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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은 ‘트러블 메이커’가 아니라 ‘이슈 메이커’
정의당, 20대 여성 유권자 분석 중간보고
“문재인 정부에 대한 20대 남성의 지지율 하락을 분석하며 20대 남성 담론이 만들어지고 있는데요. 질문을 한번 바꿔보아야 하는 게 아닐까요? 청년 지지율이 빠진다고 함에도 불구하고 왜 여전히 20대 여성의 지지는 유지되는가? 라고 말이죠.”(오김현주 정의당 서울시당 부위원장)
지난해 하반기부터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과 직무수행 평가를 긍정하는 비율이 떨어지자 그 원인을 분석하는 시도가 많아졌다. 많은 언론과 연구자들이 20대 남성의 지지율 하락을 그 원인으로 꼽았고, 무엇이 그들을 문재인 정부로부터 등 돌리게 했는가? 수색에 나섰다. 언론과 정치권에선 ‘이영자’(20대, 영남권,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문재인 정부 지지율이 하락한다는 뜻)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었다.
▲ 한국갤럽이 조사한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에서 ‘잘하고 있다’라고 응답한 비율의 2017년 6월부터 2019년 4월까지 추이. (참고: 한국갤럽 데일리 오피니언 주간 발행물) ⓒ일다
그런데 청년들의 삶이 어렵고 빡빡해지고 있다고 분석할 때 언급되는 20대는 ‘남성’을 칭할 뿐, ‘여성’의 목소리는 주목받지 못한다. 서울대 행복연구센터와 카카오 사회공헌 플랫폼 ‘카카오같이가치’가 2017년 9월에 조사한 ‘대한민국 안녕지수 프로젝트’에 따르면 20,30대 여성의 안녕지수(행복지수)는 다른 계층에 비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는데도 말이다. 안녕지수가 가장 낮은 20,30대 여성들이 대통령의 직무수행 평가를 긍정적으로 해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물음에 답을 찾아서, 20대 여성이 정치권을 향해 외치고 있는 목소리와 그들의 지지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귀를 기울여야 한다며 정의당이 연구에 나섰다. 지금 20대 여성들이 정치권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무엇을 원하는지 심층면접 설문조사를 통해 밝히고자 한 것. 이 연구의 중간보고를 겸한 <20대 여성을 통해 정의당을 보다> 토론회(이정미, 심상정 의원실, 정의당 중앙여성위원회 주최)가 5월 29일 국회 본청 정의당 이정미 대표실에서 열렸다.
20대 여성들 “나의 외침에 정치는 답하지 않았다”
정의당의 이번 연구는 20대 여성을 ①특정 정당의 당원이 아닌, 여성/젠더 의제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본인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한 그룹 ②지난 대선에서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득표율이 17.6%로 가장 높았던 파주시 월룡면 5투표소 지역의 20대 여성 ③정의당 20대 여성 당원 이렇게 세 그룹으로 나눈 표적집단 면접으로 진행되었다. 비교 연구를 위해 지난 대선 때 심상정 후보와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했고 현재는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을 지지하는 20대 남성 그룹도 인터뷰했다.
▲ 5월 29일에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 <20대 여성을 통해 정의당을 보다> 참가자들. ⓒ일다
“20대 여성들은 2016년 촛불혁명을 기점으로 ‘내가 뭔가를 하면 (사회를) 바꿀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지금 여성 문제에 대해 (항의하며) 거리에 나온 여성들의 외침에 대해선 정치권이 전혀 반응하고 있지 않다고 응답했습니다.”
연구 결과를 발제한 조혜민 정의당 대의원은 “20대 여성에게 지금 정치권의 이미지는 ‘우리에게 무관심한, 우리를 외면한 정치권’이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사회가 미투(#MeToo) 운동을 만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의 움직임은 더디기만 하고 결국 우리의 삶까지 와닿게 바뀌는 게 없어서, 정치권이 근본적인 문제를 보지 못한다고 평가하고 있다”는 것.
20대 여성들의 ‘정치(선거) 참여’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면, 이들은 지금의 정치가 무엇을(누구를) 대표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바라보고 있다고도 말했다.
