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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제품 덕을 보는 건 여자가 아니라 기업

『세탁기의 배신』 서평 에세이



초유의 최장 장마를 보내자니 빨래 시름이 깊어진다. 빨래야 세탁기가 한다지만 말려 나오는 것은 아니니, 여름이라 더 자주 나오는 빨래 건조가 큰 문제가 된 것이다. 세탁물 건조 고민을 하는 내게 지인이 내놓은 선선한 해결책은 건조기였다. 건조기는 남의 나라 얘기인 줄 알았던 내게, “여태 그걸 안 쓰냐”며 밉지 않은 잔소리를 한 지인은 건조기의 장점을 입이 마르게 칭송했다. “건조기 쓰고부터 우리 애들은 집이 호텔인 줄 안다니까. 수건을 한 번 쓰고 버려. 널 걱정 건조 걱정 한 방에 해결. 진짜 좋아. 전기료 얼마 안 나오니 당장 사요.”


전기료가 얼마 안 나온다는 말에 잠깐 팔랑귀가 된 나는 건조기를 검색해 보았다. 알고 보니 몇 년 새 건조기 매출이 급증했다. “여태 안 쓰냐”는 지인의 타박이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 그런데 구매하자니 망설여졌다. 크기도 상당한 데다 무엇보다 가격이 백만 원이 넘지 않는가. 비싸다는 정보는 안 주고 전기료 싸다는 얘기만 한 지인에게 슬쩍 부아가 났다.


얼마 전 사려고 했던 무선 청소기도 비싼 가격 때문에 결국 구매를 포기했던 생각이 났다. 어쩌자고 가전제품 가격이 이렇게 고공행진을 하는 건지, 그렇다고 가전 없이 살림을 한다는 게 가능하지도 않은 데다, 문득 이 과잉 가전 공급 현상은 바람직한 것인지, 그리고 나는 이 수많은 가전에 둘러싸여 있는데도 왜 여전히 가사노동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지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가전제품이 보편적으로 보급된 이후, 가사노동은 과연 얼마나 줄어들었을까? 미국의 기술사 연구자들은 놀라운 결과를 발표한다.


가전제품은 여성을 가사노동에서 해방시켰을까


『세탁기의 배신』을 쓴 저자 김덕호는 “가사노동에 전념하지도 않는 주제에 가사노동과 가사기술”에 관한 책을 쓰게 된 것을 면구스러워했다. 그는 과학사를 가르치다 기술사를 접하게 되었고, 기술사 중 가사기술을 톺아보게 되었다. 책은 주로 미국의 가사기술사를 다루기에, ‘지금 여기’라는 현장감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세탁기의 배신』에서 짚어 낸 가사기술의 기획된 젠더화 즉, 가사기술이 보수화된 가부장 중산층의 욕구와 이익을 우선하는 자본주의와 교묘히 결탁한 결과로 이루어졌으며 이로 인해 여성의 삶은 해방이 아니라 오히려 더한 질곡에 놓이게 되었다는 은폐된 진실을 밝히는 데 있어서는, ‘지금 여기’의 여성들에게도 함의하는 바가 적지 않다.


