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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부부’ 지원책에서 여성 건강권은 고려되고 있나?

인구위기 담론 속에서 ‘위기’에 처한 여성의 권리 찾기



난임은 이제 낯선 말이 아니다. 매년 난임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얘기가 들리고, 정부는 난임 부부에 대한 지원을 확대한다고 한다.


사실 난임은 여성의 재생산권과 관련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초저출산’ 시대라고 하는 국가위기 담론과 함께 등장해 그에 대한 ‘대응책’으로 거론되다 보니 때때로 의아하기도 하고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낙태죄’가 올해 겨우 헌법불합치 선고를 받았고 여전히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에 대한 낙인이 강한 사회에서, ‘낳지 않을 권리’를 얻기가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생각하면 더 그렇다.


이제, 국가의 인구위기 진단 속에서만 호출되고 있는 난임 여성의 ‘낳을 권리’에 대해서도 조금 더 면밀하게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난임시술 지원 예산 확대, 횟수 제한 완화, 소득 기준 완화, 연령제한 폐지, 한방치료 지원 등. 현재 정부의 난임 부부 지원정책을 둘러싸고, 한국여성민우회는 국가가 여성의 재생산권을 다루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진단하는 토론회 <난임에 대한 다른 상상 - 무엇이 위기인가?>를 열었다.


지난 10월 30일 열린 <난임에 대한 다른 상상 – 무엇이 위기인가?> 토론회 현장. 보건복지부 출산정책과 정우진 사무관, 국가생명윤리정책원 문한나 주임연구원, 서울대학교 여성연구소 최은영 객원연구원, 예은심리상담교육원 이경애 원장, 한국여성민우회 노새 활동가, 전남대학교 사회학과 김경례 강사, 한국여성민우회 김민문정 대표. (왼쪽부터)


지난 10월 30일 파고다어학원 종로타워 이벤트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사회를 맡은 김민문정 민우회 대표는 “이 논의가 난임 여성에 대한 편견이나 오해, 또 다른 낙인을 만드는 공간이 돼선 안 된다는 염려도 있었다”라고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정책에 대한 점검과 평가의 자리이며, 더이상 재생산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지 않고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분명히 하면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 없는 부부라는 ‘질병’은 누가 만들고 있는가?


국가가 인구 조절을 위해 지금껏 여성의 몸을 어떻게 이용해 왔는지에 대해서, ‘낙태죄’ 폐지 운동가들은 여러 번 이야기해왔다.(관련 기사: ‘인권이 아닌 인구’에 따라 임신중단 담론이 바뀌다 http://ildaro.com/8123)


난새 민우회 활동가는 국가 인구 정책 속에서 난임이 어떻게 등장하는지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난임 당사자들은 전부터 난임시술에 대한 국민건강보험 적용 등 국가의 지원을 요청해왔지만, 2005년 이전만 해도 ‘불임은 질병이 아니기 때문에 지원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거절했다. 하지만 2006년부터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난임 부부 지원 사업이 시작되었고, 이후 모자보건사업 전체 예산에서 점점 비중이 늘고 있다.”


게다가 정부는 “난임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며 불필요한 위기감을 조성”하는데, 사실 ‘난임’이라는 것의 정의도 모호하다.


“현재 ‘난임’의 정의는 ‘부부가 피임하지 않고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하여도 1년 이상(35세 이상이라면 6개월 이상) 임신이 안 되는 경우’인데 ‘정상적인 부부생활’의 의미도 알 수 없을뿐더러, 좀 과장을 보태면 ‘결혼한 지 1년이 지나도 아이가 없는 부부’가 난임 부부가 되는 식이다.” 이런 정의는 “아이가 없는 이성애 기혼 커플은 ‘문제가 있는’, ‘비정상적인’ 몸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암시하며 불안을 자극”한다.


난새 활동가는 “부부가 ‘자연상태’에서 매월 임신에 성공할 확률은 20~25%에 그친다는 발표도 있다”고 말하며, “일정 기간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을 그 자체로 ‘치료할 문제’(질병)라고 보긴 어렵지 않냐”고 반문했다. 이어 “난임의 질병화는 (임신을 시도하지만) 아직 임신이 되지 않은 여성들에게 ‘치료’를 통해 ‘문제해결’을 서두를 것을 압박”하기 때문에, “여성들로 하여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료 전문가 및 병원의 주도하에 자신의 몸과 건강을 맡길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 낸다”고 비판했다.


