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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부문 정규직화…‘자회사’ 꼼수 막아낸 여성노동자들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의 투쟁이 남긴 것①


※ 작년 6월, 해고된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이 서울톨게이트 캐노피에 오르면서 이들의 노동 실태가 알려졌다. 공공부문이 얼마나 많은 용역 노동자들을 쥐어짜며 운영해왔는지 폭로하면서, 톨게이트 여성노동자들은 한국도로공사에 직접고용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217일간 농성했다.


결국 한국도로공사는 ‘전원 직접고용, 2015년 이후 입사자는 (근로자지위확인소송) 패소 시 직접고용 해제’안을 발표했고, 지난 2월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농성을 해산했다. 그러나 이들의 싸움이 끝난 건 아니다. ‘공공부문 정규직화’라는 과업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에 큰 화두를 던진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의 투쟁을 돌아보며, 그 의의와 사회적 과제를 짚는다. [톨게이트 투쟁 기록팀]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우리가 옳다!”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의 청와대 앞 집회 현장.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연맹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 제공)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화’에 제동 건 중요한 투쟁


뜨거웠던 여름에 시작해 가을과 겨울까지 이어졌던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이하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싸움이 217일만인 지난 2월 1일 막을 내렸다. 98일간의 캐노피 고공농성, 고속도로 점거, 한국도로공사 김천 본사 점거 농성과 상의 탈의 시위, 청와대 앞 경찰들과의 끝도 없는 몸싸움, 민주당 의원 사무실 점거, 그리고 오체투지에 단식까지…. 천오백 명을 한꺼번에 해고한 한국도로공사에 맞선 여성 노동자들의 끈질긴 투쟁은 한국 사회에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


취임 초기,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호언은 2017년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 발표로 이어졌다. 파견, 용역회사에 고용돼 일하던 공공부문의 간접고용 노동자들도 직접고용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이 ‘정규직 전환’에는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전환도 포함됐다. 기존의 민간 용역업체에서 소유주만 공공기관이 될 뿐 차별적 노동조건은 변함없는 자회사 고용도 정부가 추진하는 ‘정규직’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정부 정책에 발맞춰 다수 공공기관이 용역업체를 모아 자회사로 전환했고, 노동자들은 대차게 한 번 싸워보지도 못한 채 속수무책 당하고 있었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여기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 이들의 투쟁은 대세로 자리 잡아가던 정부의 ‘자회사’ 정책에 균열을 냈다. 또한 노동에 위계와 서열을 매겨서 특정 일자리를 제외하고는 비정규직이 당연하며, 이러한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저임금에 고용이 불안한 채 살아가는 게 상식처럼 되어버린 한국 사회에 물음을 던졌다.


올해 2월 1일 농성을 해제한 후, 현재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투쟁 과정에서 다치거나 쇠약해진 몸을 추스르고 있다. 법원의 판결로 도로공사에 직접고용 되어 새로운 직군인 ‘현장보조직’으로 일하게 됐지만,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도명화 전국민주일반연맹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 지부장. (톨게이트 투쟁 기록팀)


톨게이트 투쟁 기록팀은 ‘시즌 2’를 준비하고 있는 톨게이트 노동자 투쟁의 사회적 의미를 짚어보기 위한 자리를 만들었다. 도명화 전국민주일반연맹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 지부장, 엄진령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집행위원, 그리고 작년 국립대 병원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낸 현정희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본부장이 함께했다. 이날 진행은 기록팀의 시야가 맡았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현재 발령 대기 중인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도명화(전국민주일반연맹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 지부장): 직무교육을 받고 현장에 복귀해야 하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직무교육이 잠정 연기됐어요. 도로공사 측에 집체교육에 대한 대안을 요구했는데 아무런 대책이 없어요. 도로공사 측에서는 인건비가 안 나가니까 좋은 거겠죠. 실업급여 기간이 끝난 조합원들은 생계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그리고 도로공사 김천 본사 점거로 인해서 65명이 고발당했는데, 69명이 추가로 고발당해서 경찰 조사를 받고 있어요. 저 같은 경우는 작년 8월 29일 대법원 판결 당사자거든요. 이후에 투쟁을 이끄느라 직무교육에 불참했고 업무에 복귀하지 못했는데, 이를 두고 도로공사 측에서는 징계하겠다며 감사실로 출석하라고 하네요.


2월 1일에 농성 해제한 후에도 조합원들이 인근 톨게이트 영업소에서 선전전을 진행했어요. 도로공사가 기존에 우리가 했던 수납업무가 아닌 청소나 환경정비 업무를 주고 있고, 원거리 발령을 낼 거기 때문에 싸움을 지속할 수밖에 없어요.


