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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는 ‘아가씨’가 아니다
드러나지 않는 간호사 노동의 가치에 대하여
※ ‘간호사의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촉구하는 해당 칼럼의 필자는 서울대병원에서 근무하는 9년 차 간호사이자 <행동하는 간호사회> 활동가 최원영 님입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일터에서 “아가씨”라고 불리는 여성 간호사들
“아가씨!!”
한국에서 젊은 여성들은 가게나 식당에 가면 아가씨라는 말을 들을 일이 많다. “아가씨한테만 싸게 주는 거야, 여기 아가씨들 안쪽 테이블로 안내해줘” 등등. 젊은 여성에게 쉽게 붙여지는 호칭인 이 ‘아가씨’라는 말에 유독 기분 나빠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이다. 간호사들은 아가씨라고 불리는 것에 매우 민감하다. 왜 그럴까?
간호사인 나는 왜 아가씨라는 말이 듣기 싫었던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건 내가 하는 일이 상대방에게 중요하지 않은 일로 치부되는 것 같고, 존중받지 못하는 기분이 들어서인 것 같다. 일터에서 어떤 여성들이 아가씨라고 불리는가? 아무리 앳되어 보여도 환자들은 여자 의사에게는 절대 아가씨라고 부르지 않는다. (흰 가운을 입지 않은 여자 의사를 간호사인 줄 착각하고 아가씨라고 부르는 경우는 종종 있다.) 학부모들이 여자 담임 선생님에게 아가씨라고 부르지 않는다. 여자 판사나 검사에게도 아가씨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처럼 의사나 자녀의 담임 교사, 판·검사처럼 쉽게 낮춰 부를 수 없는 어려운 존재, 권위에 감히 도전하기 힘든 극소수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젊은 여성들은 일터에서 “아가씨”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나는 거기에는 여성, 특히 젊은 여성이 하는 일에 대한 멸시가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무의식중에 그 사람 직업이 무엇이든 ‘젊은 여자가 하는 일이라고 해봤자 뭐 그리 대단한 일이겠냐’하는 무시가 깔려있는 것 같다.
▶ 일터에서 “아가씨”라는 호칭을 듣게 될 때, 간호사의 일에 대한 무시가 내포되어 있음을 느낀다. ⓒ최원영
간호사 ‘이미지’와 간호사가 ‘하는 일’ 사이의 간극
‘아가씨가 아니라 간호사에요’ 라고 대꾸하면 상대방은 아가씨를 아가씨라고 부른 건데 뭘 그렇게 깐깐하게 구냐고 항변한다. 나는 ‘그럼 내가 당신을 “아저씨”나 “중년남성!” 이렇게 부르면 좋겠냐?!’고 속으로 투덜거리곤 한다. (주로 중년남성들이 아가씨라는 호칭을 많이 쓴다.) 아무튼 사람들에게 간호사가 하는 일은 젊은 여성들이 주로 종사하는, 쉽고 단순한 일 정도로 치부되는 것 같다.
그러나 간호사 중에 ‘젊은’ ‘여성’이 많은 것은 간호사 일이 쉽고 편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힘들어서다. 일이 너무 힘들어서 정년이 될 때까지 일하는 사람이 일부 관리자들을 제외하곤 거의 없다. 간호사의 평균 근속연수는 5.4년밖에 되지 않는다. 여성이 많은 이유는 돌봄 노동을 여성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남성이 이 분야에 진출하기 꺼려서인 것 같다.
실제로 간호사가 하는 일은 그렇게 ‘여성스럽’지도 않다. 여성스럽다/남성스럽다 나누는 것 자체가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담고 있는 것이지만, 사회 통념상 ‘여성스럽다’라고 하면 작고 아기자기하고 좋은 향기가 나는 예쁜 것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여성스러운 일이라 여겨지는 간호사 업무는 실상 그렇지 않다. 5L, 10L짜리 수액을 번쩍번쩍 들어야 할 때도 많고, 징그럽게 벌어진 수술 상처나 피와 고름이 흐르는 상처 또는 욕창으로 살이 썩어들어가는 걸 봐야 할 때도 있다. 치료 중에 사망한 환자의 시신을 보게 될 때도 있다.
중환자실에서는 환자가 침대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몸에 중요한 관이 많이 연결되어 있어서 간병인에게 환자를 맡길 수가 없다. 그래서 중환자실은 환자의 대변을 간호사들이 직접 치우곤 한다. 뿐만 아니라 60~70kg에서 가끔씩은 100kg가 훌쩍 넘는 거구의, 게다가 움직이거나 저항하는 환자의 몸을 들거나 옮겨야 하는 일도 많다. 다시 말해 일반적으로 ‘여성스럽다’고 하는 것들과는 거리가 멀다.
