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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페미니스트들이 만드는 반짝이는 무도회에 오세요

제한이 없는 ‘볼’을 꿈꾸는 하우스오브허벌 인터뷰


인터뷰에 등장하는 드랙, 볼, 하우스 문화에 대한 이해를 위해 <‘꿈꾸던 나, 꿈꾸던 가족이 현실이 되는 공간, ‘볼’> 기사를 먼저 읽으면 도움이 됩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하우스오브허벌, 대체 이들은 어디서 왔을까


하우스오브허벌(House of Herbal)을 처음 본 건,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수도권 십대 퀴어여성들의 역사를 되짚은 댄앤나우(관련 기사: ‘신공’을 아시나요? 그 시절은 정말 흑역사일까) 행사장에서다. 홍보물에서 이름을 접했을 때 ‘뭐 하는 사람(들)이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름만으론 감이 잡히지 않았다. 사실 ‘하우스’는 TV 드라마 시리즈 <포즈>(Pose, 1980년대 후반 미국 뉴욕의 볼 문화를 다룬 이야기로 2018년부터 방영 중)를 볼 때마다 수없이 들었던 말인데, 하우스오브허벌이라는 이름을 봤을 땐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그들의 공연을 보는 도중에 머리가 ‘댕~’하고 울렸다. 지금 이 하우스가 그 ‘하우스’야? 한국에도 하우스가 있었다니! 놀랐지만 그 감정에 머무를 시간도 없이 공연에 빠져들어 갔다. 여성국극(모든 배역을 여자가 맡아서 공연하는 한국의 창극으로 1950년대 큰 인기를 얻었으나 현재는 그 명맥이 겨우 이어지고 있음)을 떠올리게 하는 공연은 마음을 들뜨게 했다. 하우스 멤버들이 함께하는 단체 공연을 볼 땐 ‘이거 진짠가?’ 싶은 생각과 함께 소름이 돋았다.


그렇게 황홀한 감각에 휩싸인 게 처음은 아니다. 지난 6월에 열린 한국퀴어영화제 특별전 ‘믹스앤매치(Mix&Match) -여성국극 & 보깅댄스’에서 상영된 정은영 작가의 <정동의 막>과 <유예극장>에 이어 드랙킹 퍼포머 아장맨의 공연을 봤을 때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하우스오브허벌의 공연에는 드랙 뿐만 아니라 ‘하우스’가 가진 카리스마와 그 존재감이 주는 또 다른 강렬함이 있었다.


도대체 이들은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나타나게 된 걸까? 마치 신화 속 기원을 찾아가듯이 하우스오브허벌의 이야기를 쫓아가기로 했다.


드랙을 접하고, 그 문화에 빠져들다


8일 저녁, 하우스오브허벌(이하 ‘허벌’) 멤버인 금개, 뽀뽀, 아키나를 만났다. 묻고 싶은 이야기들이 산더미였지만, 허벌의 기원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멤버들이 처음 어떻게 드랙(Drag)을 접하게 되었는지 알아야 했다.


금개: <루폴의 드랙 레이스>(Rupaul’s Drag Race, 드랙퀸 경연 리얼리티 쇼로 미국에서 2009년부터 방영 중, 이하 ‘루폴’)을 본 게 계기였어요. 원래 서바이벌 쇼를 좋아하긴 했는데 드랙은 루폴을 통해서 처음 봤죠. 드랙은 퀴어성 자체가 전면에 드러나 있는데, 팝컬쳐(Popular culture)와 연결되어 쇼로 만들어져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8월 31일 열린 <허볼>(Her Ball) 중에서 웨딩 카테고리에 출전한 퍼포머 뽀뽀와 지반. (감나무 촬영, 하우스오브허벌 제공)


사실 전 어렸을 때부터 디바(diva)가 되고 싶었어요. 화려한 무대와 퍼포먼스를 동경했거든요. 하지만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한 후론 ‘그런 걸 좋아해도 되나?’ 싶은 자기 검열이 생겼어요. 그런 와중에 드랙퀸 공연을 보면서 그들의 과장된 화려함에서 해방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드랙에 관심을 가지게 되니까 드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찾고 싶더라고요. 덕질도 같이 해야 재미있잖아요?(웃음) 그래서 2016년에 ‘서울드랙’(현재는 ‘드랙갱즈’ @DragGangz 계정으로 운영 중)이라는 트위터 계정을 시작하게 되었죠.


