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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캐노피 위, 수납원들은 어떻게 98일을 버텼나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의 투쟁이 남긴 것②


※ 작년 6월, 해고된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이 서울톨게이트 캐노피에 오르면서 이들의 실태가 알려졌다. 공공부문이 얼마나 많은 용역 노동자를 쥐어짜며 운영해왔는지 폭로하면서, 여성 노동자들은 한국도로공사에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217일간 농성했다. 결국 도로공사는 ‘전원 직접고용, 2015년 이후 입사자는 (근로자지위확인소송) 패소 시 직접고용 해제’안을 발표했고, 지난 2월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농성을 해산했다. 그러나 이들의 싸움이 끝난 건 아니다. ‘공공부문 정규직화’라는 과업을 둘러싸고 사회에 큰 화두를 던진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투쟁을 돌아보며, 그 의의와 사회적 과제를 짚는다. [톨게이트 투쟁 기록팀]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서울톨게이트 앞, 대량해고에 맞선 요금수납 노동자들의 집회 현장. 민주노총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 제공


자회사냐, 직접고용이냐


“6명의 노동자 대표 중에 저만 끝까지 ‘자회사’ 전환을 반대했어요. 결국, 전문가 위원이 ‘합의하지 못했다’고 결론 내리고 폐회를 선언해서 밖으로 나왔죠. 그런데 나머지 사람들이 안 나오는 거예요. 들어가 보니 도로공사랑 다른 노동자 대표 자기들끼리 서명을 하고 있어요. 그 서명지 뺏으려고 싸움이 났어요. 도로공사 사람들이 가로채서 농구 하듯이 그 종이를 넘겨서 갖고 도망가는 거예요.”(박순향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 부지부장)


2018년 9월, 한국도로공사의 노사전협의회(정규직 전환 노사 및 전문가협의회)는 파행으로 치달았다.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따라 한국도로공사에도 노사전협의회가 꾸려졌다. 그러나 도로공사 측은 ‘직접고용’ 대신 ‘자회사’ 입장만 고수했다.


노동자 대표 6명은 모두 자회사 안에 반대했으나, 도로공사 측의 회유로 시간이 지나면서 5명이 동의했다. 박순향 대표는 끝까지 반대했다.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 6700명 중 노동조합에 가입한 사람은 1700명, 그중 민주노총 조합원은 100명도 채 안 되던 시기였다.


노사전협의회가 합의를 하지 못했음에도 도로공사는 “이해당사자 대표들 간에 자회사 고용에 적법하게 합의했다”고 사실을 왜곡한 내용을 발표한다. 그리고 자회사를 대대적으로 선전하며 요금수납 노동자들에게 ‘자회사냐, 직접고용이냐’ 선택하라고 했다.


자회사를 선택하면 기존에 하던 요금수납 업무를 지속하며 정년도 61세까지, 임금은 30% 인상시켜주겠다고 했다. 단,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진행 중이었던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승소해도 자회사에 남게 되는 조건이었다.


반면 직접고용을 선택하면 집에서 먼 곳으로 발령을 낼 것이며 청소, 조경 등을 하는 ‘도로관리원’ 업무를 하게 되고 임금 또한 11% 정도밖에 인상이 안 된다고 했다. 이마저도 기간제 일자리이며, 언제 결론이 날지도 불투명한 대법원 판결이 난 이후에야 직접고용하겠다고 했다. 기간제 일자리를 수용하지 않으면 해고되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요금수납 노동자들이 직접고용을 선택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노조와 접촉할 기회조차 차단당한 경우, 고민할 겨를 없이 자회사를 선택하는 게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도로공사 직원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 회유하거나, 여러 직원이 톨게이트 노동자 한 명씩 따로 불러 강압적인 분위기를 만들며 자회사를 강요하곤 했다.