간호사가 하는 일은 때론 위험하고, 때론 지저분하고, 때론 힘들다. 하지만 간호사라고 했을 때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작고 가벼운 주사기로 약을 재고 있는 모습, 혹은 파스텔 톤의 유니폼을 입고 차트를 들고 사뿐사뿐 병동을 누비는 모습이다.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은 실제 어떤 인물인가?
간호사에 대한 이러한 오해는 나이팅게일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사람들은 간호사라고 했을 때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나이팅게일을 떠올리곤 한다. 램프를 든 여인의 이미지가 그녀의 대표적인 이미지인데, 사실 그녀는 램프를 들고 아픈 환자의 곁으로 가서 밤을 새곤 하는 여인이라기보다 통계학자에 더 가까웠다. 실제로 그녀는 영국 왕립 통계학회 최초의 여성회원이었다.
간호사인 나 역시도 나이팅게일에 대해서 잘 모르던 때는 전쟁터에서 다친 군인들을 열심히 돌보던 간호사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래서 대체 간호사들을 대표할 만한 위인이 얼마나 없었으면 위험한 곳에서 환자를 돌봤다고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나 싶은 마음에 왠지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우연히 나이팅게일의 평전을 읽게 되었는데, 내가 생각한 사람과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쓴 간호 노트 “Notes on Nursing: What It Is, and What It Is Not” 나이팅게일은 유럽 최고의 보건통계학자로서 보건의료 분야의 개혁을 이루어낸 인물이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Nightingale Florence, 1820~1910)은 막대한 부를 가진 영국 최상류층 집안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그러나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돌보는 것을 사명이라 여겨,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당시 천하게 여겨지던 간호사라는 직업을 택한다. 크림전쟁(1853∼1856년 러시아와 오스만투르크, 영국, 프랑스, 사르데냐 연합군이 크림반도와 흑해를 둘러싸고 벌인 전쟁)이 발발하자 나이팅게일은 터키의 스쿠타리 지방에 있는 육군 야전병원으로 간호단을 이끌고 갔다.
당시 영국군 야전병원은 지금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불결했다. 부상자들은 30cm 간격으로 약 6.4km에 걸쳐 늘어서 있었다. 그 사이로 쥐들이 돌아다니고 제대로 된 하수시설들이 갖춰지지 않아 바닥은 진흙탕이고 오물이 넘쳐났다. 제대로 된 화장실이 없어서 곳곳에 환자들의 배설물이 있었고, 병원은 악취와 전염병의 온상이었다. 미생물이나 세균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던 당시에 병사들은 전투 중에 죽는 것이 아니라, 상처의 2차 감염 또는 감염병으로 죽어갔다.
나이팅게일은 환자들의 상태와 주변 환경 등을 꼼꼼히 기록하면서 방대한 자료를 축적해나갔다. 역학 조사와 통계로, 불결한 장소나 다수의 환자가 모여 있는 환경에서 사망률이 더 높다는 결과를 도출해냈고, 이 보고서는 행정관료들을 움직였다. 대대적인 환경 개선 작업이 이루어졌고 육군 야전병원은 나이팅게일이 온 지 6개월 만에 사망률이 40%에서 2%로 떨어졌다고 한다.
드러나지 않은 나이팅게일의 통계학자로서의 업적
덕분에 나이팅게일은 영국 여왕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국민 영웅으로 부상했다. 귀국 후에 나이팅게일은 “영국 육군의 건강, 능률 및 병원 관리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사정에 관한 노트”라는 1000페이지가 넘는 보고서를 출판하였다. 수많은 자료들을 근거로 전장에서 죽은 병사의 대부분이 군의 열악한 의료·위생환경 때문에 죽은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나아가 병원 통계를 표준화하고, 육군병원의 개혁뿐만 아니라 민간병원의 환경을 바꾸기 위해 높은 수준의 병원 관리를 할 수 있는 간호사를 양성하기 위한 간호학교를 설립했다. 그리고 졸업생들을 각국의 병원으로 보내 병원 환경을 개선하고 환자 사망률을 떨어트렸다.
나이팅게일은 유럽 최고의 보건통계학자로서 평생을 바쳐서 보건의료 분야의 개혁을 이루어낸 인물이다. 나이팅게일은 병영이나 병원을 스스로 설계하고 몇 백 통의 의견서를 작성했다. 정부 요직에 있는 관료들 역시 보건위생 전문가 의견이 필요할 때마다 그녀에게 자문을 구했다. 나이팅게일이 남긴 문서 중에 인쇄 문헌만 150권에서 200권에 이르며, 편지는 현존하는 것만 1만2천여 통에 이른다고 한다.
