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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없고 집없고 가족없는 여성들의 ‘함께/살기’ 전략
2019 페미니스트 ACTion! ⑤비혼여성 함께/살기 반달
※ 혐오와 차별을 멈추라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온라인에서 결집되어 거리에서도 울려퍼지는 시대, 지금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는 새로운 페미니스트들의 액션을 기록합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비혼여성들이 모여 ‘어떻게 살지’를 고민하다
비혼여성 함께/살기 <반달>은 2018년 2월 2일, 공간을 소유하지 못한 청년들에게 돈을 받고 공간을 대여해주는 허술한 공유 공간에서 처음 모임을 가졌다. 막연하게 ‘비혼여성 공동체를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듣고 찾아온 열 명의 친구, 지인들이 모였다. 우리는 각자 비혼여성으로 살아가면서 처하게 되는 문제들에 대해 대화했고, 앞으로 이 모임에 어떠한 기대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1년이 넘어간 오늘까지 격주에 한 번 정기 모임과 수차례의 소모임을 가지면서 함께/살기를 이어가고 있다. 여전히 열 명 남짓의 모임이지만, 모임 구성원도, 모임의 정체성도 조금씩 바뀌었다. 하지만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은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어떻게 사느냐’라는 문제를 고민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 문제는 <반달>의 구성원들만이 고민하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어떻게 살지는 모든 사람들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문제니까. 하지만 ‘비혼여성’이 어떻게 살지를 고민하는 문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좀 더 복잡하다. 사회제도와 규범이 개인에게 마련해 준 삶의 방향에는 ‘결혼’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방향을 이탈한다는 것은, 결혼을 통해 가족제도에 진입함으로써 갖추어지는 경제적/사회적 기틀을 포기하고 삶의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혼자서.
우리에게 결핍된 것: ‘사회적 네트워크’(함께) ‘주거’(살기)
혼자 살아가는 우리들은 빈곤과 사회적 고립이라는 문제에 처해 있다. 먼저 주거 빈곤의 문제. 혼자 사는 모임원들의 지출 내역에서 가장 많은 비용을 차지하는 것은 주거비다. 그리고 이건 <반달> 구성원에게만 해당하는 문제는 아니다.
서울시에 거주하는 청년 여성 1인가구를 대상으로 한 연구(장진희 & 김연재, 2016) 결과에 따르면, 서울시 청년 여성 1인가구 중 59.5%는 월세를 살고 있다. 연구자들은 전・월세 보증금의 증가 등 높은 주거비 부담으로 인해 청년 빈곤과 주거 취약 계층에의 편입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 내 살 곳은 어디인가? 월급의 절반을 모아도, 돈 모이는 속도보다 주거비 상승 속도가 빨랐다.
그리고 사회적 고립 문제. 송제숙의 <혼자 살아가기: 비혼여성, 임대주택, 민주화 이후의 정동>(동녘, 2016)에서 언급된 바에 따르면, 비혼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기혼자를 중심으로 형성된 사회의 네트워크에서 배제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비혼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원가족을 비롯한 주변인들로 구성된 인적자원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데 있어서 필연적인 한계를 떠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한계가 다시 경제적 어려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다시 말해 주거와 사회적 네트워크는 비혼여성이 겪는 (사회적/경제적/대인관계적) ‘결핍’의 주요한 두 가지 축을 구성하고 있다.
비혼여성 함께/살기 <반달>이 주안점으로 두는 문제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회적 네트워크(함께)와 주거(살아가기)가 그것이다. 다시 말해, <반달>은 페미니즘이라는 지향을 공유하는 비혼 청년들이 모여 주거/생활공동체 혹은 그보다 느슨한 네트워크로서 ‘함께 살아가기’ 위한 것들을 고민하는 모임이다.
