도착할 수 있었다.   ©이레

 

이후, 연계를 받은 상담센터에서 6개월간 상담을 받았다. 상담을 통해 그동안 습관처럼 ‘괜찮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는 걸 알게 됐다. 사실 나는 괜찮지 않았다. 단지 괜찮은 것을 정상으로, 괜찮지 않은 것을 비정상이라 여기며 꼭꼭 숨긴 것이다. 나는 정상과 비정상의 이분법 프레임에 빠져서 ‘왜 나만 불행한 일을 겪은 것이냐’고 원망하지도 못했고, ‘상처가 별이 될 거다’라는 말도 안 되는 위로를 들었을 때도 웃어넘겼다. 상담 선생님은 힘듦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지지받지 못해 상처받았던 시절과 마주하는 것 자체로도 큰 위로였다.

 

성폭력 피해 여성으로서 나의 회복, 나의 성장

 

상담을 시작한 이유는 ‘교사’라는 직업에서 필수적일 수밖에 없는 남학생과의 충돌에서 오는 불안 때문이었다. 교육실습을 다녀온 과 선배가 ‘Me Too’가 적힌 핸드폰 케이스를 꼈다는 이유로 “선생님 성폭력 당했어요?”라는 말을 들었다는 얘기를 듣고, 그 불안은 더 커졌다. ‘나라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했을까,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도망치지 않았을까, 혹은 성폭력을 당하면서도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던 어린 나처럼 굳어 있었을까’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하루는 상담 중에, 교육실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속상함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동기들은 실습을 준비할 때 교과 공부, 심지어는 아이들 이별 선물은 무엇을 준비할 건지 고민하고 있는데, 나는 아이들을 상대하는 트라우마에 대해 준비하는 것이 너무나 억울하다고 말이다. 그때 선생님은 어린 나는 고등학생인 가해자에게서 도망치지 못했지만 성인이 된 지금의 나는 충분히 안전한 공간으로 대피할 수 있음을,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음을 인지할 수 있게 도와주셨다.

 

상담 말미에는 “트라우마가 있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이로 인해 다른 사람은 고민하지 않을 젠더 감수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함께 성찰하는 시간을 가진다는 건 정말 잘한 일이에요”라고 말씀해주셨다. 덧붙여, 외면에서 보이는 당당함과 내 속의 부끄러움에 대한 모순으로 힘들어하지 말라는 조언은 전에 받았던 말도 안 되는 상담(상처는 별이 될 거예요, 평안하길 기도할게요 등)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위로가 되었다.

 

상담을 통한 회복은 몇 달 전 모교 교육실습을 잘 다녀온 것으로 증명할 수 있다. 남녀공학인, 30명 중에 절반 이상이 남자인 고등학생들 앞에서 완벽하게 수업을 해낸 것은 소중한 실습 경험이기도 하지만, 나에겐 성폭력 피해 여성으로서의 성장이기도 했다.

 



▲ 몇 달 전 다녀온 교육실습은 소중한 경험이자, 성폭력 피해 여성으로서 나의 성장이기도 했다. 격주 등교로 인해, 오지 않은 아이들을 기다리며 찍은 빈 교실. 교육실습 사진만 보면 아직도 행복하다.   ©이레


성폭력 피해 생존자를 대상으로 하는 집단상담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신청 동기란에 ‘내가 느꼈던 연대감을 조금 더 확장하고 싶고, 더 성숙하고 안정된 삶을 영위하고 싶다’라고 적었다. 집단상담 중에 ‘안전하게 말하기’ 시간이 있었는데, 안전함이 강요되거나 강조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안전하다는 걸 느낄 수 있어 참 행복했다.

 

하지만 상담을 받는 모든 순간이 행복했던 것은 아니었다. 아픔을 함께 공감하고 또 도와주시는 많은 분이 계셔서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혼자 서 있는 게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담을 통해 벌거벗었지만 결국은 혼자 버텨내야 한다는 생각에 외롭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도움을 주는 사람이 없다면 여전히 어둠 속에 있을 나 자신을 생각하며, 혼자 힘으로는 이겨낼 수 없는 사람이란 생각에 다시 우울해졌다. 행복하기만 하라는 것이 이리도 힘든 걸까 한탄하며 보낸 날도 많았다.

 

그럼에도 집단상담은 ‘자기 돌봄’이라는 큰 가르침을 주었다. 혼자 살아가면서 나를 돌보고, 또 위로하는 삶이 가장 건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집단상담 이후 나는 무엇을 할 때 가장 안정감을 가지고 행복한지 늘 고민하고 있다. 초저녁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에 다녀오는 것, 탄산이 가득한 맥주를 마시며 넷플릭스를 보는 것, 샤워 전 좋아하는 러쉬 스프레이를 뿌리고 향긋하게 샤워하는 것, 좋아하는 소리 녹음을 듣기, 지인에게 그림 선물하기 등 좋아하는 것을 맘껏하며 살아내고 있다.

