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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새지평

수많은 역사와 생존이 담긴 ‘트라우마’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09. 4. 25. 09:56
마음의 고통에 대해서 많이들 이야기합니다. 심리적 어려움에 대한 지식이 전달되면서 누군가는 자신의 고통을 이해하게 되었을 테고, 누군가는 변화와 회복의 기회를 얻었을 것입니다. 만약 이곳 저곳 몸이 아픈데 왜 아픈지 알지 못한다면 통증 앞에서 참으로 무기력하게 되지요. 마찬가지로 내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특히나 혼란스럽게 느껴지는 마음의 고통은 더 깊어질 우려가 있습니다.
 
심리장애 '아는 것이 힘', 의미가 정확히 사용되어야

 

심리적 고통은 그것을 직면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치유의 길이 열린다 ⓒ일러스트 -오승원 작

예전에 교통사고로 심리적 후유증을 겪던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십 년 이상 여러 병원을 전전하면서 약을 먹었지만, 자기 삶이 왜 그리 변하게 되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울분에 휩싸여있었습니다. 심리적 후유증에 대해 설명을 드리자, 그 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흩어졌던 경험의 조각들을 천천히 꿰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은 심리적 고통이라는 영역에서 참 잘 어울립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스스로 예측하고 조절하고, 결국 수용해 나간다는 것은 심리 건강에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고통이 주목 받고 있다는 것은 참 중요하고 다행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심리치료를 받거나 정신과 치료를 받는 일은 더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고, 과거에 이질적이고 배타적으로 취급 받았던 심리장애의 영역은 더 친숙해졌고 가까워지면서 받아들여질 기회도 분명 커졌습니다. ‘인간’이 중심이 되는 관점으로 치료하고자 노력하는 일은 이미 당연할 정도입니다. ‘우울증’, ‘트라우마’, ‘정신분열’과 같은 용어도 그리 낯설지만은 않습니다.
 
그런데 종종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이런 단어들을 듣게 될 때가 있습니다. 널리 알려질수록 누군가는 도움을 얻겠지만, 인식은 그만큼 자라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장애의 개념을 탄생시켰던 초기의 목적이나 그 본질보다는 왠지 지적인 내음이 풍기는 멋드러진 단어만이 떠돈다는 불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트라우마’라는 말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맥락이 삭제된 ‘트라우마’, ‘정신분열’에 내재된 강렬한 고통이 생략된 ‘정신분열’을 대면할 때 말입니다.
 
‘트라우마’ 용어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이뤄낸 공든 탑 
 
‘트라우마’라는 말은 워낙 유명합니다. 개인의 신체적인 안녕과 안전한 세계에 대한 믿음을 파괴시켜 심각한 심리적 후유증을 유발하는 사건을 ‘트라우마’라고 부릅니다. 심리적인 영역에서 ‘트라우마’라는 말의 역사는 19세기 후반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트라우마는 고통을 겪어온 수많은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스스로 지켜온 말이다. 주디스 허먼의 저서 "Trauma and Recovery"

당시 유럽에서 치료자들이 일련의 증상을 경험하는 환자들의 말에 귀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증상 이면에 학대 받았던 어린 시절의 역사가 자리잡고 있다는 진실에 접근하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 비엔나의 부르주아 사회에서 어린아이 학대라는 끔찍한 현실을 인정하기는 어려웠던 지라, 진실은 가리워질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이라는 또 다른 처참한 비극 속에서 사람들이 유사한 증상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러나 또다시, 전쟁의 명분을 지켜내기 위하여 사람들의 고통은 기억에서 잊혀져 버렸다고 합니다. 이후 두 번째의 세계대전이라는 참혹함 속에서 똑같은 일이 반복되자, 병사들의 사기 증진을 목적으로 전쟁 트라우마에 대한 후유증 연구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베트남 전쟁 속에서 마침내 전쟁, 학대, 재해와 같은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하게 될 경우 여러 가지 후유증이 발생하며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불가피하고 응당 고통스럽다는 사실이 ‘인정 받게’ 되었습니다. 1980년대 드디어 그러한 심리적 휴유증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19세기 후반부터 1980년까지, 무려 100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트라우마’라는 말을 지켜냄으로써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최초의 단서를 붙잡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트라우마’라는 말이, 단지 말일 뿐만이 아니라 대단히 실제적이고 절박한 이유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이뤄낸 공든 탑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는 고통을 경험한 수많은 사람들의 증언을 주의 깊게 경청하는 오랜 노력과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세워진 개념입니다. 이는 고통을 경험한 수많은 사람들이 생존해 내기 위하여 스스로 지켜온 말입니다. 또한 훗날 같은 고통을 겪게 될 사람들을 위한 말이며, 이미 고통을 이겨온 수많은 사람들의 “왜?”라는 외침에 대한 최선의 대답이었던 것입니다.
 
심리장애 용어들이 남용되는 것을 우려하며
 
심리장애의 개념은 타인에게 인정 받지 못한 나를 정당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한 것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더 중요하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타인의 모습 안에 마땅한 이유와 저마다의 역사가 있음을 발견하고, 내가 절박했듯이 타인도 그러했음을 깨닫도록 하는 목적도 크다는 점을 알리고 싶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트라우마’의 역사를 이해하고, 그에 더하여 오늘날의 인정 받지 못한 ‘트라우마’를 발굴해내야 할 것입니다. 최근에는 신체적 안녕을 위협하는 사건뿐만 아니라 정서적 학대처럼 심리적 안녕을 위협하는 사건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유발한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또한 기술재해, 성매매, 배타적인 민족주의, 빈곤의 영역도 발굴해야 할 ‘트라우마’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고통은 ‘트라우마’이면서, 타인의 행동에 거부감이 들 때 우리는 그가 ‘’미쳤다”라고 합니다. 가끔은 지적인 말투로 ‘나 정신분열 된 것 같아’하면서 내 고통을 전달하려 하지만, 주변에 실제로 정신분열증을 앓는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는 그를 ‘싸이코’라고 밀쳐냅니다.

정신병원의 인권문제에 대해 논할 때에는 환자를 위한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환자를 만날 경우에는 이와는 다른 태도를 취하기도 합니다. 말과 행동의 괴리는 쉬이 일어납니다.
 
때로는 상대의 행동에 화가나니 미친놈이라고 욕하고 싶은 심정이 생길 법도 합니다. 그렇지만 더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그 말들을 활용할 수 있다면, 타인을 받아들이고 내가 수용 받을 기회가 더 확장될 수 있습니다. “미친놈”하고 휙 돌아서더라도 한 번쯤은 ‘그가 왜 그럴 수 밖에 없었을까’ 하는 염려 속에서, 결국 사람은 다 연결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소망을 품을 수 있지 않을까요. 
최현정일다는 어떤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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