외롭지 않게, ‘함께’의 문제: 초롱의 이야기
나는 비혼여성 함께/살기 <반달>의 모임장을 맡고 있는 초롱이다. 글자를 읽을 줄 알게 된 즈음부터 여자를 좋아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다양한 사회운동에 기웃거렸고, 대학생 때에는 페미니즘 관련한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다. 흔하다면 흔하고, 드물다면 드문 궤적으로 살았다. 그러다 보니 함께 어울리던 사람들, 나를 둘러싼 환경들이 이 궤적에 맞추어져 갔다.
다시 말해, 끼리끼리 어울리게 된 것이다. 덕분에 큰 고민 없이, 앞으로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심을 할 수 있었다. 어울리는 친구들도 대부분 결혼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사람들을 끌어모아 작당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성격이라 ‘고립’에 대한 두려움을 크게 갖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대학교를 벗어나고 일을 하게 되면서 상황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점점 내가 편히 어울리던 사람들이 아닌, 나를 ‘특이한 사람’으로 여기는 집단 속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관계라는 것이 사람의 마음만으로는 굴러가지 않고, 삶의 배경, 익숙한 언어, 가치 지향 등의 다양한 조건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을 감안했을 때, 내가 ‘고립’에 대해 걱정하게 된 것은 무척 당연한 일이었다. 더불어, 대학원에서 대인관계에 대해 연구하면서 어떻게 하면 외롭게 살지 않을 수 있을까? 라는 문제를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외롭지 않은 삶이란, 잘 맞는 사람들과 오래오래 같이 부대끼고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외롭지 않은 삶을 위해서는 주거의 안정성과 경제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고만고만한 월급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비혼여성, 청년, 성소수자. 나와 내 친구들을 구성하는 그 어떤 것도 외롭지 않은 삶을 위한 안정성을 보장해주지 않았다. 나는 주거비용이 지금보다 줄어들고, 함께 살면서 안부를 신경 써주는 친구가 있다면 좀 더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거공동체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 무작정 친구들을 그러모아 <반달>의 첫 모임을 가진 것이다. <반달>의 초기 정체성은 ‘함께/살기’보다는 주거공동체를 위한 준비 모임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첫 모임을 가진 지 벌써 1년이 지나고, ‘공동 주거보다 넓은, 비혼여성들의 네트워크를 포함하는 모임이었으면 한다’는 구성원들의 소망에 따라 2018년 11월부터는 비혼여성 함께/살기 <반달>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외롭기 싫다’는 단순한 마음에서 시작한 모임이 내 삶의 꽤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당연히 고민도 늘었고, 이런저런 갈등도 생겨났다. 그럼에도 내가 모임에 기대하는 것은 여전히 단순하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같이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내가 <반달>에서 주거 안정이나, 제도적으로 보호받는 관계 등에 관심을 기울이는 까닭은 우리들이 오랫동안 함께 즐겁기 위해선 그러한 조건들이 필수적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비혼이고, 집 없고, 돈도 없고, 불안정한 우리들에게.
▲ 비혼여성 함께/살기 <반달>은 ‘외롭게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정상 바깥에서 ‘살기’의 문제: 경서의 이야기
나는 비혼여성 함께/살기 <반달>의 모임원 경서다. 처음 반달 모임에 참석했던 날을 기억한다. 돈 없고 말 많은 사람들이 모여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결혼만이 안정된 주거를 보장하는 이 세계에서, 혼인 계약과 거리가 먼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논의했다.
당시 나는 주거권 시민단체에서 이제 막 신입으로 일하게 되었기에, 주거와 관련된 논의의 장이라면 어디든 찾아다니고 있었다. <반달>도 같은 맥락에서 한 번쯤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인데, 이들의 이야기에 매료되어 어느새 2년째 동행하고 있다.
<반달>에서 오고 간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비혼여성의 주거란 차별, 불안, 빈곤의 공존이다. 이들은 같이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복지의 영역에서 배제되거나, 안전하고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을 찾아 사방을 헤맨다.
