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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성범죄 해결을 위해 “각국이 새 형법 만들고 있다”

한국 미국 영국 호주 활동가들 <디지털 성범죄 대응 국제 컨퍼런스>



하루가 멀다 하고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의 소식과 고통의 울부짖음이 들려온다. 사건이 반복되어 발생하고 있지만, 여전히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미비한 상태. 게다가 여전히 많은 사람이 범죄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어 피해자들의 고통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대책 마련이 절실한 시기에 미국, 영국, 호주의 관련 연구자 및 활동가들과 함께 피해실태를 진단하고 대응방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11월 15일 이화여자대학교 국제교육관 LG컨벤션홀에서 <2019 디지털 성범죄 대응 국제 컨퍼런스>(여성가족부, 한국여성인권진흥원,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주최)가 열렸다.


2019 디지털 성범죄 대응 국제 컨퍼런스 현장. 11월 15일 이화여대 국제교육관. (촬영: 일다 박주연 기자)


‘이미지 기반 성폭력’ 피해자는 다수가 여성, 소외계층


“디지털 성범죄 체계적 피해지원 방안 및 국제협력”을 주제로 한 이번 컨퍼런스에서 영국 더럼 대학의 클레어 맥글린(Clare McGlynn) 교수는 먼저 ‘이미지 기반 성폭력’의 정의에 대해 설명했다.


“누드 또는 성적 이미지에 대한 모든 형태의 비동의 유포 및 그러한 이미지 생성, 협박과 이미지 조작 포함”, “성폭행 이미지와 녹화물”, “몸캠 피싱”, “주로 딥페이크 또는 페이크 포르노, 포토샵으로 불리는 조작된 이미지 및 영상물”이 모두 해당된다.


맥글린 교수는 “이미지 기반 성폭력은 폭력적 행위의 연속으로 봐야”한다고 말하며, “폭력과 이미지 기반 성폭력을 분리할 수 없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또 “많은 경우 피해자들이 다양한 형태의 폭력을 경험함으로, 피해자 관점으로 폭력을 이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수의 연구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범죄의 피해자 상당수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이미지 기반 성폭력 범죄가 젠더화되어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며, 맥글린 교수는 “특히 소수자나 소외계층인 피해자가 많다는 점에서 상호교차적 이해가 필수”라고 언급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는 대부분 구타나 신체적 폭력, 직접적 폭력이 동반되지 않기 때문에 ‘가벼운’ 범죄라고 여기는 이들도 있지만, 이 범죄의 무서운 점은 “피해자조차 피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파악되지 않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피해 사실을 모르는 게 낫지 않냐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찍힐지 모른다, 그리고 그 사진/영상을 누군가 볼 수 있다’는 공포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사람을 움츠리게 만들 수 있다.


맥글린 교수는 “연구 결과보다 실제 피해 범위가 훨씬 넓다”며 파악되지 않은 여성들의 피해가 많다는 점을 강조했고, “범죄 전과 후의 삶이 확연히 달라질 정도로 피해의 영향력이 크다”고 말했다. 연구를 통해 만난 피해생존자들이 “세상이 무너졌다”, “사는 게 지옥이었다”, “끝이 없는 고통이었다” 등의 이야기를 쏟아낼 만큼 ‘이미지 기반 성폭력’은 결코 별 것 아닌 일로 치부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디지털 성범죄 동기는 ‘성적 만족감’ 때문만 아냐…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범죄의 형태는 계속 변화하고 다양해지고 있지만, 법과 제도는 거기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맥글린 교수는 형사법이 제대로 만들어지고 작동될 경우, 다음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당 행위에 대해 명확한 비판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범죄) 억제 기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명백하게 유해 행위를 처벌할 수 있다.

-일부 피해자에게 정의가 실현되고 보상이 이뤄졌다는 인식이 전달된다.

-교육적, 예방적 조치를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


“세계 각국이 새로운 형사법을 채택하고 있다”고 설명한 맥글린 교수는 “그럼에도 여전히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가장 큰 문제는 “다수의 형사법이 성적 이미지의 비동의 유포만 다룬다”는 점이다. 또 “이미지가 어떻게 생성되었는지에 따라(셀카의 경우 보호 정도가 약함) 처벌이 다르다”는 점도 짚었다.


“성적 만족감이 범행 동기인 경우에 처벌을 강화하는 법률”이 갖는 치명적 오류도 지적했다.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불법 촬영 등의 관음 범죄가 성적 만족감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성적 만족감은 유일한 또는 주된 범죄 동기가 아니며, 사실 그 동기는 얼마 안 된다. 통제, 권력, 학대, 특권의식, 남성들의 유대감 등 다양한 범죄 동기가 존재한다.”


그리고 “폭력의 형태 또는 수단이기 때문에 성범죄로 간주되는 것이지, (가해자의) 동기에 따라서 성범죄로 간주되어선 안 된다”는 점을 경고했다.


미국에선 현재 ‘유해 이미지의 악용 및 유포 방지’(Stopping Harmful Image Exploitation and Limiting Distribution Act of 2019) 법, 즉 쉴드(SHIELD)법이라고 불리는 법안을 초당적으로 발의하고 표결을 기다리고 있다. 세계 온라인 폭력 피해자를 지원하고 기술적, 사회적, 법적 혁신을 지지하는 미국 비영리단체 CCRI(Cyber Civil Rights Initiative) 아시아 이튼 연구팀장은 쉴드법에 대해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해를 끼치고자 하는 의도가 없었더라고 범죄가 적용된다”는 점을 강점으로 꼽았다.


