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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복숭아』가 그린 세상과 산안마을 이야기

 

 

오늘도 닭들의 은혜를 입었다. 점심에 달걀말이를 먹었고, 저녁에는 맵고 짜고 질긴 것을 씹고 싶어서 거기에 부합하는 가장 빠르고 덜 비싼 메뉴인 치킨을 시켰다. TV를 켜고 앉아서 치킨을 뜯었다. 뉴스에는 수백 명에 이른 국내 코로나 확진자 상황과 백신 보급 소식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조류독감으로 달걀 수급이 어렵고, 정부가 미국산 달걀을 수입하면서 물가를 잡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내용이 이어졌다.

 

먹고 있던 치킨이 처음엔 꽤 흡족한하던 맛이었는데, 배가 채워질수록 기분이 나빠졌다. 나는 이 닭이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데... 먹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치킨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나를 비난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내가 먹은 12,000원짜리 국내산 치킨은 35일을 살다가 죽은 닭일 것이다. 닭이라기보다는 큰 병아리라고 해야 정확할 테고, 빨리 자라게 하는 사료를 먹었을 것이다. 조금 움직이긴 하면서 살았으려나. 달걀을 주는 닭 85%는 환기도 통풍도 안 되는 좁은 케이지에 여섯 마리씩 갇혀서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1년 6개월 동안 알만 낳다가 죽는다던데... 어딘지 먹는 것마저 내 삶이 모순덩어리라는 느낌이 든다.

 

▲ 유혜율 글, 이고은 그림 『엄마와 복숭아』 중에서. (후즈갓마이테일, 2020)


먹는 것, 사는 것, 사랑하는 것…『엄마와 복숭아』의 세계관

 

『엄마와 복숭아』(유혜율 글, 이고은 그림, 후즈갓마이테일)의 엄마는 샘이 솟고 꿀이 나는 숲에서 아기를 낳기 위해 길 떠날 채비를 한다. 가는 길에 배 속에 아기를 먹이고, 스스로 먹기 위해 향긋한 복숭아를 따서 바구니에 한가득 담았다. 그런데 갑자기 사자가 나타나 너를 잡아먹겠다고 으르렁거리는 것이 아닌가.

 

복숭아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식으로 전개되기 어려워 보이는 건, 사자도 배 속에 아기가 있어서 절박하기 때문이다. 태양도 삼키고 싶을 만큼 배가 고프다는 사자를 엄마도 공감할 수 있으니, 이 일을 어떡할까. 게다가 한 고비 넘기면 곰이, 또 한 고비 넘기면 거미가 나타나, 배가 고프니 잡아먹겠다고 아우성이다. 그들 모두 아기들의 엄마이니, 엄마는 정말 난감할 밖에.

 

이 책의 부제는 ‘그렇게 엄마는 너를 만났어’이다. 엄마가 아기를 만나기까지의 감정을 모든 것이 타들어갈 듯 뜨거운 사막을 건너는 마음, 숨이 턱턱 차는 바위산을 오르는 기분, 캄캄하고 갑갑한 동굴을 지나면서 겪을 법한 감정으로 상징한 것이 재미있다. 어두운 이야기는 아니다. 귀엽고도 세련된 그림과 신화적인 상상력이 따스하다.

 

책 속에는 엄마와 사자와 곰이 나란히 앉아 복숭아를 한 알씩 나눠먹는 아기자기한 장면이 있다. 달콤하고 아삭한 복숭아 한 입이 내 몸이 되고 아기 몸이 된다는 것이 직관적으로 드러난다. 이 책을 다 보고 나면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 사랑하는 나 자신을 위해 무엇을 먹을 것인가? 누구와 살아갈 것인가? 어떤 세계에서 살 것인가?’ 질문하게 된다. 사는 것, 먹는 것, 사랑하는 것은 서로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 누구도 함부로 해하지 않으면서, 서로의 생존과 존엄을 지켜가면서 함께 살아갈 수는 없을까?