아키나: 전 사실 파워 ‘디나이얼’(denial, 자신이 퀴어임을 부정하는 단계 혹은 사람을 칭하는 말)이었어요.(웃음) 제가 이성애자 여성이라고 굳게 믿었거든요. 그래서 퀴어를 엄청 타자화하면서 봤는데, 그러면서 또 퀴어 관련 콘텐츠를 집착하면서 봤다는 거예요. 여성의 신체와 반짝거리는 공연도 좋아했고요. 특히 벌레스크(Burlesque, 미국의 풍자적인 쇼 형식을 말하며 성적인 매력을 풍김)를 좋아해서 유투브로 엄청 찾아봤어요. 그러다가 드랙 공연도 보게 되고 계속 찾아다녔죠. 클럽에 가서 드랙퀸 공연 보면 너무 아름답고 환상적이어서 내가 퀴어문화에 퐁당 담겨진 느낌이 들곤 했어요.


뽀뽀: 전 미국 시카고에서 대학을 다녔는데요. 한번은 친구의 친구가 드랙 클럽에서 하는 드랙퀸 콘테스트에 출전한다 해서 응원하러 갈 일이 있었어요. 그게 2014년, 2015년 즈음이었죠. 사실 퀴어문화에 관심이 많진 않았는데 미술을 배우다 보니 주변에 퀴어들이 많았어요. 또 그때 퀴어가 핫한 주제였으니까 ‘퀴어를 존중해야겠다’ 정도?! 저도 ‘디나이얼’이 꽤 길었던지라, 난 그냥 시스젠더 이성애자고, 좋은 앨라이(ally, 퀴어 지지자)가 될 거라는 열망에 가득했었죠.(웃음)


드랙에선 젠더가 모호해지는 지점이 있고, 또 굉장히 과장되어 있기도 한데, 그런 게 탈(脫)인간적으로 보여 흥미로웠어요. 하지만 드랙에 빠져들진 않았고 친구가 할 때마다 보러 가는 정도였죠. 생각해 보면 그때 드랙 클럽에서 드랙킹(Drag-King, 보통 사회에서 지정한 성별이 여성인 퍼포머들이 ‘남성성’이나 ‘전형적 남성’을 패러디하거나 희화화함)은 행사 오프닝에서 인사나 하는 정도였고 콘테스트에는 끼워주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전 드랙은 남자들이 여장을 하는 문화라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2016년에 친구들이 루폴에 ‘김치’라는 한국계 드랙퀸(Drag-Queen)이 나왔는데 정말 잘한다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한국 사람도 드랙을 해?’라는 생각으로 놀라서 루폴을 보기 시작했는데 ‘김치’한테 빠져들었죠. 드랙은 연기도 잘해야 하고 춤도 잘 춰야 하니까 그런 끼를 타고난 사람이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김치는 춤도 못 추고 연기도 뛰어나진 않거든요. 하지만 자신만의 매력을 뽐냈고 그걸 인정받는 모습이 좋았어요. 그렇게 드랙 문화에 빠져들게 되었죠.


드랙 씬에서 느낀 불편과 소외…직접 ‘판을 벌여볼까’


각기 다른 이유지만,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드랙을 만났고 덕질을 시작한 세 사람. 하지만 드랙 씬에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불편한 지점들이 눈에 보였다. 주변부에 머무르고 있는 자신의 모습도.


금개: 알고 보니 한국에도 드랙 문화가 있었고 드랙에 관심 있는 사람도 점점 늘어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 드랙 씬의 퍼포머들이 ‘시스젠더 게이 남성’ 위주이다 보니, 제가 느끼게 되는 불편함 지점들이 있었죠.


학창 시절 수학여행 가면 가슴에 풍선 넣고 여장하는 남자애들 있었잖아요. 그런 식으로 ‘여성성에 대한 고민 없이 하는 거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고, 또 시스젠더 남성으로서 안전한 위치를 누리다가 드랙퀸을 엔터테인먼트로만 사용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처음엔 그냥 너무 새롭고 재미있고 화려하니까 좋았는데 그 문화에 가까이 다가가니까, 슬슬 불편한 지점들이 눈에 밟히는 거예요.


