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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달과아이>의 연극인 이미라씨 
 
“피곤하죠? 어떡하나, 집에 가서 푹 쉬어야 할 시간인데.”
 
야심한 시간, 몇 일 후 있을 공연 리허설을 마치고 녹초가 되어 나온 배우를 인터뷰하는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하지만 이미라(35)씨는 하루 종일 연습을 하고도 어디서 또 에너지가 생겨난 것인지, 눈빛을 빛내며 진지모드로 인터뷰에 응했다.
 
연극을 처음 만난 그 때 
 

연극인 이미라(35)씨와 만나다

“처음엔 영화를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땐 배우를 좋아했다가, 중학교 올라가면서는 영화가 너무 좋았어요. 매일 영화를 보러 다닐 정도로. 그땐 감독이 되고 싶었어요. 중학교 땐 외고에 가서 할리우드에 가고 싶었는데, 못 갔죠. 그러다 대학에서 연극을 처음 하게 된 거예요. 연극동아리가 아니라 과 행사에서 1학년 때 연극을 하게 됐는데, 되게 재밌더라고요.”

 
고등학교 졸업 후에 남들보다 늦게 대학에 입학했다는 미라씨는 독문과에 들어갔다. 어릴 적부터 맞벌이하는 부모를 대신해 집안 일 잘하고 얌전했던 딸에 대해서, 어머니는 “통역사”나 “영어선생님”이 되길 기대하셨다고 한다. 미라씨가 어문계를 선택한 이유는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게 컸는데, 그는 독어통역사나 독어선생님이 되는 길을 걷는 대신 “독일작품”을 가지고 연극을 했던 것이다.
 
“거기서부터 애가 이상해진 거죠.”
 
연극을 하며 느낀 재미는 곧 그녀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다. 기회는 예기치 않게 왔다. 지방에서 대학에 다니던 그녀에게, 부모님은 편입해 서울로 오라고 권하셨다. 미라씨는 “연극이 너무 좋아서” 2학년 때도 작품을 해보려고 기다리면서, 한편으론 부모님의 재촉을 막아보려고 일단 연극과를 지망하여 편입시험을 봤다고 한다.
 
“합격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고, 그냥 원서 넣은 건데…. 연극 연습하려고, 엄마에겐 편입시험 봤다 얘기하고 지방 내려가서 연습하려고 했는데, 우연찮게 합격전화가 온 거예요. 너무 좋잖아요! 여기선 잠깐 잠깐만 할 수 있는데, (연극과에 들어가면) 하루 종일 할 수 있고, 전공을 할 수가 있으니까. 그렇게 대학 다니고 졸업하고, 지금까지 하게 된 거예요.”
 
선택, 또 선택
 
연극과를 나왔다고 해서 연극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건 아니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그녀도 두 가지 갈림길에 섰다. “전공을 살려서 프로에 입문할 것인가, 돈을 벌 것인가!” 연극과 졸업생들이면 누구나 하는 고민 앞에서 미라씨는 연극을 해야 되겠다고 결정했고, 이후 십 년 간 그 결정을 번복하거나 회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연극이냐, 돈이냐’의 갈등은 연극 판 내에서도 미묘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처음 하게 된 것은 아동극이었는데, 자괴감이 많이 들었다고 한다.
 

"서른엄마" 공연 장면 (촬영-최은선)

“지금은 (공연 수준이) 좀 나아졌는데, 그때는 거의 ‘그냥’ 올리는 거예요. 연습도 별로 없이 땜방 식으로 공연을 하고. 그러니 무대에서 제대로 보여지지 않고, 아이들 속이는 것 같고, 그런 생각 정말 많이 들어서…. 1년 정도 그랬던 것 같아요. 연극을 하면 돈이 안 되거든요. 근데 그쪽 팀은 지방 갔다 오면 돈을 줘요. 연극하면서 돈을 받을 수 있으니까 하게 되는 거예요. 연극하면 거의 페이가 안 나오거든요.”

 
미라씨는 “연기가 썩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고서, 결국 1년 정도의 아동극생활을 여행을 통해 정리했다.
 
그리고서 만난 팀은 민족극, 마당극 색깔의 ‘길라잡이’였다. “꽤 오랫동안 같이 작업을 했어요. 선생님, 선배들이랑 작업하면서 많이 깨지고 상처 입고 그랬죠. 근데 되게 좋았어요.”
 
