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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하는 도시의 집에서 농촌의 자립하는 집으로

<주거의 재구성> 귀농 1인가구 비혼여성이 경험한 집의 세계


▲ 6년째 살고 있는 집. 마당에선 깨가 말라가는 중이다. (길날) 


남도의 한 농가에 정착한 지 6년 차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남도의 한 농가다. 5년 전 이른 봄에 남동생과 이곳으로 이주해왔다. 동생과는 20년 넘게 떨어져 지내다 여기로 오면서 같이 농사지으며 살게 된 것인데, 동생이 올봄에 이웃마을로 거처를 옮기게 되어 지금은 따로 살면서 기백 평 규모의 논과 밭만 함께 경작하고 있다. 한편 2년 전부터 한집에서 살아온 반려견이 있는데, 재작년 이른 봄날 강아지 한 마리가 목줄도 없이 온몸에 풀씨를 잔뜩 매단 채 제 발로 이 구석진 집까지 걸어 들어와 ‘식구’가 되어 주었다.


우리 마을을 오가는 군내버스는 하루에 단 세 차례 운행된다. 하지만 자가용이 없어도 별다른 불편함은 못 느끼며 살고 있다. 읍까지 나갈 일이 많아야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라 버스 시간에 맞추어 적절히 움직인다. 걸어서 20분쯤 걸리는 면 소재지와 5~10분 거리인 논과 밭까지는 주로 자전거로 다닌다.


내가 사는 집은 50년 전쯤 지어진 집으로 이사 오기 전에 내부 일부가 이미 리모델링되어 있었지만, 화장실이 실내에 있진 않다. 집 출입구 쪽의 수세식 화장실 대신 뒷마당 창고 한쪽에 생태화장실을 마련해서 쓰고 있다. 생태화장실에서 나오는 분변은 음식 잔여물 등과 함께 1~2년씩 삭혀 두었다가 밭의 거름으로 쓴다. 실평수가 스무 평이 채 안 되는 집은 천장이 낮고 실내가 어둡고 습한 편이지만 그럭저럭 살 만하다. 지난여름보다 더 큰비나 아주 세찬 태풍만 안 온다면 한동안 별일은 없을 것이라 여기며 살고 있다.


이 집에서 산 지 벌써 6년 차―이리 오랫동안 한 집에서 산 건 여덟 살 무렵 대도시로 이주하기 전에 태어나 자랐던, 아주 오래전에 허물어져서 지금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저 동남쪽 어느 시골집에서의 살이 이후 처음이다.


▲ 귀농, 도시에서보다 자립적으로 생태적으로 ©일러스트: studio 장춘


비혼여성이 시골마을을 떠나고 싶을 때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도시에서라면 상상할 수 없으리만큼 싼 값에 마련하게 된 농가다. 앞으로 상황이 어찌 변할지는 알 수 없지만, 특별히 ‘주거 불안’을 느끼며 살고 있진 않다.


내가 주거 불안을 느끼는 때는 오히려 직접적으로 집과 연관되어 있지 않을 경우인데, 가령 서로 친인척 관계인 마을의 몇몇 어르신이 그들의 조카이거나 자식인 ‘노총각’을 염두에 두고 에둘러, 때로는 직접적으로 내게 결혼 얘길 건넬 때다. 40호가 좀 못 되는 이 마을로 이사를 온 지 1년쯤 되었을 때 한 여성어르신에게서 이 얘길 듣기 시작했는데, 결혼 의사가 없음을 단호히 알렸음에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완곡하게 설득하려 드신다. 이런 어른들을 마주할 때는 ‘여기를 떠나야 하나’라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이런 일은 나이랑 별반 상관없이 귀농귀촌한 주변의 1인 가구 여성들이 심심찮게 겪는 일이다. 얼마 전에도 나와 비슷한 경우를 겪은 옆 마을에 사는 지인의 얘길 들으며 씁쓸해했다. 살고 싶은 집에서 살아갈 권리가 우리에게도 당연히 있는데, 이런 황당한 이유로 ‘지금 살고 있는 곳을 떠나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는 불필요한 고민을 하지 않기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어쩔 수 없이 품게 된다. 


치안 문제로 인한 불안도 물론 있다. 그래도 도시에서보다 덜한 면이 있기도 하다. 이 마을 저 마을로 이주해 오는 당신들의 딸이나 손녀뻘 되는 여성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음을 알고 계셔서 그런가, 짐짓 무던하게 대해 주시고 안위를 물어봐 주시는 혼자 사는 여성어르신이 많고, 나와 비슷한 처지의 여성들이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을 때 생겨나는 안도감 덕분이 아닐까 싶다.


▲ 양파 수확. 집에서 5~10분 거리에 있는 논과 밭은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길날)


최근 몇 년간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을 비롯해서 근처 군 지역으로 ‘비혼(지향) 여성들’이 제법 많이 이주해왔다. 가끔씩 얼굴을 보는 이만도 10명은 족히 되는데, 대부분 홀로 혹은 반려동물과 살고 있으며 20대부터 6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기십 평 규모의 텃밭을 일구거나, 이전부터 알았거나 지역으로 이주해 오면서 알게 된 이들과 약간의 논을 공동경작하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 규모를 갖췄다고 할 만한 농사를 짓고 있지는 않다. 이들 가운데 몇몇과 이따금 만나서 밥을 나누고 그중 몇 사람과는 얼마 전부터 페미니즘 공부도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기후위기 상황은 가속화될 것이고, 지구촌의 집들은 잠기거나 떠내려가거나 파괴되거나 날아가면서 ‘안전한 집에서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권리’도 덩달아 사라지는 일이 더 잦아질 것이다. 내가 사는 이곳만 해도 농지가 점점 사라지면서 그 자리에 축사가 들어서고 있다. 농사짓기 힘든 기후로 변해가니 농민들은 돈이 되는 축산업으로 눈길을 돌리고, 번성하는 축산업이 기후위기를 부채질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 ‘고리’를 비껴가기 위해서라도 물질적 풍요와 문명의 이기가 실어 나르는 편리함을 누리는 대신, 자급하는 힘과 기운을 품을 수 있도록 내가 발 딛고 선 이곳에서 꾸준히 농사지으며 돌아보고 질문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길 더 간절히 바라게 된다.


(이 기사는 요약문입니다. 기사 전체보기: 소비하는 도시의 집에서 농촌의 자립하는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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