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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새지평

품위를 손상시킨 것은 누구인가?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09. 6. 13. 08:30

[시사만평] 대법원, 故 최진실씨에게 광고주 손해배상 판결

품위를 손상시킨 것은 누구? ⓒ 일다 - 박희정의 만평

- 고(故) 최진실씨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물은 대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 -
[2009년 6월 9일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단체연합]

가정폭력 피해사실을 밝히는 것은 ‘품위’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다

지난 5월 28일, 대법원(주심 박시환 대법관)은 가정폭력 피해자인 고(故) 최진실씨에게 광고주에 대한 손해배상을 명했다.

최진실씨가 모델료를 지급받기로 하고 “자신의 사회적, 도덕적 명예를 훼손하지 않기로 하는 내용의 품위유지약정을 하였으므로”, “모델로서 활동할 수 있는 건강 상태와 용모를 유지”하여야 하며, “구매를 유인하는 데에 적합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망인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인하여 그 이미지가 손상될 수 있는 사정이 발생한 경우라 하더라도 적절한 대응을 통하여 그 이미지의 손상을 최대한 줄여야 하는” 계약상의 의무를 지고 있기 때문에 광 고주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매우 상식적이며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첫째, 대법원이 최진실씨에게 귀책 여부를 떠나 명하고 있는 손해배상책임의 본질이 가정폭력에 있다는 사실이다. 가정폭력은 신체적 폭력만 따져도 여섯 가구 중의 한 가구에서 발생하는 우리 사회의 만연한 문제인 동시에 신고율이 저조한 대표적인 암수범죄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고했을 때 경찰 구속율 0.7%, 법원 기소율 13.7%에 그치는 대표적으로 가해자에게 관대한 범죄이다.

둘째, ‘피해자에게도 뭔가 문제가 있을 것이다’라는 식의 가정폭력에 대한 통념으로 인해 피해사실을 말하는 것조차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척박한 사회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다 아는 유명인인 최진실씨가 자신의 피해사실을 공개했다는 것은 그만큼 피해의 정도가 극심했으며, 피해를 벗 어나고자 하는 욕구가 절실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셋째, “적절한 대응”이라는 것은 가정 폭력 피해자에 대한 사법기관의 처리가 ‘정상적’이며 ‘상식적’으로 작동할 때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 주지하는 대로 가정폭력에 대한 ‘사법처리’는 마비된 지 오래이다. 피해를 당했을 때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것 이상의 “적절한 대응”이 존재하는가. 대법원의 이러한 판시는 피해자에게 폭력의 발생과 폭력으로부터의 구제 둘 다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넷째, 가정폭력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그대로 수용한 이번 판결은 당사자인 최진실씨와 직간접적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고인의 자녀들뿐 아니라, 이 땅의 수많은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침묵하게 할 것이며, 이는 우리 사회가 가정폭력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겠다는 것을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대법원은 해당 아파트 광 고가 “품질과 품격이 높은 아파트라는 인상을 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어 그 광 고물에 등장하는 광 고모델 역시 이에 적합한 이미지를 유지할 필요”가 있고 판결문에 적시함으로써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인격”을 모독하였다.

다섯째, 모든 개인은 자신의 “품위”를 지킬 권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피해를 입었을 때, 개인은 피해당한 사실을 공포하고, 적절한 법적 구제를 받음으로써 자신의 “품위”를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최진실씨는 스스로 자신의 사회적, 도덕적 명예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델로서 소위 “품위유지약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된 이번 판결로 인해 최진실씨는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수준의 “품위”를 ‘국가’에 의해 손상당했다.


우리 단체들은 피해자에게 ‘품위유지’의 의무를 강요하고 피해자에게 그 모든 손해의 책임을 묻는 대법원의 형편없는 수준에 통탄하고, ‘생존’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안전할 권리’조차 눈감는 대법원의 명백한 책임 방기를 규탄하고, 이 판결 이후 더욱 침묵하게 될 수많은 피해자들의 아픔에 공분한다.

이에 우리 단체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1. 가정폭력 피해 현실을 외면하는 대법원은 각성하라.

1. 대법원은 가정폭력 피해자의 침묵을 조장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
1. 가정폭력 피해자의 ‘생존’의 권리와 ‘품위’를 유지할 권리를 훼손한 대법원은 사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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