이상하게도 그녀는 몇 년간 배우생활을 하면서도, 극단에 들어갈 엄두를 못 냈다고 한다. “용기가 없는 거예요. 그만큼 실력도 안 되는 것 같고, 혼자 뭐든 더 해야 할 것 같고, 그렇게 극단이란 곳이 커 보였나 몰라요. 먼저 제안해주시면 하고. 그렇게 소극적이었어요.”
 
지금 소속된 극단 ‘달과 아이’를 만나게 된 것은 작업하는 도중 짬짬이 참여했던 워크샵을 통한 우연한 기회였다. 알고 지낸 사람들이 극단을 만든다고, 함께하자는 제안을 해온 것이다. 그렇게 특별한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 처음 무대에 올린 작품이 2006년도를 떠들썩하게 한 인형극 <고양이가 말했어>다.
 
“인형을 잡아본다든지 해보지 못한 새로운 작업이라 좋았고. 연출이나 배우들이 연배가 같아선지 대화도 많이 하고, 같이 만들어가는 작업이 좋고, 계속해볼 수 있겠다 싶었어요.”
 
외모? “저는 길게 가고 싶어요”
 
극단 ‘달과 아이’가 만든 인형극 <고양이가 말했어>는 무대에 올려진 후 어린이 관객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높은 호응을 받았고, 2006년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아시테지) 페스티벌에서 최우수작품상, 연출상, 연기상을 휩쓸며 주목을 받았다. 그러니까 <고양이가 말했어>는 미라씨에게 연기상을 안겨준 작품이다. “할머니가 되었을 때도 <고양이가 말했어>를 연기하면 어떨까”라고 말하는 미라씨. ‘달과 아이’ 멤버들과 그런 얘기를 곧잘 나눈다고 한다.
 
새로운 연극 작업의 문을 열어준 <고양이가 말했어>는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아 2007년, 2008년에도 각지에서 상연됐다. 한 작품을 오랫동안 공연하게 되었지만, 미라씨는 공연 중간 중간에 워크샵에 참여하며 배우로서 성장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기울여왔다.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연기라는 것 자체가.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10년 정도됐는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 같아요.”
 

연기는 끊임없는 노력이자, 소통이라고 말하는 미라씨

인터뷰 내내 미라씨는 ‘배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할수록 모자란 점을 발견하게 되니까, 더 공부하고 더 부딪혀야 한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혼에 대해선, 생각은 있어도 구체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요. 막연하게 언젠가 해야 할 건데, 지금은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좀더 잘하고 싶은 게 더 큰 것 같아요. 프로답게. 뭔가를 계속해서 담고 싶고, 끝까지 배울 거예요. 그래서 ‘배우’라고 생각도 하고.(웃음)”
 
여배우로서 나이나 캐릭터나, 제한이 있지 않냐는 질문을 던졌더니 “안 그래도 그런 얘기 서로들 많이 한다”면서, 미라씨가 터득한 철학을 이야기해주었다.
 
“대학로에선 외모 많이 따지죠. 극단에서 배우는 날씬하고 예뻐야 하고, 그런 얘기 많이 들어요. 많이 듣는데, 저는 길게 가고 싶어서요. 꾸준히 하고 싶어요. 욕심을 막 낼 수도 있지만, 그런다고 해서 될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 전에 내 자신이 좀 되어야지. 그 시간을 조급하게 갖지 않으려고 해요.”
 
20대의 그녀는 미친 듯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연기훈련을 받으러 다니면서, 주변 친구들에게 “서른 살이 되면 극단을 하나 만들던지 해서…” 라고 객기를 부렸다. 하지만 막상 서른 살이 되니까 ‘어, 내가 한 게 뭐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송세월 하진 않았거든요. 분명 이만큼 성장했고. 하지만 제가 생각했던 목표와는 거리가 멀었어요.”
 
그때부터 “나이는 정하지 말자” 마음 먹었다고 한다. “꾸준히 천천히 한 작품 하고, 다음 작품 하고, 이 사이가 정말 중요하거든요. 뭘 배우고 뭘 하고, 내 것을 채워나가야 다음 작업을 하고. 나를 다시 발견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고. 계속 가야 하는 시간인 거죠. 그 시간들을 조급하게 쓰지 않고 하나씩 해나가자. 그런 생각이에요. 포기하지 않고 하나 하나씩.”
 