뽀뽀: 드랙이 보여 주는 ‘여성성’이라는 게, 여성성의 어떤 한 모습만 추구하는 경향도 있고요. 그들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게 현실의 여성들에겐 고통이 될 수 있는데, 그런 고민이 없는 경우도 있죠. 또 사회에서 강요하는 여성성을 희화화해야 하는데 그걸 잘못하고 실패해서 오히려 여성혐오가 되기도 하고. 시스젠더 남성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여성혐오가 그대로 나타날 때도 있어요.


금개: 같이 뭔가 하고 싶은데 막상 함께할수록 드는 괴리감 같은 게 있었고 제가 계속 주변화되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넌 시스젠더 여성이니까. 그냥 팬이고 소비자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받았던 것 같아요.


<허볼> 중 ‘일반’ 리얼니스 카테고리에 출전한 퍼포머 소다는 퀴어문화축제에서 음료를 판매하는 상인을 연기하며 탈(脫)퀴어적이라는 건 무엇인지 질문을 던졌다 (감나무 촬영, 하우스오브허벌 제공)


뽀뽀: 그러다 생각이 바뀐 게 ‘여성, 괴물’과의 협업이었어요. 당시 ‘여성, 괴물’(트위터 @monstrousfem)을 운영·기획하던 분을 팔로잉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드랙 하실 여성들 찾는다. 같이 공연하고 싶다’는 구인 글을 올리셨더라고요. 그때 금개랑 같이, 집에서 화장하고 좋아하는 노래 틀어놓고 립싱크 영상 찍던 ‘애기드랙인’들을 알아가던 중이었거든요. 그런데 애기드랙인 중엔 시스젠더 여성만 있는 건 아니어서 그래도 참가가 가능한지 문의해 봤더니 그동안 가시되지 못한 드랙에 관심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같이 공연을 만들어 보기로 하고, 데뷔하지 않은 애기드랙인들을 모으기 시작했죠.


금개: ‘여성, 괴물’과 서울드랙이랑 같이 한 게 2017년 할로윈 공연이었어요. ‘드랙 씬에서 내가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지만 이걸 감내하면서 주변인으로 있어야 되나 보다’라고 생각했을 때 마침 그 공연 기획을 할 기회가 주어진 거예요. 그게 저한테 페미니스트로서 운동의 분기점이었던 것 같아요. 정치적으로 어떤 입장을 취해야겠다는 방향을 잡았을 때였고요. 당시 생물학적 여성을 둘러싼 이야기도 나오기 시작하던 때라 ‘우리는 그런 경계를 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드랙이라는 건 상징적으로 그 경계를 지우는 작업이고, 페미니즘을 통해 그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정한 거죠.


‘볼’을 하고 싶어서 만든 ‘하우스’가 또다른 가족이 되다


‘페미가 무슨 드랙이냐’, ‘드랙은 여혐 아니냐’는 소리를 지겹도록 들었다는 세 사람. 초반엔 자신들이 하는 드랙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지만, 비난을 많이 받을 땐 지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비난에 대응하는 일에 시간을 쓰기보다 하고 싶은 일에 에너지를 쏟기로 했다.


그래서 꿈꾸던 ‘볼’, 퀴어들을 위한 무도회를 열기로 결심했다. 다양한 드랙 카테고리를 통해 참가자들이 진짜 나를 드러내기도 하고, 드러나지 못했던 나를 깨우며 관객과 참가자들이 에너지를 주고받는 볼을 열자고 결심하고 나니, 볼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하우스’가 필요했다.


 하우스오브허벌 멤버들이 함께 한 모습. (감나무 촬영, 하우스오브허벌 제공)


금개: 영화 <파리 이즈 버닝>(제니 리빙스턴 감독, 뉴욕에서 볼 문화를 만들어 낸 이들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1990)을 볼 때, 그 당시에 뉴욕에서 차별받던 소수자에게 감정 이입되더라고요. 세부적인 맥락은 다르긴 하지만 저도 한국에서 퀴어로 살면서 느끼는 게 있으니까요. 그들처럼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고, 무엇보다도 볼을 너무 열고 싶었어요.


근데 볼에선 하우스 별로 워킹하고 하우스 별로 경쟁하고 그런 문화가 있기 때문에 하우스가 중요하거든요. 보깅 씬에선 하우스가 있다고 하지만 퀴어 씬에선 아직 흔한 문화가 아니니까. 이 볼을 계기로 몇 개라도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났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가 볼을 여는 사람들인데 우리부터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니냐?’가 된 거죠. 그렇게 만들어진 게 ‘하우스오브허벌’이에요.