 

닭들이 행복해야 사람도 행복하다, 산양마을의 양계

 

두 해 전, 축산을 순환농법으로 하는 ‘산안마을’(야마기시즘실현지영농조합법인)에 내가 속한 농악단이 초대받아서 간 적이 갔다. 산안마을은 경기도 화성시 구문천리에 있는 공동체다. 이 지역은 험한 산이 없고 햇볕이 잘 드는 지역이라 예부터 풍년이 잦았다고 한다. 삼사십 년 전까지는 한 시간 남짓 걸어가면 바닷가 갯벌이 있었고, 소금과 건강한 갯것들을 얻을 수 있어서, 마을 사람들 모두 배 곪지 않으면서도 자연을 귀히 여기며 화목하게 지냈다고.

 

그런데 간척사업으로 바닷길이 막히고, 외지인들의 개발과 투기로 마을이 망가지고, 하룻밤 사이에 산 하나가 깎여 사라진 걸 목격하면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더 이상 이를 방치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무와 산을 마구 파헤치는 사람들의 감각을 되돌아보고 생태적인 감수성을 되찾고 싶어서, 퍼머컬쳐(지속가능한 농업) 학교와 시농제(한해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를 열기로 한 것이다.


나는 그곳에서의 시농제가 참 좋았다. 시농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르신들에게 마을의 옛 당제와 구문천리의 풍습과 유래 등 재미있는 이야기를 잔뜩 들은 게 좋았고, 산안마을 사람들의 생활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평소에는 흥을 누른 채 점잖게 일만 하신다는 마을 할머니들이 시농제 날에 드러낸 화려한 춤사위가 반가웠다. 또 그날 먹고 받아온 산안마을 달걀의 고소하고 건강한 맛이 행복했다.

 

▲ 친환경 축산, 선진 방역 시설을 갖춘 산안마을의 양계.   ©산안마을

 

산안마을의 숙소에 머무는 동안 새벽 내내 꼬꼬댁 우는 닭들의 우렁찬 소리를 들었다. 이곳에서 닭들은 9단으로 쌓아놓은 좁은 캐리어가 아니라, 빛이 잘 들고 바람이 잘 지나다니는 너르고 평평한 닭장에서 산다. 흙을 파헤치며 놀거나 날개를 파닥거리며 횟대에 오르고, 볏짚, 왕겨, 톱밥, 흙, 숯가루 등이 깔려있는 바닥에서 모래 목욕도 즐긴다. 바닥에는 발효시킨 닭똥이 깔려있어서, 닭이 새 똥을 누어도 냄새 없이 쾌적하다. 그 똥은 곧 거둬져 질 좋은 거름이 되고, 그렇게 길러진 풀은 다시 닭들의 먹이가 된다. 암탉들 사이사이에는 수탉이 살고 있다. 건강한 유정란을 얻을 수 있고, 닭들은 안정감을 가진다. 산안마을은 닭들이 행복해야 사람도 행복하다고 믿고 있어서, 이런 양계를 한다.

 

사실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닭들의 모습을 직접 본 건 아니다. 산안마을은 닭들을 전염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외부인의 접근을 철저히 막고 있어서, 닭들이 사는 곳 가까이에 가볼 수는 없었다. 오히려 그런 모습을 보며 사람들이 닭들을 온전히 귀하고 살아있는 존재로 대접해준다는 것을 느꼈다. 덕분에 나 역시 닭들을 죽은 고기가 아니라, 생명력 넘치게 살아있는 존재로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그 닭들이 낳아준 달걀이 고마웠고, 나를 먹이고 살리는 것으로 또렷하게 전해졌다.

 

‘예방적 살처분’이라는 이름의 동물대학살 멍령을 거부하다

 

얼마 전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3만 7천여 마리 닭들을 살처분하라는 행정명령이 산안마을에 떨어졌다는 뉴스였다. 2020년 12월 22일, 산안마을에서 1.8km 떨어진 농가에서 조류독감이 발생했는데, 우리나라는 2018년부터 조류독감 발생지 반경 3km 농가에 사는 닭들을 모두 ‘예방적 살처분’이라는 이름으로 죽이는 정책을 펴고 있기에, 산안마을에도 이 명령이 떨어졌다는 내용이었다. 기가 막혔다.