‘가사노동’이라는 용어는 18세기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18세기까지만 해도 ‘가사’란 “집 안팎에서 벌어지는 모든 종류의 노동”을 일컬었다. 현격한 기술 발전과 소비 만능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18세기 이전의 ‘가사’를 떠올리기 위해선 상상력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는 의식주 관련한 거의 모든 것을 구매하지만, 18세기까지는 거의 모든 것을 가정에서 생산했다. (왜냐고? 팔지 않았으니 살 수가 없었다.) 즉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족 모두의 노동이 필요했다. 옷을 만들기 위한 직물을 집에서 짰고(단추, 바늘 등도 집에서 만들었다), 거의 모든 식재료 또한 농사로 조달했고(물조차도 길어 먹어야 했다), 농사를 짓기 위한 농기구는 물론이고 주거를 위한 집, 가구, 땔감마저도 모두 가정에서 직접 마련해야 했다. 이 모든 ‘가사’를 여성(엄마) 혼자서 할 수 있었겠는가? 가족 모두는 아이 어른 남녀 구별할 것 없이 모두 각자의 역할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었다. 다시 말해 ‘가사’는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이렇게 가족 모두가 수행하던 ‘가사’는 산업혁명을 거치며 ‘가사노동’으로 전락한다. 산업혁명이 공장에서의 ‘임금노동’을 만들어내며, 보수를 받는 바깥일과 보수를 받지 못하는 가사노동으로 구별되기 시작했다. 가장의 노동임금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정 임금’으로 여겨지며 돈을 받는 바깥일은 가치 있는 일로, 보수가 없는 집안일은 하잘것없는 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일과 가정이 공적, 사적 영역으로 분리가 본격화되며, 가정은 공적인 일을 하는 남성의 안식처로 제공되기를 요구받았다. 표도 안 나는 끝도 없는 여성의 집안일이 남성 임금노동자의 의식주를 완벽히 제공하면, 편히 쉰 몸으로 임금노동을 수행하게 됐으니(남성의 가사노동은 임금노동과 함께 사라졌다) 가사노동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가부장과 자본주의였던 것이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가사노동’을 주조한 산물이라 지목되는 이유다. 게다 ‘과학’을 등에 업은 가전제품의 등장이 자본가에 엄청난 이익을 안겨주게 되자,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한 자본주의의 공세는 여성을 더 많은 시간 집에서 일하며 고립되게 만들었다.


『세탁기의 배신』 김덕호 저, 뿌리와이파리, 2020


미국에서 가사노동이 본격화한 것은 보수 엘리트 중산층의 위기감에서 비롯되었다. 가정을 삶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로 여기는 중산층에게, 여성이 집을 버리고 임금노동을 위해 밖으로 나가는 것은 가부장제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었다. ‘가정경제학(과학)’이라는 대학 프로그램을 만들어 집안일에 질서를 부여하는 학문화가 시작되며 ‘가정과학운동’을 가속화한다. 이 운동에 여성이 동원되었고, 현모양처가 가장 값진 여성상으로 탈바꿈한다.


국가가 개입한 ‘위생개혁운동’은 집안 위생의 수호자로 주부를 호명한다. 마치 집만 깨끗하면 온 나라가 무균실이 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세균설’로 세균(전염)에 대한 경각심이 극대화되고 ‘청결’이 주부의 막중한 책임이 되면서, 주부의 죄책감과 공포심를 이용한 광고가 범람하게 되었고, 비누와 위생 관련 업체는 막대한 이득을 얻게 된다. 광고는 “기업체들이 원하는 새로운 여성상과 가정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고 있었다.”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오히려 늘었다!


이 시기와 함께 등장하기 시작한 가전제품의 광고문은 “가내 하인에서 전기 하인”으로를 내세우며, 마치 가전제품이 주부의 노동을 대신하는 요술 방망이라도 되는 양 전시했다. 가전제품의 선봉으로 공업용이던 세탁기가 가정용으로 등장했다. 세탁은 힘든 일이다. 기계가 없다면 상당한 노동을 요구한다. 해서 미국에서는 세탁을 돕는 세탁부라는 직업이 있었고, 세탁물을 공장에 맡기기도 했다. 세탁부와 함께하던 세탁과 공장으로 이전되었던 세탁물은 세탁기의 보급과 함께 빠르게 가정이라는 단위로 개인화되었다. 더 이상 누구도 세탁을 보조하지 않았으며 세탁물이 공장으로 보내지지도 않았다. 여성 홀로 집안에서 행하는 노동이 되었다.


이후 냉장고와 청소기, 가스(전기)레인지가 속속 등장하기 시작하며 가정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가전제품이 보급되기 시작한 1920년대부터 보편적 보급이 이루어진 1950년대를 짚어 볼 때, 가사노동은 과연 줄어들었을까? 이 의문으로 시작한 코완의 연구는 ‘코완의 역설’을 제기한다.


기술사가인 루스 코완이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192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밝혀낸 바는, “가사노동은 100년이 지나는 동안 전혀 줄어들지 않거나 심지어 늘어나는 현상까지 보였다.” 놀라운 결과였다. 조안 바넥이 1974년 발표한 박사학위 논문 역시 1920년대에 주당 52시간이던 가사노동시간이 1960년대엔 55시간으로 늘어났음을 알리고 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기사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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