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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을 겪어도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피해와 생계 사이>③ 보호받기는커녕 비난받는 소수자들 


※ 성희롱 성폭력 피해자의 ‘생계’와 ‘생존’을 키워드로 삼아 성폭력의 구조를 들여다보는 <피해와 생계 사이> 기사를 연재합니다. <피해와 생계 사이>는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성폭력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대안을 모색하는 연속집담회로, 5월부터 매달 새로운 주제로 총 5회 열립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해서 모든 피해자가 똑같이 지원받고 보호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판매 여성이 테이블 접대나 성매매 과정에서 경험하는 성폭력, 이주 여성이나 트랜스젠더가 경험하는 성폭력은 자살이나 살인 등 극단적 상황으로 이어지지 않는 한 사회적으로 가시화되지 않는다. 대상화하기는 쉬우나 보호할 필요가 없는 여성, 함부로 대해도 되는 존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주최하는 연속 집담회 <피해와 생계 사이> 그 세 번째 시간인 ‘성폭력, 말할 수 있을까?’는 “혐오와 낙인, 그리고 차별로 인해 드러나지조차 않는 성폭력을 어떻게 정의롭게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서 출발했다.


▲ 8월 8일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주최한 연속 집담회 [피해와 생계 사이] 세 번째 시간. “성폭력, 말할 수 있을까?” 논의가 진행 중인 현장. ©사진: 한국성폭력상담소


지난 8월 8일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안젤라홀에서 열린 이번 집담회에는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차차 활동가와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 최현진 활동가,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 리나 활동가가 패널로 나와 자신의 현장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유흥업소에서 성폭력은 ‘재수 없는 일’ 취급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차차 활동가는 “대검찰청 통계를 보면 신고된 성폭력 사건 중 7~8%가 유흥업소에서 발생”하고 “한국의 성산업 지형 안에서 집결지보다는 유흥업소에서 성매매가 많이 일어난다”고 말하며 “유흥업소 테이블 접대 과정에서부터 성적 침범이 빈번하다”고 전했다. 애초에 2차가 없는 업소인데도 2차를 강요한다거나, 그것을 거부하는 과정에서도 폭력과 성폭력이 일어나는 것.


성매매 과정에서도 성폭력은 발생한다. 구매자가 콘돔을 쓰지 않거나, 원치 않는 행위를 강요할 때 성판매 여성들은 이를 방어하기 어렵다. 구매자가 돈을 안 주면 그날의 수익을 날리게 되고, 트러블을 일으키면 업소에서 자신의 생존이 위협받기 때문이다.


“성판매 현장에서 이런 성폭력은 ‘재수 없는 일’, ‘진상’ 등으로 불리며 ‘관리해야 하는 일’로 일상화되어 있어요. 수위나 룰이 정해진 일이 아니다 보니까 미리 예측해서 행동하기도 어려워요.”(차차 활동가)


다른 방에서 수위를 올려 버리면 이쪽 방에서 손님이 그걸 요구했을 때 거절하기 어려워지기도 한다. “가족같이 잘 해드리겠다”는 말로 유인하며 와서 일하라던 업소 마담이나 실장도 이들을 보호해 주지 않을뿐더러, 매상을 올리기 위해 오히려 가해자들의 요구를 들어줄 것을 종용한다.


이렇듯 성판매 여성들은 자신의 일터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에 대해, 보호 장치 없이 그저 자구책으로 상황을 헤쳐나가고 있다. 차차 활동가는 “요즘에는 룸 안에서든 성매매가 이뤄지는 공간에서든 카메라 불법촬영 피해가 특히 많은데, 성판매 여성들이 그냥 당하지만은 않고 바로 신고를 한다든지 액션을 취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성판매 여성들에게 성폭력 가해를 하는 건 구매자뿐만이 아니다. 사채업자나 일수업자들이 여성들이 돈을 갚아야 하는 급박한 상황을 이용해서 성폭력을 가하거나, 성매매 업주나 실장, 웨이터 등이 여성에게 술을 먹이고 성추행을 하기도 한다. 끊임없는 외모 품평은 일상이다.


유흥업소 종사자가 성폭력 신고하면 “꽃뱀이네”


성판매 여성이 성폭력을 경찰에 신고하려고 할 때 가장 큰 장벽은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상 행위자 처벌에 관한 조항이다.(성매매처벌법 21조 1항은 성매매를 한 사람을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위계, 위력 등에 의해 성매매를 강요당한 경우 성매매 피해자로 규정하여 처벌하지 않으나, 인정의 범위가 좁으며 강제성을 입증하기도 어렵다.) 성폭력으로 신고를 하려면 여성은 본인이 피의자로 입건될 것을 각오해야 한다. 엄청난 위험을 감수해야만 신고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요인은 이들의 성폭력 사건이 제기됐을 때, 사건의 맥락은 오간 데 없고 ‘어떤 여성’이 문제 제기하는가에 초점이 맞춰지는 사회적 분위기다. 성판매 여성에 대한 혐오와 낙인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사회에서 여성들이 성폭력을 신고했을 때 “이런 일인 줄 모르고 했냐”, “꽃뱀 아니냐” 등의 말이 되돌아온다.