디지털 성범죄가 법으로만 해결되는 건 아니다. 맥글린 교수는 법의 처벌에만 매달릴 경우에 빠질 수 있는 함정도 경고했다. “우간다의 경우처럼 성적 표현을 하는 여성을 처벌하기 위해 음란물 규제법이 악용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형벌 포퓰리즘에 빠져 소수자나 소외계층 집단 및 개인이 법 집행의 표적이 되거나 감금되는 상황도 유의해야 한다.”


맥글린 교수는 “형사법은 (문제 해결의) 첫 번째 단계일 뿐이라 생각해야 한다”며 “민법 마련 및 피해자 보상에 대한 논의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온라인 기반 성범죄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법 제정만큼이나 중요한 건 교육이다. 영국 ‘리벤지 포르노 긴급전화’(Revenge Porn Helpline) 소피 몰티머 활동가는 “피해생존자들이 경찰에 신고해도 ‘애초에 그런 사진을 찍지 말았어야죠’ 따위의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괴롭히는 말을 듣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로 인해 “전체 피해자 중 1/3이 사건에 대한 수사 진행을 포기한다”고 한다.


몰티머 활동가는 “경찰관 97%가 사적인 이미지 유포행위에 대해 교육을 받은 적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경찰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영국 ‘리벤지 포르노 긴급전화’(Revenge Porn Helpline)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교육 자료 중 하나. 사적인 이미지 유포 협박이나, 유포가 되었을 시 대응해야 하는 과정을 안내한다. 


영국에서 ‘리벤지 포르노’(최근엔 이 용어에 대해 피해자가 ‘복수’ 당할만한 일을 했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는 등의 지적이 제기되어, 대신 디지털 성착취, 성범죄 영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추세임)에 대한 처벌 논의가 뜨거워진 사건이 있었다.


연인 관계일 때부터 여성을 감시하고 친구들과 격리시키던 전 남자친구가 헤어진 뒤에도 여성을 스토킹하고 사적인 이미지를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다가 2016년, 결국 여성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리벤지 포르노’ 협박을 범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 사건의 경우 가해 남성은 군인이었는데, 희생자의 가족들은 희생자가 생전에 신고를 하거나 도움을 요청했던 것에 대해 무심했던 경찰과 군 당국에 대해 비판의 소리를 높였다. 경찰이나 군에서 제대로 조사하고 대응했더라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처벌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범죄가 일어나지 않게 막기 위한 예방책도 구상해야 한다. 몰티머 활동가는 대학생 대상 교육도 언급했다. 온라인에서의 생활이 삶의 전반적인 부분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세대들을 교육하는 건 중요한 임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젊은 세대에게 디지털 성범죄 관련 법에 대한 지식을 알려주고, 법을 위반할 경우 어떤 결과가 도래하는지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리벤지 포르노 긴급전화에서는 “스토킹이 무엇인지 말하기”, “타인의 이미지 공유하지 말기”, “성착취/몸캠피싱이 뭔가요”, “평판에 대해 얘기해보기” 등의 자료를 만들어 배부하는 활동도 하고 있다. 


호주의 eSafety 커미셔너(eSafety Commissionar)도 교육에 힘쓰고 있다. eSafety 커미셔너의 온라인 사이트에 들어가면 ‘교육자, 어린이(준비 중), 청소년, 모부, 여성, 노인’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있고 그에 맞춘 다양한 정보와 가이드 라인을 제공하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생존자들이 자신이 겪은 피해를 신고하고 상담 및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창구일 뿐만 아니라, 이러한 피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논의할 수 있도록 자료를 제공한다.


호주 eSafety 커미셔너 홈페이지 ‘청소년’ 카테고리에 들어가면 키워드를 선택할 수 있고 그에 따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사진은 ‘누드 보내기’를 클릭했을 때 나오는 정보들. 


국경이 없는 범죄, 해결도 국제 연대와 공조가 중요


디지털 성범죄에 관해 한국, 미국, 영국, 호주의 학자와 활동가들이 모여 컨퍼런스를 연 건, 단지 현황을 공유하고자 함이 아니었다. 디지털 성범죄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지구 정반대 편에 있는 일이 가능할 정도로 범죄 범위에 경계가 없기 때문에 세계적인 공조와 연대가 필수다.


미국에서 통과시키고자 하는 쉴드법에선 “재판지와 치외법권 항목에 피고가 거주하는 지역, 사진/영상에 묘사된 당사자가 거주하는 지역 또는 당사자의 사적인 이미지 자료가 유포되었거나 입수 가능한 지역에서 법 항목에 따라 기소할 수 있다.” 또 “피고 또는 사진/영상에 묘사된 당사자가 미국 시민이나 영주권자라면 연방 사법권이 역외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한국에서도 디지털 성범죄 문제 해결에 나선 단체와 활동가들이 이와 같은 법을 제정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호주의 eSafety 커미셔너 경우에도 “피해생존자들이 요청한 이미지/영상을 삭제할 때 호스팅 서버가 호주 밖인 경우들이 있어서 공조한다. 또 예를 들어 가해자가 호주에 있고 피해자가 한국에 있다면, 그에 대한 지원도 가능하다.”


컨퍼런스에서 법의 역할을 강조했던 맥글린 교수도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선 정책입안자, 운동가, 페미니스트, 피해생존자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고, 특히 피해생존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말하며 “공동투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박주연 기자)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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