2005년 ‘황우석 사태’ 때 드러난 바 있는 “난자 채취 시 사용된 ‘과배란유도제’의 부작용과 후유증 위험을 지적했음에도, 여전히 그 기술이 ‘난임 치료’를 위해 이용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난새 활동가는 “난임 시술 이후 겪을 수 있는 여러 문제들이 의사나 의료기관에 의해 제대로 당사자에게 고지되거나 공유되지 않고, 난임 부부 커뮤니티에서나 이야기”되고 있다며, 정부가 여성의 건강권에 대해 회피하고 있는 부분을 드러냈다.


 한국여성민우회가 주최한 <난임에 대한 다른 상상 – 무엇이 위기인가?> 토론회 홍보 웹자보.


여성의 건강권은 보장되고 있는가


“난임, 보조 생식기술의 문제는 단지 정책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성, 모성권, 재생산권을 둘러싼 사회구조적, 문화적 문제”라고 설명한 김경례 전남대학교 사회학과 강사도 난임 여성의 건강권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생물학적 모성에 대한 압박, 혈연주의적 ‘정상 가족’의 기준, 주변인들의 시선 등. 사회·문화적 배경 속에서 난임 여성들은 출산을 선택한다. 그리고 상업화된 의료 현장에서 상당한 본인 부담금을 지출하고, 심각한 신체적 후유증을 겪고, 직장도 그만두는 등 사회적 고통을 겪는다. 여성들은 이러한 고통을 몰라서가 아니라 직접 겪어 알면서도, 사회·문화적 구조에 영향을 받았다 하더라도 결국 출산을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필요한 건 이러한 과정 속에서 여성의 건강과 권리를 침해하지 않기 위한 보완책을 마련하는 일이다.”


김경례 강사는 “국가가 난임부부 지원정책을 통해 건강보험 지원 등 지원 범위를 확대하고 있지만, 모든 시술이나 약제가 건강보험에 포함되는 게 아니며, 어떤 약이나 주사 등을 쓸 지는 전적으로 의사(의료진)에게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예전엔 여성의 몸에서 몇 개의 난자가 채취되는지에 대한 정보도 제공하지 않았다. ‘치료’에 대한 전반적 통제권이 여성에게 없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올해 10월부턴 사실혼 부부까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지원(건강보험 적용)횟수 증가, 지원항목 확대, 본인 부담율 축소 등의 ‘혜택’이 늘어나고 있고, 다태아 임신 예방 차원에서 이식할 최대 배아 수를 규제하는 가이드 라인도 만들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채취 난자 수 제한은 없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김 강사는 “임신, 출산 성공률을 높이기 위한 과배란 유도, 많은 수의 난자 채취는 여성의 건강권 차원에서 유해하다고 알려져 있다”며, “의료진의 재량을 감안하더라도 과배란제 등 시술에 이용되는 약제에 대한 가이드라인 표준화가 필요”하라도 주장했다. 그뿐 아니라 “난임 진단, 시술 방법의 선택, 시술 과정에서 난임부부의 선택지 확대와 통제권 확보를 위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가 안내하는 ‘난임부부 시술비 지원’ 사업 설명에는 ‘행복한 가정 영위 및 저출산 극복’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다.


난임 치료…‘시작’만 부추길 뿐 ‘탈출구’가 없다


‘저출산’을 타개하는 방식으로 난임부부 지원정책이 만들어지다 보니 “(난임 시술) 과정에서 마땅한 탈출구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노새 활동가는 “국가, 언론, 의료, 사회, 가족 전체가 난임부부가 하루빨리 난임시술을 받아 원하는 아이를 얻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응원’하고 ‘지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불확실한 기술과 고통의 과정 중에는 ‘어느 시점에 이 과정을 그만두는 게 합리적인 선택인지’에 대한 안내가 없다”고 꼬집었다.


