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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새지평

몸을 억압하는 내면의 벽과 세상의 벽 넘기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9. 11. 20. 08:30

억압의 벽들을 넘어 ‘회복하는 몸’의 이야기, 월:담

2019 페미니스트 ACTion! ⑳움직임교육연구소 변화의월담 (리조, 유닐)


※ 혐오와 차별을 멈추라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온라인에서 결집되어 거리에서도 울려퍼지는 시대, 지금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는 새로운 페미니스트들의 액션을 기록합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월담 인텐시브: 몸으로 배우는 삶의 기술> 교육 현장. 서로 몸이 연결된 상태로 나무 징검다리를 건너는 참가자들 (출처: 변화의월담)


보호받고 싶어서 쌓은 ‘담’이 스스로를 억압할 때


우리는 모두 나만의 담을 쌓는다. 우리 안의 연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쌓은 담이다.


인간은 포유류 중에서 가장 발달이 덜 된 상태로 태어나 오랜 시간 양육과 돌봄을 필요로 하는 매우 취약한 존재다. 돌봄 받기 위해 인간은 본능적으로 타인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모습만 드러내고 그러지 못할 것 같은 모습들을 내면 깊이 숨긴다. 스스로 생존하고 보호하기 위해 만든 ‘담’들은 외려 자신의 본래 자아를 억압하고, 솔직한 자기 자신으로 세상과 연결되는 것을 어렵게 한다.


변화의월담(이하 ‘월담’)은 그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월담에서는 단순히 생존 혹은 연명을 넘어 풍요롭고 생기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우리가 기대고 보호받고 싶어 쌓은 벽들을 스스로 딛고 올라 넘는 경험과 지혜를 나누는 ‘움직임 교육’(embodied movement education)을 연구하고 실행한다.


사람이 살아있는 생명 자체로 자유롭고 존엄하게 살지 못하는 현실에서 무엇이 우리 존재를 부정하고 위협하는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어떤 담을 쌓아왔는지, 자신 안팎에 존재하는 다양한 억압을 몸과 움직임으로 마주하고 넘어선다.


몸과 몸이 만나 하는 대화형 움직임 ‘바디-바디’. 2018년 12월, 충남 홍성 홍동마을에서 교육 참가자들이 서로 손을 깍지 낀 상태로 손가락, 손목부터 팔꿈치, 어깨, 가슴, 골반, 다리, 발끝까지 모든 관절을 협응하며 파트너와 함께 움직이고 있다. 참가자 양양은 “춤을 추듯 부드럽게 내 몸의 흐름을 전하고 상대 몸의 흐름에 따뜻하게 응답하는 것은 각자의 시간을 살아내고 있는 소우주와 소우주가 만나는 경이로움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출처: Studio H 혜정)


‘관계의 벽’을 넘어보기


먼저 우리가 극심하게 겪고 있는 ‘관계에 대한 벽’을 넘어본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필요로 하는 가장 근본적인 커뮤니케이션으로서 ‘접촉’을 이해하고 회복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지로 판단되고, 원치 않는 욕망의 대상이 되고, 특정 목적을 위해 쓰이고 버려질 것에 대한 깊은 상처와 두려움을 가지고 산다. 월담 교육에서는 그 두려움을 직면하는 방법으로 사람 존재 그 자체로 서로를 대하는 ‘접촉’을 배우고 경험한다. 이때 접촉은 학습된 경직과 불편함을 완화시키고, 자기 자신과 타인, 관계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


사람과 사람 간의 섬세하고도 강렬한 접촉으로서의 레슬링을 경험한다. 레슬링(wrestling)은 ‘씨름하다’(wrestle)라는 뜻을 가졌는데, 본질적으로 이 팽팽한 밀고 당김의 역학이 발생하려면 먼저 두 주체가 접촉하고, 맞닿은 몸을 통해 서로를 읽어야 한다. 한쪽이 상대에 대한 감각 없이 일방적으로 힘을 가하고 파괴하려 한다면 레슬링에 대해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다. 레슬링이 탄생한 그리스에서 어린아이부터 국가대표 선수, 무용수까지 많은 사람을 가르쳐 온 할아버지 코치 디미트리로부터 배운 점이다.


