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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건 정말 ‘콘돔’인가요?
EVE 보고서와 콘돔 전시회로 본 섹스하는 청소년 이야기
“청소년에게 부적합한 검색 결과를 제외하였습니다. 연령 확인 후 전체 결과를 보실 수 있습니다.”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서 ‘청소년’과 ‘콘돔’을 함께 검색하면 뜨는 알림 글이다.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연령도 만 18세로 낮아졌건만, 청소년의 콘돔에 대한 정보 접근은 부적절한 것으로 취급되고 있다. 과연 콘돔은 청소년에게 위험하거나 부적합한 것일까?
소셜 벤쳐 EVE에서 진행한 <2019 청소년 성(性)문조사> 보고서 표지 및 목차
소셜 벤쳐 EVE에서 최근 발표한 <2019 청소년 성(性)문조사>(2019 Teen Sex Survey)에 따르면, 10세에서 19세 청소년 1천348명 중 절반 이상인 54.7%가 ‘섹스를 해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절반 이상의 경험이라면 ‘섹스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는 지금보다 훨씬 더 가시화될 필요가 있다.
마침 1월 30일부터 2월 2일까지 서울 갤러리 빈치에서 <콘돔 전시회 - 힐난도 수치도 자랑도 아닌>(자색고구미,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공동주최)가 열리고 있다. 청소년들이 주체적으로 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로, 참여작가 다수가 십대다. 그동안 들리지 않았던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담아냈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EVE의 보고서 내용과 콘돔 전시회에 담긴 메시지를 함께 정리해 봤다.
위험한 건 콘돔이 아니라 ‘안전하지 않은 섹스’
① 장소의 부재
콘돔에 대한 접근조차 ‘부적합’한 것으로 취급되는 청소년들이 섹스할 장소를 찾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특히 ‘안전한 곳’을 찾는 일은 더욱 그렇다.
소셜 벤쳐 EVE의 <2019 청소년 성(性)문조사> 결과, 성관계 경험이 있다고 답한 청소년들이 어디에서 했는지 장소로 꼽은 건 집(53.3%)이 가장 많았지만, 룸카페, DVD룸, 공중화장실, 비상구 등도 언급되고 있다. “본인이 주로 섹스를 하는 장소가 불편하다고 느낀 적이 있냐”는 물음에 64%가 “그렇다”고 답했다.
1월 30일~2월 2일 서울 갤러리 빈치에서 열리는 <콘돔 전시회 - 힐난도 수치도 자랑도 아닌>(자색고구미,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주최) 전시 작품 중.
“바닥은 정말 더러웠어. 손으로 살짝 스치기만 해도 새카만 먼지가 묻는데 그 바닥에 앉아 섹스를 했어.”
<콘돔 전시회 - 힐난도 수치도 자랑도 아닌>에서 전시된 작품에서도 섹스 장소에 대한 경험을 토로한 글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② 섹스 이후 불안
청결하지 않거나, 안전하지 않은 장소에서 섹스를 한 경험은 곧 불안으로 연결된다. 또 임신에 대한 불안도 크다. 성관계를 맺은 청소년 중 82%가 성관계를 맺은 후 불안감을 느꼈고, 그중 3.9%는 일상생활이 불가할 정도로 불안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산부인과/비뇨기과에 찾아간 비율이 32.9%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진료 경험이 있는 청소년들은 병원에 가기 부담스러운 원인으로 “값비싼 의료비”(30.6%)를 꼽았는데, 경제적 능력이 없는 청소년들이 산부인과/비뇨기과 진료를 받기 위해 비청소년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유추해볼 수 있다.
또, 성관계 후 질환 등이 의심되는 경우 의료기관을 방문해 검진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성교육을 접하지 못했다고도 유추해볼 수 있다.
<콘돔 전시회 - 힐난도 수치도 자랑도 아닌>(자색고구미,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주최) 콘돔을 이용한 작품
③ 콘돔 사용에 대한 장벽
십대에게 적절한 성교육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건, 피임 방법에서도 드러난다. 성관계를 맺은 청소년 중 73.4%가 콘돔을 사용한다고 했다. 그리고 콘돔 이외의 피임 방법으로 질외사정(39.2%)을 꼽았다. 질외사정은 제대로 된 피임 방법이라고 할 수 없음에도 말이다.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느낌이 저하되어서’(35.2%)가 가장 높았다.
