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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코르셋’도 걷어버리자!

서울 동대문갑 무소속 이가현 예비후보



탈코르셋 운동이 지금처럼 논의가 확장되기 전이었던 2017년, 불꽃페미액션이라는 단체의 이가현 활동가는 <겨털은 남기고 머리털은 밀었습니다>와 <‘서빙은 안 됩니다’…머리 길이가 뭐길래>라는 글을 기고해 삭발 경험과 그로 겪은 노동 현장에서의 성차별을 고발했다. 이후에도 불꽃페미액션 활동가들은 탈브라에서 더 나아가 ‘찌찌해방 퍼포먼스’를 벌여 여성의 신체를 ‘문란한 것’으로 보는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이가현은 그런 활동에 늘 함께하는 사람이었다. ‘발칙’하고 재미난 방식으로 활동하면서 페미니스트들이 모이는 시위나 집회, 미투 운동, 디지털 성범죄 규탄, 성차별 노동 현장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에서 얼굴을 마주하게 되는 사람. 그는 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기도 했다. 마이크를 잡고서 한층 높아진 목소리로 역동적인 몸짓을 보여줄 때도 있지만, 입을 꾹 다문 침묵으로 자신의 의사를 비치기도 했고, 마냥 장난꾸러기처럼 잘 웃었다.


그런 이가현이, 자신이 초중고를 나온 지역구인 서울 동대문갑에서 페미니스트 국회의원이 되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그가 ‘페미당’을 창당하기 위해 전부터 달려온 걸 알고 있기에 언젠가 정치인으로서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출마 소식을 듣고 ‘아직 창당 전인데?’ 하는 의문도 들었다.


선거캠프 사무실에서 만난 이가현 서울 동대문갑 예비후보. (촬영: 박주연 기자)


이가현 예비후보의 선거캠프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정당 없는 무소속의 현실’이 확연히 눈에 들어왔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게 원터치 텐트일 정도로 사무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코로나19 여파도 물론 있겠지만 이가현 예비후보 혼자 덩그러니 기자를 맞이했다. 그 모습을 보니 ‘무모해 보일 정도로 돌진하는 이 사람의 행동력과 추진력 하난 변함이 없구나’ 하는 마음도 들었다.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정말 무소속은 아닌…


코로나19 시국에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시작된 인터뷰는 선거 운동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갔고, 역시 ‘페미당’에 관한 얘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페미당은 2017년에 뜻이 맞는 페미니스트들이 페미니즘 정당을 만들어 보겠다며 모임을 가진 것에서부터 출발했다. 이들은 정치와 정당에 대해 공부했고, 온라인을 통해 ‘페미니즘 정치/정당에 대한 인식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그렇게 페미니즘 정당의 가능성을 엿본 후 2018년, 비영리 임의단체로 ‘페미당 창당모임’을 등록하고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면서 발기인 모집에 나섰다. 그리고 2020년 1월 11일, ‘페미당 중앙당 창당발기인대회’를 열었다.


이가현 예비후보는 이번 총선에 참여하기 위해 페미당 창당준비위원회 활동을 잠시 쉬고 있지만, 시작부터 페미당과 함께해 온 사람 중 하나다. 그만큼 페미당 소속으로 지역구에 출마하고 싶었을 텐데 아쉬움이 크지 않을까.


“아쉽죠. 작년 10월부터 창당 모임구성원들한테 이번 총선에 출마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그땐 발기인대회도 하기 전이었는데 말이죠. (웃음) 다들 말렸거든요. 아직 당이 만들어지지 않았으니까. ‘정당에서 지원해 줄 수 있는 것도 없고 우린 돈도 없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이가현의 열정은 이미 시동이 걸렸다. 결국 구성원들도 이를 지지해 주기로 했다.