▲ 2017넌 4월 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동문 앞에서 “유명연예인 박OO 성폭력 사건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 및 무고죄의 올바른 판결을 촉구”하는 공동대책위원회의 기자회견과 퍼포먼스. ©사진: 한국성폭력상담소


실제로 2017년 유명연예인 박00에게 성폭력을 당한 성판매 여성이 고소를 하자 ‘유흥업소에서 일어난 게 어떻게 성폭행이냐 성매매지(…) 윤락녀들도 수치심 운운하네’, ‘합의하에 해놓고 돈 좀 더 뜯어보려고 성폭행 고소하면 남자 새 되는 거’라는 식의 댓글들이 수없이 달리기도 했다.


이주 여성 피해자에게 “너, 돈 벌러 왔잖아”


이주 여성의 경우, 성폭력에 대한 문제 제기가 ‘체류’ 문제와 직결된다는 점이 성폭력을 말하기 힘든 가장 큰 이유다.


최현진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 활동가는 “결혼이주여성의 경우, 잘 모르는 남자와 결혼한 상태에서 강간을 당하거나 변태적 성행위를 강요당한 후 큰 충격을 받고 한국에 온 지 하루 이틀 만에 집을 나오기도 한다”고 전한다.


“최근 한국에서 부부강간이 인정되는 추세라고 해도, 결혼이주여성 관련해서는 여전히 부부강간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현실이에요. 이주 여성이 집을 나오면 가해자나 가해자 가족들은 사기 결혼으로 신고를 해요. 이렇게 되면 이주 여성은 혼인 무효 판결을 받고 더이상 한국에 체류할 수 없게 됩니다.”


돈을 벌고자 한국에 온 이주 여성 노동자가 성폭력을 겪는 사례는 사업장의 사장이나 관리자가 가해자인 경우가 많은데, 이들 역시 성폭력 피해를 입더라도 신고하기 어렵다. 현행 고용허가제는 1년씩 체류가 연장되는 시스템인데 사장한테 밉보이면 연장을 안 해 줄 수도 있을뿐더러, 사장의 허락 없이는 이직조차 할 수 없다. 최현진 활동가는 “고용허가제는 체류부터 이동까지 모든 것을 다 관리받으며 지내는 사실상의 노예제도”라고 꼬집는다.


최근에는 태국에서 한국으로 이주 여성들이 유입되고 있다. 비자 없이 90일 동안 한국에서 체류가 가능한 시스템에서 이들은 90일이 지난 후에도 미등록 체류를 하면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태국에서는 고등학교 때까지 학교에서 마사지를 교육받을 정도로 건강을 위한 마사지가 흔한 나라다. 그러나 한국에서 마사지가 성매매와 결부되어 있다는 것을 모른 채 “한국 오면 큰돈 벌게 해 줄게”라는 브로커의 말만 믿고 취업 사기를 당해 한국에 오는 태국여성들이 많다. 일하다가 손님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으면 “돈 벌러 왔잖아, 네가 하는 일이 이거잖아”라는 답이 되돌아온다.


일부 남성들은 결혼을 빙자해서 이주여성에게 성폭력을 하기도 한다. 이들은 친절을 베푸는 척하면서 “나랑 애인 되면 너 한국에서 살게 해 줄게”라고 속삭인다. 이주 여성은 한국에서 살고자 하는 욕구가 크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이지만, 사실상 이들이 체류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유부남이 결혼을 빙자해서 유학생이나 이주 여성들을 만나면서 성폭력 가해를 하고 도망가 버리는 사례들도 있다.


최현진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 활동가는 피해를 신고한 이주 여성을 대하는 경찰의 태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가정폭력을 당해서 이혼하려는 이주 여성에게 조사관들이 ‘한국에서 체류하기 위해 일부러 폭력 조장하지 않았느냐’고 하고, 사업장에서 성폭력 피해를 당하고 비자 연장 문제 때문에 일을 구하려고 하면 ‘돈 버는 게 더 중요한 걸 보니 피해의 진정성이 의심된다’고 해요.”


이러한 공권력에 대한 불신과 더불어 판결에서 형량이 낮게 나오는 현실이나, 체류 기간 때문에 피해자가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없는 것 등도 이주 여성들이 성폭력 문제를 제기할 때 불안함을 가중시키는 요인 중 하나다.


▲ 지난 8일 한국성폭력상담소 주최로 열린 “성폭력, 말할 수 있을까?” 집담회 모습. ©사진: 한국성폭력상담소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겪는 성폭력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 리나 활동가는 “2015년 미국 트랜스젠더 조사(National Center for Transgender Equality가 진행한 미국 내 트랜스젠더에 대한 조사로 총 27,715명의 트랜스젠더가 조사에 응했다)에 따르면, ‘미국 내 트랜스젠더 50퍼센트 이상이 살아가면서 한 번 이상 성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고 보고했다. 더불어 리나 활동가는 “트랜스젠더 여성이 겪는 성폭력은, 여성이지만 동시에 여성이 아니기에 겪는 성폭력”이라고 밝혔다.


