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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아이가 아니다
 
상빈이 어머니의 소개로, 올해 7살인 아이와 그의 어머니를 만났다. 친하게 지내는 이웃인데, 아이를 한번 봐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뭐라 분명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아주 조금 다른 것 같다고. 나는 기꺼이 그러겠다고 했고, 지난 주 어느 날 아이와 어머니를 만났다.
 
우선, 아주 간단한 창의성 테스트를 하나 해보았다. 구성적인 표현력은 부족했지만, 자기 그림에 대해 설명은 잘 했다. 나와 몇 마디 말을 나누었을 뿐이지만, 금방 붙임성 있게 친근한 표정과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보아, 명랑하고 사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추측도 할 수 있었다. 또 주변에 호기심도 보이고 의사표현도 분명하게 잘할 줄 아는 아이였다.
 

"인생의 무게" ©천정연의 그림

아이에게서 지적인 문제나 정서적인 문제는 발견할 수 없었다. 어머니께도 그렇게 말씀 드렸다. 그림은 잘 그린다고 할 수 없지만, 7세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앞으로 분명 나아질 거라고도 말했다. 그러나 그림에 소질이 없는 아이일 수도 있어, 기대하는 것만큼 못 그릴 수도 있다고. 하지만 그게 뭐가 문제겠냐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 어린이는 테스트를 하는 단 몇 분간 내 눈치를 살피는 행동을 세 차례나 보였는데, 그것은 주목할만했다. 이에 대해서는 어머니께도 중요하게 지적해 드렸다.
 
“자기표현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것은 어머니와 관련되는 것 같습니다. 혹시, 어머니께서 너무 요구하시지는 않나요? 어머님의 마음에 들게 제대로 잘하고 있나 확인 받으려고 자꾸 눈치를 살피는 것일 수 있어요” 라고 말씀 드렸더니, 어머니도 그렇다고 시인하셨다.
 
“지금은 그것이 아이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겠지만, 고쳐지지 않고 계속된다면 자긍심이 부족한 아이가 될 수밖에 없어요. 좀 더 자유롭게 자기를 표현하도록 해주셔야 합니다.”
 
이 말만은 어머니께서 꼭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길 바랐다. 그리고 몇 가지 교육적인 태도와 관련해 좀더 이야기를 나눈 뒤 자리를 뜨면서 아이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내게 한 말은, “선생님, 주위에 소개시켜 주실만한 미술 선생님은 안 계신가요?”였다.
 
나는 이 말을 들으면서는 좀 기운이 빠졌다. 조금이라도 아이가 뒤처지지 않길 바라는 부모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림을 좀 못 그리는 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더 큰 문제는 어른의 양육태도라고 심각하게 지적해 드렸건만, 내 앞에서 아이가 그림을 제대로 그리지 못한 게 더욱 마음에 쓰이셨던 모양이다.
 
여러 어린이를 만나면서 내가 깨달은 사실 하나는, 안타깝게도 아이들이 겪는 많은 어려움은 아이의 문제라기보다 부모의 문제일 때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 학생의 어머니는 우울증을 앓고 계신다. 우울증 때문에 아이에게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지 못하고, 일관된 양육태도를 보이지 못해, 아이를 혼란스럽게 할 때가 많다. 이런 어머니의 상황은 종종 아이의 불안감을 높이고 자긍심을 꺾어놓는 사건들을 만들고 있다.
 
또, 자아의식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무의식 중에 부모를 역할모델로 삼게 된다. 한나 어머니는 한나가 사달라고 하는 것들 중, 어떤 건 안 된다고 아무리 설득해도 안 듣고 끝까지 사달라고 졸라 너무 속상하다며, 선생님이 기회가 되면 아이에게 그래서는 안 된다고 꼭 말해 달라고 전화까지 걸어 부탁을 한 적이 있다. 나는 그러겠노라며 대답하고, 한나에게 매우 진지하고 조심스럽게 어머니의 걱정하시는 마음을 전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한나는 이해가 잘 안 간다는 표정으로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엄마도 아빠한테 그렇게 하는데요!”
 
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은 아이에게 깊은 영향을 끼친다. 그 날 만난 아이도 귀엽고 천진스러운 보통의 아이였지만, 부모는 아이가 자기욕심에 차지 않아 괴로운 것 같았다. 결국, 이런 마음에서 비롯된 조바심과 왜곡된 태도가 아이를 정말로 부족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아이들은 자신에게 보내는 부모의 믿음만큼, 그들에게 보내는 찬사만큼 큰다는 걸, 어른들은 자꾸자꾸 잊는 것 같다. 우리가 어렸을 때를 생각해보면 바로 생각해낼 수 있는 것인데 말이다. 
(※ 교육일기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정인진의 교육일기 여성주의 저널 일다 [관련 글보기] "얼굴은 얼마든지 고칠 수 있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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