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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디자이너 이경재씨

5월, 친구가 결혼식을 올렸다. 화려한 휴양지로 신혼여행을 가지도, 으리으리한 신접살림을 장만하지도 않았던 그녀가 의외로 많은 시간과 의미를 부여해 선택한 아이템이 있었다면 그건 놀랍게도 웨딩드레스였다. 친구가 입은 드레스는 입는 사람의 기호에 맞게 디자인된 것은 물론, 환경오염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천연한지 섬유로 만들어졌으며, 예식 후에도 오랫동안 착용할 수 있게 평상복으로 고쳐 입을 수 있는 친환경 드레스였다.

 
그렇게 친구의 결혼식에 중요한 하나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도록 드레스를 만들어 준 사람을 만났다. 바로 ‘그린 디자이너’ 이경재씨다.
 
“바른 옷을 만들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SBS 의상실 직원으로 주5일 근무하며 지내던 이경재씨가 ‘그린 디자이너’로서 재탄생하게 된 배경은, 아버지의 병환 이후 3년간 강원도 횡성에서 귀농생활을 했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곳에서 뜻밖에도 이씨는 청국장 사업을 했다.
 
“시골에서 마을 공동 소유의 펜션을 운영했었는데, 거기 있는 동안 청국장을 만들었죠. 마을에서 재배한 콩으로 함께 청국장을 만들어서 부모님들도 드리고, 친척분들도 드리고 하다가 점점 찾는 사람이 많아져서 사업으로 하게 되었고요. 판매를 하려면 식품허가가 나야 되는 문제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부분을 횡성군에 있는 농업기술센터에서 교육을 받고, 그 후로는 포장까지 해서 배송하는 사업을 하게 된 거에요.”
 
그렇게 된장 고추장 담그면서 살다가 “공부를 좀더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택한 곳이 국민대학교 그린디자인 대학원이다.
 
“사실 그린디자인이 뭔지도 모르고 갔어요. 그냥 배움에 대한 욕구가 있었고, 강원도에 있다 보니 환경 쪽에 대해 공부해보고 싶어서 갔던 거에요. 그런데 거기서 배운 것으로 인해 제 디자인 흐름이 완전히 방향을 바꾸게 됐어요.”
 
패션디자인을 전공하고 회사에 다니면서도 자신의 디자인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는 이경재씨. 그런 그녀가 그린디자인을 공부하면서 중요한 가치를 찾게 되었다고 한다.
 

디자인이 아닌 철학을 배웠다고 말하는 이경재씨

“디자인하면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게, 올해 트렌드가 뭐고 유행하는 색상과 소재가 뭐고 어떤 프린트인가 하는 걸 위주로 공부하고 옷을 만들었어요. 디자인을 했는데 잘 팔리면 아 나는 디자인을 잘하는구나 그러고, 안 팔리면 아 내가 디자인이 좀 부족한가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하다가…. 어떨 때는 전 그냥 대충했는데 누가 좋다거나, 아니면 진짜 열심히 했는데 누가 욕을 하기도 해요. 그러면 ‘아 이거 뭐냐, 내가 실력이 없나’ 막 흔들리는 거에요. 근데 공부를 다시 하면서 이해하는 것 자체가 바뀌게 되었죠.”

 
이경재씨가 그린디자인 대학원에서 배운 건 “디자인이 아니라 거의 철학”이었다. “환경문제가 일어나는 게 서양의 산업혁명 이후의 소비적인 행태, 즉 자연을 등한시하고 인간의 욕구만을 우선시하는 그런 것 때문인데…. 그렇다면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 어떤 건가 하면서 막 동양철학까지 가는 거에요.”
 
트렌드를 연구하는 대신 “환경오염, 지구온난화 이런 문제에 있어 디자이너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디자이너가 해야 될 역할은 뭔가”를 생각했다. “생각이 바뀌니까 나오는 작업 결과물도 바뀌더라고요. 마음으로부터 우선순위가 확 바뀌어서, 옷을 만들 때 유행 같은 것에 크게 좌우되지 않고 바른 옷을 만들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옷을 볼 때 ‘무엇으로 만들어진 건가’, ‘공정이 어떻게 되나’, ‘어디서 온 건가’를 따지게 되었고, 그런 면에서 부적절한 소재는 쓰지 않고 다른 더 괜찮은 것을 찾아 쓰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국내에서 친환경 섬유의 생산/수입이 보편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경재씨는 원단을 찾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처음에는 구글 메일링 서비스를 해버렸어요. 친환경/섬유/에코 이런 단어만 포함되는 모든 기사를 다 받아 보고, 필요한 정보가 딱 걸리면, 찾을 때까지 가는 거에요. 지금은 쐐기풀 섬유와 한지 섬유는 국내에서 생산이 되고 있어요. 옥수수 전분섬유는 아직 안 되지만요. 유통하는 곳이 많지는 않지만 원단 조달이 되죠. 요전번 드레스 제작할 때도 얇은 원단을 가지고 있는 게 없어서 전북 익산에 가서 끊어왔어요. 직접 가야만 하는 건 아니지만, 제가 사는 건 소량이니까 감사도 표하고 직접 조달하자 싶어서 말이에요.”
 