“(도로공사) 본부에서 자회사 가라고, 지사에서 가라고, (용역업체) 사무장이 달달 볶고, 교대시간 때마다 붙잡혀서 싸인하라고 하고. 친한 사람 있으면 쓰고, 당장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도 쓰고, 투쟁이 겁나는 사람도 쓰고. 우리가 따졌어. 안 좋은 거 알면서 왜 보내려고 하냐고 따졌어요. 내가 싸인을 안 하니까 막말을 하더라고요. 배가 불러서 직접고용 간다고. 오기가 생겨서 ‘난 자회사 안 간다’고…”(조미경, 18년 차, 진안 톨게이트)


자회사 서명을 밀어붙이는 도로공사에 맞서 박순향 씨는 민주당사를 점거하고 단식에 들어간다. 현장에서 자회사 선택을 강요받자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문의를 해왔다. 노조 간부들은 문의가 오는 곳이면 전국 어느 영업소든 달려가서 설명했다.


“생전 얼굴도 보지도 못했던 도로공사 간부들이 와서 엄청 친절하게, 어쩔 땐 협박하듯이 자회사를 계속 얘기하니까 ‘그렇게 좋으면 지네가 가지’, 의심하면서 알아보고 그러다가 노조 가입한 거고. 왜 직접고용으로 가야 하는지 구구절절 설명 안 해도 ‘해고되지 않고 다니고 싶지 않냐’. ‘그동안 얼마나 많은 양보와 피해가 있었냐’ 그런 부분만 살짝 얘기해도 다 직접고용이 맞다고 했어요.”(도명화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장)


6700명 중 1500명만 직접고용을 선택했다. 나머지 5천명의 노동자들은 자회사를 선택했다. 1500명 모두가 처음부터 직접고용을 선택했던 것은 아니었다. 자회사를 선택했다가 동료의 설득으로, 노조 측의 설명을 듣고, 도로공사나 용역회사 사장의 횡포에 열 받아서 직접고용으로 바꾼 경우도 많았다.


현장에서는 직접고용을 선택한 노동자들에게 총공세가 퍼부어졌다. 자회사를 선택한 동료들도 “니가 뭐가 잘 났다고”, “니들이 정규직 될 것 같냐”고, “욕심이 많다”고 비아냥댔다. 도로공사 정규직 노동자들이 소속돼 있는 한국도로공사 노동조합(한국노총 소속)은 “힘들고 어려울수록 자회사 원칙을 지키”라는 홍보물을 뿌리며 도로공사를 압박했다. 속내는 톨게이트 노동자들을 직접고용 노동자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도로공사 앞에 가서 선전전을 하면 도로공사 직원들이 뒤에 와서 작은 목소리로 ‘시험 보고 와’, ‘시험 보고 와’ 이랬어요. 그러면 우리는 ‘꺼져!’ 했지요.”(도명화)


순차적 해고, 노동자들의 투쟁에 불을 댕겼다


도로공사는 2019년 7월 1일 자회사인 ‘한국도로공사서비스’ 출범을 앞두고 6월 1일부터 시범영업소를 운영하며, 직접고용을 선택한 조합원들을 순차적으로 해고하기 시작했다. ‘설마, 설마 했는데’ 해고당하는 걸 보고 자회사로 돌아선 사람도 일부 있다. 그러나 해고는 노동자들의 투쟁에 불을 댕겼다.


“6월에 먼저 해고된 조합원들이 있는 영업소를 돌았어요.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그 영업소에 상주하면서 집회도 하고 선전물도 만들어 붙였어요. 점심시간에는 (도로공사 직원들이 근무하는) 인근 지사에 가서… 내가 이때까지 당하고 산 거 있잖아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이러면서 그 사람들의 갑질이나 성희롱에 대해 마이크 잡고 폭로했어요.”(도명화)


도로공사는 2019년 7월 1일 대규모 해고를 감행하기 전, 6월 한 달 동안 조합원 200여 명을 순차적으로 해고했다. 맨 오른쪽이 박순향 부지부장이다. 민주노총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 제공


“구호 하나 외칠 줄 몰랐던”, “팔을 어떻게 올리는지 몰랐던” 노동자들이 하나씩 하나씩 배워갔다. 난생처음 마이크 잡고 해 보는 발언에 속이 울렁거렸지만 이름 석 자만이라도 말하려고 했다. 할 때마다 익숙해져 갔다.


