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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 지적장애인도 자립 생활을 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길가의 풀> 시시도 다이스케 감독 인터뷰



일본에서는 지체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장애인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아 지역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건 드문 일이 아니다. 장애인 당사자들의 인권운동을 통해, 시설 생활이 아닌 자립 생활을 영위하는 일은 어느 정도 진척돼왔다.


하지만 그런 일본 사회에서도 지적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대다수는 성인이 되어도 자립하지 못한 채 여전히 부모와 같이 살거나, 부모가 나이가 많이 들어 자신을 보살펴줄 수 없는 경우 혹은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는 장애인 생활시설에서 살아간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중증의 지적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가족과 떨어져 활동지원사와 함께 지역에서 자립 생활을 하는 나날을 좇은 다큐멘터리 영화 <길가의 풀>이 제작됐다. 감독 시시도 다이스케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시시도 다이스케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길가의 풀>의 한 장면. 중증 지적장애, 행동장애, 자폐증이 있는 아베 료스케 씨와 그의 활동지원사. 료스케 씨는 외바퀴차와 스케이트보드가 특기다.


자립 생활을 하는 중증 지적장애인들의 이야기를 담다


꽃이 피고, 새가 운다. 몸집이 큰 아베 료스케 씨(촬영 당시 24세)가, 도로의 맨홀을 발견하고는 경쾌한 스텝으로 밟더니 리드미컬하게 걷는다. 길가에 핀 꽃을 따서는 입에 물고, 민들레 홀씨를 발견하고는 훅 불어 날린다. 그리고는 있는 힘껏 그네를 탄다. 곁에 있는 사람은 그의 활동지원사. “료스케, 꽃은 먹는 거 아니에요”라고 말하며 료스케 씨를 지켜본다.


“그는 정말 자유로워요. 주변 분위기를 신경 쓰지 않고 자기 느낌대로 살아가죠. 굉장히 매력적이에요.” 시시도 감독이 말한다. 중증 지적장애, 행동장애, 자폐증이 있는 료스케 씨는 통원 시설에 다니는 시간 외에는 놀이, 장보기, 식사, 목욕, 수면 등을 활동지원사와 함께 하며 아파트에서 혼자 산다.


2014년부터 중증 지적장애인과 정신장애인도 중증 지체장애인에게만 국한되어 있었던 ‘중증 방문 활동 지원’ 제도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이들에게도 지역 사회에서 자립 생활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하지만 ‘중증’의 요건이 엄격한 데다,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는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사업자도 적어서 이용자는 확대되지 않고 있다.


항상 누군가 옆에서 지켜볼 필요가 있는 료스케 씨에게는 비교적 소수가 생활하는 ‘그룹홈’의 공동생활조차 어렵다고 판단한 그의 부모님은, 료스케 씨가 어릴 때부터 활동지원사를 요청하여 자립 생활을 준비해왔다. 애초에 다큐멘터리 <길가의 풀> 제작을 의뢰한 것도 료스케 씨의 아버지 코스케 씨다.


영화에는 료스케 씨 외에 세 명의 중증 지적장애인이 지역에서 생활하는 모습과 이를 위한 노력, 만만치 않은 그들의 생활을 지원하는 활동지원사와 지원사업소의 분투를 그리고 있다.


▶ 영상작가이자 <길가의 풀>(2019)을 만든 시시도 다이스케 감독(우측).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오염된 대지에 남겨진 개, 고양이 그리고 가축들이 자원활동가들의 손길에 의해 연명해가는 모습을 담은 <개와 고양이와 사람과>(2013)는 국내에서 2016년 제1회 국제반려동물영화제를 통해 소개됐다.(좌측)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시시도 감독은 이 영화를 찍기 전에는 도쿄에 있는 지적장애인 입주 시설의 의뢰로, 시설에서 함께 살며 그곳의 생활을 촬영했다.


“시설에서 사는 입소자들은 하루 일과를 관리받으니 저처럼 자유롭게 외출할 수가 없어요. 그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것 같지 않은 거예요.”


그렇다고 시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직 많은데, 시설에 보내기로 결정한 가족들을 탓하는 것도 아니다 싶었다고.


“저도 지적장애를 가진 숙모가 있는데, 집에서 나가지 못하고 생활하셨죠. 하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도 바쁘고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도 없으니 그분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길가의 풀>을 통해서 중증의 지적장애인들이 지역에서 살기 위한 “이런 선택지가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시시도 씨는 말한다.


내가 한 말을 누군가 들어주고 답해주는 경험


<길가의 풀> 촬영이 시작된 지 반년이 지난 2016년 7월, 가나가와현의 지적장애인 거주 시설 쓰구이 야마유리원에서 입소자 19명이 살해당하고 더 많은 사람이 상해를 입은 충격적인 사건(용의자 우에마츠 세이는 해당 시설에서 근무했던 사람으로 장애인 안락사 발언을 하는 등, 장애인 혐오에 기반한 증오 범죄로 꼽힘)이 발생했다.


영화에는 이 사건으로 중상을 입은 오노 이치야 씨가 시설에서 나와 지역에서 자립 생활을 하기 위해 부모와 함께 노력하는 모습도 그렸다.