“지금 이가현의 무소속 출마는 페미당의 창당 프로젝트이기도 하다”는 이가현 예비후보는 “페미당은 총선 이후에 창당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선거 다 끝나고 창당이 뭔 소용이냐 생각하는 이도 있겠지만, 선거를 통해 페미당의 의제를 알리는 것은 좋은 방법 아닐까? 이런 모습이야말로 페미당이 선거용으로 급조된 정당이 아니라 준비된 정당이라는 반증이기도 하고 말이다. ‘영영페미’가 주축이다 보니 자원도 기반도 없이 ‘맨땅에 헤딩’하고 있지만, 이가현 예비후보는 “(페미당은) 오래 준비한 만큼 오래갈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마스크를 쓴 채 홍보 피켓을 들고 선거 운동 중인 이가현 예비후보의 모습. (출처: 이가현 예비후보 선거캠프)


선거는 돈 많은 사람들 잔치인가? ‘선거공영제’ 도입해야


그렇다면 그는 왜 국회의원이 되고 싶은걸까? 질문을 던지자마자 이가현 예비후보는 “원래 대통령이 꿈이었다!” 말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어렸을 때부터 정치인이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정치를 지켜보고 있으니 ‘나의 신념을 지키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죠. 그래서 사회 운동을 시작했는데, 그걸 하다 보니 변화를 만들어내려면 정당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정당 활동을, 뜻이 맞는 사람들과 같이하면 좋겠다 싶었죠.”


원래 꿈이었던 정치인을 다시 꿈꾸게 된 그는 정치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주변에서도 그를 독려해주는 이들이 생겼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전 대표이신 이진옥 선생님이 책 <보좌관>을 추천해 주셔서 읽고, TV 드라마 <보좌관>도 봤어요. 전 이상하게 그 드라마를 보면서 ‘보좌관에 절 이입하는 게 아니라, 저런 보좌관이 있는 국회의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더라고요.(웃음)”


자신의 야망을 깨달은 후엔 이제 돌아갈 곳은 없었다. “올해 29살이 되었는데, 생각해 보니까 20대를 전부 사회 운동을 하면서 보냈더라고요. 그렇다면 30대가 되기 전에 ‘내가 원하는 정치를 한번 해 봐야겠다’ 싶었어요.”


다행히 주변에는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엄마의 응원은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응원해 주는 친구들이 20~30대인 데다 요즘 코로나19로 특히 여성 청년들의 상황이 어렵다 보니 정치후원금이 좀처럼 모이지 않는 게 큰 고민이다.


2020년 3.8 세계여성의날을 맞이하여 이가현 예비후보가 진행한 <우리 동네를 성평등한 동네로!> 캠페인 중. 용두동 빌딩 앞에서 ‘성별 임금 격차 타파, 모든 기업 성별 임금 공시’를 쓴 피켓을 들었다. (출처: 이가현 예비후보 선거캠프)


그래서 이가현 예비후보는 “정말 선거공영제(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선거 운동이나 선거비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직접 관리하거나 부담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진 정치인이나 청년 정치인에게 선거비용은 큰 부담일 수밖에 없기에, 기성정치인들과의 차등을 없애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 뿐만 아니라 그는 선거공영제가 도입되면 “선거 자체의 과한 소비가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선거비용으로 서울 동대문갑 지역은 1억5천7백만 원(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책정한 제2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후보자가 선거 운동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을 쓸 수 있는데, 선거기간 14일 동안 약 1억6천을 쓴다는 거 너무 과하지 않나요? 선거가 시민들의 축제가 아니라, 돈 많은 사람들의 사치 파티 같잖아요. 저같이 자원 없는 청년은 못 해보죠.”


이가현 예비후보가 선거캠프 사무실을 홀로 지키고 있었던 것도, 여섯 명의 구성원이 출퇴근 시간에 맞춰 선거 운동과 회의 시간을 간신히 빼고,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거 운동의 범위가 이렇게 다르다는 건, 우리 정치판이 얼마나 기울어진 운동장인지 여실히 드러낸다.


