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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청년들이, 페미니즘 운동을 한다는 것

2019 페미니스트 ACTion! ④대전 여성주의 잡지 보슈(BOSHU)


※혐오와 차별을 멈추라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온라인에서 결집되어 거리에서도 울려퍼지는 시대, 지금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는 새로운 페미니스트들의 액션을 기록합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 보슈(BOSHU) 잡지의 시작은 ‘대전 청년 잡지’였다.


1. 그래도 대전은 한 시간이면 오지 않아요?


나는 충정로를 모른다. “나는 충정로를 걷고 있었다”라는 문장을 읽으면 어떤 장면을 상상해야 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왠지 알아야 할 것 같다. 동대입구라고 하면 동덕여대 입구라는 건지 동국대 입구라는 건지 알아야 할 것 같고, 다들 아는데 나만 몰라서 바보인 것 같다. 대전에 살지 않는 사람이 대전 서구 가수원동의 모습을 상상하기 힘든 것처럼 서울 사람 아닌 나 또한 그 지역을 모르는 것뿐인데, 중심부에서 멀리 있다는 감각을 자주 느낀다.


포럼, 강연, 전시, 모임, 번개(!)를 비롯한 각종 행사 등등 재밌는 건 다 서울에서 한다. “그래도 대전은 한 시간이면 오지 않아요?”라는 말을 상냥하게 하는 서울 사람 앞에서 나는 구겨지려는 얼굴을 가까스로 펴 보이며 아… 그렇죠, 다른 데에 비하면… 올만 해요, 라고 대답했던가. 가깝긴 하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혹은 기차 한 번으로 못 오는 지방에서 서울까지, 그보다는 낫다. 하지만 무엇과 비교해 조금 낫다고 해서 모든 상황이 산뜻하게 해결되는 건 아님을. 나는 생각했다. 케이티엑스 타면 한 시간인데요, 무궁화 타면 두 시간이에요.


우리 팀이 행사를 기획해서 인스타그램이랑 트위터에 홍보하면 이런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와, 기획 너무 좋아요! 서울에서도 해주세요!” 반대로 말하는 사람은 못 봤다. 한겨레문화센터 글쓰기 수업 너무 듣고 싶은데 포항에서도 해주세요! 페미니즘 관점으로 본 미술사 강의 진천에서도 해주세요! 여성 시인과 함께하는 시 쓰기 모임 남원에서도 매주 해주세요~! 없다. 당연히 지방 사는 사람이 가야 하는 거, 자기가 움직여서 얻어야 하는 거, 내가 그쪽으로 가야 하는 거였다.


2. BOSHU의 시작은 대전 청년 잡지였다


2014년 봄, 마을 활동가와 디자인 전공자 몇 명이 모여 잡지 BOSHU(‘보라’는 뜻의 충청도 사투리)를 창간했다. 아프니까 청춘인 게 아니고 각자도생해서 살아남아야 하는 게 아닌데, 세상이 언제부터 왜 이렇게 된 거냐 질문하며 사회에 우리 몫을 요구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대전이라는 지방에 태어나 살면서 마음으로는 ‘인서울’을 갈망하는 이 괴리가 어디서 시작됐는지 또래에게 말 걸고 싶었다.


▲ 보슈(BOSHU) 7호 ‘권태’ 中 “대전으로 가는 기차표는 매진입니다” 기사 이미지


2016년 ‘권태’라는 주제어로 잡지를 만들었다. 메인 주제는 ‘대전을 떠나는 청년들.’ “대전으로 가는 기차표는 매진입니다”라는 제목으로 대전에 사는 청년, 대전을 떠난 청년, 대전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청년 열세 명을 인터뷰해 글을 썼다. “패기 있는 젊은이라면 큰물로 가야지”라는 압박에 답하고 싶었고, “대전에서 가끔 버스 타고 지나갈 때 학교 동창 보면 ‘쟤도 어디 못 갔구나’ 그런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어요. 동질감이라고 해야 하나…”라고 말하는 인터뷰이의 말을 통해 우리가 이곳에서 계속 상처받고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 우리는 여기 남아있는 게 아니라 그냥 살고 있는 건데도, 지방에는 무기력이 짙게 깔려있다.


그러나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던 그때도 나는 나의 수많은 정체성 중에서 ‘여성’을 끄집어낼 생각은 못 해봤다. 여자라서 밤길은 맨날 위험하고 대학에선 복학생들한테 얼굴 평가나 당하고 학회장은 남자가 하는 거니 여자는 부학회장이나 총무를 하면서 돕는 게 좋지 같은 말을 들으면서 살았는데도 일상에 ‘성차별’이란 말을 덧대 볼 생각은 안 해봤다.