 

1인 가구로 독립 후, 생존을 위한 투쟁은 진행형

 

내게 있어 집이라는 공간은 단순한 생활공간을 넘어 가장 안전한 공간이자 쉼이 있는 곳, 폭력이 없고 가장 나다울 수 있는 공간이다. 특히 1인 가구로 독립한 후에는 나를 돌볼 사람이 나뿐이라는 생각에 많은 걸 신경 쓰는 중이다. 건강한 한 끼를 챙겨 먹기 위해 애쓰고, 깨끗하게 정돈된 환경에서 지내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집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공간이길 바라는 내 생각과는 달리, 여성 1인 가구로 어쩔 수 없이 불안한 상황에 자주 놓이게 된다. 5층임에도 불구하고 창문 밖으로 이웃과 눈이 마주쳤던 경험은 대낮에도 암막 커튼을 치게 했다. N번방 가해자 얼굴이 공개되지 않았을 때, 가해자가 수원에 거주했다는 이유로 혹시 15년 전 나를 가해한 동일 인물이 아닐까 걱정하며 2주가 넘게 공황에 시달리기도 했다. 공황이 올 때 함께 있어 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나를 더 공포로 몰았고, 내가 의지할 건 비상약 두 알이었다.

 

또 하루는 에어컨을 설치하기 위해 기사를 불렀을 때의 일이다. 남자 기사가 갑자기 화장실을 써도 되겠냐고 물어본 뒤 5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자 불안했다. 땀을 뻘뻘 흘린 상태로 나오는 모습을 보며 ‘화장실에 카메라를 설치한 건 아닐까, 선반 안에 있던 월경컵, 속옷 등을 혹시 만져보지는 않았겠지?’ 등의 생각들로 가득했다.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우리 집인데, 화장실을 갈 때 마스크를 쓰게 되고, 샤워를 10분 내로 끝내는 내 모습을 보며 화가 나기도 했다. 결국은 불법촬영카메라 탐지기를 구매해 화장실을 둘러본 뒤에야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었다.

 

더 화가 나는 것은, 내가 이 부분에 대해 힘들었다고 학교 상담 선생님에게 말씀드렸을 때 “모든 남성이 그렇지 않아요. 5분이라는 시간은 불법 카메라를 설치하기 위한 충분한 시간이 아니니 안심해도 돼요”라는 말을 들은 것이다. 그 말은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네가 예민한 거야”라는 말로 들렸다. 여성 1인 가구로서 무서움에 떠는 것도 억울한데, 억울함을 표현하는 것도 지양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 갑갑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나는 이제 불편한 내용에 대해 되받아칠 수 있을 만큼 단단해졌다는 것이다. “예민하다는 말로 피해자의 입을 막는 것은 불편함을 이야기하는 걸 예민함으로 치부해서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를 막는 것이며, 결국 이는 2차 피해로 이어져 숨어있던 피해자들이 용기 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없애버리는 거다”라고 말이다.

 



▲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기 돌봄 방식은 한강 다녀오기다. 한강대교에는 노들섬도 있으니 아무 생각 없이 물 냄새 맡고 차 소리 들으며 천천히 걷는다. 강 위를 걸을 수 있으니 더 시원하고 뻥 뚫리는 느낌이다.  ©이레


성폭력 이후의 나와, 도움을 받은 뒤에 나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매번 돌아본다. 이쯤 했으면 괜찮겠지 하면 울컥 공포에 차올라 제자리다. 이렇게 내 이야기를 글로 쓴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외면의 당당함과 내 속의 부끄러움이 모순처럼 보이는 것 같아 민망하다. 여전히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 힘들다. 성폭력 피해 경험이 오래됐다고 해서 기억이 무뎌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여전히 창문이 없는 비상계단은 혼자 가지 못하고, 뿔테 안경을 낀 중·고등학생을 보면 흠칫 놀라기며, 가해자의 얼굴이 생생히 떠오르는 날에는 수면제를 먹지 못하면 날밤을 새우기도 한다. 단지 살아 내기 위해 비상약을 먹고 지인에게 도움을 구하는 거다.

 

그래도, 이렇게 저렇게 살아남기 위해 애쓴 나 자신이 참 멋지다. 과거의 나를 마주하는 용기를 낸 나 자신에게, 지금이라도 스스로를 돌보기 시작한 나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레)

 

 

당신의 연애는 안전한가요

성인 여성의 절반 이상이 경험한다는 데이트폭력데이트 초기부터 헤어짐, 이별 후 과정까지 피해자의 눈으로 낱낱이 재해석하며, 데이트폭력이 일어나는 과정을 속 시원하게 보여주며 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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