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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해가 발생하면 사회의 불평등이 더 크게 드러난다

성차별과 재난 문제에 대해 제언하는 의사 아오키 마사미



2018년 8월 2일, 충격적인 도쿄의과대학 입시에서의 성차별(여성 수험생의 점수를 일괄 감점한 사태)이 보도되었다. 일본여의사회는 즉시 항의 성명을 냈고, 이사인 아오키 마사미(青木正美) 씨는 다음날 항의집회 현장으로 달려갔다. 후에 일본의 다른 대학 의대의 성차별도 밝혀졌다.


아오키 마사미 씨(1958년생)는 도쿄 긴자에서 통증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아오키클리닉’ 원장이다. 의사로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오랜 기간 ‘재해 복구 지원’ 등 다양한 사회 활동을 해오고 있다.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


마취과 의사이며 일본여의사회 이사인 아오키 마사미 씨. (촬영: 오치아이 유리코)


130년간 의학계 성차별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릴 적엔 의사가 많은 집안에서 자라서 막연하게 자신도 의사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웃의 장어음식점 요리사가 장어를 솜씨 좋게 해체하는 것이 신나 보였고,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과학 시간의 개구리 해부도 매우 좋아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해 오른팔을 크게 다쳤다.


“엄마는 일주일 후 팔을 절단하기까지 굉장히 고통스러워했죠. 하지만 누구도 그 극심한 고통을 없애주지 못했고, 의사인 아빠도 어쩔 줄 몰라 할 뿐이었어요. 저는 통증을 가라앉혀줄 수 있는 마취과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른팔을 잃은 어머니는 상실감을 떨치고 일어나더니, 운전면허를 따고 한 손으로 요리든 뭐든 척척 해냈다.


“엄마는 기술자와 함께 의수도 개량했어요. 그런 부모님의 약함과 강함은 저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리고, 아오키 마사미 씨는 정말로 마취과 의사가 되었다. 의사가 된 지 5년째, 아버지의 병환을 계기로 고향인 도쿄 츠키지로 돌아와 아버지 병원에서 일하게 되었다. 얼마 있다가 고향 선배가 일본여의사회에 끌어들였다.


“선배들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첫 여성 의사인 오기노 긴코(荻野吟子) 씨 등은 엄청난 각오로 의사가 되었지만 주위의 비난도 심했다고. 작년 의대 성차별 사건을 듣고, 이 사회가 130년간 변하지 않았구나 싶어서 정말로 화가 났습니다.”


인생 설계에 재해가 일어났을 때의 계획을 넣어라


1995년 1월, 한신·아와지 대지진이 일어났다. 텔레비전에서 좋아하는 고베 거리의 참상을 보고 고통스러웠다. 의사 모집 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고베로 향했다. 가는 길에 방송국 사람들과 만나서, 차를 얻어 타는 대신 밀착취재를 허락했다. 일주일 후, 의료자원봉사를 하는 자신의 모습이 텔레비전에 나왔다.


“저는 그 화면을 보지 않았지만, 2주 정도 지나 집에 돌아왔더니 환자들이 후원금을 들고 와주셨어요.”


그 후, 지진 재해 관련 강연과 원고 집필 의뢰가 왔다. 아오키 씨가 쓴 재해복구와 방재 등에 관한 논문이 간사이가쿠인대학 교수 눈에 포착되어 재해복구제도연구소 연구원으로 초빙되었다. 이후 재해에 관한 조사를 거듭하며 강연도 진행했다.


“한신 아와지 대지진으로 인생이 바뀌었어요. 의료자원봉사에서 처음 만난 것이 강간 피해자 여성이었죠. 충격이었습니다. 거리의 피해도 정말 심각했죠. 이때부터 재해 문제가 저의 라이프워크(lifework, 필생의 사업)가 되었습니다.”


강연에서는 나라 시대부터 일본의 재해와 정치가 얽힌 역사를 재미있게 이야기해준다. “전국시대 무장들은 질투가 심하고 더러운 남성사회에 물들어 있어 제가 진짜 싫어하지만, 그중 다테 마사무네(伊達 政宗)는 재해의 역사를 조사해 높은 곳에 성을 지었습니다. 그거 하나는 대단합니다!”


아오키 씨는 만나는 사람마다 “인생 설계에 재해가 일어났을 때의 플랜을 넣어라”, “물은 3주분 비축해둬라”하고 말한다. “오버하는 의사로 보이겠지만, 3.11 동일본 대지진이 있고 원전 사고가 일어났을 때, 환자들이 ‘제일 먼저 선생님 얼굴이 떠올랐어요’라고 말하더라고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하야카와 유키오 군마대학 교수가 작성한 방사능 감염 지도 5차 정정판. 

(2011년 12월 9일 기준) ⓒ출처: kipuka.blog70.fc2.com/blog-entry-445.html


3.11 대지진 이후에 아오키 씨는 적극적으로 피해자를 지원하며 갑상선암에 걸린 아이들을 돕는 ‘3.11 갑상선암 어린이기금’의 고문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재해로 인해 부유층과 빈곤층 주택지의 피해 격차와, 복구를 할 수 있는 사람과 할 수 없는 사람을 봐왔습니다. 재해는 지진 외에도 태풍이나 호우도 있죠. 간신히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은 재해가 일어나면 자기 힘으로 복구하기 어렵습니다.”


재해에 의해 그때까지 누적된 사회의 문제점이 보다 또렷하게 드러난다는 것.


재해 많은 나라에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정치’


“난카이(南海) 트로프 지진이 일어나면, 핵발전 사고와 태평양 측 일대 쓰나미로 파멸적인 피해를 입는 도시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요. 리니어 신칸센(2037년 완공 예정으로 일본 JR이 추진하고 있는 도쿄-오사카 간 자기부상열차 개통 사업) 같은 건 당치도 않습니다. 터널 공사나 채굴로 지진을 유발할지도 모르는데…”


원전 사고 책임을 아무도 지지 않고 원전 가동을 중단하지 않는 일본.


“파멸할 때까지 멈추지 않겠죠, 이 나라는. 최악의 상황을 직시하지 않는 것이 국민성일까요? 재해가 많은 나라는 재해가 일어날 때마다 가난해집니다. 백 년 앞을 내다보고 정책을 세워야죠!”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 후, 정부와 전문가 집단의 말을 믿지 못하게 된 여성들이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직접 방사선량을 측정하고, 집회를 열고, 글을 써서 정보를 공유했다. ⓒ마마레보


올가을 태풍에도 일본 각지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만약 현 아베 정권이 추진하는 개헌으로 긴급사태 조항이 신설된다면, 주권은 권력자에게 이행되고 우리는 버려질 것이라고 아오키 씨는 경고한다.


“현 정권에서 민주주의의 불이 꺼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먼리브’(Women Liberation, 일본에서 1960년대 말~1970년대 초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여성해방운동)의 선배들로부터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힘이 필요하다고, 진저리날 정도로 많이 들었습니다. 여성 중에는 위험에 대비하거나, 타자에 대한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이 많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의사결정의 장에 여성이 들어가는 일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 <일다>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구리하라 준코 기자가 작성하고, 고주영 님이 번역하였습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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