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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대한민국에 어떤 성교육책이 필요할까?
여성가족부 ‘나다움 어린이책 추천도서’ 회수 사태를 우려하며
여성가족부가 ‘나다움 어린이책 추천도서’로 선정한 책 199권 가운데 10권(7종)을 회수하기로 해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김병욱 미래통합당 의원이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 책들을 거론하면서 ‘동성애를 미화, 조장’하고 초등학생들의 ‘조기 성애화’가 우려된다고 비방했고, 보수 언론이 이에 동조했으며, 이 사업을 추진하던 여성가족부가 책을 회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나다움 어린이책에 대한 기대와 지지를 가졌던 한 사람으로서 이 사태가 깊이 우려된다. 이 시점에서 ‘나다움 어린이책’ 사업의 시작부터 과정을 차근차근 돌아보고자 한다.
여성가족부의 나다움 어린이책 회수 결정에 반대하며, 아웃박스와 초등성평등연구회가 해시태그 운동을 제안했다. 책장에 꽂혀있는 나다움책을 찍어 #여기에도나다움책이있다 해시태그를 붙여 SNS에 공유하는 것. (출처: 초등성평등연구회)
나다움 어린이책 사업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나다움을 찾는 어린이 책 교육문화사업’은 2018년 12월 19일 여성가족부와 롯데지주,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MOU를 맺으면서 시작됐다. 아동청소년들이 책을 통해 성평등 의식을 키울 수 있도록 국내 처음으로 성평등 도서를 선정하고, 학교 안팎 성평등 교육을 확산시키는 것을 목표로 여러 교육, 문화 사업을 벌이기로 뜻을 모았다.
이 사업이 시작되던 즈음, 대한민국은 각계에서 일어난 미투운동으로 들썩이고 있었다.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의 검사 성추행,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비서 성폭력, 이윤택 연출의 단원 성폭력, 고은 시인의 문인 성추행 의혹, 고 조민기 배우와 조재현 배우 등 연예인에 의한 스태프와 학생 성추행 폭로 등 사회 곳곳에서 온갖 성범죄가 드러났다. 버닝썬 사태로 불거진 약물 성폭행 실태, 웹하드 카르텔, 디지털 성범죄와 데이트 폭력, 몰래카메라 촬영과 유통, 그루밍 성범죄 등.
여성에 대한 폭력이 점철된 이 사회를 도대체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이런 사회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자라날까, 어른들의 책임은 무엇인가 고민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어린이책을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스스로 각성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페미니스트 선생님들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양육자들 모임에서도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즈음에 여성가족부가 국민의 요구에 귀담아 “나다움을 찾는 어린이 책 교육문화사업”을 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작년 4월 9일 ‘나다움 사업’을 본격적으로 알리는 포럼이 마포중앙도서관에서 열렸을 때 어린이책 작가, 평론가, 교사, 출판관계자, 독자 등 수백여 명이 모여 높은 호응을 보였다.
‘씽투창작소’가 사업 내용을 설명했는데, 씽투창작소는 직장생활을 중단하거나 쉬게 된 엄마들이 모여 2016년에 ‘독박육아’를 주제로 이야기하는 팟캐스트 <씽투육아>를 하며 시작된 창작단체다. 사업 내용을 보면 첫째, ‘성평등 도서’를 선정하고 보급해서 창작과 개발을 지원하는 것. 둘째, 공모전을 열어 성평등 우수작을 선정하고 출간을 지원하고 ‘아동 성평등 포럼’을 개최하는 것. 셋째, 모든 아이들이 성평등 콘텐츠를 쉽고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성평등 교육을 확산하는 것이다.