하지만 국내에서 나이팅게일의 이런 업적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심지어 간호대학에서도 ‘나이팅게일 선서’를 할 때조차 정작 나이팅게일의 업적에 대해서는 자세히 가르쳐주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나이팅게일은 “램프를 든 숙녀”일 뿐이다.
▶ 실제로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은 드라마처럼 딱 붙는 스커트가 아닌 편한 복장을 입고 일한다. ⓒ최원영
나이팅게일의 이미지는 지금의 간호사들에게 부여되는 “백의의 천사” 이미지와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천사 같은 마음씨로 아픈 사람들을 돌봐 줄 거라는 이미지에 간호사의 전문성이나 높은 노동 강도는 가려진다. 하지만 간호사는 천사가 아니다. 그리고 희생을 강요받는 천사가 되고 싶지도 않다. 천사 같은 간호사는 착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하지 않을 법한 일을 자신을 희생해가며 기꺼이 해줄 거라고 기대되기 때문이다.
“백의의 천사” 이미지는 희생과 봉사를 강요하며, 병원이 간호사들을 착취하는 데에 기여할 뿐이다. 간호사가 천사처럼 착하지 않아도, 굳이 스스로를 희생하지 않아도, 충분한 인력과 환경이 뒷받침된다면 환자에게 적절한 간호를 제공해 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간호사의 역할에 대해 좀 더 잘 이해하고 그 중요성에 공감해주었으면 좋겠다.
간호사도 의료인이다
지금도 병원에서는 ‘간호사가 불친절하다’거나 ‘앉아서 컴퓨터만 하고 놀고 있다’ 등의 민원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왜 의료인인 간호사에게 (의사와는 달리) 친절만을 바라는 걸까? 간호사는 여러 환자에게 투여해야 할 수많은 약물과, 각 환자들마다 챙겨야 할 중요한 검사들, 시술이나 수술 전 체크리스트 등등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서 얼굴이 무표정한 것일 수도 있다.
앉아서 컴퓨터 화면을 보는 시간이 많은 이유는, 지금은 환자 차트가 모두 전산 기록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환자들은 의료인이 아니기 때문에 의료행위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편이라 다른 환자의 응급상황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심정지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는데도 ‘시끄러우니까 병실 밖으로 나가서 하면 안 되냐’고 말하는 사람도 보았다.
세상에는 다양한 직업이 있다. 그리고 어떤 직업이든, 그 직업을 가진 사람 외에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 하는 특성이 있을 것이다. 나는 간호사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각각의 일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시시콜콜 다 말하려고 드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간호사를 ‘어리고 착한 여성’이 아니라 ‘전문성과 사명감을 갖춘 의료인’으로서, ‘노동자’로서 존중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의사의 역할이 레시피를 연구하는 요리연구가라면, 간호사는 레시피대로 조리를 하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뛰어난 레시피가 있어도, 정해진 시간 동안 100인분을 조리할 요리사가 1명인 것과 20명인 것은 결과물이 전혀 다를 것이다. 의사가 아무리 완벽한 치료계획(레시피)을 세우더라도, 그 치료계획대로 간호(요리)를 할 수 있는 간호사가 부족하다면 환자의 치료는 절대 의사의 치료계획대로 완벽하게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내가 간호사이기 때문에 간호사 일의 중요성을 과장하는 것이 아니라, 간호사의 역할은 실제로 환자의 예후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 국내 건강보험 빅데이터를 분석한 한 논문에 따르면, 수술 후 관리가 특히 중요한 외과 환자의 경우 간호인력 수준에 따라 사망률이 거의 40% 가까이 차이가 난다고 한다. 이는 미국과 캐나다 등의 선행연구에서도 비슷한 결론이 나왔다.
내가 아무리 설명한들 간호사가 아닌 사람들에게 간호사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완전히 이해시키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당신과 당신의 지인이 아파서 병원을 찾을 때, 거기서 일하는 간호사들이 너무 바쁘진 않은지, 너무 힘들어 보이진 않는지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한다.
간호사들이 웃음기 없는 얼굴로 늘 무언가 복잡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면, 당신의 아무리 불러도 바로 와주지 못할 만큼 정신없이 바쁘다면, 그 병원은 간호인력 수준이 매우 낮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환자의 예후 역시 좋지 못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럴 땐 간호사의 무뚝뚝함에 대해 항의하기보다, 병원 측에 간호사 수가 부족한 것 같다고 말해주었으면 한다.
간호사는 ‘친절한 아가씨’가 아니라 환자의 예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의료인이다. (최원영/ 서울대병원 9년 차 간호사, 행동하는 간호사회 활동가)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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