콩기름인쇄 청첩장, 뿌리가 살아있는 식물부케… 

부케와 부토니아로 쓰였던 뿌리식물들

이윽고 웨딩드레스 이야기가 나왔다. 이경재씨는 그린 디자인을 통해, 소비가 많은 결혼식을 “버리는 것 없는 결혼식이 되도록” 돕고 싶다고 한다.

 
“처음부터 ‘웨딩을 해야지’ 한 건 아니었어요. 2005년도에 옥수수전분이라는 비닐 소재를 교수님이 좀 주셨는데, 땅에 묻으면 썩는 게 나왔다 그러셨어요. 이걸로 무슨 옷을 만들까 생각하다가, 일회용 우비를 만들었어요. 근데 우비는 디자인 디테일을 많이 가미할 수가 없잖아요! 그때 마침 한 탤런트가 결혼을 하는데 베라 왕 드레스를 입었다고 TV에서 일주일 동안 떠들더라구요. 그런다 어느 순간 웨딩드레스라는 것이 너무 과도하게 소비적으로 가고 있지 않나, 어차피 한번만 입을 거, 썩는 비닐 소재로 일회용 드레스를 만들어보자 했던 게 웨딩드레스의 시작이에요.”
 
처음에는 스스로도 반신반의했지만, 이경재씨의 웨딩드레스는 1회 친환경상품박람회에서 좋은 반응을 받았다. 2006년 9월 개인전을 하면서 첫 신부가 탄생했고, 그것이 기사화되면서 점점 더 많은 문의가 들어왔다고 한다.
 
“부케, 꽃 장식, 음식, 신혼여행 같은 아이템을 하나하나 분석했죠. 그래픽디자이너와 같이 고민한 끝에 ‘콩기름인쇄 청첩장’이 탄생했고요. 부케는 꽃꽂이 했다가 남은 절화를 묶어 만들었어요. 그런데 결국 그것도 또 버려지잖아. 아예 뿌리가 살아있는 것들은 부케로 안되나 생각하면서 플로리스트 분들을 만나러 6~7개월 찾아 다녔어요. 여기저기서 거절 당하다가 결국 한 분을 만났고, 이제 그 분이 지속적으로 부케 디자인을 해주고 계세요. 뿌리가 있는 식물 부케는 예식 후 화분에 심어서 오래 간직할 수 있지요”
 
최근인 6월 6일 결혼한 한 부부는 “제주 올레 걷기”로 에코허니문을 갔다고 한다. 이경재씨도 ‘CO2 줄이기’에 동참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는데, 제주 올레 걷기사업과 함께 첫 사례로 협동해서 진행한 것이라고. 그렇게 하나씩 고민해 가면서 시도를 해오고 있다.
 
낯선 일, 새로운 만남을 두려워하지 않아 

최근 사회적기업 ORG. 이사를 맡았다

이경재씨는 최근 사회적 기업으로 출범한.(오르그닷)의 이사를 맡아 에코웨딩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이 외에도 오르그닷에는 일반 옷 브랜드 ‘sewing for the soil’과 유니폼 디자인 쪽인 ‘sweet shop’이 있다. 또, 유기농 공정무역 제품과 커피를 파는 ORG.shop을 두었고, 인디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함께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ORG.gallery도 열었다.

 
“저희 ORG.의 대표님과 다른 이사님 한 분이 이전에 사회적 기업에 계셨던 분들이세요. 전순옥님이 하시는 수다공방에서 [참 신나는 옷]을 만들고 나오셨는데, 이번에 저를 불러 ‘이제 사회적 기업과 환경윤리, 그리고 봉제윤리와 디자인 윤리가 함께 가자’ 해서 같이하게 된 거에요. 함께 함으로 인해서 혼자 할 때보다 좀 체계적으로 사업을 구상하게 되요. 피로연음식 같은 경우도 유기농 식단으로 얘기를 하고 있는데요. 하자센터에서 하는 요리(Yori)라는 유기농 케이터링 서비스로, 한 기업이 모두 다 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곳들을 그룹으로 엮어서 하고자 하는 거죠.”
 
일을 하면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새로운 것을 확대하는 작업을 해 나가기가 쉽지 않을 텐데, 이경재씨는 디자인뿐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에 능력이 뛰어난 사람임이 분명한 것 같다.
 
이경재씨를 다시 만나고, 나는 진심으로 그녀를 부러워하고 또 좋아하게 되었다. 낯선 일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또 계속해서 한가지 중요한 가치를 추구해 나갈 줄 아는 힘이 있는 사람이라서. 또한 디자이너로서의 ‘미적 영감’이 인간으로서의 ‘올바름’과 사이 좋게 맞닿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그것을 소중히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어서 말이다.

 이정원/ 일다 ⓒwww.ildaro.com |  여성의 삶을 ‘소리내다’  |  마음을 치유하는 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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