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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공동체’에 대한 페미니스트 연극인의 질문

<청년 페미니스트 예술가의 서사> 연극연출가 강보름②


※ 2020년 많은 청년 페미니스트들이 다양한 페미니즘 주제를 예술로 표현하고 있고, 나아가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과 차별, 위계 등에 문제 제기하며 평등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따로 또 함께’ 창작을 통해 사회와 소통하는 페미니스트 예술가들의 새로운 서사를 기록합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내가 몸담았던 대학 극회는 6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데 109번의 정기공연 중 여성 회원이 연출을 한 것은 15번뿐이다. 그런데 극회를 벗어나 발을 디딘 연극계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터프하고 마초적인 곳이었다. 비전공자 출신 20대 여성은 너무 쉽게 무시당하는 현실에 지쳤던 것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한 이유 중 한몫했다. 페미니스트 연극인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연극을 그만두었을지 모른다. 지난 3년 페미니스트 창작자들의 동료, 후배이자 관객으로서 큰 위로와 격려를 받으며 버텨왔다.


‘나는 공동체는 안 되겠다’…어느 연극인의 역설


“나는 공동체는 안 되겠다.” 작년에 학교에서 발표했던 짧은 공연의 제목이다. 그간 내가 속했던 공동체에 대해 토크하는 형식의 1인극이었고, 당연히 연극계에 대한 이야기도 빠질 수 없었다. 공연에 담겼던, 미투 이후 연극계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내가 겪은 변화들을 적어보려 한다. 크게 요약하자면 연극 공동체 안에서 경험했던 나의 위치성에 관한 감각과 변화된 나의 관심사이다.


조연출을 할 때 ‘(당신 같이) 입만 터는 페미니스트가 제일 싫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황당했다. 조연출이 책임과 권리 면에서 프로덕션의 최약자 포지션인 경우가 많고, 나도 내 위치를 그렇게 인식하며 행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연출 역할을 열심히 했더니 위계 권력에 봉사하는 ‘무늬만 페미니스트’가 되어버렸다. 우리가 그만큼 서로 역지사지가 안 되는 힘든 공동체 안에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페미니스트란 ‘갈등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공동체의 문제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의미하기 때문에, 각자가 가진 페미니스트 연극인상(像)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2019년 3월 8일 광화문광장에서 개최된 제35회 한국여성대회 38거리행진에 ‘페미니스트연극인연대’가 참여했다. (출처: 페미니스트연극인연대)


연출을 할 때 배우 포함 모든 프로덕션 구성원을 여성으로 섭외한 적이 있다. 지금도 가급적 그렇게 하려 하지만, 더이상 납작하게 여성이라는 조건만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지는 않는다. 성별보다 내가 제안하는 작업 방향성에 흥미가 있는지, 일상적 폭력에 둔감하지 않은지, 관계적 소통에 의지가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사실 이건 연극뿐만 아니라 모든 경우에 서로를 대할 때 갖춰야 할 기본적인 태도인데, 연극은 무대라는 환상에 늘 우선권이 주어지기 때문인지 이상할 만큼 일상적 배려와는 거리가 멀었다. 나를 포함한 프로덕션 내부 구성원끼리 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공동체의 문제로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인지, 아니면 사적인 문제로 보고 해결할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워 아주 난감했던 적이 많다.


여성, 신진, 연출로서 나의 위치를 고민하다


연극계 구조적으로 연출은 특권을 가진 포지션이다. 곧 잠재적 위계폭력 가해자의 위치성을 갖는다는 것을 함의한다. 나는 연출 작업을 하려는 모든 사람이 이 사실을 인지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한편으론 모순적으로 들리겠지만 연출과 배우, 디자이너는 역할이 다를 뿐 상하 관계가 아니다. 남성/선배/연출 중심의 권력 구조를 고찰하는 것만큼이나 모두가 이걸 인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성/신진/연출이라는 조건을 가진 내가 가장 힘들었던 건 프로덕션 내의 권한과 책임, 의무가 상대의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적용된다는 점이었다. 내가 후배라는 점만 선택적으로 작용해 다른 구성원들에게 연출로서 존중받지 못하거나, 연출이라는 점만 선택적으로 작용해 실질적 권한보다 책임과 의무를 과도하게 강요당한 경험이 있다. 실제로 대관 취소가 두려워 극장의 요구대로 우리 팀이 잘못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대표로 사과해야 했고, 벌금 명목으로 계약금을 돌려받지 못한 적도 있다. 이건 신진이자 인맥 없는 연출로서 겪었던 환장의 콜라보지만.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젊은 여성 연출로서 권위를 내세우고 싶은 게 아니라 존중받고 싶다는 것이다. 친구 혜원이 이런 말을 해주었다. 연극장의 위계를 잘 습득했다는 것과 좋은 작품을 만드는 실력이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면 연극계는 건강한 공동체가 아닌 것 같다고. 관객을 포함한 외부자들이 창작 공동체에 쉽게 드나들며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익힐 수 있는 연극계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백만 번 동의한다.