2월 1일 농성 해제 후에도,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은 한국도로공사의 원거리 발령을 저지하고 기존의 수납업무를 되찾아오기 위해 각 지사 앞에서 선전전을 벌였다.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연맹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 제공) 


-코로나19 사태를 핑계로 발령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상황이 개탄스럽군요. 작년에 국립대 병원 노동자들의 경우, 정말 모범적으로 잘 싸웠고 성과도 컸는데 톨게이트 투쟁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파업 투쟁을 한 것도 뜻깊은 일인데 말이죠.


현정희(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본부장): IMF 이후에 국립대 병원이 정부 지침에 따라 구조조정을 시행하면서 병원 내 각종 업무가 외주화되기 시작했어요. 식당, 경비, 주차, 청소, 시설관리, 콜센터, 원무 수납 등의 업무였죠.


문재인 정부가 2017년에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2018년 병원장들도 노사전협의회(정부 가이드라인은 노동자, 사용자, 그리고 전문가들이 협의체를 꾸려 파견, 용역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에 대해 충분히 협의하도록 지시했다)에서 ‘자회사’ 안을 들고 나왔어요. 자회사가 꼼수라는 걸 알았기에 불참을 선언했어요. 비정규직 없는 병원을 만들기 위해서 이번에 제대로 싸워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이번에 못 하면 나중에는 훨씬 어려워질 거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고, 또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같이 해야만 이길 수 있는 싸움이라는 걸 알았어요.


서울대 병원의 경우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무기한 파업으로 배수진을 치고 싸우면서 가장 먼저 간접고용노동자 614명이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을 이뤄냈습니다. 청소, 경비, 시설관리, 운전 등의 업무를 했던 노동자들이죠. ‘서울대 병원이 2019년 11월 1일 자로 직접 고용한다’, ‘전환 후 각종 수당 및 복리 후생 등을 포함한 단체협약을 동일하게 적용한다’, ‘하청업체와 맺은 정년 협약을 인정한다’ 등의 내용으로 합의했습니다.


서울대 병원이 직접고용으로 전환되니까 자신감이 붙으면서 경북대 병원도 367명의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 전환을 이뤄냈어요. 이후 강원대, 충북대, 제주대 병원까지 쭉 직접고용으로 이어서 갈 수 있었어요. 다만 서울시립 보라매병원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못한 채 남아있어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직접고용 되었을 뿐 아니라, 기존의 정규직과 같은 단체협약과 기존의 정년을 인정받게 된 건 정말 큰 성과인데요.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과 국공립대 병원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투쟁이 우리 사회에, 그리고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보시나요?


엄진령(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집행위원): 저는 개인적으로 2018년 지나면서 더이상 자회사 흐름을 넘어설 수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론, 정책 활동가들이 ‘이미 대세가 된 자회사라는 구조 안에서 어떻게 싸움을 만들어 가야 하나’ 생각하고 있을 때 톨게이트 투쟁이 빵 터진 거예요. 그리고 국립대 병원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주체가 되어서 파업을 했고요. ‘아, 현장에서 싸우는 노동자들은 한계라는 게 없구나’하고 감동했어요.


서울대병원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2019년 무기한 파업을 벌였고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을 이뤄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제공)


이미 자회사로 전환되었거나, 전환되는 과정에 있는 노동자들은 두 투쟁을 보고 큰 영향을 받았어요. “우리가 싸워보지 못하고 자회사로 왔지만, 자회사가 아니라 직접고용으로 가는 게 맞구나, 우리도 다시 싸움을 시작해야 되는 구나, 싸워서 우리 권리를 확보해 가는 거구나.” 그 길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이 투쟁들이 의미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공공부문을 더 공공부문답게 거듭나게 하는 싸움이었다고 봐요. 국립대병원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로 우리 사회는 더 안정적인 의료서비스에 다가갈 수 있을 거예요. 의사, 간호사만이 아니라 그동안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왔을 주변의 노동들도 모두 의료서비스의 총체적 제공을 위해 존재하는 일들이기 때문이에요.


또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은 지금은 수납업무를 하지 않게 되었지만, 이들은 한국도로공사라는 공기업이 일부 권력자의 이득이나 채우고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시민의 이해와는 무관한 거대 공기업이 되지 않도록, 감시하고 잘못된 부분을 바꾸어 나가는 노동자들이 될 겁니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훌륭하게 싸웠지만, 여러 사람이 긴 시간 투쟁하는 과정에서 ‘한계’라고 평가되는 점도 있을 것 같은데요.


