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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새지평

부엌에서 사는 사람도 잘 땐 꿈을 꾼다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20. 7. 22. 09:00

부엌에서 사는 사람도 잘 땐 꿈을 꾼다

<주거의 재구성> ‘20대’ ‘비건’ ‘여성’의 홀로서기(2)


다양한 시각으로 ‘주거’의 문제를 조명하는 <주거의 재구성> 기획 연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보도됩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ildaro.com


‘제로 웨이스트’와 유기농 먹거리


비건(vegan, 식물성 음식만 먹으며 동물을 희생시켜 얻은 의류나 동물실험을 거친 화장품 등도 사용하지 않음)인 나, 마지막으로 배달음식을 시켜 먹은 게 근 4년 전이다. 편의점 도시락이나 컵라면도 내 선택지엔 없다. 배달음식은 고사하고 불필요한 플라스틱 포장이 발생하는 즉석밥이나 페트병 물 같은 것조차 사 본 적이 없다.


물은 끓여 마시고, 밥은 유기농 현미와 귀리를 반반 섞어 일주일에 한번쯤 해서 냉장고에 넣어놓고 먹는다. 비닐백이나 랩 같은 일회용품도 아예 없어서, 거의 매일 직접 요리를 하고 열심히 설거지하며 남들이 생각하는 ‘자취하는 대학생’과는 아주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다행히 요리를 좋아해 이런 삶의 건강함이 좋지만, 육식주의 사회에서 비건으로 산다는 건 분명 불편한 일이다.


비거니즘은 단순히 동물성 소비를 피하는 것뿐만 아니라 동물의 생태, 즉 환경에 대한 고민도 필수적이다. 재작년부터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쓰레기가 발생하지 않게 하는 운동)에 집중해왔는데, 내가 죽고 나서도 나 대신 썩지 않을 쓰레기가 너무나 많고, 이 쓰레기가 곧 동물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설날, 집에 친구들을 초대해 차린 떡국 밥상 사진이다. 사람들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며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게 참 좋다. ©사진: 지지(Jiji Pyun)


또 작년부터는 유기농, 토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현대 사회는 가장 효율성 있는, ‘가성비’ 넘치는 작물만을 마치 아프리카 대륙의 국경 긋듯 마구잡이로 심고 있다. 그 대표적 예가 GMO(유전자변형작물)인데, 생태계를 교란하는 ‘슈퍼 작물’로 생물종 다양성을 획일화한다. 게다가 이 가성비 좋은 작물들은 갈수록 더 강한 화학약품으로 범벅되어 땅을 오염시키며, 해당 작물 외엔 아무것도 살 수 없고 살아서도 안 되는 죽음의 땅을 양산한다.


그래서 요즘은 유기농산물을 직거래하는 사회적 협동조합인 한살림에 매주 간다. 모든 게 마트보다 1.5배 이상 비싸서 처음엔 원룸의 허름한 냉장고에 비해 너무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게다가 없는 것도 많다. 제철 국산 야채와 과일만 그때그때 나와서, 겨울에 토마토를 찾았다가 나의 무지함에 왠지 무안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불편함에도 생명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살아가며 함께 작물을 키워내는 장면을 그려본다. 나를 살아가게 하는 것에 대해 인식하는 순간이다. 그저 살아가기 때문에 먹는 음식이 아닌, 나를 살아가게 하는 음식에 대한 인식이다.


그렇게 장을 봐오고 나면 항상 초록 야채가 없어 후회한다. 한살림에 가면 항상 초록 야채를종류 별로 들었다 놨다 하다가 결국 편애하는 버섯이나 양파, 감자 같은 것들만 들고 오게 된다. 아무리 요리를 매일 한다지만, 혼자 사는 사람에게 초록 야채는 처치 불가다. 사다가 한번 먹고 나면 냉장고에서 죽을 날을 기다리는 상추를 떠올리며, 먹고 싶은 음식을 해먹을지 애물단지 상추를 처리할지 매번 고민해야 한다. ‘먹고 싶은 걸 먹고 싶다. 상추를 썩히기도 싫다, 먹고 싶은 걸 먹고 싶은데.’ 결국 억지로 상추를 몇 번 더 먹게 된다. 초록 야채의 저주다.


가족들과 살 때는 집에 마당이 있어 온갖 상추나 케일 같은 것들이 쑥쑥 자랐다. 산 밑의 주택에서 햇빛 잘 받고 자란 초록 야채들은 필요할 때 먹을 만큼만 뜯어 먹으니 냉장고에서 죽을 날을 기다릴 일이 없었다. 내가 안 먹더라도 마당에 사는 곤충들이 뜯어먹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지금 사는 집은, 뭣도 기를 엄두가 안 난다. 바로 옆의 키 큰 건물 때문에 빛이 잘 들지 않아 무엇도 고르게 자라지 않는다. 전에 키우다 데리고 온 식물마저도 스스로 죽어버렸다.


식물이 자라는 내 집이 필요해


바닷가의 낡고 작은 빈집을 구해 이곳저곳에서 버려진 가구들로 내 취향의 공간을 꾸리고 사람들을 초대하며 살고 싶단 꿈을 꾼다. 꼭 부엌과 침실이 분리될 수 있는 곳이어야만 한다. 부엌 한가운데서 잠드는 기분이 들 때가 제일 비참하니까.


▲ 언젠가 바닷가 내 집이 생긴다면...   ©일러스트: studio 장춘 


크고 성능 좋은 냉장고도 있으면 좋겠다. 야채가 얼거나 금세 상해버리지 않도록. 더해 야채는 가능한 길러 먹고, 동네 사람들과 바꿔먹으며 살고 싶다. 그렇게 지닌 것들로 소소하게 친구, 손님들에게 내가 지은 밥을 대접하는 일상을 보내고 싶다. 집에 사람들을 초대해 맛있는 밥 해 먹이는 걸 정말 좋아하지만, 지금 집은 너무 좁아서 세 명만 들어와도 편히 앉을 수가 없다. 


그러니 바닷가 내 집이 생긴다면, 남들을 애정으로 먹이고 재우는 일로 약간의 수익을 내고, 어느 정도 자급하며 살아가고 싶다. 전등이 떨어져도 고쳐달라고 전화할 곳은 없겠지만, 2주치 정신건강을 병원에서 조달하는 지금보다는 행복하지 않을까?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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