‘다 된다’…연습만 한다면
 
미라씨가 좋은 배우라고 느껴진 이유는 그가 가진 재능과 능력만큼이나 성실한 자세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는 “연기는 노력”이라고 정의했다.
 
“연기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고 싶단 마음이 있으면요. 타고난 연기자, 물론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전 타고난 연기자는 못 되어서, 계속 꾸준히 연습하고 집중하고. 대본을 받았을 때 계속 연습을 해서 만드는 것 같아요. 십 년 뒤에도 계속 연습만 한다, 그런 말들이 좋아요. 사실 나이 들수록 연습 안 하고, 나르시즘으로 빠질 수도 있거든요. 그렇지 않고 연륜이 있어도 느긋하게 묵묵히 꾸준히 하시는 분들 있거든요. 그런 분들 보면, 저도 그렇게 하고 싶어요.”
 
미라씨는 ‘다 된다는 주의’다. “노래를 못하면 연습하면 되고. 표정도 연습하면 만들어지거든요. 시간이 걸릴 뿐이지, 꾸준히만 하면 된다는 주의에요.”
 

"서른엄마" 공연 리허설 중인 이미라씨의 모습

그리고는 대학 졸업공연 할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천안에서 자취를 하면서 7시에 일어나 뛰고, 9시부터 발레와 스트레칭을 3시간씩 했던 시간들을.

 
“제 몸이요. 너무 뻣뻣했어요. 훈련시켜주는 친구 중 하나가 ‘언니만 다리 찢으면 우리 팀은 다 찢을 수 있어’ 그랬어요. 제가 졸업하고 나서도 계속 거기에 집착했거든요. 몸을 자유롭게 쓰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고, 계속해서 써야겠다 생각했어요. 3년, 4년? 재즈, 발레, 정말 여러 가지 많이 했지. 그랬더니 찢어지는 그 순간이 와요.”
 
손짓 발짓하면서 설명하는 미라씨 얘기가 얼마나 재미있던지, 나도 모르게 흥분이 됐다. ‘오늘부터 나도 해봐?’ 하는 마음이 생긴 건 물론이다.
 
훌륭한 배우의 마음은 열려있어
  
훌륭한 배우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불쑥 “소통을 잘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곤 한동안 덧붙일 말을 찾았다. “꽉 막혀 있으면” 곤란하다는 얘기였다.
 
“제가 대사 하나 읽었는데 옆에서 ‘야, 거기선 좀 그렇지 않니?’ 누가 지적을 하면, 배우에겐 그게 제일 큰 상처에요. ‘연기 왜 이렇게 못해’ 이런 뜻이거든요. 직접적으로 그렇게 말하는 분도 있고.(웃음) ‘좀 캐릭터가…’ 이렇게 돌려서 이야기해도, 와르르 무너지면서 하얘지죠. 상처가 그어지는 거예요. 그러면 마음의 문을 닫게 되거든요. 내가 작아지고, 소리도 더 안 나오고, 그렇게 되요.”
 
하지만 그런 얘길 받아들이지 못하면 “혼자 딴 연기를 하게 되고, 결국엔 혼자서 해야” 하기 때문에, 변해야만 했다.
 
“마음 아프지만 ‘내가 그랬나?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무슨 얘기를 들었을 때 ‘저 사람은 꼭 저래’ 그게 아니라 ‘그럼 이렇게, 저렇게?’ 하고 계속 얘길 하게 되면서 저도 풀리게 되거든요. 그런 면에서 소통인 것 같아요. 연극은 정말 소통이 중요해요. 연출간, 배우간, 관객과의 소통. 나와 나 자신의 소통.”
 
여자선배들은 결혼하면 연극을 그만두거나 뜸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래서 좋아하는 배우를 떠올릴 때 여자배우보단 남자배우가 더 많이 떠오르는 것 같다고. 하지만 앞으로는 다르겠지, 미라씨 세대가 선배가 되면 그때는 이야기가 다를 것이라 믿는다.
 
지금 리허설 중인 연극 <서른엄마>는 14일부터 남양주, 부천, 부산, 김해, 창원 등에서 공연될 예정이며, 서울에서는 6월 6,7일 성미산마을극장에 오른다. 
조이여울 기자 여성주의 저널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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