 

산안마을이 운영하는 SNS를 찾아보았다. “여러분의 응원 속에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하는 문장이 보였다. 산안마을은 살처분 명령에 반기를 든다고 했다. 조사와 검증이 가능함에도, 그런 것 없이 명령만 있는 비윤리적 살생에 동의할 수 없고, 사람들의 코로나 백신은 서둘러 개발하고 찾으면서도 이미 있는 조류독감 백신을 닭들에게 주지 않고 죽이는 행정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또한 이미 시와 도의 지원을 받아가며 출입차량 세척시설, 발효계분 보관시설 등의 선진 방역시설을 갖춘 친환경 양계농으로서 책임을 느낀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닭들과 함께 살고 싶기 때문이라고. 닭은 고마운 존재이고,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이지, 위협이 왔을 때 사람들의 편의에 따라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 친환경 축산농가 산안마을은 조류독감에 대한 ‘예방적 살처분’ 행정명령에 저항하며, 우리 사회에 새로운 말 걸기를 시도하고 있다.   ©산안마을

 

오히려 산안마을은 무차별 예방적 살처분이 동물대학살은 아닌지, 우리 사회에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살처분 명령 취소 행정심판’을 청구했고, 동물권행동 카라 등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1,850여 시민과 함께, 예방적 살처분 행정명령 중지를 요청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토론회를 열고, 청원을 올리며 우리 사회에 새로운 말을 걸었다. 우리 이렇게 계속 살아도 괜찮겠냐고.

 

다른 종과 공존할 수 있는 세상

 

2003년부터 지금까지 조류독감으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살처분된 닭과 오리의 숫자는 1억만 마리가 넘는다. 얼마나 많은 건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아프리카 돼지열병으로 2019년부터 지금까지 약 44만 마리 돼지가 죽었고, 구제역으로 약 400만 마리 돼지와 소가 생매장당했다. 이번에 발생한 조류독감은 2020년 11월 26일에 시작됐는데, 올해 1월 15일 기준으로 1만5천 마리의 닭과 오리가 살처분됐다. 그 중 75%가 ‘예방적 살처분’이라는 이름으로 죽었다.

 

이 글을 쓰던 1월 25일, 산안마을은 살처분 집행 정지를 받아냈다. ‘살처분 명령 취소 행정심판’ 최종 판단이 나올 때까지 3개월을 더 긴장하며 기다려야 하지만, 닭들은 우선 살렸다. 이런 사이에, 정부는 물류비 등을 세금으로 들여서 미국 달걀을 수입하면서도, 안전하고 건강한 산안마을 달걀은 버리는 정책을 펴고 있다. 날마다 하는 검사에서 산안마을의 닭들이 모두 건강하다고 나오고 있고, 조류독감 잠복기 3주가 지났지만 여전히 달걀 출하는 금지된 상태이다.(1월 19일 기준 약 60만 개 달걀이 농장 안에 쌓인 채로 버려질 위기에 놓여 있다.)

 

여러 정황으로 보았을 때, 산안마을은 이번 일로 큰 손실과 어려움을 겪을 것이 예상된다. 하지만, 이 저항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렇게 계속 살 수는 없으니까. 닭과 공존하지 못하는 세상에서는,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 유혜율 글, 이고은 그림 『엄마와 복숭아』 중에서.


『엄마와 복숭아』에서 엄마를 잡아먹어 자신의 아이를 살리려 했던 사자와 곰과 거미는 모두 절박하지만 아무도 악하지 않다. 그들 각자는 모두 귀엽고 재미있고 사랑스러운 존재들로 표현돼있다. 그러하기에 모두 제 아이를 사랑하는 만큼 너의 아이도 사랑하는 연대감으로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두려웠지만” 함께 계속 걸어갈 수 있게 된다. 그 과정에서 어느덧 “사자는 의젓하고, 곰은 미소 짓고, 거미는 말이 없고, 엄마는 두근두근” 설레고 성숙해진다. 이 성숙함이 우리에게도 필요하지 않을까? 조류독감과 아프리카 돼지열병과 코로나19가 퍼진 시대에, ‘종의 연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필자 소개: 안지혜 님은 그림책 『숲으로 간 사람들』(김하나 그림, 창비, 2018)을 쓴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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