온몸으로 상대와 만나려면 신뢰 쌓기부터 시작한다. 나의 한팔이 상대의 상체를 감싸고 나의 머리부터 어깨, 가슴이 상대와 맞닿으며 눈으로 보지 않고도 촉감으로 상대 몸과 움직임을 읽는다. 다른 손은 마찬가지로 나의 상체를 감싸고 있는 상대방의 팔뚝을 붙잡고 움직임을 컨트롤하려 한다. 이렇게 두 사람이 접촉하며 몸으로 만나고 몸으로 읽고 뜨겁고 팽팽한 에너지를 나누는 과정은 경직되어 있어 부러지기 쉬운 딱딱한 강함이 아닌, 탄력적이고 유연한 강함을 가르쳐 준다.


변화의월담이 2019년 참가한 유럽 움직임 교육 집중 워크샵에서 두 몸이 서로 만나 서로를 느끼며 레슬링 움직임을 탐구하는 모습. (출처)Fighting Monkey/Rootless Root


이 과정에는 사람에게 열고, 녹아들고, 무너져야 경험할 수 있는 놀라운 힘이 있다. 살아 움직이는 생명만이 나눌 수 있는 뜨겁고 진정성 있는 에너지가 있다. 그 힘과 에너지가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걸 처음 느낄 때는 절로 탄성이 나온다. 와,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나, 나의 에너지, 섬세하고도 강렬한 몸의 만남. 이 발견과 배움을 가능케 해 준 몸-파트너들에게는 신기한 동료애와 감사함, 존중하는 마음이 생긴다. 사람에 대한 벽을 뜨겁게 허물었을 때 경험할 수 있는 자기 자신과 인간관계가 있다.


몸을 억압하는 세상의 벽 넘기


몸을 억압하는 세상의 벽들을 넘어본다. 왜 나의 몸을 감싸는 옷과 신발은 내 몸을 압박하고 축소시키고 경직되게 하는지. 왜 내가 사는 ‘공간’과 유의미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부유하는 고립된 생활을 하게 되는지. 주변 환경을 자유롭게 활보하고 탐색하는 호기심과 모험심은 언제부터, 어떻게 사라졌는지. 왜 돈을 쓰지 않고는 마음 편히 머물며 영위할 수 있는 공간과 놀이, 관계를 찾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힘들어졌는지.


마음 놓고 내 몸으로 살 수 없게 하는 수많은 규범과 구조에 대해 구체적인 질문들을 던지고, 직접 몸으로 균열을 내는 움직임을 시도한다.


몸이 일상 지형, 사물과 맞닿으며 무게, 질감, 압박, 온도 등 몸에 미치는 여러 영향을 인지하고 반응하는 감각을 깨운다. ‘관리'라는 명목하에 사람을 감시하고 통제하며 소외시키는 환경 요소들을 새롭게 해석하여 정형화되지 않는 몸의 놀이와 탐색, 도전의 재료로 활용한다. 어린아이로 돌아간 것처럼 몸이 가는 대로 움직이고, 호기심과 신뢰, 살아있는 몸으로 주변 세상을 탐구할 수 있도록 충분히 시간과 공간을 열어준다.


일상 환경과 접촉하며 힘을 주고받는 지지 관계를 발견할 때, 몸은 비로소 두려움을 내려놓은 채 놀이하고, 성장하며, 잠재력을 펼쳐갈 수 있게 된다. 움직이는 세포들로 매 순간 변화하는 몸을 경험할 때, 나이, 젠더, 신체 특성들에 개별적 맥락 없이 부여되는 문화적 편견에 맞설 수 있는 힘이 생기고, 이미지를 넘어 역동적이고 입체적인 몸과 만나게 된다.


