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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그리고 ‘여성’이라서 그리게 되는 것들

에코팜므×두잉 전시회 <그리다, 이주여성> 그림과 이야기



“제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숨쉬기’(Breath)에요. 물고기가 수족관을 벗어나면 살 수 없듯이 난민도 모국을 떠나면 힘든데, 그래도 어떻게든 숨을 쉬어야 하잖아요. 아프리카 여성, 난민여성이라는 정체성을 떠나 우린 다 같은 사람이고, 우리 모두에게 숨쉬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미야)


아프리카 콩고, 모로코, 에티오피아와 아시아 몽골에서 온 난민/이주민이면서 또한 아티스트이기도 한 여성들의 작품 전시가 서울 청담역 근처 페미니즘 북카페 두잉에서 열렸다. <그리다, 이주여성> 전시회의 마지막 날인 지난 3월 28일(목) 저녁, 두잉에서 작가들 중 일부가 직접 참석해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 미야의 물고기 시리즈. 왼쪽이 ‘Keep moving forward’(2015) 오른쪽이 ‘Breath’(2015) ⓒ촬영: 일다(박주연 기자)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숨쉬기’라고 표현한 미야와,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내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표현한 알리야(가명). 이 두 명의 작가와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한 테이블을 공유하며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눴다. 낯설어서 멀게 느껴졌던 ‘난민여성’이라는 존재가 굉장히 가까이 다가온 시간이었다.


한국어, 영어, 모로코 방언(Darija)이 뒤섞인 대화가 오갔던 시간. 보통 알아들을 수 없는 낯선 언어를 접하면 집중력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이상하게도 생전 처음 듣는 모로코 방언을 말하는 여성 작가의 눈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금방 눈물이 차오를 것 같다가도 힘 있게 그림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그 눈동자는 시종일관 반짝였다. 그 눈을 바라보는 경험만으로도 그와 나 사이에 놓여있는, ‘난민’이라는 신분을 구분하는 단어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작가들의 눈동자에 담긴 이야기들이 작품 속에 스며들어 있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직접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며 <그리다, 이주여성> 전시회에서 본 그림과 작가들의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낯선 땅 한국에서 아티스트가 되기까지


전시를 기획하고 난민/이주여성들이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교육한 곳은 <에코팜므>라는 단체다. 난민들을 위해 교육, 상담, 수공예 기술 등을 제공하는 이곳은 ‘모자이크 아트스쿨’ 프로그램을 통해 참여자들이 예술성을 발견할 수 있게 돕거나 새로운 기술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또한 좋은 작품으로 상품을 개발하고, 작품 전시를 기획하기도 한다. <그리다, 이주여성> 전시회도 그런 활동의 일환이었다.


▶ 에코팜므에서 난민/이주여성들이 미술을 통해 예술성을 펼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 ‘모자이크 아트스쿨’ 소개 자료. ⓒ촬영: 일다(박주연 기자)


지금 에코팜므 활동가이자 아티스트로, 한국에서 살고 있는 미야는 콩고민주공화국 출신의, ‘보기 드문’ 난민인정자이다. (한국에서 난민신청자, 인도적 체류허가자, 난민인정자 중 난민인정자의 수는 3% 정도밖에 되지 않을 만큼 그 비율이 매우 낮다. 관련 기사: 국내 체류 중인 ‘난민여성’들의 실태는? http://ildaro.com/8346) 오랜 시간 끝에 난민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에서의 삶이 평탄한 건 아니었다.


“난민이고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오해를 받는 부분이 많았는데 누구에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몰라서” 답답함을 느끼고 있던 미야는 한국에 왔을 때 한국어 선생님이었던 나비(에코팜므 박진숙 대표)를 통해 그림을 배우게 되었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그림을 배웠지만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과 달리, 미야는 “그림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분명 무언가를 느꼈는데 어떻게 표현할지 모를 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무엇이든 제가 느끼는 걸 그리기 시작했죠. 그 과정은 너무 재미있었고 또 한편으론 그게 저의 ‘치유 과정’(Therapy)이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예술 전반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미야는 “아프리카 여성으로서 한국 사람들에게 무엇을 보여 줄 수 있는지” 고민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난민여성들이 많은 걸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무시하기도 하죠. 저 사람은 ‘난민’이고 ‘여성’이고 ‘아프리카 사람’이니까 교육도 못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들이 흔한 편견이에요.”


미야에겐 그런 오해와 편견에 맞서는 방법이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걸 티셔츠, 머그컵, 엽서 등의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하면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사람들이 설사 나를 무시한다 하더라도, 내 작품에 관심을 가진다는 거잖아요. ‘당신이 산 티셔츠가 아프리카 여성이 만든 티셔츠다’, 사람들은 이제 제 작품을 가짐으로써 저의 일부를 같이 공유하는 거죠.”


작품을 통해 ‘아프리카, 난민, 여성’의 삶 일부가 한국 사람들의 삶 안으로 들어간다. 미야는 그렇기에 그림을 계속 그린다고 말했다.


▶ 카페 곳곳에 전시된 그림에 대해 설명해주는 미야와 귀 기울이는 참가자들의 모습. ⓒ촬영: 일다(박주연 기자)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아티스트의 삶을 시작한 미야와 달리, 알리야는 모로코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는 걸 무척 좋아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림을 배웠다.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상황에서도 몰래 그림을 그릴 정도로 아티스트로서 타고난 재능과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숙제도 안 하고 그림을 그리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와, 그림을 배우고 또 그림을 전시하며 겪은 우여곡절을 설명하는 알리야의 목소리엔 당시의 감정들이 실려 있었다. 때론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이야기는 끊기지 않았다. 그만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다시 그림을 그리고 또 새롭게 캘리그라피를 배우고 있다는 알리야는 “한국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어서 행복하고 그림을 통해 새로운 가족(에코팜므 활동가들)을 만나서 너무 좋다”고 미소를 지었다.