“집회에 누가 올 건지 미리 참석자를 받아요. 40명이 온다고 했으면 막상 가보면 60, 70, 80명이 오는 거야. 어떤 분은 ‘나도 빨리 잘려서 여기 와야지, 일하면서 투쟁하려니까 너무 피곤해’ 이러고.”(박순향)


처음에는 휴무일에만 참여했지만, 나중에는 야간일 마치고 잠도 안 자고 먼 길을 운전해 집회하러 갔다. 조합원이 괴롭힘을 당하는 영업소에 몰려가서 현수막을 달고 창문에다가 ‘직접고용 쟁취’ 도배를 해 “무당집처럼” 만들어버렸다.


“우리가 꾸며놓은 걸 도로공사 직원들이 다 제거하잖아, 그러면 다시 쫓아가서 ‘원래 상태대로 해라’ 그래요. 이런 걸 조합원들이 보면서 느끼는 거예요. ‘우리가 그렇게 무서워하면서 말 한마디에 커피 갖다 바쳤던 그 도로공사 직원들이 우리 말에 움직이는구나.’”(박순향)


자신감이 붙은 노동자들은 이제 노조 간부들이 달려가지 않아도 현장에서 “알아서” 해고에 맞선 자신들의 투쟁을 만들어갔다. 용역업체에서는 이들이 투쟁하러 가려고 휴가를 낼라치면 휴가를 못 쓰게 하거나, 일방적으로 근무표를 바꾸는 등의 방식으로 괴롭히곤 했다. 그러나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직접고용 택한 사람들 마지막 날 근무를 다 빼버렸더라고요. 마지막 날엔 부스를 사수해야 했는데 말이죠. 게다가 마지막 날이 틀어지는 바람에 앞의 근무표가 다 틀어져 버린 거예요. 그래서 싸웠죠. 14명 조합원이 다 사무실에 들어와서 (용역업체) 사무장이랑 싸웠어요 ‘이대로 간다면 한꺼번에 연차 내서 일할 사람 없게 만들겠다’, ‘우리는 원래 근무표대로 나올 테니까 알아서 해라’ 어차피 이판사판이어서 이래 잘리나 저래 잘리나. 결국 원래대로 해 놨어요.”(김경남, 10년 차, 청북 톨게이트)


이 기간은 “일하면서 지금까지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 년 동안 억압돼 있던 거를 막 발산하는”(박순향) 그런 시간이었다. “이 과정이 없었다면 해고 후에 그렇게 씩씩하게 투쟁할 수 있었을까”(도명화) 싶을 정도로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단련되어갔다.


1500명이 해고된 새벽, 서울 톨게이트에 결집하다


마침내 7월 1일 도로공사는 대규모 해고를 강행했다. 1500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렸다. 그날 새벽, 서울 톨게이트에 결집했다. 한국노총 조합원 700~800명, 민주노총 조합원 500명이었다.


그동안 자신의 영업소에서 고립돼 일하다가 처음으로 동료들의 결집을 눈으로 확인한 그 순간은 이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을 안겼다. “이기겠구나!” “일주일 안에 끝나겠구나!” 생각했다.


저 캐노피 위에 내 동료가 있다! 민주노총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 제공


서울톨게이트 캐노피(지붕)에 42명이 올라가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캐노피 밑의 노동자들은 “눈물이 나서 캐노피 쪽을 아예 쳐다보지도 못”하거나 “몇 달 동안을 갈 때마다 울었다”고 얘기한다.


“서로를 보면서 울었어요. 캐노피에 올라온 우리는 우리대로 사명감을 느꼈고, 밑에 계신 분들을 우리를 더 빨리 내려오게 해야되겠다는 마음에 더 가열차게 싸운 거죠.”(김경남, 10년 차, 청북 톨게이트)


경남씨는 98일간의 캐노피 고공농성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킨 여섯 명 중 한 명이다. “3,4일 있다가 내려갈 줄 알았던” 초반에는 “커피믹스 한 통(대용량) 이만한 게 올라오면 ‘이거 한 통 다 먹으면 내려가겠지’ 얘기하곤 했다.”


“먼지가 얼마나 많은지 손하고 발이 금세 새까매졌어요. 몇십 년 동안 사람이 한 번도 안 올라갔을 거 아니에요. 먼지가 진짜 말도 못 해요. 큰 차가 지나갈 때마다 흔들리는 게 더 힘들었어요.”


