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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들, 자기 목소리를 대변할 사람을 선택하다

美 중간선거 결과 ‘여성과 사회적 소수자의 약진’ 분석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반발)이 출마 이유이긴 하지만 그보다도 저희 지역구는 그동안 주민의 목소리가 잘 대변되지 않았어요.” (시카고트리뷴 2018년 11월 11일자 기사 ‘Lauren Underwood says upset election win was about representation, not just Trump’)


11월 6일에 실시된 미국 중간선거(일부 지역의 주지사와 상원의원의 1/3, 하원의원 전체를 선출하는 선거) 결과, 일리노이 주에서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로렌 언더우드(Lauren Underwood)는 이렇게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 대한 반발과, 그 반발에 대한 또다른 반발 사이의 대결. 그 뜨거운 논쟁으로 인해 역대급 중간선거 참여율(플로리다 대학 마이클 맥도날드 교수에 따르면, 이번 중간선거 참여율은 50%에 가까운 40%후반으로 예측되며, 이는 2016년 중간선거의 36.7%에 비하면 매우 높은 수치이고 1960년대 이후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참여율이다)을 보였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더욱 주목해야 할 지점이 있다.


후보자부터 당선자에 이르기까지 역대 최고의 다양성이 드러난 선거였다. 상원의원, 하원의원, 주지사 후보의 58%는 여전히 ‘백인 남성’이지만, 나머지 42%는 여성과 성소수자, 그리고 흑인, 히스패닉, 아시안 등의 비백인 인종이었다.(뉴욕타임즈 2018년 10월 31일자 기사, ‘ The Faces of Change in the Midterm Elections’) 즉 ‘이성애자 백인 남성’이 아닌 사회의 다양한 소수자들이 자신을 대변할 수 있는 정치인을 뽑을 선택지가 늘어난 거다.


결과적으로 이 선거는 ‘여성과 성소수자 및 소수자들의 약진’이라 평가될 만큼의 성과를 냈다. 그 과정에서 어떤 목소리들이 나왔는지 섬세하게 살펴보는 것은, 아직 다양성과는 거리가 먼 한국 정치 문화의 변화를 위해서도 의미 있는 일이다.


▶ 왼쪽부터 첫 무슬림여성 하원의원 일한 오마르, 메사추세츠 주 첫 흑인여성 하원의원 아야나 프레슬리, 무슬림여성 하원의원 라시다 타리브,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출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인스타그램


‘이민자, 여성, 노동자, 밀레니얼 세대’를 대변하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주목을 많이 받은 사람 중 한 명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Alexandria Ocasio-Cortez)는 80%에 가까운 득표율을 보이며 ‘최연소(만29세) 여성 하원의원’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미국 역사상 가장 나이가 어린 여성 하원의원’이라고만 그를 설명한다면 섭섭한 얘기다.


오카시오-코르테즈는 브롱스의 푸에르토리코 이민자 가족에서 태어났고, 가족들은 대부분 블루칼라 노동자였다. 2008년 아버지가 암으로 갑자기 사망하고 난 뒤엔 집이 압류될 상황에 놓여 몇 년 간 법정 투쟁도 했다. 그 일을 회상하며 오카시오-코르테즈는 “전 노동자 계급에서 자랐어요, 죽음을 애도할 시간 따위는 주어지지 않았죠.”라고 말하기도 했다. (더 인터셉트 2018년 5월 22일자 기사, ‘A Primary Against Tthe Machine: A Bronx Activist Looks To Dethrone Joseph Crowley, The King Of Queens’)


개인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다. 월가에서 발발된 미국 경제의 위기는 그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비영리단체에서 라틴계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로 그리고 바텐더,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그는 결국 직접 정치에 뛰어들기로 한다.


지역주민 70%가 비(非)백인인데 한 번도 지역을 대변할 정치인으로 비(非)백인이 당선되지 않았다”(더 인터셉트 2018년 5월 22일자 기사)는 사실을 꼬집으며, “대표성이 없는 사람이 대표자가 되어 정치하는 상황”(Mic 2018년 2월 28일 기사, ‘Meet the young progressive Latina trying to oust one of the most powerful Democrats in the House’)에 반발한 거다.