나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17년, 나는 동생과 함께 원가족으로부터 독립했다. 스스로를 먹이고 씻기고 가꾸고 생존시킨 지 이제 조금 2년이 넘었다는 뜻이다. 자주 고통스러웠다. 돈이 없다는 사실이 온 일상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치안이 좋고, 빛이 들고, 싱크대가 멀쩡한 집들은 기본적으로 월세 50만 원을 훌쩍 넘어갔다. 월급의 절반을 모아도, 돈이 모이는 속도보다 주거비 상승 속도가 빠르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그러나 돈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또 문제였을까?
돈을 제외한 또 하나의 문제는, 우리가 “국가가 상정한 가족”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동생과 나는 원가족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전혀 받지 않았다. 그럼에도 미혼의 청년이라는 이유로 우리의 소득인정액은 원가족의 그것과 합쳐져 산정되었다. 독립을 할 수밖에 없는 가정폭력이라는 상황이 존재하였고 국가가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의 존재는 부모와 함께 적힐 때라야만 “국가가 상정한 가족”에 부합했다.
동생과 나는 같이 밥을 먹고 월세를 같이 내고 살을 부대끼며 살았지만, 가족으로 인정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어떤 복지 혜택도 받지 못했다. 분명 돈만이 문제가 아니었는데, 복지에서 배제당함으로써 돈만이 문제인 상황이 되어버렸다. 당장을 살기 위해 나는 3교대 일자리를, 동생은 비정규직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반달>은 이런 문제를 더이상 혼자서 버틸 수 없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우리는 차별, 불안, 빈곤을 벗어나기 위해 주거정책을 살펴보았다. 그것들은 정말이지 신기하리만큼 조금씩 우리의 조건을 비껴갔다. 대부분 집을 사거나 억대의 전세를 구하는 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무엇보다도 이성애 혈연가족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공공임대주택의 입주 우선순위는 나이, 자녀 수, 해당 지역 거주기간 등이었다. 원가족과 떨어져 세입자로 살고 있는 빈곤한 우리는 전적으로 불리했다. 국가는 누구에게나 ‘정상가족’이 존재할 것이며, 그것이 개인의 사회적 안전망을 대체하리라고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잇따라 발표되는 신혼부부 지원 주거정책을 보며, 우리는 그것이 믿음이 아니라 선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국가는 자신이 원하는 출산 즉, 인구생산을 수행할 생각이 없는 이들에게는 어떤 도움도 주고 싶어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우리를 비껴가는 것은 주거정책만이 아니다. 이를테면 주5일제를 생각해보자. 홀로 살아본 사람들은 안다. 주5일제가 ‘각 가구마다 가사노동 전담 용역이 존재한다’는 전제하에 직조된 노동체계라는 사실을. 이것은 아프면 주말 내내 앓을 수 있고, 야근에 지쳐 이불에 털썩 누워 버려도 청소를 해줄 (대부분 엄마 혹은 아내로 지칭되는) 사람이 있는, 그런 상황이 ‘정상’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의 기획이다. 그리고 이처럼 “정상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은 결국 자본이 있는 사람이다. 자본과 정상성은 분절되지 않는다. 그들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작동한다.
누군가는 죽는 날까지 얻을 수 없을 그 정상. 우리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그 정상. 나는 이 지긋지긋한 기획을 부수고 싶다. <반달>의 동지들과 함께 말이다.
▲ 어떻게 하면 이 도시에서 가난과 불안을 상쇄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반달 모임원들은 삶을 공유할 구체적 방안을 세우며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를 구상 중이다.
<반달>의 ‘함께/살기’ 위한 노력들
<반달>의 모임원들이 모여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월세가 너무 비싸다는 소리, 집안일이 밀렸다는 소리, 지인의 집에 침입자가 발생했다는 소리 등이다.
