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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제가 익숙한 사회에 ‘다양성의 빛깔’을 보여줘

제시카 러브 作 『인어를 믿나요?』



그림책 <인어를 믿나요?>에 등장하는 줄리앙은 남자아이다. 그리고 인어가 되고 싶다. 줄리앙은, 인어 꼬리가 마치 우아하게 흘러내린 긴 치마처럼 아름다워 보인다. 낭창한 긴 꼬리를 이리저리 움직여 가며 앞으로 옆으로 몸을 굴러 자유롭게 헤엄치고 싶다. 알록달록 각기 다른 물고기 떼와 어울려 논다면 더 신나겠지! 보글보글 늘어뜨린 머리카락과 목걸이가 있어도 근사하겠다.


그래서 줄리앙은 인어를 보았다는 할머니에게 조심스레 고백한다. 

“나도 인어야.”


제시카 러브 글 그림 <인어를 믿나요?> 김지은 번역, 웅진주니어


할머니가 목욕하러 가고 혼자 보내는 시간, 줄리앙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되고 싶은 모습으로 있는 것, 인어가 되는 것이다! 화분에 있는 야자 줄기를 한 줌 끊어 머리에 단다. 낭창낭창한 야자 잎은 긴 머리카락이 되었다. 입술에는 마음에 드는 립스틱을 발라봤다. 무엇이 더 필요할까 궁리하는 줄리앙. 창문에 걸린 하얀 빛깔 레이스 커튼을 풀어 허리에 둘러맸다. 아랫단이 바닥에 흐르도록 길게 늘어뜨리고, 끝부분을 묶어 홀 리본을 만드니 인어 꼬리를 가진 것만 같다. 


드디어 줄리앙이 원하는 인어의 모습이 된 순간, 때마침 돌아온 할머니가 줄리앙을 보고 만다. “앗” 줄리앙은 놀라고,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돌아서는데…


줄리앙이 스스로를 꾸미고 다듬은 장면이 신나게 그려져서일까? 인어 되기를 꿈꾸던 표정이 사랑스러워서일까! 혼자 자유로이 헤엄치듯 놀던 줄리앙이 갑자기 모든 걸 멈춘 순간 내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할머니가 돌아선 이후, 줄리앙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자기를 검열하기 시작한다. 그때 줄리앙은 어떤 생각을 하며 자기 모습을 살폈을까? ‘내 모습이 이상한가, 부끄러운 일을 한 건가, 레이스 치마가 어울리지 않나, 립스틱을 발랐다고 화를 내실까, 혹시 내가 흉한가.’ 이런 생각을 했던 걸까? 점점 더 풀죽은 표정이 되는 줄리앙을 할머니가 부른다. “이리 와 보렴.”


그리고 손을 펼쳐 보인다. “너한테 어울릴 것 같아서.” 살구 빛깔 구슬 목걸이가 들려있다.


아, 정말 다행이다! 기쁜 숨이 터져 나왔다. 줄리앙도 그랬겠지!


제시카 러브 글 그림 <인어를 믿나요?>는 2019년 볼로냐 라카치 상 수상작이다.


할머니는 인어로 꾸민 줄리앙의 모습을 본 순간에 어떤 마음이었을까? 당황하거나 혹시 속으로는 화가 났을까? 그래서 돌아선 걸까? 할머니가 어떤 기분이었을지 짐작하는 건 이 장면을 보는 독자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확실한 건, 할머니는 줄리앙에게 무엇도 함부로 질문하거나 평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남자아이가 웬 치마냐고, 무슨 옷을 입은 건지, 머리를 왜 그렇게 한 건지, 의도가 있는지 할머니는 묻지 않는다. 그저 줄리앙의 꿈을 지지해준다. 그리고 늘 그랬던 것처럼 줄리앙 옆에 함께 선다.


다음 장에서 줄리앙과 할머니는 한껏 멋을 낸 채 집 밖으로 한 발 내딛고 있다. 레이스 커튼 치마를 입고, 야자 잎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목에는 할머니가 준 구슬 목걸이를 건 줄리앙은  한 손으로 할머니 손을 꼭 잡고 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하며 어딘가로 나아간다. 