▶ 야마유리원 피살 사건으로 중상을 입은 오노 이치야 씨의 부모. 어머니 치키코 씨와 아버지 츠요시 씨는 사건 이후 이치야 씨와 다시 마주했고, 또다른 시설로 보내는 대신 자립 생활을 시도해보기로 결정하고 함께 노력하고 있다.


“쓰구이 야마유리원 사건이 발생한 지 1주년을 맞아 추모 집회가 열렸는데, 원래는 아베 료스케 씨를 촬영하려고 참가했어요. 희생자들을 애초에 시설에 입소시킨 가족을 질책하는 발언이 많은 가운데, 오노 이치야 씨의 아버지이자 전 가족회 회장인 츠요시 씨가 시설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시더라고요.”


시시도 감독은 이치야 씨의 아버지를 만나서 자신의 전작인 <바람은 살라고 하네>(동일본 대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지역에서 인공호흡기를 쓰고 생활하는 사람을 그린 작품, 2016)의 전단을 건넸다.


“그걸 보시더니 등장인물이 이용하는 제도에 대해 여러 가지로 물으시더군요. 알고 보니 이치야 씨도 중증 지적장애인이었어요. 그리고 이치야 씨에게 자립 생활을 시켜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시설에 있으면 알게 되는 정보도 적은 탓에, 사건 후에 다양한 사람과 만나면서 장애인의 지역 생활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장애인권리조약과 장애인차별해소법을 처음으로 아셨다고 해요.”


어느 날, 이치야 씨는 시시도 감독에게 “아저씨, 사탕 먹을래?” 하며 사탕을 나눠준다. “저, 그때 울컥했어요. 야마유리원 피살 사건의 우에마츠 세이 피고가 ‘의사소통이 안 된다’는 이유로 지명해 살해될 뻔했던 이치야 씨예요. 우에마츠 피고는 과연 그 시설에서 직원으로 일할 때 이치야 씨와 어떤 식으로 만났던 걸까. 이치야 씨도 시설에서는 저런 표정을 짓지 않았겠죠.”


시시도 감독은 중증 지적장애인이 시설에서 생활하는 것과, 지역에서 활동지원사들의 도움을 받아 자립 생활을 하는 것의 차이를 목격했다.


“제가 촬영했던 시설에서는 젊은 직원이 70대 입소자에게 고압적으로 명령하거나 아기 취급을 하기도 했어요. 지역 사회에서는 그런 식의 대응은 통용되지 않죠. 그리고 료스케 씨의 활동지원사들이 자주 ‘료스케는 대단해요!’라고 말했는데, 그런 생각하게 된 계기는 (시설 생활에서보다) 지역 생활에서 더 많겠죠.”


<길가의 풀>에는 시설에서 10년을 살다가 지금은 지역에서 자립 생활을 하는 구와다 히로무 씨의 어머니 키에코 씨가 등장해 이렇게 얘기한다.


“구와다의 표정이 풍부해지고, 말이 늘었어요. 자기가 한 말을 누군가 들어주고 거기에 답해주는 경험이 큰 것 같아요.”


▶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매일 활동지원사와 긴 산책을 나서는 구와다 히로무 씨. 활동지원사와의 투닥거리는 대화는 영화의 재미 중 하나다. 영화 <길가의 풀> 중에서.


이들의 세상에 창을 열어주는 사람들이 없다면…


그렇다고는 해도, 조바심이 나면 갑자기 괴성을 지르거나 난폭해지거나 이따금 위해 행위를 하기도 하는 것이 이런 장애의 어려운 부분. “무섭다”,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사회적 편견도 갖게 한다. 이런 상황과 마주하고 있는 것이 활동지원사들이다.


“시설에서 직원에게 폭력을 당한 다음부터 격한 폭언, 위해 행위를 하기 시작한 나카타 이치로 군은 외출해서는 재떨이를 발로 차 편의점 유리창을 깨거나, 다른 사람 머리를 만지거나, 전철에서 큰 소리를 내거나 합니다. 하지만 그의 활동지원사들은 주변 사람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함께 사과하러 가는 등 시종일관 침착하죠. 그들이 무엇을 호소하고 있는지, 어떤 기분인지를 이해하려고 하더군요. 사회와의 매개자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에요.”


활동지원사가 있음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도 안심한다. 료스케 씨가 장을 보러 가는 가게에서는 직원도, 손님들도 료스케 씨에게 익숙한 듯 보였다.


한편 활동지원사들은 “이런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는 데에는 뭔가 의미가 있다”, “대하고 있으면 나 스스로 복받쳐 오르는 게 있다”, “(료스케와) 함께 있으면 즐겁다. 그렇게 생각하게끔 만든다”고 이야기한다.


중증의 지적장애인, 정신장애인들을 평소에는 거리에서 만날 수 없는 지금의 사회란. “이렇게 열려있고 사회에 창을 만들어주는 사람들과 만날 수 없다면, 자신의 존재가 점점 쪼그라들 것 같아요. 당사자들의 매력이 앞으로 사회를 바꿔주리라 생각합니다.”


※ <일다>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가시와라 도키코님이 작성하고 고주영님이 번역하였습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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