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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체류 중인 ‘난민여성’들의 실태는?

다중의 차별을 겪고 있는 여성난민의 인권 보장해야



제주도에 들어온 481명의 예멘 난민을 둘러싼 논의가 한참 뜨거웠다. 결국 예멘 난민들은 그 누구도 난민 인정을 받지 못했고 362명만이 인도적 체류 자격을 얻었다. 이 일로 국내에서도 난민 관련 논의들이 촉발되었지만,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한 얼굴들이 있다. 바로 ‘난민여성’이다.


가시화되지 않는 난민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연구가 지난 11월 5일(월)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와 강원대 난민연구센터가 공동 주최한 학술대회 <이주민과 난민의 인권 보장 -젠더적 시각에서>에서 발표되었다.


가시화되지 못한 난민여성들의 인권실태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관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송효진 연구원은 ‘한국 체류 난민여성의 인권실태’(한국 체류 난민여성의 인권실태에 관한 연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송효진, 김소영, 이인선, 한지영. 2016)를 보고했다.


▶ 난민신청자, 난민인정자, 인도적체류자 성별 현황 (참고: 2017년 출입국 외국인정책 통계연보, 법무부)


먼저 현재 한국에 체류 중인 난민여성의 수와 비율을 공유했다. 통계 자료에 따르면, 전반적으로 남성의 비율이 높은 편이지만 여성의 비율이 현저히 낮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건 남성이 주를 이루며, 난민여성의 실태와 취약성은 드러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송효진 연구원은 “모국의 종교나 관습으로 인해 여성의 인권이 고려되지 않는 사회적 배경을 지닌 경우, 자신의 권리나 피해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취약한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수 있으며, 발언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어 적절한 보호 및 이에 대한 요청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난민여성이 가시화되지 못하는 환경이다 보니 “난민여성들은 시의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고, 성인지적 관점을 기반으로 한 난민여성에 대한 정책도 부재하다.”


송효진 연구원은 이 연구를 통해 “난민신청자(소송 중인 난민신청자 포함), 인도적 체류자, 난민인정자의 신분으로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여성 21명과 심층 면접을 진행”하였고, “이들이 모국을 떠나게 된 이유, 난민 입국 과정 및 심사 과정, 한국에서 난민여성으로 살아가는 경험을 파악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국내 난민 사유에 ‘젠더박해’ 명시돼있지 않아


심층면접은 2015년 12월부터 2016년 2월 기간에 진행되었다. 참여한 난민여성들의 구성을 살펴보면 연령대는 10대 1명, 20대 5명, 30대 12명, 40대 3명으로 30대의 비율이 가장 높다. 출신지는 아프리카 10명, 아랍 6명, 아시아 4명, 유럽 1명으로 아프리카 출신 비율이 높다. 결혼 및 사실혼 관계 등을 포함하여 파트너가 있는 여성이 16명, 없는 여성이 5명이다. 이 중 자녀가 없는 여성은 2명이며, 그 외엔 파트너 유무를 떠나 자녀가 있다.


▶ 연구에 참여한 난민여성의 출신지와 파트너 유무 비율. (참고: 송효진 외 <한국 체류 난민여성의 인권실태> 보고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송효진 연구위원은 “난민여성들의 난민 사유에서 젠더 차별적 양상, 젠더박해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할례’로 불리는 인습, 전쟁 중 반군에 의한 강간 등 국가나 공동체의 묵인 하에 성폭력 및 젠더박해 등에 노출되고, 그것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난민을 선택”했다는 거다. 그리고 “순혈주의와 가부장제 아래에서 ‘여성’이라는 젠더가 더해졌을 때, 종교나 인종, 정치적 박해 등 난민이 되는 사유가 동일하더라도 그 차별 받는 정도가 다를 수 있다”는 점도 짚었다.