“트랜스젠더 여성의 경우, 여성에 대한 폭력도 일정 정도 포함하고 있지만 시스젠더(cisgender, 지정받은 성별과 자신이 정체화하고 있는 성별이 일치하는 사람) 여성이 아니기에 뭔가 이질적이고 대상화하거나 함부로 해도 되는 존재라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있어요.”


리나 활동가는 트랜스젠더 여성에 대해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 권력을 실컷 누리다가 그 자원을 바탕으로 코르셋을 조인 채 ’과잉된 여성성‘을 즐기며 살아간다’는 항간의 통념이 실제 트랜스젠더의 삶과는 굉장히 유리된 모습임을 지적했다.


더불어 “트랜스젠더 여성은 여성을 속이고 여성의 공간을 침범하는 잠재적인 가해자로 취급당하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상황으로 인해 이들은 성폭력에 있어서 매우 취약한 위치에 놓여있다”고 진단했다.


한편 트랜스젠더 남성이 겪는 성폭력은 일단 트랜스젠더 남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인식의 부재에서 출발한다.


“트랜스젠더 남성은 자신이 한때 여자였다는 것, 혹은 여자의 신체를 갖고 있다는 게 발각되었을 때 피해입는 경우가 많아요. 가해자들은 호기심을 갖고 ‘내가 너를 고쳐주겠다’는 식으로 접근해요.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신기하니까 한번 벗겨서 확인해봐야겠다’라는 식으로 가해를 한다던가요.”


이때 트랜스젠더 남성은 주위 사람들에게 외관상 남성으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에서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거나 지원을 요청하기 매우 어렵다. 특히 “트랜스젠더 남성이 성폭력을 경험했을 때,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공포가 크다”고 리나 활동가는 밝혔다. 임신을 했을 때 자신의 젠더 정체성이 드러날 것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의료적인 조치를 받기 힘들 뿐만 아니라 “임신이 자신을 더이상 남성이 아닌 것으로 만들게 되지 않을까”하는 공포가 이들을 사로잡는다는 것.


이렇듯 트랜스젠더들이 겪는 성폭력 피해가 트랜스젠더 혐오와 연관돼있는 상황에서, 트랜스젠더들이 성폭력 상담 지원체계나 수사체계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점도 성폭력을 발화하기 힘든 원인으로 작용한다. 리나 활동가는 “트랜스젠더 인권단체에 상담이 들어오면 (성폭력 상담)전문단체로 연결해 드리는데, 그러면 ‘거기에서 나도 상담해 줘?’라고 물어본다”고 말하면서  “트랜스젠더라서 거부당하거나 2차 피해를 입을 거라는 공포가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상담기관에서 트랜스젠더에게 ‘그래서 남자세요? 여자세요?’라고 묻기도 하고. 어떤 트랜스젠더는 ‘게이와 트랜스젠더가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야 한 적도 있었어요. 공적인 지원을 받기 때문에 아웃팅(본인의 동의 없이 성소수자의 정체성을 밝히는 행위)을 당할 수 있다는 공포도 존재합니다.”


‘어떤 피해자인가’를 따지는 낙인과 차별 없애야


이렇듯 소수자들이 겪고 있는 비가시화된 성폭력이 해결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들이 변화되어야 할까?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차차 활동가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지만, 성매매 과정에서 당한 성폭력으로 신고를 했을 때 일단 성폭력으로 수사를 하고 성매매에 대해서는 추후 수사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만 피의자로 입건될 것에 대한 두려움 없이 성판매 여성들이 성폭력에 대해 문제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성판매를 한다는 이유로 가장 기본적인 시민의 권리조차 박탈하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지적하며, “성판매 여성을 낙인 없이 한 명의 사람으로 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 최현진 활동가는 “이주 여성 특히 동남아시아에서 이주한 여성들을 가난한 나라 여성이라고 덮어놓고 무시하거나 거부감을 가지는 한국 사회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주민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한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신고 절차도 보다 간소화하고 이주 여성의 상황과 욕구를 섬세하게 파악할 수 있는 통역사와 통역을 수월하게 이용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것. “폭력 피해를 입은 이주민들이 일정 기간 안정적인 체류를 보장받을 수 있는 비자 신설도 필요하다”고 최현진 활동가는 덧붙였다.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 리나 활동가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법적, 의료적 지원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당사자들이 피해를 말하고 문을 두드리고 해결방법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남성 가해자-여성 피해자’라는 구도에서는 누락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폭력에 대해서 더 활발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해와 생계 사이’ 4차 집담회는 9월 19일 <성폭력과 싸우는 데 내가 들인 비용>을 주제로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안젤라홀에서 열릴 예정이다. 성폭력 피해자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 이야기하고, 그 시간에 대한 사회의 역할을 질문한다. (문의 02-338-2890, ksvrc@sisters.or.kr) (나랑 기록)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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