이번 선거를 치르기 전까지 바텐더로 일한 경력이 알려지며 ‘정치 경력이 전무한 어린 여성’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지기도 했지만, 사실 정치 경력이 없다는 얘기는 맞지 않다. 그는 보스턴 대학에 재학하며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인 테드 케네디(Ted Kennedy)의 이민 부서에서 인턴을 했고, 지난 대선에선 민주당 경선에 참가한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의 선거캠프 조직원으로 활동하며 정치 경력을 쌓아왔다.


물론 하원의원 출마를 위한 민주당 경선 당시, 오카시오-코르테즈는 거의 20년 동안 지역구를 관장해 온 10선의 하원의원 ‘백인 남성’인 조 크롤리(Joe Crowley)만큼 화려한 정치경력이나 인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지역구 구성원들을 정확하게 대변하고 있었다. 뉴욕주 브롱스와 퀸즈에 거주하는 수많은 이민자와 블루칼라 노동자들, 그리고 이전 세대와는 확연하게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밀레니얼(1981년~1996년에 태어난 세대)을 말이다. 그 힘으로 민주당 경선에서 당 내 거물 정치인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오카시오-코르테즈는 민주당 소속이지만 미국 민주사회주의자(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 DSA) 소속이기도 하다. 공공연하게 자신이 ‘사회주의자’라는 것도 밝혀왔다. 이번 선거에서도 ‘모두를 위한 의료보험’, ‘무상교육’, ‘인권으로써 주택 공급’, ‘이민자 보호’, ‘선거캠페인 개혁’, ‘뉴 그린 딜’(2035년까지 미국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를 모두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하겠다는 정책) 등 꽤 급진적인 정책을 내놓았다.


잡지 <베니티페어>와의 인터뷰(2018년 11월호)에서 ‘대학 무상교육 등의 진보 정책을 어떻게 펼쳐나갈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강한 의지가 중요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상대가 인공임신중단을 지원하는 단체 예산을 끊겠다고 하면 ‘안 되죠, 그걸 지킵시다’라는 정도가 아니라 ‘여성의 건강과 관련된 지원을 더 확대하고 그게 보장될 수 있도록 하자’고 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전술을 타협할 순 있겠지만, 우리가 원하는 걸 타협할 순 없다.”


그런 의지를 응원하듯 주민들은 오카시오-코르테즈가 국회로 가서 자신들을 대변할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높은 득표율로 회답했다.


보수표밭에서 당선된 ‘원주민 레즈비언 MMA선수’


샤리스 데이비스(Sharice Davids)는 이번 선거에서 최초 타이틀을 여러 개 획득했다. 그는 뎁 할랜드(Deb Haaland)와 함께 미국 역사상 최초로 하원에 진출한 원주민(Native American) 여성이고, 캔자스주 최초의 레즈비언 하원의원이며, 최초의 레즈비언 원주민 여성 하원의원이 되었다.


▶ 최초의 레즈비언 원주민 여성 하원의원이 된 샤리스 데이비스가 선거가 끝난 후 감사의 메시지를 전했다. ⓒ출처: 샤리스 데이비스 홈페이지


만38세인 그는 2006년부터 아마추어 MMA 종합격투기 선수로 활약했고, 2013년부터는 프로선수로도 뛴 적이 있는 이색적인 경력을 가진 변호사 출신의 젊은 정치인이기도 하다. 군인이었고 제대 후 지역 우체국에서 일한 싱글맘에게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 엄마가 독일에서 복무하는 동안 태권도를 배우며 운동과 가까워졌다. 하지만 미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강습료가 비싼 탓에 배움을 지속할 수 없었다. 결국 대학에 들어간 후에야, 호텔에서 바텐더를 하는 등 알바를 하면서 가라테, 카포에이라, 태권도 등의 무술을 다시 배웠다.


코치의 권유로 MMA 선수로 활동하기 시작한 그는 로스쿨 입학 후에도 지속적으로 선수 훈련을 계속했다. 그렇게 선수로, 변호사로 활동하던 샤리스 데이비스는 원주민 커뮤니티를 돕는 일을 하기 위해 사우스 다코타 주로 이주했다가 차별을 경험하게 된다. 동성 커플인 자신과 파트너가 지낼 집을 구할 수가 없었던 것. 가장 기본적인 주거권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을 겪으며 그는 자신의 역할을 고민하게 된다.