벽과 발이 맞닿으며 몸을 들어 올릴 수 있는 상호 지지의 원리를 배우는 월담 참가자. ‘월담’을 통해 자기 몸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타인, 환경과 맺을 수 있는 지지와 협력의 관계를 경험한다. (출처: Studio H 혜정)


“저는 삼십 대 끝자락이거든요. 삼십 대 안에 출산, 육아의 큰 과정에 세 번이나 있었어요. 지금 몸에 대한 큰 당혹스러움이 있어요. 옛날과 다르고, 막막하기도 하고 ‘예전처럼 돌아가기 위해 관리를 해야 하나?’ 싶기도 해요. 그런데 그러면 지금의 나를 미워하고 부정하게 되어요. 그러고 싶지 않아서, 지금의 나를 즐겁게 만나고 싶어서 월담을 하게 되었고, 너무 즐거웠어요. 몸과 감정이 굉장히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특히 두려움과 경직의 관계.


‘공간과의 관계’에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도 없었는데, 사실 이 공간과의 관계도 맺고 살았었구나 느꼈어요. 어떤 건물을 들어갈 때도 그 안에 있을 사람을 생각하면서 들어갔는데 사실 사람뿐만이 아니라 그 건물과도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구나 싶었어요.” -홍동 <월담: 내면과 세상의 벽을 넘는 움직임 이야기> 교육 소감


여성(성)을 벗어나기 위한 원피스 월담


내 몸에 더 솔직하기 위한 저항은 단지 취약한 개인의 외롭고 소모적인 투쟁에 그치기 쉽다. 그러나 다른 이들과 진실된 지지 속에서 단단한 연대로 연결된다면, 내 몸의 저항과 해방은 더 많은 우리들의 해방의 관계망 속에서 깊이가 더해지고 지속이 가능해진다. 개인의 저항을 우리들의 담대한 도전으로 실현시킨 실험 중 하나가 바로 ‘원피스 월담'이다.



원피스 입고 움직이는 월담의 공동창립자 리조: 25년 전(위)과 현재 모습(아래). (출처:변화의월담)


월담의 공동창립자 유닐은 어릴 때 하나 슉 입고 밖에 후다닥 나가 놀기 위해 원피스를 즐겨 입었다. 자유롭게 움직이고 노는 데에 최적화된 옷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자유롭게 뛰어놀던 ‘온전한 몸’이 ‘여성(의/스러운) 몸’이라는 강력한 프레임과 이미지로 판단되기 시작했다. 몸에 대한 수치심과 상시 검열, 조신함 따위의 특성들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또 끊임없이 요구되었고, 그것들을 내면화하면서 이 사회에서 살아남는 방식을 찾아가야만 했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성(성)’의 이미지에서 벗어나면 근본 없는 의문과 의심, 차별, 질타와 공격을 받기도 했고, 목소리 내는 것을 제지받기도, 고유한 존재 자체를 위협받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원피스도 자유로운 움직임과 실용성 같은 멋진 특성들을 잃고 ‘여성스러운 몸’의 이미지에 맞게, 그 이미지를 강화하는, 몸을 압박하고, 움직임을 제한하고,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으로 몸을 검열하게 하는 ‘코르셋’으로 변해버렸다.


월담을 시작하고 몸 공부를 하면서 그 예쁜 옷들이 몸을 아프게 한다는 것을 자각했다. 살 빼는 것이 목적인 운동을 하는, 고통을 인내하고 완벽한 상품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과 과정을 겪는 자신과 동료들의 모습이 안쓰러워졌다.


월담에서는 지금 자신의 몸을 부정하고 고통을 감내하는 움직임에서 스스로가 재밌고 신나면서도 개개인의 몸에 따라 고유한 움직임을 찾아가는 과정을 나누고 싶었다. 그 과정의 일환으로 동료들과 함께 “원피스 하나 슉 입고” 도심에서 파쿠르를 하는 ‘원피스 월담’ 교육을 꾸렸다.