우리는 1인가구라는 삶의 형태에 여러모로 질려버렸으나 소위 “쉐어하우스”에 살며 업자의 배를 불려주기도 싫었다. 각자의 존엄을 지키면서도 동거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마흔 이후, 누구와 살 것인가>(My House Our House, 캐런 & 루이즈 & 진, 심플라이프, 2014)라는 책도 읽어보았으나 일단 우린 몇 층짜리 저택을 지을 자본이 없었다.
그렇게 머리를 싸매고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 좁아터진 도시에서 가난과 불안을 상쇄하며 살 수 있을지 고민한 결과 “함께/살기”의 전략이 나왔다. 반드시 같은 주거공간을 공유해야지만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 우리의 삶을 공유할 구체적 방안을 세워서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를 상상해보자는 전략이었다. 이 전략을 만들어온 과정을 소개한다.
A. 반성폭력 워크숍
함께/살기 위해서는 반성폭력적인 공동체 문화를 꾸리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공동체 내부의 성폭력을 예방하고,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구성원들 간에 신뢰 관계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법을 준비하는 것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반성폭력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필요성이 페미니즘 지향을 공유한 여성들의 모임이라고 해서 예외인 것은 아니다. 성폭력은 권력의 문제이고, 사람은 둘만 모여도 권력이 생긴다. 특히 다양한 젠더와 성적지향으로 구성된 모임인 만큼 <반달>의 맥락에 맞는 반성폭력 문화를 만들기 위해 충분한 기간 동안 논의를 해나가야 한다는 것에 다들 동의했다.
▲ 비혼여성 함께/살기 <반달>의 반성폭력 워크숍에서 롤플레잉을 고민하는 구성원들. ©반달
우리는 3회에 걸쳐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에서 발간한 자료집 <공생의 조건: 성폭력을 직면하고 다시 사는 법>(2012) 텍스트를 읽은 뒤, 1박2일 간 반성폭력 워크숍을 진행했다. 워크숍에서는 성폭력 상황을 상정하고 공동체 내에서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에 대한 롤플레잉을 실시했다. 반성폭력 문화가 1회의 프로젝트로 뚝딱 생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계속해서 관련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
B. 함께 놀기 위한 예산 만들기
문제는 항상 돈이다. 돈은 매번 필요한 만큼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당연한 일 아닐까 싶겠지만, 돈 때문에 모임에 참여하지 못 하는 일이 생기면 그것은 문제가 된다.
아무리 모임 사람들이 전부 돈이 없다고 해도 그 ‘돈 없음’의 정도에는 차이가 있었다. 누군가는 정규직 노동자인가 하면 누군가는 비정규직이었고, 누군가는 학생이었고, 누군가는 고시생이었다. 그래서 <반달>에서는 누구도 경제적인 이유로 모임 참여를 주저하지 않게 하기 위해, 즉 ‘함께 놀기’ 위해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고민을 이어왔다.
그 일환으로 회비제와 지원사업 공모 두 가지를 운영하고 있다. 회비제는 모두에게 같은 금액을 걷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금액 이상에서 본인의 여력이 허락하는 만큼의 돈을 걷는 것이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한 만큼 분배받는 거창한 지향을 위한 작은 제도 같은 것이다.
지원사업은 <반달> 내에 따로 팀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을 만큼 중요도가 큰 일이다. 그간 청년참(서울시 청년허브에서 진행하는 청년 커뮤니티 지원사업)이나 삼삼오오인문실험(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기획한 청년 인문실험 공모전) 등으로부터 소정의 지원금을 받았다. 여기에 필요한 일(제안서 작성, 프레젠테이션, 보고서 쓰기 등)들은 구성원들끼리 나누어서 해결하고 있다.