캐노피 고공농성 8일 차에 캐노피를 방문해 농성 현장을 돌아봤던 녹색병원과 이대 목동병원 의료진은 “의사로서 참으로 미안하지만, 치료방법은 캐노피에서 내려오는 것밖에는 없다”고 얘기한 바 있다.


“한 마디로 인간이 머무르면 안 되는 곳에 지금 수십 명의 중년 여자분들이 머물고 있다. 바닥 노면에 예상치 못하게 튀어나온 구조물들이 많아 아무리 긴 시간 주거한다 해도 공간을 인식하고 위험을 예방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매연으로 인해 평상시 건강했던 사람도 후두염, 고혈압에 시달리고 있고, 고온과 더러운 물로 인해 피부염을 앓고 있으며, 모기 등에 물린 상처가 염증으로 번지고 있다.”(7월 6일 캐노피를 방문한 의료진이 집회에서 한 발언)


폭염‧폭우 속 톨게이트 지붕 위에서 98일간 고공농성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에서, “내려오는 것밖엔 답이 없는 곳”에서 그네들은 “작은 마을”을 만들었다. 중년이라고, 여성이라고 못할 건 없었다. 텐트도 튼튼하게 치고 화장실과 샤워 공간도 만들었다.


“화장실이 없으니까 하수구에다 나무를 걸쳐놓고 물병에 물을 받아서 소변보러 갈 때 물병 가져가서 물 내리곤 했어요. 대변은 요강이나 고추장 통에 봤어요. 제가 다른 조합원 한 명이랑 그거 치우는 담당을 했죠. 수돗물을 끌어올려서 샤워텐트를 쳤어요. ‘우리 모냥(모양) 빠지게 빨래는 하지 말자’ 해서 빨래는 빨래방에 보냈죠. 밥은 처음에는 밑에서 도시락을 올려 보내줬는데 나중에는 조합원 몇 명이 밥을 직접 해서 위로 올려줬어요.”(김경남)


서울톨게이트 캐노피 위에서 피켓시위를 하는 조합원들. 민주노총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 제공


시간이 흐르자 머리카락도 점점 자랐다. 마침 미용사 자격증 소지한 사람, 미용실에서 몇 달간 일했던 조합원이 있어서 머리도 자르고 서로 염색과 파마도 해 줬다. 경남 씨는 “나름 재밌었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어찌 쉬운 일이었겠는가.


7월 초는 마침 폭염이 시작되던 시기였다. 지상이 38도면 캐노피 위는 50도였다. 경남 씨는 “(비를 막기 위해 널어놓은) 비닐이 햇볕에 녹아내리고 235미리 사이즈였던 고무 슬리퍼가 225까지 줄어서 신지 못할” 정도의 더위였다고 회상한다. “페트병에 물 얼려서 올려주면 그거 끌어안고 있”고 “작은 생수에 커피믹스 3~4개를 부어서 타 먹으며” 버티는 날들이었다.


무더위를 겨우 넘겼더니 또 다른 복병이 찾아왔다. 태풍이었다. 농성 70일 차 즈음, 태풍 링링이 한반도를 강타했을 때, 캐노피 위는 아수라장이 됐다.


“비닐 쳐 놓은 거 다 찢어지고 텐트가 날라 가거나 가라앉거나. 구조물 밑에 대피해 있었죠. 그걸 보고 밑에서 조합원이 울고 그랬어요.”


악조건 속에서도 투쟁은 계속됐다. 캐노피 위에 있던 노동자들은 “전화로 인터뷰도 하고 글도 쓰면서 언론에 톨게이트 투쟁을 알리는 일”을 주로 했다. 경남 씨는 당시 가장 기억에 남는 일들을 설명했다.


“도로공사에서 (올라오거나 내려오지 못하게 하려고) 캐노피 올라오는 사다리를 철책으로 감고 열쇠를 채워놨거든요. 어느 날은 밑에서 도로공사 측 사람들이 열쇠를 풀고 올라오려고 했어요. 우리가 난간에 올라서서 ‘만약에 올라오면 뛰어내리겠다’고 하니까 그제서야 멈췄죠.”