원피스 월담 포스터 (출처) 변화의월담


“다른 사람을 보며 다른 몸을 기준점으로 내 몸을 질타하고 나를 게으르다 평가했다. 누군가보다 빠르게 달리지 못하는 나는 “달리기를 못해요”라고 말했고, 또 누군가보다 큰 나는 ‘살이 좀 쪘다’고 생각했다. 나의 두 다리는 나의 기억이 닿지도 않는 시점부터 달리고 있었고, 나의 몸은 내가 세 아이의 엄마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진정 ‘살아있는 몸’이었다.


학교에선 ‘안전’이 가장 중요했지만 정작 그곳에서 있는 내가 안전한 곳은 없었다. 내가 만났던 체육 선생님이 과연 우리의 몸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었을까 의문이 든다. 가슴에 적응되지 않는 채 달리는 게 어떤 기분인지, 생리대가 새진 않을까, 체육복에 피가 묻진 않을까 조마조마하며 몸을 움직이는 게 어떤 것인지. 그저 가리고 숨기며 나의 몸의 능력을 잃어가는 시간들로 채워진 학교의 시계. 몸의 소중함을 알지 못한 우리들은 쉽게 자신의 몸을 미워하고 다른 몸을 평가하고 혐오의 말을 쏟았는지도 모른다.” -월담 교육 참가자의 회고글 중


벽을 넘게 되면 만나게 되는 변화, ‘회복’


벽을 넘다 보면 사람을 살아있는 존재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는 나와 타인, 진심으로 동료라 부르고 싶은 이들을 만난다.


사람을 살아있는 존재로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뼈, 근육, 근막(fascia), 장기, 인대, 신경계, 호르몬계 등을 구성하는 수십, 수백 조의 세포들이 계속해서 움직이고 의사결정을 하며 서로 갈등하고 협력하는 매우 복잡한 생명체라는 것을 깨달아가는 끝없는 배움의 여정이 필연적이다.


몸을 단순히 이성의 뜻대로 따라와 줘야 하는 부속물이거나 보여지는 편협한 이미지의 총체로 취급하는 패러다임을 일상에서 끊임없이 인지하고, 감내하며, 변화시키려 하는 지난한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몸에 저지르는 가장 평범한 악행에 대한 치열한 저항이다.


결국 벽을 넘었을 때 만나게 되는 변화는 ‘회복’이다. 역경에 부딪힐 때마다 우리는 예상을 뛰어넘는 변화적응력과 소생력을 발휘하는 조력자이자, 삶의 맥락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경이로운 보고로서 몸을 만나게 된다.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입체적이고 신비로운 몸(의 구조, 원리, 작용들)을 만났을 때 탄성을 자아내는 놀라움, 참을 수 없는 호기심, 지지, 그리고 삶의 동력을 마주하게 된다.

 

2018년 12월 월담 교육 현장. 벤치 팔걸이에 정확히 착지하는 도약을 연습하며 서로 격려하는 참가자들. 출처: 변화의월담


우리는 모두 나만의 담을 쌓는다. 그러나 담을 넘어 사람과 세상을 향해 몸을 열 때 비로소 배움과 성장이 시작된다. 변화의 월담을 하는 과정은 결코 혼자가 아니어야 하기에, 변화의월담은 더 많은, 더 다양한 몸-동료를 찾아 나서는 교육을 계속해서 고민하고 실험할 것이다.


지난해 서울시 성평등활동지원센터에서 시작한 <월담: 자기 내면과 세상의 벽을 넘는 움직임 이야기> 시리즈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자신을 부정하고 억압해야 했던 다양한 맥락의 아픔을 지닌 몸들이 모여 놀라운 몸의 능력을 발견하고, 서로 참을 수 없는 호기심과 지지를 나눌 때 형언할 수 없는 따뜻한 에너지의 장이 만들어진다. 인간적인 삶의 온도를 나누는 겨울 월담 교육에 함께 할 동료들, 그 몸들과 만나며 겪게 될 상상 이상의 배움을 기다리고 또 기대한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움직임교육연구소 변화의월담 페이스북 페이지 https://facebook.com/wallda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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