도명화: 우리는 이미 자회사가 들어선 이후에 싸움을 시작한 거잖아요. 직접고용을 선택하지 않은 노동자들 5천 명이 자회사로 넘어가 있고, 또 우리가 투쟁하는 중에 도로공사에서 자회사 소속 수납업무 노동자들을 700명 정도 채용하기까지 했어요.


그리고 싸우는 과정에서 ‘직접고용’만 남아버렸고, 우리가 원래 했던 수납업무에 대해서는 도로공사 측과 교섭조차 못 해 봤어요. 이제 현장에 들어가면 업무 내용에 관한 싸움을 벌여야 하죠. 또 궁극적으로는 자회사를 폐기하고 현재 자회사에 소속된 노동자들까지 다 직접고용 되는 투쟁을 함께 벌여야 한다고 봅니다.


현정희: 저는 문재인 정부가 처음에는 공공부문 간접고용을 정규직 전환할 것처럼 얘기하다가 ‘자회사도 정규직’이라고 바꿨을 때, 노동운동 진영에서 그 신호를 정확하게 알아채고 산별연맹들이나 민주노총에서 판을 키웠어야 했다고 생각해요. 사업장들을 모아서 정부를 향한 투쟁을 벌여 정부가 정책을 바꾸게 만들었어야 했죠.


엄진령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집행위원. (톨게이트 투쟁 기록팀)


-공공부문에는 노동자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해야 할 사회적 책무가 있잖아요. 그런데 ‘파견이나 용역 일자리의 경우 오히려 민간기업보다 공공부문이 비중이 더 높았다’고 정부 가이드라인에도 나와 있습니다. 왜 이런 현실인 건지 설명해주시겠어요?


엄진령: IMF 금융위기 이후에 공공부문 구조조정이 강제됐어요. 정규직 일자리가 없어지고 거기에 비정규직을 채워 넣었고,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늘리기 시작했죠. 수많은 인원을 한꺼번에 줄이려니 통째로 외주화하고 민영화하는 방법을 선택하면서 간접고용이 늘어나기 시작한 거죠.


이 구조조정에 맞서서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했죠. 대표적인 투쟁이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 그리고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어요. 이 시기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2004년,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을 최초로 발표하게 만들었죠.


그런데 2006년 노무현 정부가 발표한 ‘공공기관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기간제 노동자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고, 핵심 업무와 주변 업무를 나눠서 주변 업무는 비정규직화하는 것이었어요. 그 후로 매 정부마다 비정규직 대책을 시행했지만 정규직이 아니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데 그쳤죠. 간접고용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비정규직 문제로 바라보지도 않고 처우를 개선하는 문제에 그쳐서, 이명박 정부 때 ‘용역근로자 보호 지침’이라는 걸 만들었어요. 최저임금이 아닌 시중노임단가를 받게 하고, 용역업체가 바뀌어도 고용이 승계되도록 하는 게 전부였죠.


2010년대 초반에 지자체 차원에서 비정규직 정책을 별도로 시행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간접고용 문제를 비정규직 문제로 접근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서울시에서 박원순 시장이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 놓고 자회사로 전환한 거예요. 청소, 경비 노동자 등이 서울 메트로나 도시철도공사의 자회사로 들어갔죠. 당시 노동자들 말이 “자회사는 흩어져 있던 작은 용역업체를 끌어 모아서 하나의 큰 용역업체로 전환한 것에 불과하다”는 거였어요.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내놓으면서, 처음으로 간접고용 노동자도 직접고용을 할 수 있다는 정책이 나왔어요.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 관점에서는 싸울 수 있는 근거가 생긴 것이죠.


-공공부문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기대가 컸을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 까놓고 보니 ‘자회사도 정규직이다’ 이거였던 거죠.


엄진령: 상시 지속 업무는 정규직 전환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생명안전 업무는 반드시 직접고용 해야 한다’고 덧붙였고요. 또 하나, ‘자회사도 정규직’인 것처럼 본 거예요. 이러다 보니까 생명안전 업무는 직접고용, 나머지 상시 지속 업무는 자회사, 이렇게 갈리는 결과를 초래한 거죠.


작년에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공공부문 자회사 관련한 자료들을 각 기관에서 제공받아 공공운수노조와 같이 분석을 했는데, 당시에 자료를 통해 받은 느낌은 ‘모든 기관들이 직접고용이나 자회사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용역업체랑 맺었던 계약 내용을 업무 계획서에 그대로 옮겨와요. 업무의 내용, 수행하는 방식, 모자회사의 관계 등이 용역회사일 때랑 하나도 달라진 게 없는 거예요.