나카야마 치나쓰 글, 야마시타 유조 그림 <여자남자, 할 일이 따로 정해져 있을까요?>(고향옥 옮김, 고래이야기) 중
성차별 콘텐츠에 무방비로 노출된 아이들
아동문학 평론가인 김지은 서울예술대학 교수는 어른이나 아이 가릴 것 없이 우리는 웹툰, 게임, 광고 등에서 성적 대상화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매체에 매 순간 노출돼 있다고 진단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비율의 신체들이 등장하고, 마치 그것이 사람의 기본이며 추구해야 하는 이상처럼 표현되고 있다는 것을 여러 예시를 통해 보여주었다. 11살 어린이 가수가 짙은 화장을 하고 몽롱한 표정을 지으며 남자아이에게 칵테일을 받거나, 욕조에 있는 것처럼 연상되는 내용의 뮤직비디오를 찍어 인기를 얻는 것 등. 이것을 많은 어린이들이 자연스럽게 보고 동경하는 세태라고 했다.
김지은 교수는 어린이 책에 주로 그려지는 아이들 모습도 마찬가지여서, 힘의 크기와 서열을 비교하며 자라는 어린이나 복종을 강요당하는 어린이가 주로 등장한다고 말했다. 어른을 따라 하는 과거형 서사, 약자를 공격하는 포식자형 서사, 나다운 모습을 잊게 만드는 무의미형 서사, 성역할 고정관념을 강화시키는 서사가 가득하다는 것. 또한 여성은 잠자는 여성, 상으로 주어지는 여성, 거절하지 않는 여성,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여성으로 그려지고, 남성은 깨어있는 남성, 상을 받는 남성, 몰아붙이는 남성, 구하는 남성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것까지.
초등성평등연구회 회장인 서한솔 선생님은 아이들과 같이 수업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학교 도서관에 있는 그림책 가운데 여자 주인공의 수와 남자 주인공의 수를 조사해 본 수업이었다. 조사 전에 아이들은 남녀비율이 비슷하지 않을까 하고 예상했는데 74%가량이 남자 주인공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동물이나 이야기가 긴 책들은 뺀 것이라 아마도 실제보다 적게 나왔을 거라고 추측한 통계였다.
영웅 서사에서 남성과 여성의 서사가 어떻게 다른지도 지적했다. 가령 윤봉길은 폭단을 던진 사람, 저항한 성취의 주인공으로 그려지는 반면, 유관순은 모진 고문을 당하고 죽은 비극의 주인공으로 더 많이 그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림책을 만드는 정진호 작가도 표현에서의 성차별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이들이 기어다닐 때부터 보는 ‘뽀로로’에서도 등장인물 중 리더, 도전, 발명, 모험, 경쟁을 즐기는 건 남자 캐릭터들이고, 단 두 명뿐인 여성인 패티와 루피는 돌봄, 인내, 관계, 사랑을 하며 남자 인물들을 보조해준다. 뽀로로가 처음 나왔을 때는 패티마저 없이 여성 캐릭터는 루피 하나였는데, 그나마 문제 제기를 받고 시즌 2부터 활달하고 축구를 잘하는 여성 캐릭터로 패티가 등장했다. 하지만 여성 캐릭터는 여전히 주변적이고. 남자 캐릭터들에게 대상화된다. 이건 로보카 폴리나 꼬마버스 타요, 최근 몇 년 새로 인기를 끌고 있는 상어가족도 마찬가지이다. 여성은 리본과 핑크, 속눈썹으로 대변되는 외형에다가 순응과 돌봄을 하는 캐릭터다.
이 포럼에서는 비록 우리를 둘러싼 책과 미디어가 아이들에게 고정관념을 갖게 하고 차별을 불러일으키는 환경 속에 있지만, 이제는 이 현실을 분명히 자각하고 더이상 이렇게 아이들을 안전하지도, 행복하지도 않게 만드는 컨텐츠를 만들지 말자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어린이책을 만들고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무척 따뜻하고 힘이 나는 자리였다. 게다가 구체적으로 “나다움을 찾는 어린이책 교육문화사업”이라는 대안이 있었고, 아이들을 위험하고 차별 가득한 세계에 ‘방치하고 있다는 혐의’에서 벗어날 기회가 눈앞에 펼쳐질 거란 기대를 가졌다. (기사 전체 보기: 여성인물 가시화, ‘자기긍정’ ‘다양성’ ‘공존’ 키워드)
트라우마, 가족, 중독 그리고 몸에 관한 기록 『남은 인생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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