또한 “파트너가 있는 여성일 경우, 파트너가 먼저 난민 신청을 하거나 인정을 받은 후 한국에 들어오기도 한다. 이럴 경우 남성 파트너의 사유에 종속되어 이 여성의 독자적인 사유가 드러나지 않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국내 난민법 조항에서 밝히는 난민의 정의에 따르면, 난민이 될 수 있는 사유에 ‘젠더에 의한 박해’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연구에서 알 수 있듯이 난민여성의 경우엔 종교, 정치적 박해와 젠더박해가 복잡하게 섞여있다. 그 젠더박해가 더 큰 위협이나 공포가 될 수가 있음에도 그것이 잘 드러나지 않으며, 난민 인정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 국내 난민법 조항에서 밝히는 난민의 정의. 난민이 될 수 있는 사유에 ‘젠더박해’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다만 최근에 의미 있는 판결이 있었다. “이 연구가 끝난 후인 2017년 12월, 대법원에서 ‘여성할례’가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특정 사회 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가해지는 박해에 해당한다’며 난민불인정 결정 취소 판결을 내렸다는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고 송효진 연구원은 말했다.


입국 과정, 신청 절차에서 고려되지 않는 여성의 경험


여성의 생식기 전부 혹은 일부를 제거하는 ‘할례’가 작년에 최초로 난민 사유로 인정받게 되었다는 사실은, 그동안은 인정되지 않았다는 애기다. 앞선 판결에서도 1심과 2심에선 ‘박해를 받을 충분한 공포가 있다고 인정하긴 부족하다’고 했다. 재판부의 성인지적 관점이 부족한 이유도 있지만, 난민 입국 과정과 신청 절차에서 성인지적 관점은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송효진 연구원은 “피해와 박해의 근거를 입증해야 할 때 객관적 자료를 제출해야 하지만,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은 객관적 자료를 제시하기 어렵고, 당사자 본인의 경험을 언어화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현행 심사 과정에선 “피해상황에 대한 객관적 입증을 요구”한다는 것.


또한 “난민심사관과 전문통역인을 동일한 성(性)으로 요청할 수 있도록 규정화되어 있으나, 이를 필수적으로 고지하지 않아 사전에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난민여성들에겐 또 하나의 어려움이다. “아버지를 살해한 반대세력에게 강간을 당한 여성의 경우, 여성통역관과 남성심사관이 배치된 상황에서 심사를 받았다.” 폭력의 경험을 털어놔야 하는 자리에서 “다시 한 번 트라우마를 겪기도 한다”는 거다.


여성의 몸과 건강에 대한 배려도 없다. “한국에 들어와 송환대기실에서 지내다 자신이 이미 임신 상태였다는 걸 알게 된 여성은 진단 등을 받아야 함에도 말이 통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 임신 중이었던 또 다른 여성은 심사 과정 면담 시 임산부를 배려하지 않고 오랜 시간 계속 반복되는 질문에 답해야 했다. 또한 “사람이 많을 땐 의자에서 자기도 한다”는 송환대기실 환경이 임신 중이거나 월경 중인 여성들에겐 더욱 힘겨운 환경일 수밖에 없다.


거기다 이런 과정 속에서 “난민신청이 거부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고통을 상기해야 하는 심사 과정 속에서 정신건강을 해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것에 대한 공적인 지원도 없는 실정”이다.


‘자립’하기 더욱 어려운 난민여성들의 위치


▶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와 강원대 난민연구센터 공동 주최로 11월 5일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관에서 열린 학술대회 <이주민과 난민의 인권 보장 -젠더적 시각에서> 자료집.


위험한 난관을 거쳐 한국 땅을 밟고 체류하게 되었다고 해서 장밋빛 미래가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난민여성은 “‘난민’과 ‘여성’이라는 이중적 취약성”을 가지게 된다. 송효진 연구원은 “난민여성은 여성이 가지고 있는 취업 장벽, 돌봄노동의 책임, 주거 및 생활의 안전의 고충을 겪는 것은 물론, 난민이 가지고 있는 언어소통의 어려움이나 인종차별 등을 ‘더해서’ 겪는다”고 설명했다.