현 하원의원인 공화당의 케빈 요더(Kevin Yoder)가 2002년부터 주 의회 의원으로 지속적으로 당선되다 2010년부터 국회의 하원의원으로 계속 당선되는 모습을 보던 데이비스는 ’선거에 뛰어들 여성은 없는 걸까?’ 의문을 품고 ‘내가 그 해결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도달한다. “우리에겐 나와 내 가족, 내 친구들이 경험한 일을 경험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8월 14일자 기사, ‘Sharice Davids, who sees past discrimination as her asset, could become the first gay Native American in Congress’)에서 데이비스는 “각기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때 ‘우린 지금껏 이 대화에 누가 빠져 있었는지’를 더 잘 알 수 있다”고 말하며,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의 중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데이비스가 출마한 지역구인 캔저스 주는 미국 내에서도 보수적 성향이 강한 곳으로, 그것이  2010년부터 공화당의 케빈 요더가 계속 당선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이었다. 선거 캠페인 중에 요더는 데이비스가 ‘캔저스의 가치’를 모른다며 쏘아붙이기도 했다. 캔저스의 보수적/전통적 가치에 데이비스(의 성적 지향)가 어긋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캔저스 주의 주민들은 티셔츠를 입고 팔을 번쩍 들어 올렸을 때 크고 멋있는 근육이 드러나는, 그동안의 ‘전통적’ 여성상엔 부합하지 않지만 더 가치 있는 비전을 가진 데이비스를 선택했다.


‘유가족 흑인여성 총기규제 운동가’의 뜻깊은 당선


58세의 흑인여성 루시 맥배스(Lucy McBath)는 2012년 11월 23일, 당시 17살이던 아들 조던 데이비스를 잃었다. 플로리다의 주유소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던 아들은 음악 소리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백인 남성인 마이클 데이비드 던(당시 45세)과 시비가 붙게 되었고, 던이 쏜 총에 사망한 것이다. 이 사건은 인종차별과 혐오범죄, 총기규제에 대한 많은 논쟁을 불러왔다.


아들을 잃고 슬픔에 빠져있던 그에게 어느 날 섀넌 왓츠(Shannon Watts)라는 여성에게서 전화가 왔다. 조던의 사건 3주 후 일어난 코네티켓 초등학교 총기 사고를 계기로 ‘미국 내 총기 규제를 위한 행동을 요구하는 엄마들’(Moms Demand Action for Gun Sense in America)을 설립한 섀넌이 함께 행동에 나서지 않겠냐고 제안한 거다.


이후 맥배스는 이 단체의 대변인으로 활동하며 총기 규제와 관련해 국회에서 증언을 했고, 2016년 오바마 대통령이 총기 제한에 대한 발표를 할 때 그 옆에 서 있었다.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도 총기 규제와 관련한 연설을 했으며 지난 대선에선 힐러리 클린턴의 선거를 도왔다.


지치지 않고 계속 목소리를 높여왔지만 안타깝게도 대선의 결과는 민주당의 패배였다. 이후 3개월 동안 맥배스는 자기 자신을 돌보는 시간을 가지며 ‘이제 뭘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던 중 조지아 주 의회 의원인 레니타 샤넌(Renitta Shannon)이 그를 찾아왔다. ‘조지아 주에서 목소리를 내 달라, 당신의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권유를 받았을 때만 해도 ‘난 활동가이지 정치인이 아니’라고 손사레 쳤던 맥배스였지만, 이내 국회로 출사표를 던졌다. 그 어느 곳도 아닌, 보수 성향이 강한 주로 손꼽히는 곳 조지아 주에서 말이다.