도명화: 저는 정부 정책이 제대로 된 정책이라면 당연히 2018년부터 직접고용 돼서 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노사전협의회에서 자회사 얘길 하더라고요. 딱 봐도 용역회사랑 똑같다는 걸 알겠는데 말이죠. 우린 이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서 해고까지 당했어요. 정부와 공기업이 한통속이 돼서 만들어온 연결고리를 끊는 게 정말 어렵더라고요. 이렇게 힘든 투쟁으로 이어질 줄 몰랐어요.


강원대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회사 전환’이 아닌 ‘제대로 된 정규직화’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병원 안에서 선전전을 벌이는 모습.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제공)


-정부는 자회사의 경우 용역회사보다 노동조건이 좋다고 얘기하고 있는데요. 공공부문에서 현재 자회사 전환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나요? 그리고 자회사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어떤가요.


엄진령: 2019년 12월 말 기준으로 공공기관의 52.2%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직접고용 했고 47.1%는 자회사로 전환했어요. 지방공기업의 경우에는 9.8%가 자회사로 전환했고요. 인원수로 보면 공공기관 및 지방공기업에서 약 4만1천 명 정도의 노동자들을 자회사로 전환한 거예요.


언뜻 보기엔 자회사로 가면서 고용이 안정된 것 같지만, 현재는 수의계약(optional contract. 입찰 등 경쟁을 통한 계약이 아닌 상대를 임의로 지정해 맺는 계약) 허용과 정부의 정책 추진력에 기댄 효과일 뿐이라고 봐요. 근본적으로는 원청인 모회사와 용역계약을 하기 때문에 고용이 불안정한 간접고용 형태인 거죠. 만약 경기가 더 나빠지거나, 정부 정책이 또 바뀌면 자회사랑 다른 용역회사들을 경쟁 입찰시킬 수도 있는 거예요.


임금의 경우도 2017년 이후 인상된 최저임금 효과 외에 자회사 전환으로 인한 임금인상 효과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그런데 원청의 지배 개입은 더 강화됐죠. 용역회사일 때는 원청이 지배적으로 개입하다가는 불법 파견이 될까 봐 조심이라도 했지만, 현재 자회사의 경우 원청은 실질적인 사용자로서 권한은 행사하면서 사용자로서 책임은 전혀 지지 않고 있어요.


도명화: 톨게이트의 경우, 직접고용을 택하지 않고 자회사로 들어간 노동자들이 “노동강도는 더 세지고 연차는 여전히 쓸 수 없고 도로공사 직원들의 갑질은 여전하다”고 말해요. 도로공사에서는 “자회사로 가면 임금 30% 올려주겠다”고 했었어요. 하지만 이게 기본급 상승이 아니라 상여금, 복지포인트 등을 늘려준 거고, 직무급제(직무별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차등하는 제도. 특정 직무에 대한 가치절하를 통해 직무 간 차별을 합리화한다는 비판도 받는다)여서 임금인상에도 한계가 있어요. (도로공사는 톨게이트 자회사인 ‘한국도로공사서비스’ 소속 노동자들의 최고 직급 임금이 도로공사 무기계약직 10호봉의 임금을 넘지 못하게 책정했다.)


또 우리가 나간 자리에 기간제 노동자들을 “나중에 정규직 시켜주겠다”며 채용했었는데, 막상 올해 시험과 면접을 통해서 대거 계약해지하고 있어서 노조 가입 문의가 들어오고 있어요.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이 한국도로공사 김천 본사 점거 농성 당시, 경찰의 침탈에 대비해 스크럼을 짜고 있다.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연맹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 제공)


-톨게이트 투쟁을 보며 일각에서는 “누구는 힘들게 스펙 쌓고 시험 봐서 정규직으로 들어가는데 거저 먹으려 한다”는 비난 여론도 있었잖아요. 한국 사회의 노동권에 대한 인식이 전보다 많이 후퇴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장에서는 어떻게 느끼셨나요?


도명화: 우리가 도로공사 본사에 가서 선전전하면 도로공사 직원들이 뒤에 서서 그랬거든요. “시험 보고 와.” 도로공사 직원들은 우리가 오는 게 싫은 이유가 성과급을 나눠야 한다거나 그런 돈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그냥 우리가 자신들과 동급으로 되는 게 싫은 거죠.


사실 톨게이트 요금수납 업무는 원래 직접고용이었어요. IMF 금융위기 이후에 구조조정으로 대형영업소를 제외한 나머지를 본격적으로 외주화하기 시작했고, 2009년에는 전 영업소를 외주화했지요. 다 같이 정규직으로 일하다가 외주화될 때, 남자 직원들은 대부분 도로공사 정규직으로 갔어요. 여자들만 용역업체로 왔거든요.