‘지역 청년’의 정체성보다 강력하게 내 삶을 좌우해온 ‘여성’이란 정체성을 무시했다. 그렇게 눌러 놨던 것이 강남역 앞에서 터져 나왔다. 내가 여자라서 겪은 것들을 다른 여자들도 똑같이 느껴왔다는 걸 알았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추모 현장에서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호소했다. 누군가는 “남자 여자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요”라며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논쟁을 막았다. 나도 복잡한데 공론장은 더 혼잡했다. 강남역에서 추모를 하고 돌아오면서, 대전에 있는 페미니즘 공부 모임을 찾았다.


3. BOSHU는 여성주의 잡지가 됐다


강남역 사건 직후 BOSHU 편집진들은 페미니즘 공부 모임을 시작했다. 잡지 발행 준비가 한창이던 6호의 메인 기획을 ‘여성혐오’로 확정했다. 여성들이 살면서 들어왔던 성차별적인 말들을 ‘미러링’하는 방식으로 지면을 꾸몄다. 기존 독자들이 대거 이탈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우린 이 기획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성차별과 여성혐오 문제를 무시한 채 사회 변화를 운운하는 건 기만이다.


그전까지 어디 나가서 “보슈는 청년의 목소리를 내는 잡지입니다”라고 소개하면, 지역 어른들이 “좋은 일 하는 청년들이구만” 하면서 갸륵하게 봐줬다. 대전시 지원 사업 공모에도 어렵지 않게 붙을 수 있었다. 그런데 강남역 사건 이후 빨간 약을 먹은 편집진들이 본격 ‘여성주의 잡지’를 표방하며 활동하기 시작하자, 어른들의 태도가 바뀌었다. 시야를 좀 더 넓혀보라거나 모두를 아우르라거나 하는 식이었다.


잡지 앞에 ‘여성주의’ 말고 ‘지역청년’을 붙이면 지속가능성이 더 높아질 거였다. 돈 나올 구멍도 있고 응원해주는 유지 찾기도 쉬울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지속해서 뭐 하나 싶었다. 여성 빼고 지역, 청년만 남겨두면 진실의 반 토막도 보여주지 못하는데.


▲ 보슈(BOSHU) 팀원들이 회의를 하다가 단체 사진을 찍었다.


BOSHU 페이스북은 난리가 났다. ‘여성들이 겪은 성차별 사례’를 모아 지면에 실으려 한다는 게시물을 올리자 분노한 남성들의 댓글이 쏟아졌다. 혼란한 정국에 너희까지 나서서 부추길 거냐, 실망이다, 구독하지 않겠다, 그런 이야기들. 페이지 좋아요 수는 급격하게 줄었다. 그러나 돈 내고 구독하는 여성 독자가 배로 늘었다.


강남역 사건 직후에 발행한 BOSHU 6호의 주제어는 ‘발톱’이었다. 발톱을 날카롭게 드러내 위험 상황에서 우리를 지키겠다는 뜻이다. 발톱이 몸의 중심을 잡아주는 것처럼 이 분노와 깨달음이 우리 삶의 중심을 잡아줄 것이라는 뜻도 담았다. 발톱에 할퀴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돌아섰고, 자신의 발톱을 발견한 이들이 우릴 찾았다.


4. 지방엔 없는 게 많아서 할 일도 많다


BOSHU 편집진들이 속해 있던 대전 페미니즘 스터디 그룹 ‘행복한 페미니스트’ 팀원 한 명이 제안을 했다. 강연도 좋은데 이제 액티브한 걸 기획해보면 어때요? 스포츠? 스포츠 좋다, 스포츠. 불이 붙었다. 남성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졌던 축구를 해보기로 했다. 포털 사이트에서 대전 여성 축구 감독을 검색했다. 수소문해 연락처를 찾았다. 행복한 페미니스트 팀과 BOSHU가 공동 주최해 대덕대학교 운동장에서 여성 축구 원데이 클래스 ‘페미 풋볼’을 열었다. 2017년 5월의 일이다.


축구를 해본 적 없어서 발을 못 쓰거나, 어릴 때 공놀이를 좋아했지만 중학생 이후 운동장과 멀어져야 했던 여성들이 한데 모였다. 가슴이 흔들리는 것보다 심장이 뛰는 걸 더 의식하며 두 시간 내내 운동장을 뛰어다녔다. 바람을 가르고 땀이 마르는 걸 느끼고 그날 만난 사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왜 나는 팀 스포츠의 즐거움을 모르고 살아야 했나’ 화가 났다. 호신이나 미용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내가 내 몸을 느끼고 활용하면서 하는 운동, 그것의 매력을 알았다. 다른 참여자들도 그랬는지 정규 클래스 개설에 대한 문의가 쏟아졌다.