“정치하는 분들이나 공약 같은 게 우리 세대가 아니라 40~60대에 맞춰지다 보니까, 내가 아무리 목소리를 높이고 투표를 열심히 해도 나한텐 뭐가 없다. 투표를 하지만 실질적으로 나한테 뭐가 (돌아오는 게) 없고 난 여전히 불안함 속에서 살아가야 하니까, 막상 투표할 때가 되면 ‘어차피 날 위한 공약도 없는데 굳이 내가 투표를 해야 돼? 나랑 상관 없잖아’라는 생각이 든다” 등의 발언들이 나왔다고, 조혜민 대의원은 전했다.
그렇기 때문에 작년 한 해 서울 광화문광장과 혜화역 등에 모여 ‘불법촬영 편파수사·편파판결 규탄시위’를 벌인 수십만 명의 여성들이 ‘공권력에서의 여성 할당’을 요구한 것은 단지 여성들에게 어떤 자리를 달라는 요구가 아니라 ‘나를 대변할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였음을 알 수 있다.
▲ 2018년 12월 22일 광화문광장, 불편한 용기가 주최한 6차 ‘편파판결 불법촬영 규탄시위’ 현장. 참가자들은 수사기관과 사법부에 대한 불신과 분노를 표하며, 공권력에서의 여성 할당을 요구했다. ⓒ일다
조혜민 대의원은 “20대 여성들은 정치가 나의 일상을 바꾸기 위해선 특정 정책에 대한 법제화가 필요한 것뿐만 아니라, 정치가 누구의 얼굴로 대변되는지 포착해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설문에 참여한 20대 여성들은 미투(#MeToo)를 비롯하여 차별과 폭력에 대해 고발하고 저항하며 변화를 촉구했지만, 현실에서 정치가 나의 삶을 바꿔주지 않는다고 느꼈을 때, “‘야망보지’, ‘탈코해서 돈 모으기’ 등의 각자도생(제각기 스스로 살길을 도모한다) 서사들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진단도 내놓았다. 그러나 살아남기 위한(혹은 성공을 향한) 각자도생의 움직임은 “한편으론 가난한 사람, 저학력자, 퀴어 등에게 ‘또 다른 후려치기’가 될 수도 있다”며 경계하는 목소리도 제기했다.
정치적으로 주체화된 청년 여성들의 ‘진보적 성향’
20대 여성 유권자들의 정치(권)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며, 조혜민 대의원은 “단지 여성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분석하는 관점을 넘어, 이미 ‘정치화된 목소리’를 내고 있는 20대 여성들에게 주목해야 함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오김현주 정의당 서울시당 부위원장도 정치권이 20대 여성에게 주목해야 한다며, 문재인 정부에 대한 20대 남성들의 지지율 하락만을 논할 게 아니라 “왜 여전히 20대 여성의 지지는 ‘유지’되는가? 라는 질문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 주요 정치 과제에 대한 20대 여/남 인식 차이 비교 ⓒ출처: “20대 여성을 통해 정의당을 보다” 자료집
“주요 정치과제에 대한 20대 여/남의 인식 차이 비교(미래정치센터, 2017년 6월)에 따르면, 20대의 경우 정치에 대한 관심은 남성이 더 많지만, 자신의 정치 성향을 ‘진보’라고 생각하는 경향은 여성이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김현주 부위원장은 “여성의 진보적 성향은 단지 특정 정치 성향이나 특정 이슈 영역에 국한된 것이나 아니라 전반적 추세”라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20대 여성들은 정치나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로 “2016년 촛불 시위 참가”를 꼽았다. 오김현주 부위원장은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한 추모 열기나 2018년 미투(#MeToo) 운동의 흐름을 ‘정치 주체화의 결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20대 여성들은 (박근혜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서) ‘참여하면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동시에 ‘여자들이 나라를 망쳤다’는 비난을 들으며 모순된 상황을 타개할 언어를 찾아야 했다. 이들의 움직임은 페미니즘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여성’에게 유독 가혹하게 작동하는 사회적 차별과 혐오에 대해서 더이상 묵과할 수 없음을 선언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기에 지난 19대 대선 당시 어쨌든 ‘페미니스트 선언’을 한 문재인 후보와, 비가시화된 노동자들을 대변하고 성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제한된 TV토론의 발언 시간을 할애한 심상정 후보를 지지하게 된 거라는 분석이다.