▶ 선거 후 루시 멕배스가 감사의 메시지를 전한 트윗 ⓒ출처: 루시 멕베스 트위터


두 번이나 암을 이겨낸 생존자이기도 한 그는 “나에게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한 최악의 일들이 이미 일어났다. 이제 더 이상 두려울 게 없다”(엘르 6월 27일자, ‘Lucy McBath Lost Her Son to Gun Violence. Next Came Activism. Now She's Running for Congress’)고 말하며 선거에 매진했다. 그의 주요 이슈는 총기 규제이지만, 자신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의료보험 확대’, ‘공공교육의 중요성’도 주장했다. 여성이 자신의 몸과 건강에 대해 선택할 권리도 지지했다.


민주당 경선에서 승리했을 때 맥배스는 “워싱턴에서 할 투쟁은 제 아들을 위한 거고, 전 여전히 엄마고 이게 제가 부모로서 여전히 그 아이를 키우는 방식”(CNN 7월 25일자, ‘Gun control activist Lucy McBath wins Democratic nomination in Georgia House race, CNN projects’)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국회로 가는 최종 승부는 끝까지 검표를 해야 하는 박빙이었지만, 맥배스의 승리로 결론 났다. 이건 1993년 지역구가 재편된 이후 조지아 주 6선거구에서 첫 민주당의 승리기도 했다.


가난한 장애인도, 싱글맘도 정치를 할 있어야 한다


이 외에도 이번 선거에선 최초로 무슬림 여성 하원의원이 선출되는 결과가 나왔고, 최초의 게이 주지사가 탄생하기도 했다. 아리조나와 테네시는 처음으로 여성 상원의원을 선출했다. 아리조나에서 당선된 여성 상원의원은 양성애자이기도 하다.


다양한 인물들만큼 다양한 정책과 진보적인 담론들이 논의된 선거였다. 하지만 여전히 들리지 않는 목소리들도 있다. 특히 장애인 당사자로서 장애인들을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을 보기 어렵다. 민주당의 태미 덕워스(Tammy Duckworth) 상원의원이 현재 활동 중이고, 공화당의 그렉 애봇(Greg Abbott)이 텍사스 주지사에 당선된 적이 있는 정도다.


장애인이 정치를 하기엔 여전히 벽이 많다는 게 큰 이유다. 이동에 제한을 받는 경우도 많아 사람들을 대면하는 활동을 하기 어렵고, 경제적 상황이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쉽게 정치에 뛰어들 수 없다. 아이오와주 의회에 진출하고자 민주당 경선에 후보로 참여했던 자폐증을 가진 장애인이며 싱글맘인 레이마 맥코이 맥데이드(Reyma McCoy McDeid)는 리와이어.뉴스와의 인터뷰(5월 31일자 기사 ‘People With Disabilities Are ‘Severely Underrepresented in Elected Office.’ These Candidates Hope to Change That.’)에서 “적어도 선거를 진행할 때 육아 비용 정도는 선거자금에서 쓸 수 있도록 허용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적 장벽을 낮춰야 한다는 거다.


▶ 자신의 경제적 어려움에 대해 발언한 것을 폭스뉴스가 조롱하자, 반박하는 글을 올린 오카시오-코르테즈 ⓒ출처: 오카시오-코르테즈의 트위터


오카시오-코르테즈는 당선 이후 뉴욕타임즈(11월 7일자 기사)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의회에서의 활동은 내년부터라 3개월 동안 월급이 없다. 그럼 나는 어떻게 워싱턴에서 집을 구할 수 있을까? 당분간 워싱턴으로 이사 가기 힘들 수 있다”고 했다. 보수성향이 강한 언론사인 폭스뉴스에서 이 말을 조롱하자, 그는 ‘가난은 부끄러워하거나 숨겨야 할 일이 아니’라고 반박하며 ‘저소득층을 조롱하는 것이 그들의 입을 막고 소득 불균형을 조장하는 것’이라고 더욱 목소리 높였다.


이번 중간선거를 통해 20대 여성이 직면하고 있는 가난에 대해 이야기하고, 차별받는 성소수자의 위치에 대해 발언하고, ‘절망하는’ 유가족의 모습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변화를 요구한 이들이 국회에 진출하게 되었다. 사회적 불평등과 폭력과 차별에 대한 분노를 승화시켜 목소리 낸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선거에 참여했고, 어느 때보다 많은 구성원들이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지지한 결과다. (박주연 기자)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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