▲ 올해 2월 창단한 대전여성축구팀 FC우먼스플레잉. 스무 명의 여성들이 매주 금요일 저녁 카이스트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기 위해 모인다.


올해 2월, 카이스트 여성주의 연구회 ‘마고’와 함께 여성축구팀 FC우먼스플레잉을 창단했다. 원데이 클래스 ‘페미 풋볼’의 기억을 안고 사람들이 속속 모였다. 지금까지 거쳐 간 팀원도 백 명 가까이 된다. 매주 금요일 저녁 카이스트 운동장에서 함께 뛰는 사람들은 열다섯에서 스무 명 사이. 축구하는 여성들을 보며 야유하거나 휘파람 부는 남자들도 여전히 있다. 하지만 이쪽이 다수일 때, “뭘 봐? 여자가 축구하는 거 첨 봐?” 쏴붙여 줄 수도 있다.


페미니스트끼리 머리 맞대고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살 맞대고 뭔가 하는 것도 좋구나, 우리 팀은 축구 기획을 하면서 그 맛을 알았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너무 좋아했다. 새로운 걸 더 해보자, 여성 주짓수 원데이 클래스 “힘은 뻔하다, 그러나 상황은 뒤집힌다”를 열었다. 모집 단계에서 30회가 넘는 허위 신청을 하며 훼방 놓으려는 사람이 있었지만, 주짓수의 매력에 빠져 분탕질 따윈 잊고 정규 클래스 Overset을 창단하기에 이른다. 한국여성재단의 지원 사업으로 축구, 주짓수, 연기 등 몸을 테마로 여러 행사를 열었다. 우리도 신나고 참가한 사람들도 너무 좋아했는데, 지원이 끝나니 전처럼 공격적으로 추진하기 힘들었다.


5. 계속할 수 있을까, 여기서?


서울과 지방의 차이는 눈으로 볼 때보다 피부로 느낄 때 더 크게 온다. 예컨대 페미니즘에 대한 온도 차. 서울에서 “페미니즘 싫어~” 한다면, 같은 시각 지방에서는 “페미니즘이 뭐야?” 하는 실정이다. 거의 대부분의 ‘큰’ 집회는 서울에서 열리고, 쟁점이 뾰족해 재미있는 강연도 서울에서 열린다. 지방의 페미니즘 운동은 소수의 단체가 서울에서 지식과 자원을 수입 받아 겨우 이고 지고 간다. 흩어져있는 페미니스트들이 외롭지 않으려면 모일 데가 있어야 하는데, 지방엔 페미니즘 소모임도 많지 않다.


무엇보다 페미니즘을 내걸고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데가 거의 없다. 결혼 안 하려는 여자들 어떻게 결혼시키나, 애 안 낳으려는 여자들 어떻게 애 낳게 하나, 그런 주제를 지자체에 내밀면 잘도 받아들이겠지만, 여성의 인권을 위한 활동을 하겠다고 하면 모든 게 어려워진다. 작년에 여성주의 글쓰기 수업을 기획해 지원 사업에 공모했는데, 남성 배제적이라며 제목을 바꾸란 말을 들었다. 그럼 그냥 페미니즘 글쓰기 수업이라고 할게요, 그랬더니 그건 받아줬다. ‘여성’이 들어가는 게 싫었던 거다.


상황이 이러하니 지역의 네트워킹 자리나 지원 사업 심사 자리나 공무원 만나는 자리에선 조금씩 틀어서 말하게 됐다. 여성 청년을 위해서 뭘 하고 싶어도 그 앞에선 ‘청년’이라고 꾸며놓고 뒤에선 기획대로 진행했다. 그러려니 품이 두 배로 들었다.


▲ 제1회 동분서주 여성운동회. 작년 가을에 여성 청년끼리 즐기는 여성운동회를 개최했다.