해변에 다다랐을 때, 줄리앙이 속삭였다. “인어다!” 줄리앙은 수많은 인어들을 발견했다. 인어가 된 줄리앙처럼, 저마다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뽐내며 나온 사람들의 행진을 만났다. 대열에 선뜻 들어서지 못하는 줄리앙에게 할머니가 말한다.


“우리 꼬마 인어도 같이 가 볼래?”


줄리앙과 할머니도 인어들과 함께 걷는다. 성별, 나이, 생김새와 스타일이 다른 각양각색의 수많은 사람들이 색깔과 모양이 다른 지느러미, 갈퀴, 꼬리와 다리, 비늘 장신구들을 하고 함께 걷는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 얼마나 신이 나는지!


제시카 러브 글 그림 <인어를 믿나요?> 김지은 번역, 웅진주니어


이 책의 원서 제목은 “Julián Is a Mermaid”(줄리앙은 인어입니다)이다. 브루클린에 살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 제시카 러브(Jessica Love)가 쓰고 그린 책인데, 그림책 분야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볼로냐 라카치 상’을 지난해에 받았다.


누군가를 배제하고 혐오하는 뉴스들이 가득한 어느 날, 우연히 펼쳐 본 이 책 덕분에 웃을 수 있었다. 꿈꾸고 표현하고 신이 나는 줄리앙의 움직임, 표정 등을 생동감 있게 담은 일러스트를 보는 기쁨이 아주 크다. 줄리앙을 보고 있으면 행복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이 책에 등장하는 할머니들을 담은 일러스트도 독자를 무척 행복하게 만든다. 줄리앙의 할머니는 까맣고 주름졌고 볼이 늘어진 얼굴에 두꺼운 팔뚝과 풍만하게 나온 배와 큰 엉덩이를 가졌다. 어디선가 봄직한 할머니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았는데, 그 외양이 아주 사랑스럽다.


이 책에 등장하는 다른 할머니들도 마찬가지다. 큼지막한 꽃무늬 패턴 수영복과 원피스를 입은 크고 마르고 저마다 다른 할머니들의 생생하고 에너지 가득한 모습을 보는 것 역시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제시카 러브 글 그림 <인어를 믿나요?> 중에서. 이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할머니들의 모습은 특히 인상적이다.


소년이 인어가 되고 싶은 마음은 우리에게 조금 낯설다. 인어가 되고 싶고, 스스로 인어라고 느끼는 줄리앙의 마음은 폭력적인 것이 아니며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줄리앙의 할머니와는 달리 ‘너는 왜 그러니?’ ‘너의 욕망은 이상해’ ‘남자(여자)아이가 그러면 안 돼’ 같은 비난과 의심과 통제의 말에 더 익숙하다. 다수와 다르다는 이유로, 낯설다는 이유로 상대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고 틀렸다거나, 정상이 아니라거나, 나쁘다거나, 무섭다는 말로 배제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 사회라는 게 가슴 아프다.


줄리앙과 할머니가 저마다 다른 인어들과 어울려 걷듯이, 우리 사회가 다 다른 사람들이 마음껏 어울려 사는 광장이면 좋겠다. 비슷한 모습, 비슷한 옷, 비슷한 표정, 비슷한 취향과 스타일은 지루하고 답답하다. 다양함을 두려워하고 낯선 것을 배제하는 건 누구일까? 왜일까?


작가 제시카 러브는 스스로를 발견한 이들에게 작은 파티를 열어 주고 싶다는 바람으로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세상의 모든 줄리앙들이 크고 작은 파티를 열면서 신나게 살아가면 좋겠다. 줄리앙이 줄리앙으로 살아갈 때, 나도 나인 채로 살아갈 수 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 필자 소개: 안지혜 님은 그림책 <숲으로 간 사람들>(김하나 그림, 창비, 2018)을 쓴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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