남자야 여자야? 묻는 시민들에게 탈코르셋을 말하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여성’ 청년에겐 더 가혹하다. 거기다 ‘탈코’한 여성 청년이라면? 짧은 숏컷 머리 탓인지 선거 운동을 하면서 “청년은 청년인 것 같은데 남자야? 여자야?”라는 질문을 종종 듣는다. 이가현 예비후보는 “정치가 남자의 영역이라고 여겨져 왔으니까 더욱더 후보자의 성별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무례한 질문에도 이제 적당히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는 그는 국회에 가도 ‘탈코’는 계속되냐는 질문에 밝은 표정으로 “그럼요!”라고 답했다. “좀 더 다양한 여성 정치인들의 모습이 국회에 필요하잖아요.”


이가현 예비후보는 2017년 삭발 이후, 서빙 알바 자리를 거절당한 경험을 기고했다. ildaro.com/8013


“정치의 ‘코르셋’을 걷어버리자”라는 이가현 예비후보의 슬로건은 그의 활동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이가현의 역사와 맥락이 담겨 있는 말이다. 하지만 대중들에겐 다소 생소한 말이기도 할 것이다.


“어떤 슬로건을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캠프 구성원들과 함께 후보 이미지와 의제를 종합해서 안을 여러 개 만들었고 투표로 결정했어요. 물론 코르셋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를 잘 모르는 분들도 있을 수 있고, 거기에 대한 염려도 있었죠. 하지만 ‘타깃을 명확하게 정하자, 여성 특히 청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로 하자’고 의견이 모아졌어요. 탈코 운동이 쉽게 끝날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또 끝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탈코르셋 한 정치인’이 나온다면 그 운동에 대해 더 알릴 수 있고, 다른 여성 정치인들에게도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면 ‘정치의 코르셋’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이가현 예비후보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코르셋이라는 건 여성에 대한 억압을 의미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정치의 코르셋을 걷어버리자는 건, 첫째 여성들이 정치에 진입하기 어려운 현실(코르셋)을 걷어버리자, 둘째 정치인들이 여성의 억압(코르셋)을 외면하고 있는 현실을 걷어내자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탈코르셋’ 운동, 이제는 제도화되어야죠!


얼마 전 뮤지컬을 보러 갔을 때, 코로나19로 건강과 안전을 위해 마스크를 꼭 착용해 달라는 안내를 반복적으로 하는 직원의 모습을 보고 의아했다. 여성 직원이었는데, 누가 봐도 불편해보이는 구두를 신고 세미정장 치마와 자켓을 입고서 ‘건강과 안전’을 이야기하는 모습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국가 위기 상황이라고 할 만큼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강조하면서도, 여성들이 불필요한 꾸밈 노동으로 인해 겪는 일상적인 건강권 침해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의되지 않는 현실을 보는 듯했다. 이제는 정치가 나서야 하지 않을까?


2016년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진행했던 ‘천하제일 겨털대회’ 모습. 오른쪽이 이가현 예비후보다. (출처: 이가현 예비후보 선거캠프)


이가현 예비후보는 여성에게 강요되는 꾸밈 노동으로 ‘브래지어 착용’, ‘제모’, ‘화장’ 등의 문제를 짚는다.


“여성들이 청소년기 때부터 착용하게 되는 브래지어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죠. 남성들은 하지 않는 브래지어, 어떤 기능이 있을까요? 유두를 가려 준다? 가슴을 받쳐서 편하게 해 준다? 많은 여성들이 편하지 않다고 느낄 거예요. 여름엔 땀이 차고 소화불량을 일으키기도 하고 혈액순환에도 문제가 생기죠. 그럼에도 브래지어가 가슴 모양을 ‘예쁘게’ 만든다며, 또 젖꼭지를 가려서 ‘조신한 몸가짐’을 보여야 한다며 필수로 권해지죠. 건강을 해치는데도 말이에요.”