신기한 게, 말로 묶이면 실제로 더 끈끈해지는 그런 게 있잖아요. 이미 생활을 많이 공유하고 원 가족보다 훨씬 친하고 더 많은 걸 알고 있는 친구 사이였는데 ‘하우스’라는 이름으로 묶이면서 더 각별해진 것 같아요. 또 멤버들이 각자 퀴어로 살면서 혹은 이런저런 문제로 인해서 원래 이어져 있는 가족들과 어느 정도의 문제가 있었고. ‘내가 선택하는 가족’에 대한 로망이나 열망 같은 게 있었던 거에요. 저도 그렇고요.


아키나: 하우스를 만든 후에 멤버들이 생기고 마음의 지지를 얻어서 좋았지만, 한편으론 전 가족이 싫어서 가족을 탈출했는데 왜 또다시 가족을 만들려고 할까 의문이 있기도 했어요. 우리가 가족의 역할놀이 정도를 넘어서 ‘대안 공동체’로 나아가야 하기 위한 활동과 고민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또 어디까지 가족인가 싶은 고민도 있어요. 하우스 멤버의 애인은 가족인가, 아닌가 등. 내(內)집단이 생기는 건 외(外)집단이 생긴다는 것이기도 하니까 그에 대한 부담도 있죠.


-그런 탓인지 멤버들은 하우스오브허벌의 정확한 구성원을 규정하는 일도 조심스러워 했다.-


뽀뽀: 그걸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해요. 일단은 틀을 잡은 거니까, 전 어떻게 이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그에 대한 질문이 나오는 게 반가워요.


금개: 공동체를 만들고 유대감을 유지하는 건 엄청 힘이 들어가는 일이잖아요. 우리가 ‘낭만적으로 선택한 가족’이기도 하지만 “볼을 한다”는 분명한 목표가 없을 땐 이 공동체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 고민이긴 하죠. 하지만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어요. 분명한 건 함께 무언갈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는 거니까요.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린 서로 너무 사랑해서 만든 가족이라기보다 함께 미학을 공유하고 퀴어, 페미니스트로서 비거니즘을 함께 고민하는 비슷한 위치에 있는 가족인 것 같아요.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볼’을 만들기 위해


버킷리스트에 올려놓고 꿈꾸던 볼이 <허볼>(Her Ball)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8월 31일에 드디어 열렸다. 그 한 번의 행사를 위해 자신들을 ‘갈아 넣었다’고 하면서도 벌써 2회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고생했던 기억도 미화되었다며 웃는 그들을 계속 움직이게 하는 건 대체 뭘까? 그 답을 찾고 싶어 세 사람의 볼 경험을 들었다.


 8월 31일 열린 <허볼>(Her Ball) 중 보깅 댄서들의 무대 (감나무 촬영, 하우스오브허벌 제공)


금개: <허볼> 전에도 <드랙킹 콘테스트>를 열어본 일이 있으니까, 어느 정도의 관객이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관객층을 넓히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거든요. 볼에선 드랙도 하고 보깅도 하고 또 하우스가 있으니까. 보깅, 드랙, 퀴어 집단을 다 아우르고 싶었어요. 기존의 드랙 씬에서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것과 단절하기보다 함께 새로운 걸 만들어나가고 싶기도 했고요. <허볼>만이 할 수 있는 게 뭘지 고민했죠. 우리가 추구하는 볼 문화를 알리고, 그걸 사람들에게 안내하고 싶었거든요.


뽀뽀: 우리의 가치를 어떻게 전략적으로 전염시킬 수 있을까.(웃음) 고민을 많이 했죠. 이미 한국에 있는 볼(주로 보깅 씬에서 열렸음)과 불화하지 않으면서 그들도 끌어오고 싶었고요.


금개: 물론 새로운 걸 해야 한다는 부담과 불안도 있었어요. 우리 모두 볼이라는 건 해본 적도 없고 완벽히 준비된 것도 아니었고요.


뽀뽀: 볼을 열기로 결정하고 보니까, 막상 우리가 볼에 대해 아는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볼 스터디 모임을 열어서 볼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한국에선 어떤 볼이 있었는지 조사도 하고 보깅도 배우고. 어떤 카테고리가 있는지 찾아보기도 하고 그랬죠. 근데 카테고리 중에선 성별 이분법적인 것도 있고 외모 코르셋에 힘을 실어 주는 것도 있더라고요.