한편으론 ‘가격이 비싸 구입하기 부담스러워서’, ‘주변 사람들에게 섹스한다는 사실이 알려질까 봐’, ‘나이 때문에 구매를 거절당해서’ 등이 언급되었다. 청소년의 콘돔 사용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낮은 접근성 문제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이런 결과를 통해 다시 한번 알 수 있는 점은, 성관계를 맺는 청소년들을 위험하게 만드는 건 우리 사회가 콘돔과 섹스에 대한 정보와 접근을 제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이들이 ‘안전하지 않은 섹스’를 하게 된다는 점이다.
다양하게 드러나고 있는 청소년의 성 정체성(들)
EVE 보고서와 콘돔 전시회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성별 이분법과 이성애 중심주의를 벗어나 있는 청소년들의 모습이다.
<2019 청소년 성(性)문조사>에 응답한 청소년 중 48.2%가 여성, 45.4%가 남성, 3.6%가 인터섹스, 1.5%가 ‘고민 중’, 그리고 1.3%가 ‘해당없음’으로 자신의 성별 정체성을 밝히고 있다. 또한 75.4%가 이성애자, 12%가 양성애자, 3.9%가 범성애자, 3.6%가 동성애자 3.4%가 ‘고민 중’, 1.1%가 무성애자, 그리고 0.7%가 ‘해당없음’으로 자신의 성적지향을 밝혔다.
<콘돔 전시회 - 힐난도 수치도 자랑도 아닌> 전시 작품에서도 퀴어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존재한다.
하지만 청소년들이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스스로에 대해 탐구하며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을 거치는 동안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으며, 특히 성관계와 관련된 정보는 더욱 제한적이라는 점도 드러났다.
퀴어 청소년들도 비퀴어(이성애자) 청소년들과 마찬가지로 인터넷에서 ‘피임 관련 정보’, ‘섹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정보 등을 검색한다. 이와 관련해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냐는 질문에 42.9%만이 ‘그렇다’고 답했는데, 이는 비퀴어(이성애자) 청소년들의 64.3%보다 낮은 수치다.
청소년들의 성 관련 정보에 대한 접근성은 애초에 제약이 많은데 ‘퀴어’라는 필터가 추가됨과 동시에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성교육이 어떻게 퀴어 청소년들을 배제하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할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힐난도 자랑도 수치도 아닌”
콘돔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드러내고자 한 청소년들의 외침이 가득한 공간, <콘돔 전시회 - 힐난도 수치도 자랑도 아닌>를 공동 주최한 자색고구미 팀의 이름은 ‘자주적인 섹슈얼리티를 고민하고 구상하는 나(Me)’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들은 콘돔 전시회를 열게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가 콘돔에-섹슈얼리티에, 섹스에, 페미니즘에, 자위에-포르노가 만든 성적 통념을 덧씌우고 있지 않은지. 곧 성(性)이 자극적이고 문란하며 야하다고만 생각하고 있지 않은지 의문을 가지고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기존의 ‘성인 남성 집단’ 위주로 생산된 성적 담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운 언어와 욕망을 탐색하고자 여성/퀴어/청소년을 중심으로 구성”된 이들이 콘돔 전시회를 통해 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문제는 단지 콘돔이 아니’라는 것이다.
<콘돔 전시회 - 힐난도 수치도 자랑도 아닌> 전시 작품 중 스크랩북
“나에게 있어서 성에 대한 담론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콘돔 전시회 작품 스크랩북 중에서)는 말은 청소년이 아닌 이들에게도 낯선 얘기가 아닐 것이다. 전시회를 둘러보며 정말 무엇이 누군가를 위험하게 하고 있는 건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청소년의 성(性)을 포르노로 소비하면서 정작 당사자인 청소년의 성(性)을 배제하고 드러내지 못하도록 하는 문화에 대한 저항, 자신의 섹스 경험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들, 그리고 전시를 만들어 가면서 구성원들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질문한 자료로 채워진 <콘돔 전시회>에서 ‘힐난도 자랑도 수치도 아닌’ 자신의 섹슈얼리티에 마주하려는 존재들의 역동적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박주연 기자)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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