시작만 부추길 뿐 ‘멈춤’이나 ‘끝’에 대한 논의가 없다 보니, 난임시술 과정 중에 무리하는 여성도 당연히 생긴다. 그러나 ‘실패’했다는 낙인이 부담스러워 그만둘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노새 활동가는 이런 걸 대비해서 “비난 없이, 실패라는 낙인 없이 시술을 그만둘 수 있는 조건들, 예를 들어 시술 전 상담이나 시술 중 상담이 전체 과정에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10년 가까이 난임부부를 상담했다고 밝힌 이경애 예은심리상담교육원 원장은 “(국가에서 난임 및 우울증 상담센터 위탁 운영을 지원하는 등 심리상담 서비스도 확대하고 있지만) 심리상담의 목적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며 이렇게 제언했다.


“만약 난임 여성들의 ‘스트레스를 낮추고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 심리상담의 목표라 한다면, 그건 여성들의 재생산을 강화하기 위한 접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난임 여성들의 여성주의적 의식 강화에 대한 상담이 된다면, 그건 여성의 주체적 선택권에 대한 지지가 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지금 진행되고 있는 심리상담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 생각해 필요가 있다.”


보조생식술 규제, 난임 가이드북 제공하는 영국 사례


과학의 발전이라고만 치부되는 ‘보조생식술’과 여성의 건강권과의 관계를 더 세밀하게 살펴보고, ‘여성의 건강권’을 보호할 방법에 대한 논의와 연구가 더 확대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영국 정부의 별도 독립적 기구인 HFEA에서 제공하는 가이드라인 ‘Getting Started’ (출처: https://www.hfea.gov.uk)


문한나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주임연구원은 “가장 먼저 체외수정 시술을 통해 아이를 출산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에 걸맞게, 1990년부터 관련 특별법을 마련한 영국” 사례를 소개했다.


“이 법엔 HFEA라는 별도의 독립적 기구를 설립하여 보조생식술에 대한 치료, 저장, 연구 등의 면허를 발급하고 규제하도록 한다. 또한 시설, 인력, 장비에 대한 기준 및 배아 관리를 위한 세부 지침 등을 제공하는 것뿐 아니라 관련 학회 등과 협력하여 임상 가이드라인과 환자 가이드북을 마련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실제 제공되는 환자 가이드북에는 먼저 진료 대상자의 생활습관에 대한 상담과 조언을 진행한 후, 이것이 효과가 없을 경우에만 ‘난임 진단’을 시작한다. 약물적/수술적 치료로 난임 원인에 대한 치료를 선행하며, 이 모든 것이 효과가 없을 경우에만 ‘체외수정’ 등의 시술에 접근하도록 하여 환자의 건강권을 보장한다. 즉, 충분한 고려와 정보 없이 환자와 의료진이 시술에 접근하는 걸 막고 있다.”


토론회에서 제기된 지적과 논의에 대해, 보건복지부 출산정책과에서 나온 정우진 사무관은 “그동안 여성의 건강권 및 선택권을 보장하는 일이 상대적으로 정책 우선순위 뒤에 있었다는 지적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최근 직접적 지원 방식 외에 난임 상담센터를 개설하는 등 간접적 지원제도를 만드는 노력을 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당사자가 난임시술에 대한 충분한 정보와 고민 속에 결정하도록 하는 가이드 마련 등 국가 차원에서 검증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해 보겠다”고 밝혔다.


영국의 HFEA(인간 수정과 태생학 관리소) 홈페이지에선 ‘사용자’(나)를 이성 커플로만 한정하지 않고 싱글여성, 동성 커플, 38세 이상 여성 등으로 분류하여 정보를 제공하는 세심함을 보이고 있다.


<난임에 대한 다른 상상> 토론회는 난임이 저출산 담론에 이용되고 있다는 지적과, 여성의 건강권을 보호하는 제도를 마련하라는 목소리를 내면서, 왜 ‘난임 이슈’에 여성주의적 개입이 필요한지 보여줬다. 낙태죄 폐지 이후 앞으로 더 심도 깊어질 재생산권 논의도 박차가 가해지길 기대한다. (박주연 기자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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