가장 표현하고 싶은 것은 ‘자유’에 대한 열망


어떤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하냐는 물음에 “여성”이라고 답한 알리야는 “여성을 그려야 내가 가진 많은 감정들을 표현할 수 있다. 여성들이 많은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자신의 그림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했다.


여성을 달팽이나 꽃으로도 표현한다는 그는 “딱딱한 껍질로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달팽이가 여성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며, “달팽이 여러 마리가 함께 있는 그림을 ‘여성의 연대’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우리가 어떤 인종이든 간에 우린 하나죠. 각자가 겪는 어려움과 고민이 다 다르지만 그래도 우린 여성으로서 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알리야(가명)의 작품엔 아프리카의 화려한 꽃들과 ‘여성의 연대’를 표현하는 달팽이, 지나온 시간의 흔적들이 담겨 있다. ⓒ촬영: 일다(박주연 기자)


‘난민’ 그리고 ‘여성’으로서 겪는 상황이 작품에 어떤 영감을 주는지 이야기가 이어졌다. “처음 그림을 그리게 된 것도 (난민의 위치에서) 자유, 희망 등을 표현하고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한 미야는 ‘아프리카 여성’이라는 점도 그림에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작품의 모티브를 생각할 때나 색을 정할 때 그런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아프리카에선 정말 많은 직물(Fabric)이 있고 아프리카 여성들은 정말 화려하거든요(Colorful). 그러니까 어렸을 때부터 저도 저의 할머니, 엄마, 여자 형제들이 가졌던 화려함을 봤었고 분명 그게 저에게 영향을 줬다고 생각해요.”


알리야 또한 모로코에서 겪었던 경험과 난민으로서 한국에서 경험한 일들이 그림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북아프리카의 베르베르인, 특히 여성들이 타투나 헤나로 많이 하는 심볼이 있는데 자유를 의미하거든요. 그 심볼이 제 그림에 들어가 있기도 해요.”


아티스트, 디자이너 그리고 사업가이기도 한 난민여성들


이 아티스트들이 ‘난민’과 ‘여성’이라는 점을 극대화해서 작품을 만드는 건 아니다. 작품으로 상품을 만들어 판매를 하는 만큼 비즈니스 측면에서 ‘상품성’도 고려한다. 한국인의 취향이나 기호도 어느 정도 고려한다는 뜻이다. 예술 활동을 하는 것 이상으로 이 활동이 난민여성들의 자립을 돕는 경제적 활동으로 연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 에코팜므에서 판매 중인 다양한 제품들은 난민/이주여성들과 협업하여 만든 것이다. ⓒ촬영: 일다(박주연 기자)


처음 그림을 배울 때, 미키마우스를 그리거나 아프리카 정글을 그려 보라고 했더니 ‘난 도시 출신이야!’라고 말해서 한국인 활동가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는 미야. 이제 그녀는 자신이 가진 것들 중 어떤 점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살려야 하는지 감을 잡고 있다. “다양한 아이디어가 있어야 해요. 그림을 그릴 땐 아프리카의 취향과 한국의 취향을 잘 고려해서 여러 버전으로 그리거든요. 그리고 어떤 걸 상품화할지 고르죠.”


더 많은 난민/이주여성들을 위한 플랫폼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밝힌 미야는 “많은 여성들이 다양한 능력이 있음에도 지금은 그걸 보여 줄 기회가 없어요. 난민/이주여성들은 그저 애들을 키우는 존재로 여기거나, 다른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죠.” 라고 말하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많은 여성들에게 영감이 되고 싶다”고 얘기하는 마야. “여전히 나도 배울 게 많다”는 말은 ‘우리, 같이 배우자’는 제안으로 들리기도 했다.


아직 ‘난민인정자’가 아닌 탓에 한국에서의 삶이 불안정하지만 알리야는 그럼에도 그림을 그릴 수 있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행복하다고 웃었다. “이뤄질 수 없는 꿈이라고 하더라도 이 세상에 전쟁이 사라지기를, 그리고 모든 난민여성들이 안전한 삶을 살 수 있기를 꿈꾼다”는 그의 말엔 ‘웃으며 피-쓰(평화)를 외치는 일’과는 차원이 다른 무게가 느껴졌다.


미야의 그림 중 하나인 물고기 시리즈엔 ‘외부인’으로서 한국 사회에 들어왔을 때 느꼈던 생각들도 담겨 있었다. 주변을 볼 틈도 없이 모두 앞만 바라보고 너무나 바삐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자유롭게 움직여도 괜찮다’는 의미를 담았다는 그 그림은 바라보는 것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에너지가 있었다. 한편으론 낯선 땅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내기 위해 혼자 여러 방향으로 열심히 움직여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런 시선을 가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난민/이주여성들의 그림을 하나둘 깊이 바라보고 있다 보니, 그림 속에서 나의 일부가 보였다. 내가 어떤 순간에 느꼈던 감성과 생각이 그 그림들 속에도 있었다. 나와 전혀 다른 세상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산다고 생각했던 난민/이주여성들의 삶에도 내가 있었다. 단지 내가 그들을 보지 않았을 뿐이었던 거다. ‘우리는 하나’라는 말은 때론 모호하고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날은 작가들의 이 말이 마음을 뜨겁게 채웠다. 이렇게 또 새로운 동료가 늘었다. (박주연 기자)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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