사람들은 우리 보고 “(직접고용 주장하는 건) 욕심이다, 고집이다”라고 얘기해요. 하지만 수납업무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잘할 수 있는 게 우리들이에요. 거기에 대해서 시험이 필요하다고 하면 보겠다는 게 우리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그런 것도 아니잖아요.


엄진령: 정부가 무조건 공공부문 인건비를 낮추는 데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공공부문을 공공부문답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이 있어야 하는데, ‘정규직으로 전환 몇 명했다’는 식으로 눈에 보이는 효과만 키우려고 해서 ‘자회사도 정규직’이라는 논리가 나오는 겁니다. 이러다 보니 사회적으로는 직접고용을 두고 마치 일부 비정규직들이 특혜를 받아서 정규직이 되려는 것처럼, 이게 불공평한 일인 것 같은 인식만 커져 버렸어요.


사실 정규직 노동자들이 지금 입사를 위해서 요구받는 수많은 스펙이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정작 필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죠. 기존에 갈등을 겪었던 공공기관들에서는 같이 섞여서 한 조직에서 일하다 보면 그런 갈등이 사라진다고 해요.


현정희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본부장 (톨게이트 투쟁 기록팀)


-이런 상황에서 국립대 병원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에 함께했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데요, 어떻게 했나요?


현정희: 병원 측에서는 계속 분열 정책을 펼쳤어요. “용역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정규직 임금 못 올린다”, “병원인건비 올라가면 병원 적자 된다”, “청소노동자가 같은 직군이 되면 기능직도 청소 업무로 배치될 거다” 등등이요.


다행히 정규직 조합원들은 병원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었지만 2006년부터 (기업노조에서) 산별 노조 지역지부로 바뀌면서 ‘비정규직 조합원들도 같은 지부 조합원’이라는 인식이 있었어요. 그동안 지부 차원에서 하청 비정규직 투쟁을 같이 해왔던 경험이 있었고요. 특히 서울대 병원의 경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부당하게 해고될 때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투쟁했고 공동파업을 한 적도 있어요. 작년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투쟁도 그런 연장선상에서 당연히 같이하는 걸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한순간에 뚝딱 만들어진 게 아니라 20년의 시간이 쌓여왔던 거죠.


병원은 크기에 따라 좀 다르기는 하지만 80여 개 직종이 협업해야 환자 치료가 잘될 수 있습니다. 의사, 간호사만 잘한다고 병원이 잘 돌아가는 게 아니에요. 지금처럼 감염병이 돌 때는 특히 청소와 공조, 시설, 경비 등이 중요합니다. 이런 부분을 IMF 때 정부에서 비핵심 업무라고 하면서 용역, 하청으로 돌린 건데요. 환자의 안전과 병원 내 직원들의 협업을 위해, 비정규직을 다시 정규직으로 돌려야 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모든 노동자들은 당연히 진짜 사장으로부터 임금을 받는 정규직이어야 하지만, 특히 병원은 환자 안전과 감염 예방, 협업 등의 이유로 더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톨게이트 노동자들과 국공립대 병원 노동자들의 직접고용 요구 투쟁의 사회적 의의에 대해서 짚어보았는데요. 향후 우리 사회가 어떤 과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현정희: 지금 1천만 명에 달하는 다양한 비정규직 일자리가 있는 것도 사회구조적으로 만들어진 거잖아요. 한국도 외환위기 전에는 대부분의 일자리가 정규직이었어요. 그런데 마치 비정규직은 처음부터 비정규직이고,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는 본인의 능력 부족으로 그런 곳에 취업한 걸로 치부하면서 각종 차별을 당연시하고 있어요. 이걸 바꿔내야 한다고 보고, 또 바꿔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엄진령: 공공부문이 비용의 효율성만을 중요시한다면, 이 노동자들은 언제 다시 외부로 밀려나고 비정규직화될 지 모릅니다. “고령이라서, 여성이라서, 생계전담자가 아니라서” 등의 이유로 권리 밖으로 밀어내고, 또 “아무나 해도 되는 일”이라거나 “자동화하면 필요 없는 인원”이라거나 하는 논리들은 언제든 이 노동자들의 고용을 다시 위협하고 비정규직화할 수 있어요.


지금도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는 많은 노동자들이 있는데, 이 노동자들이 정규직이 되고 임금이 오를 때 들어갈 비용만을 생각해서는 안 돼요. 이들의 권리가 향상되고 고용이 안정되어야 곧 우리 사회 전체가 안전해진다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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