또 다른 어려움은 행사 참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서울과 다르다는 거였다. 서울엔 다양한 모임이 많으니까 강연이나 워크숍 등 1회성 행사를 연다고 하면, 사람들이 ‘아 그건 이런 거랑 비슷한 거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지방에선 아는 사람들만 안다. 개개인이 운영하는 대안 공간도 많지 않은 데다가, 커뮤니티에 속해 있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 행사가 열리는지 알기 힘들다. 경험이 적다 보니 돈을 내고 참가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니 행사 입장료를 책정할 때에도 준비 비용을 겨우 회수할 수 있을 정도로 저렴하게 정한다. 2018년 가을에 대전에서 열었던 ‘동분서주 여성 운동회’의 입장료는 8천 원이었다. 서울의 다른 단체가 비슷한 행사를 열었는데, 입장료 3만 원 선이었다. BOSHU가 축구 원데이 클래스를 서울에서 열면 반나절만에 60명 정도 모이지만, 대전에서 열면 정원이 천천히 차고, 자주 오는 분들이 온다. 단골이 생기는 건 좋은 일이겠으나, 서울 행사에서 받았던 즉각적인 피드백은 처음 느껴보는 자극이었다. 서울에 있으면 적어도 정체되지는 않겠구나 싶었다.


6. 서울에서 내려오는 기차에선 마음이 허했다


우리와 비슷한 그룹이 대전에 있다면, 그들과 엎치락뒤치락하면서 경쟁이나 견제 비슷한 것도 하면서 목표한 곳으로 막 치닫고 싶다. 지금 대전은 조용하고 멈춰있다. 우리 팀원들은 자극을 찾아다닌다. 영감을 주는 곳, 새로운 걸 볼 수 있는 곳. 다시 서울. 우린 기차가 허락해주는 시간까지만 ‘네트워킹’할 수 있다.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하는 말. “오늘 되게 재밌고 좋았는데… 왜 이렇게 허하지?” “어 나도…” 우리도 좋은 사람들 자주 만나고 싶다. 그런데 술 한 잔 하자고 기차 타고 올라갈 순 없고, 내려오는 길엔 때마다 진한 ‘현타’(현실 자각 타임)를 느낀다.


우리 팀 디자이너는 한 매체에서 ‘지방에서 디자이너로 사는 것’의 어려움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외주 작업을 할 때, 관공서 의뢰를 주로 받게 되니 도전적인 작업을 하기가 어렵다는 거였다. 디자이너가 디자인 철학을 갖고 있고 계속해서 뭔가 실험해보고 싶어도 판이 안 깔리는 거다. 거기서 느껴지는 갈증, 고여 있다는 느낌.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서울로 가야 하나? 일단 나는 싫다. 공기도 안 좋고 사람도 많아서 콧 속 까매진다. 당장은 열심히 비비고 있다. 순한 눈빛을 연기하며 대전시 공무원도 만나고, 팀원 중에 누구는 서울에 있는 동종업계 사람이랑 교류도 하고, 또 다른 팀원은 서울 기반 모임에 끼어 활동한다. 5월 4일엔 홍대입구에 있는 공간을 빌려 우먼온리DJ파티도 열었다. 분투하다 보니 어떤 행사에서는 이런 말도 들었다. 저, 보슈 팀 행사 참여하러 서울에서 왔어요, 저는 대구에서 왔어요.


앞으로 대전에서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네트워크도 만들 거고, 글 쓰는 페미니스트 모임도 만들 거다.


▲ 올해 1월 12일, 보슈는 남성중심적인 클럽 문화에 반대하며 서울 홍대 부근에서 ‘불편하지 않은 여성 DJ파티’ “우리가 좋아하는 리듬이 있지”를 개최했다.


7. 변두리 페미니즘, 우리는 이곳에 뭔가를 나른다


젠더 렌즈 낀 여성에게 일상은 지옥이라는 걸 안다. 페미니스트는 지옥에서 맘 맞는 친구도 사귀고 운동(스포츠와 사회운동)도 하고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니 동지를 만날 수 있는 장이 절실하다. 대전에는 BOSHU 같은 여성 청년 페미니스트 그룹이 없다. 우리가 대전에서 한 일은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지만, 독자들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대전 페미니스트들이 외롭지 않게 이곳에 있어 주는 거다.


언젠가부터 내가 뭔가를 나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날라다 보이는 것으로 만드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 지역이 내 발목을 잡는 것 같을 땐 나도 서울에 갈까,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서울을 원한다는 말이 아니라 이곳을 더 낫게 바꾸고 싶다는 말이다. 지방에서 나는 ‘~로부터의’ 탈출이 아니라 ‘~을 향한’ 탈출을 꿈꾼다. 우리의 서식지가 여기라면 우리가 이곳을 바꾸자, 대놓고 말한 적은 없지만 우리 팀원들은 그런 생각을 공유하는 것 같다.


서울에 계신 언니들, 언젠가 대전에서 BOSHU팀이랑 축구 한판 합시다. 끝나고 두부두루치기에 원막걸리 한 사발 어때요, 한 시간이면 오는데…!  (서한나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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