C. 제도적 대안을 모색하는 강연회
‘함께/살기’라는 고민의 연장에서 <반달>이 최근 ‘함께’를 위해 고민하는 주된 이슈는 생활동반자법 제정이라는 제도/정책적 문제다. 반달을 처음 시작한 때부터 우리의 목적을 위해(그것이 공동 주거가 되었든 함께/살기가 되었든) 공공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없을까 궁리했었다. 그러나 국내의 정책 현실상 비혼여성에게는 ‘함께’도, ‘살기’도 제대로 된 지원이 갈 수 없다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함께’를 지원하는 정책들의 대다수는 이성애+혈연+정상가족이라는 단위에 묶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계를 지탱해주는 주거, 교육, 의료, 세금, 보육을 비롯한 복지의 기본 단위가 정상가족이기 때문이다. 결혼하지 않고도 누군가와 부대끼며 살고 싶은 사람들에겐 ‘함께’를 보장받을 수 있는 공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너무 당연하게도, 인간에게는 사회적 연결고리가 필요하니까.
▲ 비혼여성 함께/살기 <반달> 강연회 “비혼여성의 주거/사회적 관계 문제와 대안” ©반달
이런 문제의식에서 올해 1월, <가족구성권연구소>에 ‘비혼여성의 주거/사회적 관계 문제와 대안’을 모색하는 강연을 부탁드렸다. 우리의 문제의식에 공감한 사람들이 강연회에 찾아와 은평 민중의 집을 (말 그대로) 가득 채웠다.
D. 공동 주거 시작하기
<반달>의 인원 가운데는 부모로부터 독립해 다른 사람과 하우스메이트 관계를 맺거나 준비하는 사람이 절반 이상이다.
초롱의 경우에는 <반달>의 구성원 중 하나인 슬기와 오는 여름부터 함께 살 준비를 하고 있다. 초롱은 슬기와 오랜 친구 사이지만 이들이 덥석 함께 살 준비를 하게 된 데에는 <반달>에서 수차례 세미나로 다뤘던 주거공동체에 대한 기대가 큰 역할을 했다. 단순히 월세나 이자를 나누어 낼 수 있다는 경제적인 이점이나 보다 안전하게 살 수 있다는 것 외에도, 결혼 없이도 서로를 돌보면서 보다 밀접한 형태로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는 기대가 바로 그것이다.
초롱은 친구와 함께 사는 것을 흔히 사회에서 생각하는, 결혼 전에 잠깐 지나가는 단계가 아니라 향후 더 큰 주거공동체를 꾸리기 위한 준비 작업으로 여기고 있다. (원)가족이 아닌 타인과 보다 밀접한 형태로 함께/살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돈을 서로에게 나누고 일상의 사소한 측면을 드러낼 각오가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둘은 집을 알아보기 전에 각자가 ‘집’에 대해 기대하는 것, 각자가 하우스메이트로서 가진 장점과 단점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상충되는 점을 조율하고 있다.
이처럼 <반달>은 작아 보이지만 의미 있는 기획을 통해 존재감을 알리고 있는 중이다. 어떻게 하면 사유화된 공동체를 지양하고 사회적 의미를 정립해 나갈 수 있을 것인지, 정기적인 운영회의를 통해 논의한다. 운영회의에서는 앞으로의 활동과 공부의 주제를 정한다. 지금까지 나온 주제는 비혼여성의 주거가 신자유주의라는 맥락 아래에서 나타나는 형태, 부동산 문제, 주거정책, 돌봄노동 등이 있었다. 우리의 전략이 단순한 공동 주거를 넘어 다양한 형태의 함께/살기가 되었기에 이 공부는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그렇게 우리는, 기존의 세계를 파괴하기 위한 준비를 조그맣게 하지만 착실히 하고 있다.
반달이 추구하는 “함께/살기”가 모두에게 해답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반달의 의미는 시도 그 자체에 있다. 시도가 중요한 이유는 주거형태에 대한 상상력을 확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비혼여성의 주거가 파편화된 신자유주의적 이미지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 관계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관계를 실험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우리와 같은 당사자들의 시도를 통해서만 증명할 수 있다.
나아가 이러한 시도는 우리의 “함께/살기”가 어떤 형태로 구체화되건 간에, 기존의 ‘정상성’ 패러다임 내에서 규정되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언이다. (경서, 초롱)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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