“밥을 올릴 때 경찰들이 검사를 해요. 밥인 줄 뻔히 알면서도 뚜껑을 열어보고 헤집어 놓는 거예요. 열 받아서 밥을 받지 않고 밑으로 내려보냈어요. 30분 내로 사과하지 않으면 연좌농성을 하겠다고 했죠. 엄청 더운 날이었는데 난간에 앉아서 밥 한 끼 안 먹고 9시간 동안 연좌농성을 했어요. 결국 분당경찰서장 사과를 받아냈죠.”


무엇 하나 허투루 넘어가지 않았다. 끝까지 따지고 물고 늘어져서 기어이 사과를 받아냈다. 하나를 양보하면 둘을 더 줘야 하는 상황이 온다는 걸 이들은 알고 있었다.


캐노피 위의 동지들. 오른쪽에서 두 번째 턱을 괴고 있는 이가 김경남 씨다. 저 멀리 집회 대오가 보인다. 민주노총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 제공


절박하다, 억울하다…그 힘으로 청와대 앞 노숙농성


한편, 한국노총 소속 노동자들이 서울 톨게이트를 사수할 때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들은 청와대 앞 노숙농성을 하러 서울로 올라갔다.


“처음에 청와대 갔을 때 어디서 자냐고 물었어. 청와대 들어가서 자는 줄 알았어요.(웃음) 그냥 바닥에서 잔다고 하더라구요.”(조미경, 18년 차, 진안톨게이트)


첫날부터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청와대 쪽으로 행진하다 경찰과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경찰 방패를 뚫어버리면 뭔가 되는 줄 알았”고 “그만큼 절박하고 순수했다.”(박순향) 몸싸움 과정에서 21명이 부상을 당하고 10명이 연행됐다.


“처음에는 무조건 밀면 되는 줄 알고 막 밀었어요. 그런데 경찰이 우리를 한 번에 확 미는 거예요. 맨 앞 대오가 쓰러져 버렸어요. 앞에서는 쓰러지는데 뒤에서는 밀고. 앞의 분들 압사당하면 안 되니까 중간에 낀 분들은 버티다가 같이 구급차에 실려 가고. 몸도 다들 안 좋으세요. 한번 하고 나면 끙끙 앓아요. 다리 안 좋은 장애인분들도 많고. 힘이 세서가 아니라 이겨야 되니까 하는 거예요. 내가 뭘 잘못했길래, 경찰은 범인 안 잡고 나한테 이러나. 되게 억울하다. 그게 힘으로 나온 것 같아요.”(이상림, 3년 차, 면천톨게이트)


“갑자기 닫혀있던 경찰 방패가 확 열려서 조합원 서너 명이 (경찰 방패 안쪽으로) 넘어지는 거야. 그러더니 순식간에 방패가 닫혀. 개미지옥이야. 조합원들이 연행되는 걸 처음 보고 하늘이 무너지는 거 같으면서 눈물이 나는데, 연맹 사무처장이 나보고 진정하래. 진정하고 마이크 잡고 ‘저 사람들 행운이다, 저렇게 잡혀가면 노숙도 안 해도 되고 밥도 시켜먹을 수 있다’ 그랬죠. 조금 있다가 연행된 사람들이 잡혀가면서 버스 안에서 인증샷 찍은 게 왔어요. 우리가 걱정할까 봐 눈은 시뻘건데 웃으면서 찍은 거야.”(박순향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 부지부장)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다 부상을 당해 들것에 실려 나가는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 민주노총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 제공


준비된 싸움꾼이어서 잘 싸운 게 아니었다. 청와대 면담이 절박했던 이유가 있다. 문재인 정부가 차라리 자회사 정책을 내놓지 않았다면,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은 법원 판결에 따라 직접고용이 될 수도 있었다. 정부가 책임져야만 했다.


청와대 비서실과 면담을 했으나, 교섭을 하자는 말에 청와대는 “나서기 어렵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사태 해결을 위해 중재하겠다던 노동부는 발뺌했고 이낙연 국무총리는 국무회의에서 ‘자회사를 기타공공기관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며 도로공사 쪽에 힘을 실었다.