연극은 사회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 그리고 일상도 연극만큼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일상과 무대의 거리를 좁히는 것에 관심이 있고, 나는 과정도 결과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가 되었다. 그런 방향성을 갖고 연극계를 나의 공동체로 인식하며 살아가고 싶다.


연극 <모던걸타임즈>(2019) 창작진들과 실제 모델 ‘임형선’ 선생님. 100세의 연세에도 두 번이나 공연을 모두 보러와 주셔서 감격스러웠다. (출처: 프로젝트레디메이드)


페미니즘이 작품의 영감, 사유, 작업과정에 미친 영향


작업에도 이런 마음을 반영하려 애쓰면서 또 다른 페미니즘적 사유를 하게 되었다. 2018년 초연을 거쳐 2019년 재연한 연극 <모던걸타임즈>는 근대라는 새로운 시공간 속에서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간 모던걸들의 노동에 주목한 작품이다.


모던걸(Modern girl, 도시 문화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1930년대 경성 거리를 단발과 양장을 하고 활보한 여성들을 가리키는 말)이 1%의 부잣집 엘리트 여성 혹은 지식인 남성의 연애 상대로만 재현되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껴 시작했다.


모던걸에 관한 리서치 과정에서 구술생애사 자료를 찾았고 운 좋게 세 분의 여성 노동자(미용사 임형선, 양재사 이종수, 타이피스트 양충자)와 직접 만나 뵐 수 있었다. 원래는 드라마 형식을 생각했다가, 실존 인물을 무대화하는 것의 윤리성을 고민하게 되면서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바꾸게 되었다.


최근에는 서아프리카 만딩고 문화 기반 무용단체 쿨레칸(Koule Kan) 멤버들과 함께 여러 가지 서사를 탐색 중이다. 우리에게 낯선 대륙의 문화를 타자화하지 않으면서, 동등한 주체로 만나는 게 무척이나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끝도 없이 자기 검열하느라 창작이 매우 더디다는 것을 고백한다.


배우와 연출 사이, 일상과 무대 사이, 연극과 춤 사이, 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와 동아시아 한국 사이, 남성과 여성 사이, 비장애인 창작자와 장애인 관객 사이 등등 교차하는 순간들을 그러모아 연말에 공연할 예정이다.


코로나 시국을 무사히 이겨내고 우리, 극장에서 만나요.


부르키나파소의 여성 연극인 마리암과 마이 토니와 인터뷰를 마치고 찍은 사진. (출처: 프로젝트레디메이드 X 쿨레칸)


필자 소개: 강보름. 여성 도시청년으로서 ‘나’를 둘러싼 관계와 사회를 향하는 시선을 벼리면서 작업하고 싶은 ‘프로젝트 레디메이드’ 소속 연출가.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통시적으로 고찰한 <레디메이드 인생>(2017) 1990년대생의 불안을 사유하는 <우리가 고아였을 때>(2018) 근대 여성 노동자와 연대를 꾀하는 <모던걸타임즈>(2018, 2019) 한국 사회와 아프리카 담론을 들여다보는 <환대의 극장> 프로젝트(2019, 2020) 등 다양한 소재와 형식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일상에서 잘 이야기되지 않는 것들을 포착하여 무대화하고, 관객과의 만남을 중시하되 과정에서 모든 구성원의 희생과 착취를 담보로 하지 않기 위해 평등한 작업과정을 지향한다. 타인과 사회를 향한 시선을 열고 관계를 맺을수록 ‘나’의 자아 또한 확장될 수 있다고 믿는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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