 <허볼> 행사 중 ‘바디 포지티브’ 카테고리에 출전한 퍼포머 시몬. (감나무 촬영, 하우스오브허벌 제공)


금개: 그런 부분을 어떻게 2019년을 살아가는 한국의 페미니스트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바꾸느냐 정말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어떤 몸이든 아름답다는 ‘바디 포지티브’ 카테고리도 진행했죠.


또 다른 고민은,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내향적인 퀴어들이 과연 얼마나 참가할까? 볼은 관객의 호응과 소통이 중요한데 관객들이 반응을 할까? 그런 거였죠. 그래서 볼 열기 전에, 볼이 뭔지 알리는 설명회도 하고 세 달 동안 워크샵도 5번이나!! 했어요. 워킹, 패션, 메이크업 한 번씩 그리고 보깅 연습하는 걸 두 번 했죠. 새로운 문화를 만든다는 사명감?!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요. 관객 참여가 굉장히 중요한 문화니까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하고 싶었죠.


아키나: 전 <허볼> 기획단은 아니었고 ‘바디 포지티브’ 카테고리에 출전했는데요, 첨엔 그냥 참여만 해야지 했는데, 막상 하니까 우승하고 싶어서 욕심내고. 우승 못 해서 얼마나 원통했는지 몰라요.(웃음)


금개: 당일 사회를 봤는데, 사회자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부담돼서 전날 울면서 명상하고 그랬는데, 행사 당일에 참가자들이 너무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콘테스트에 참여하는 거예요. 그동안 내가 타자화된다고 느꼈던 드랙 씬의 드랙퀸들이 <허볼>에 와서 진심으로 퍼포먼스를 하는 걸 본 순간 짜릿했어요. 내가 좋아하고 동경했던 퍼포머, 활동가, 친구들이 재미있었다, 고맙다고 말해줘서 너무 좋았어요. 관객들도 퀴어 씬에서 해방감을 느끼는 일이 별로 없었는데 이날은 주인공이 된 느낌이었다고, 소중한 경험이었다는 얘기를 해줬고요.


무엇보다도 제 꿈을 이뤘잖아요? 정말 오랫동안 원했던 건데, 꿈꾸던 대로 실현되었고 그걸 해냈다는 게 너무너무 좋았어요.


“볼은 열려 있어요”


<허볼>을 하면서 더 자신감이 생겼다는 멤버들은 당연히 더 많은 걸 꿈꾸고 있다. 얼마 전까지 텀블벅을 통해 <여성, 괴물 - Holy Freaks 드랙 퍼포머 인터뷰집> 발간을 위한 후원금을 모았고, 다가오는 12월 7일과 8일 저녁엔 여성국극을 접목한 <드랙킹 콘테스트>를 준비 중이다. 도대체 열정이 어디까지인가 싶은 그들의 꿈을 아주 조금만 엿들어 봤다.


금개: 솔직히 말하면, 사람들이 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볼 문화’가 어느 날 갑자기 대중문화가 되고 큰 인기를 얻어서 제가 브라운아이드걸스 뮤직비디오(최근 발매된 브아걸 ‘원더우먼’ 뮤비엔 드랙퀸들이 출연함)에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지만.(웃음) 그냥 좀 더 이 문화의 맥락을 알고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좋겠어요.


퀴어 페미니스트로서 어떤 사람들을 선배로 삼아야 하나 고민했을 때도 있거든요. 그나마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으니까 페미니스트 동료나 선배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요. 그래서 40-50대 페미니스트들과 함께 하는 볼은 어떨까 상상해 보고 있어요.


아키나: 언니들 대환영입니다.(웃음)


금개: 또 기존 드랙 씬은 주로 클럽에서 이뤄지다 보니 청소년들이 참가할 수 없었잖아요. 그래서 이번 <허볼>도 클럽이 아닌 곳에서 진행했는데, 볼을 통해서 드랙이 클럽 문화에만 머물지 않고 더 다양해졌으면 좋겠어요.


뽀뽀: 사실 볼이라는 건 재미있고 가볍거든요. 누구에게나 안전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니까 더 많은 분이 참여하고 즐기셨으면 좋겠어요. 모두의 참여를 기다립니다.(웃음)  (박주연 기자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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