장기전을 대비해야 했다. 두 조로 나누어 3박 4일간 투쟁하고 집에 다녀오기를 교대로 했다. 7월, 8월 두 달 동안 청와대 앞에 항상 150명 정도 규모가 유지됐다.


잠은 청와대 앞 효자동 치안센터 앞 찻길에서 잤다. 밤이면 바리케이트를 쳐서 한 개 차로만 자동차가 다니게 하고 나머지 3개 차로 위,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몸을 뉘었다. 처음에는 돗자리 위에서 침낭이나 개인 담요를 덮고 잤다. 3박 4일 교대를 할 때면 집에서 바리바리 싸 들고 왔다. 텐트가 등장하고 이어 모기장도 등장해 시간이 지날수록 “리모델링”됐다.


“소소한 재미가 많았어요. 청와대 앞 효자치안센터 딱 6시가 되면 자리를 먼저 맡기 시작하는 거예요. 텐트 칠 자리를. 그걸 선점해야만 편안하게 넓게 자거든요. 안 그러면 시끄러운 자리, 너무 밝은 자리니까. 그리고 청와대 근처 목욕탕 가면 다 만나잖아요. 누가 거길 뚫어가지고 (원래 목욕탕 쿠폰이 없었는데) 쿠폰을 만들었어요.”(김정인, 11년 차, 북강릉톨게이트)


근처 주민들의 민원과 항의가 계속됐다.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규칙을 짜고 지키려고 노력했다. 샤워는 목욕탕에서만 하자, 화장실에서는 머리 감지 말자, 아침 6시 반까지는 무조건 텐트를 접자 등. 그래도 항의가 있을 때면 “오죽하면 여기 있겠냐고, 우리라고 길바닥에서 이러고 싶겠냐고, 우리도 가족이 있다고”(박순향)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청와대 앞 노숙현장. 차가운 아스팔트 위 돗자리를 깔고 눕다. 공공연대노조 한국도로공사지회 제공


우리가 정당하기 때문에, 이길 거라고 믿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싸울 수 있었나”라는 물음에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이렇게 답한다.


“걔네(도로공사)한테 정말 지기 싫고. 이것만은 이겨보고 싶은, 걔네가 너무 잔인하다, 오만하다는 생각. 우리를 너무 무시했다는 생각. 걔네는 (직접고용 기회를) 안 주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니까. 한번은 이겨보고 싶었어요.”(이정미, 10년 차, 원주톨게이트)


“남자들은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노숙도 못 할걸. 우리는 순수하잖아요. 처음이고, 순수했기 때문에 이렇게 싸울 수 있었고. 남자들은 ‘야 봐봐, (질 것이) 빤하다’ 했겠지만 우리는 이길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어요.”(함해옥, 16년 차, 구리 남양주톨게이트)


자회사로 들어가 또다시 도로공사의 갑질에 숨죽이고 살 수는 없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개나 소나 다 정규직 되려고 한다”, “떼쓰면 다 정규직 되는 거냐”는 비난이 들려왔다. 하지만 요금수납원들은 도로공사 정규직과 똑같은 임금과 처우를 바란 게 아니었다. 여태까지 일하던 자리에서, 하던 일을 “잘릴 걱정 없이” 하고 싶다는 바램이었다.


법원도 이미 1심, 2심에서 ‘요금수납원은 도로공사 직원’이라고 명시하지 않았는가. “아닌 것을 기라고 우기는 투쟁이 아니라, 원래 우리가 가지고 있던 것을 되찾아가는 싸움”(최양예, 10년 차, 서안산톨게이트)이었기에 정당했고, 이길 거라고 자신했다.


도로공사는 1500명 집단해고라는 초유의 사태를 만들었고,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1500명은 서로에게 “우리가 옳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게다가 어제까지 같이 일했던 동료가 저기 캐노피 위에서 자신을 희생해가며 버티고 있었다. 8월 29일 대법원 판결이 나기 전까지 폭염 속에서도 두 달 가까이 흔들림 없이 투쟁을 지속했다. (다음 화에 이어집니다.)


*인터뷰 진행 및 기록: 톨게이트 노동 기록팀(나랑, 시야, 희정)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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