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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많고 씩씩한 사람, 유키(28)를 만나다

‘호기심 많고 씩씩한 사람’. 이것이 올해 초 처음 알게 된 유키씨(28)에 대해 떠올리면 생각나는 이미지다. 작년 9월부터 한국서 지내고 있는 일본인유학생인데, 만날 때마다 새로운 면모를 보게 되는 것이 재미있고 더욱 관심을 끈다.

“내가 좋아하니까”

작년 9월부터 한국서 생활하고 있는 일본인유학생 유키 ©일다

그녀가 맨 처음 한국을 방문한 것은 중학교 수학여행 때라지만, 본격적인 인연은 대학 때 교환학생으로 1년간 머물렀던 2001년부터라 할 수 있다. 당시는 일본에 한류가 시작되기 전이라서, 한국에 공부하러 가는 유키씨를 사람들은 의아하게 여겼다. “왜 가냐는 말을 많이 들었죠. 모르는 나라에 혼자서 가는 것에 대해서요.”

집에선 어떤 반응이었냐고 물었더니, “부모님께는 결과가 다 난 후에 말씀 드렸어요” 라고 답한다. “큐슈 섬에서 야마구찌 현으로 바다를 건너 대학에 가는 것도 걱정이 많으셨는데, (심지어) 외국에 나간다고 하면 반대가 클까 봐” 모든 준비가 끝난 다음 통보한 모양이다.

적극적인 그녀의 성격은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왔을 때의 일화에서도 드러난다. 언젠가 대학 안에서 축구경기가 보고 싶어서, 주스 2개를 사가지고 경비아저씨에게 가서 ‘같이 보자’고 했다는 유키씨. 경비아저씨는 “여자가 왜 그런 걸 좋아하냐”고 물었다는데, 그녀는 오히려 “남자가 좋아하는 것과 여자가 좋아하는 것이 나뉘어 있냐”며 의아해했다.

일본에선 학창시절 체육시간이 많았고, 학생들은 각자 좋아하는 스포츠 하나씩은 있었다고 한다. 유키씨는 모든 스포츠를 다 좋아한다고 얘기한다. 덧붙여, 어릴 때부터 제일 듣기 싫은 말이 “여자니까” 혹은 “이건 하지 마라” 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 “다 반대로 했다”고.

그런데 한국에 와서는 여자가 늦은 시간에 자전거를 타는 것도 문제가 되고, 큰 가방을 메고 다니는 것조차 도마 위에 올랐다. “어떤 선배가 여자는 그런 것(큰 가방) 하는 게 아니라고 했어요. 친구도 그런 말을 했고요. 저는 ‘내가 좋아하니까 가지고 다녀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한국문화 속에) 뭔가 있는 것 같아요.”

소속감을 가지고 바라본 한국사회

유키씨는 한국의 빈곤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그땐 잠깐 머물렀다 떠난 단기유학생이었지만, 지금 유키씨는 한국 대학의 정규 대학원생이 되어 생활하고 있다. 그에 따라 정체성도 달라졌다. “한국사회에 소속된 한 사람으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얘기한다.

일본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유키씨는 특이하게도 한국빈곤문제를 연구주제로 삼았다. 담당교수 추천을 받아 한국에 있는 대학에 입학해 박사과정을 밟게 됐는데, 여기엔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

막상 한국의 대학원에 와서 보니, 경제학과에서 빈곤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지 않더라는 것. 그래서 그녀는 사회학 박사과정을 밟게 되었다.

또 한가지 당황스러운 사실은, 한국에서 연구를 계속해나가려고 열심히 한국어를 배웠는데 정작 한국 대학원은 ‘영어’로 수업을 하더라는 것이다. “충격이에요. 책도 영문이고, 저는 영어 모르는데. 시험도 영어로 낸다고 해요. 어떡해. 큰일 났어요.”

정말 큰일이 난 것은 ‘미국 따라가기’를 하고 있는 우리의 교육현실이다. “영어마을, 영어캠프 있는 것 신기해요” 라고 말을 이어가는 유키씨의 얘길 들으며, 한국사회의 모습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되니 더욱 우스꽝스럽고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한국을 방문해 본 일본친구들은 “한국에선 절대로 애 키우고 싶지 않다고” 의견을 모은다고 했다. “애들에게 자유가 없잖아요.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필요한데, 남들 시키는 대로 하는 것 같아요. 적어도 싫다고 하면 안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른 세대, 다른 생각하는 사람들과 만난다는 것

사회에서 배운 것들이 너무 소중하다는 그녀

타인에 대해, 특히 일본인여성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동네임에도 유키씨는 한국이 좋다고 한다. “사람들이 따뜻하고, 정 깊게 친해질 수 있는 것이 편하고 즐겁다”고.

물론 적응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유키씨는 한국생활의 불편한 점을 “규칙이 없는 것”이라고 꼽으면서, 그 하나의 예로 “길 걷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했다.

“길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걷고 있고 부딪치는 사람도 많아요. 기본적인 규칙이나 매너가 조금 더 사람들의 생각 속에 심겨있으면 좋겠어요.”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바뀐다는 점도 정신이 없다. “한국은 결정되어 있는 게 없어서 같은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워요. 동네도 바뀌고, 학교행정도 바뀌고, 환경도 많이 달라지고, 교통도 복잡해져요. 1년만 있으면 모든 게 다 바뀔 수 있어서, 적응하기 힘든 것 같아요.”

그녀와 대화를 하는 동안, 20대임에도 마치 많은 경험을 쌓은 사람처럼 느껴진다는 걸 알게 됐다. 그것은 아마도 성격과 가치관 때문일 것이다.

“대학생이 공부만 하는 건 너무 안타까운 일이에요. 전 제가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아르바이트만 해도 배우는 게 많았어요. 사람들을 다양하게 만나니까요. 학교에만 있으면 못 만나는 사람들이죠. 특히 세대가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건 필요해요. 나이든 분들에게선 인간관계의 예의도 배웠어요. 전 관심분야가 다른 사람들을 만다는 게 좋아요.”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원해

언제든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일다

유키씨는 일본과 유사한 한국의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그녀는 노후의 삶에 있어서 연금제도가 무척 중요하지만, 그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노후에 조금이라도 보장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사회보장제도에 대해 젊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다는 점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지금은 여기저기 연구주제와 관련된 곳들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단계지만, 몇 년 후에는 한국의 경제와 정치에 대해 꽤 심도 깊은 이해와 분석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새삼 궁금해진다. 성차별에 대해 민감하고, 아시아국가의 빈곤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그녀 삶의 배경은 무엇일까 하고.

그에 대해 본인 스스로는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해왔기 때문인 것 같다고 답한다. 삶의 선택권에 대한 이야기다.

“저는 나이 들어 할머니가 되었을 때 제 인생을 후회하지 않도록 나의 길을 계속 찾아왔어요. 후회가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행동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것을 제일 싫어해서요. 언제든지 저에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번의 선택을 통해 지금 이 길을 걷고 있는 유키씨는 앞으로 더 많은 선택의 자유를 찾고 누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그녀처럼 호기심 많고 씩씩한 사람들이 있어,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좀더 많아지고 다양해질 것이다. 조이여울 기자일다는 어떤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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