“제모도 마찬가지예요. 누가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닌데, 여성들은 어느 순간부터 겨드랑이털, 다리털, 인중 털, 사타구니 털 등을 제모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잖아요. 사실 털은 몸에 필요해서 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관리 안 한 여자’, ‘남자 같은 여자’라는 조롱을 듣지 않기 위해서 제모를 하게 되죠.”


화장의 경우 더 심각하다. 미디어, 특히 유튜브 등의 영향으로 화장을 하는 연령대는 점점 낮아지고 있고, 그에 맞춰 어린이 화장품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직장에서는 “화장은 예의이고, 화장하지 않으면 전문성이 없는 사람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피부가 상하거나 눈병에 걸리거나 여러 질병을 앓는데도 여전히 화장을 강요받는 여성 노동자들이 많다.


이가현 예비후보는 “여성에게 꾸미기를 강요하는 학교나 직장의 외모 규정을 없애는 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여성들은 직장 내에서 자주 ‘꽃’이라고 불리며 커피 심부름이나 술자리 시중까지 강요받아 왔어요. 여성들로 하여금 ‘꽃’이 되기를 강요하는 규정들을 철폐해야 합니다.”


이가현 예비후보 유튜브 정책 소개 영상 중. “[동대문갑 이가현] 정책소개 4탄, 코르셋 교복이 왠말이냐


이와 관련하여 “2016년 영화관 여성 알바 노동자들에게 화장과 빨간색 립스틱을 바를 것을 강요하던 외모 규정에 문제를 제기해, 결국 해당 규정을 없앤 승리의 경험”을 자랑스럽게 밝혔다. “이제 이러한 문제 제기를 전국 단위로 넓혀서 남녀고용평등법에 포함시키거나, 포괄적 차별금지법으로 만드는 등의 제도적 확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는 개개인의 실천으로 탈코르셋 운동이 이어졌다면, 이제 제도적 변화에도 힘을 실어야 할 때”라는 얘기다. 그건 “동대문 회기가 만든 페미니스트”인 이가현이 할 수 있는 일이고 말이다.


남자들의 ‘경쟁정치’ 아닌 페미니스트들의 ‘연대정치’


여성들이 노동 현장에서 겪는 성차별적인 꾸밈 노동에 대한 문제 의식과 제도 마련에 대한 고민은 분명 지역구에 ‘젊음의 거리를 조성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는 ‘아저씨’ 국회의원들과는 구별되는 지점이다.


그렇기에 이가현 예비후보는 무소속 출마를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 거대 양당 소속 정치인들이 일을 제대로 못 하고 있어서 무당층 비율이 높잖아요. 그래서 거리에서도 ‘무소속으로 잘 나왔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정당이라는 프레임 없이 오롯이 제가 가진 의제를 알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또한 “같이 선거 운동을 한 사람들이 선거가 끝나고 뿔뿔이 흩어지거나 갈라서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게 목표”라는 말도 덧붙였다. “당도, 돈도 없이 신념만으로 선거를 치른 거니까요. 사람들에게, 특히 많은 여성에게 ‘정치를 하려면 정당과 돈이 있어야 한다’는 편견을 깨주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학생으로 보이는 여성이 ‘국회의원 출마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물어보시더라고요. 당신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이가현 예비후보는 “이번에 정말 정치판이 새로운 세대들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페미니스트 정치인으로서의 포부를 밝혔다.


“기존 중장년층 남성 정치인들이 보여주는 ‘경쟁정치’가 아니라 이제 ‘연대정치’를 해야죠. 그리고 그건 페미니스트들이 할 수 있는 거고요.”  (박주연 기자)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연대의 정치’를 이야기한 이가현 예비후보는 다른 정당의 페미니스트 후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일들을 모색 중이다. 왼쪽부터 민중당 손솔 비례대표 후보, 무소속 이가현 서울 동대문갑 예비후보, 녹색당 성지수 비례대표 예비후보, 정의당 정혜민 비례대표 예비후보. (출처: 이가현 예비후보 선거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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