▲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분노한 시민들이 모인 촛불집회에서 성차별, 여성혐오 언행을 모니터링하며 평등한 집회 문화를 요구한 ‘박근혜 하야를 만드는 여성주의자 행동’(박하여행) 피켓. ⓒ일다
가장 낮은 안녕지수를 보이는 20대 여성들은 그렇기에 “오히려 최소한의 변화라도 추구할 수밖에 없고, 성평등 정책에 있어서는 (현 정부에) 기대감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고 오김현주 부위원장은 말했다.
그러나 “그 지지가 철회될 여지는 있다”고도 경고했다. 이른바 ‘장학썬’(장자연 사건, 김학의 사건, 버닝썬 사건을 통칭) 사건의 공정한 수사와 판결이 흐지부지될 경우, “20대 여성들의 쌓인 불만이 어떻게 표출될지” 모른다는 것.
여성의 정치참여, 할당제는 있어도 사다리는 없어
조혜민 정의당 대의원은 “인터뷰 참여자들은 지금의 정치권에 대한 신뢰와 효능감이 낮고 각자도생의 방식을 고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력화에 대한 필요성, 정치 권력을 획득하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보여 주고 있었다”는 점을 특이 사항으로 꼽았다.
하지만 ‘당원 가입을 하고 정당 활동을 하면서 정치인으로 성장하고 출마하는 일’을 크게 고려하고 있진 않다고 답한 부분, “정치해볼 것을 고민해 본 적이 없는지 묻는 질문에 ‘한 번도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다, 상상해본 적이 없다’고 답한 내용을 보면서 ‘여성 청년 정치인의 부재’가 미친 영향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과제를 제기했다.
토론에 참여한 박예휘 정의당 여성정책연구모임 ‘노란페미’ 운영위원은 “너무 당연하지만, 여성 청년도 정치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박예휘 운영위원은 본인이 당 지역위원회 활동을 하며 ‘우리 당에서 보기 힘든 젊은 여성 당원’으로서 겪은 어려움을 토로하고, 왜 여성 청년 당원을 만나기 힘든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예휘 운영위원은 “호감-지지-입당까지의 과정 이후의 사다리가 없다”고 말하며, “여성 할당이라는 기본적인 필요를 넘어서, 모든 당원에게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지역 활동이 여성 당원에게도 정말 자연스러울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납득되지 않는 문화 속에서 계속 저항하며 ‘트러블 메이커’가 되는가, 아니면 늘어가는 흉터를 감내하며 살아남는가. 우리에겐 다른 선택지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박예휘 운영위원은 20대 여성들의 정치적 갈증을 해소할 필요가 절박함을 드러냈다.
▲ 2019 세계여성의날에 서울 강남 일대에서 클럽 버닝썬까지 행진하며 "강간문화 타파"를 외친 청년여성들. ‘장학선’(장자연, 김학의, 버닝썬) 사건의 수사와 판결이 흐지부지될 경우, 20대 여성들의 현 정부에 대한 지지는 철회될 수 있다. ⓒ일다
한편, 토론이 다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킨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20대 여성들 중 누군가 (정치를 하기 위해) 나와 준다고 한다면, 그 기반을 만들고 도와주고 끌어주고 그걸 방해하는 장벽들을 제거해 주는 일을 하겠다. 오늘 토론이 많은 20대 여성들에게 용기를 주는 것뿐만 아니라 진짜 정치를 하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는 여성 청년 당원들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분노만 표출하고 ‘남성 혐오’를 조장하는 ‘트러블 메이커’가 아니라, 다양한 정치적 의제에 반응하고 사회적 요구 사항을 외치는 ‘이슈 메이커’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20대 여성들. 이들의 목소리에 응답하는 정치가 결국 미래를 보장받을 것이다. 이날 토론회는 그 미래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보여줬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는 자리였다. (박주연)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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