“난민여성들 중엔 모국에서 대학교육을 받고 교사, 간호사 등 전문직 업무를 했던 사람들도 있다. 그렇기에 자립에 관심을 가지고 강한 의지를 보이지만, 그들의 경력이 한국에선 무용지물인데다 한국어를 배울 기회조차 얻기 쉽지 않다”는 게 난민여성들을 좌절하게 만든다. 직업 교육을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있는 곳이 없다.


자녀가 있는 여성의 경우는 더 고충을 겪는다.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하는데 아이를 맡길 곳이 없고, 아이가 있다는 이유로 인해 안정적인 일자리도 구하기 어렵다.”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는 여성에게도 어려움이 있다. “의료보험이 되지 않아 비용 문제로 고심하다 사산의 위기까지 갔던 사례도 있었다.” 송효진 연구원은 “출산 이후에는 자녀의 국적 문제(자녀가 무국적자인 것)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리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그 뿐만이 아니다. 여성인권이 특히 열악한 환경인 국가에서 온 난민여성 중엔 “외부로 목소리를 내길 힘들어 하고, 한국에서도 남성 배우자 혹은 남성에게 의존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그렇게 되면서 가정에 고립, 외부 환경와의 소통이 단절되는 상황”에 놓인다.


난민여성 인권을 위한 ‘젠더 가이드라인’ 필요


난민여성들은 난민 자격을 얻는 과정과 한국에서 체류하는 과정에서 이렇듯 다양한 문제들을 마주한다는 사실을 밝힌 송효진 연구원은 “다중적 차별을 겪는 난민여성에 대한 제도 개선과 지원 강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심사과정과 절차에선 ‘젠더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제언했으며 “난민여성이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필요한 기초 정보가 포함된 ‘가이드북’을 마련하는 것과, 직업훈련 및 한국어교육 기회 제공을 위한 제도 및 근거도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날 토론자로 참여했던 이민정책연구원의 민지원 부연구위원이 2017년에 발표한 <난민지위 결정을 위한 젠더 가이드라인에 대한 국제적 법제 및 사례연구>에 따르면, ‘젠더 가이드라인’은 “난민여성 보호를 위해 난민심사관, 통역사, 법률가 등이 참조할 수 있는 공식화된 가이드라인”이다.


▶ 호주 젠더 가이드라인의 구성 내용. (출처: 민지원 이민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난민지위 결정을 위한 젠더 가이드라인에 대한 국제적 법제 및 사례연구> 2017)


이미 “유엔 난민기구는 1991년에 <여성난민 보호에 관한 지침서>를 발표했고, 2002년엔 젠더 관련된 박해에 대해 포괄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국제적 보호에 관한 지침 제 1호>를 발간했다. 국가적 차원에선, 1993년 캐나다가 최초로 <젠더박해를 두려워하는 여성난민신청자들>이라는 젠더 가이드라인을 발간했고, 연이어 미국 호주 영국 차례대로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젠더가이드라인을 발표”했지만 국내에선 부재한 상황이다.


민지원 부연구위원은 이 보고서를 통해 “국내에서도 여성 난민신청자와 난민인정자의 수가 꾸준히 증가 추세“인 만큼 “난민법 외에도 시행령과 시행규칙에서 여성 난민신청자를 위한 내용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고, 관련자들이 참고할 수 있는 공식적인 정부 젠더 가이드라인의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가이드라인에 포함될 내용으로 “난민 정의의 다섯 가지 박해 사유에 대한 성인지적 해석이 이루어져야 하며, 그 뿐만 아니라 젠더 특유의 박해의 내용과 유형도 포함해야 한다는 점, 차별이 누적되면 박해가 된다는 점, 난민 요청을 입증하는 데 여성의 경험과 위치에 대한 제약으로 추가적인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으며, 보강할 수 있는 증거의 부재가 신빙성이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 등”을 꼽았다.


이번 학술대회는 그동안 주목을 받지 못했던 국내 난민여성의 경험과 그들이 놓인 상황에 대해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게 된 자리였다. 앞으로 난민여성의 현실을 다각도로 조명하고 이들을 지원하는 다양한 방법과 정책에 대한 논의가 더 많은 자리에서 이뤄지길 기대한다. (박주연 기자)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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