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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새지평

존엄사의 기본철학 "죽음은 삶의 과정"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09. 5. 22. 18:08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존엄사 논쟁은 죽음이냐, 삶이냐의 문제를 넘어서 죽음에 대한 깊은 이해를 요청하고 있다.

인간의 죽음을 하나의 사건이라기보다 과정, ‘죽어감’으로 이해하려는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다. 다음은 2006년 연세대 간호대학 창립 100주년이자 한국죽음학회 1주년을 기념하여 죽음학자 알폰스 디켄(Alfons Deeken) 교수 초청 <인간의 죽음과 죽어감> 강연의 내용이다.

죽음학자 알폰스 디켄 박사의 강연

알폰스 디켄 박사는 죽음학자이자 가톨릭 예수회 신부로 1975년부터 일본 동경 상지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1982년 일본에서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會)’를 창설해서 현재 7천 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저서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궁리, 2002)가 번역, 출판됐다.

디켄 박사는 죽어가는 환자, 특히 말기 암 환자의 고통에 주목하면서 죽음을 환자 개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환자를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이해관계와 갈등 속에 놓여 있는 장으로 인식하고 있다. 특히 죽음을 맞이하는 환자의 죽음은 의사, 간호사와 같은 의료인, 가족, 친구 및 지인들과의 관계적 맥락에서 이해되고 다뤄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나이 듦에 따른 자연사가 아니라 말기 암이나 치유될 수 없는 상황에 있는 ‘환자’들에게 갑작스러운 죽음은 본인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혼란을 가져온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 개인의 죽음은 본인뿐 아니라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상실을 체험해야 하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주게 된다. 또, 환자의 결정이나 선택에서 주위 사람들의 행동이나 태도가 환자의 의도와 충돌하는 지점이 생긴다.

디켄 박사는 죽음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자는 환자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고, 환자가 원하는 방식대로 그를 대함으로써 환자의 죽음에 협조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죽음앞둔 환자들의 욕구와 자기결정 존중돼야

디켄 박사는 죽음을 앞둔 환자의 욕구를 열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첫째, 환자는 죽음을 앞둔 상태에서 혼자 버려진다는 느낌, 두려움을 갖기 때문에 옆에 친구가 가까이 있기를 원한다.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나아갈 때 옆에 가까운 사람이 있어 주는 것이 필요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공동체로부터 사랑을 받는 존재임을 원하는 것이다.

둘째, 환자는 자율성을 존중 받으며 자기결정을 하기 원한다. 의사나 간호사는 질병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갖고 있고 반면 환자는 질병으로 인해 정신적, 신체적, 정서적으로 약해진 상태지만,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환자의 결정을 무시해선 안 되며 환자의 권리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

셋째, 환자는 인간 ‘성장’에 대한 요구를 갖고 있다. 죽음이라는 끝에 대해 자포자기하는 마음을 갖기도 하지만, 죽음까지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향해 나아가고 성장하고 싶어하는 존재이길 원한다.

넷째, 환자는 죽음의 행위에서 조연이 아니라 주인공으로 적극적인 역할을 하기 원한다. 자신의 죽음 때문에 겪어야 할 주위 사람들의 고통을 알고 있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그들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한다.

다섯째, 환자는 자신의 병에 대해 진실을 알고 싶어한다. 환자를 위해 ‘암’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 것은 환자에게 희망을 갖게 하고 치료효과를 거두기 위한 것이지만, 이러한 의료진의 태도는 스스로 갖고 있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반영한 것일 뿐 환자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환자와 의사가 신뢰관계 속에 있으려면, 의사는 환자에게 진실을 이야기해야 하고 환자는 자신의 몸에서 일어날 일들에 대해 알 권리를 누려야 한다. 특히 환자에게는 자신의 남은 삶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여섯째, 환자는 품위 있게 ‘위엄’을 갖고 죽기 원하며 불필요한 생명연장, 인위적 생명연장은 원하지 않는다. 안락사와 관련해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죽음의 과정을 연장시키기 위해 최첨단 의료기구 사용을 거절할 권리를 죽어가는 환자에게 부여해야 한다는 것과 연관된다. 의료인의 생명연장을 위한 처치는 환자의 자유와, 환자가 품위 있게 존엄한 상태에서 죽는 것을 방해한다.

일곱째, 환자는 자기 전 생애를 돌아보는 정신요법을 원한다. 과거의 인간관계나 현재 고민하는 문제들 때문에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데, 화해와 용서의 시간이 필요하다.

여덟째, 환자는 고통을 통제할 수 있기를 원한다. 육체적인 고통에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고통, 육체적 고통, 사회적 고통, 영적 고통을 합한 전체적인 고통을 고려해야 한다.

아홉째, 환자는 유머와 웃음을 갖기 원한다. 죽어가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의 슬픈 얼굴을 바라보기보다는 유머나 웃음을 통해 의사소통하고 싶어한다. 열째, 환자는 죽음 후의 세계에 대해 알고 싶어한다.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시작이라고 생각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태어남과 죽어감, 역동적인 삶의 경험

디켄 박사의 이야기는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니라는 가톨릭의 종교적 기반에서 나온 것이라 어떤 부분은 설득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또한 환자를 주변 사람들과 분리시켜 ‘주연’이 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환자가 힘든 상황 속에서도 누구에게 의존해선 안 되며 자율성과 독립성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도 이견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인위적 생명연장에 대한 기대와 삶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이는 환자들을 본 사람들이라면, 디켄 박사의 설명이 다소 현실과 거리가 있거나 이상적인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켄 박사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보여준다. 젊음과 건강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죽음은 더욱더 삶과 분리되고 있으며, 분리된 만큼 우리에게 더 큰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자신의 몸을 비롯해 자연을 통제하고 기술을 개발해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근대적 인간은 과학 및 의료기술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그러나 인간은 죽음을 연장할 수는 있지만 완전히 삶에서 몰아낼 수 없기 때문에 좌절을 경험한다.

죽음과 가까이 있는 ‘나이 듦’에 대한 혐오와 거부감이 강화되고, 건강관리 열풍 속에서 죽음은 점점 더 삶에서 주변화되어 간다.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가까이 있는 사람들, 이별해야 하는 사람들은 낯설고 혼란스러운 가운데 죽음을 대면하게 된다. 생명의 시작, 출산, 양육, 노인보살핌, 죽음이 ‘여성의 역할’로 한정되어온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면, 이러한 역동적인 삶을 잊어버린 채 경제활동만을 가치 있는 것으로 삼는 자본주의! 질서 속에서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현실을 맞이하는데 더욱더 곤혹스러워한다.

‘성공적인 삶’, ‘건강한 삶’, ‘활동적인 삶’ 속에서 죽음은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의존의 영역으로서 의미 없고 가치 없는 것으로 전락했다. 사회적으로 죽어감의 과정을 둘러싼 (여성들의) 보살핌 노동의 존재와 그 가치를 ‘없는 것’이나 ‘가벼운 것’, ‘하찮은 것’으로 취급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실제 죽음에 가까이 있는 노인들,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잃어버리고 슬픔에 빠진 사람들,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살피는 사람들, 병원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은 죽음을 삶의 깊숙한 곳에서 체험한다. 한국 사회가 고령화를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노인보살핌 제도화에 대한 모색이 이루어지는 과정 속에서, 죽음 역시 삶의 과정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디켄 박사의 주장은 죽음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요청하고 있다. 이동옥 여성주의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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