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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인권을 위해 당신이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언어로-독일 난민 여성들의 말하기> 나풀리 랑가 발표문


독일에서 살고 있는 난민여성들의 이야기를 하리타님이 번역, 해제를 달아 소개합니다. 베를린의 정치그룹 국제여성공간(IWSPACE, International Women Space)이 제작한 <우리 자신의 언어로-독일 난민 여성들의 이야기>에 수록된 내용으로, 이주여성과 난민여성으로 구성된 팀이 다른 난민여성들을 인터뷰하여 1인칭 에세이로 재구성했습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보도합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수단 출신의 난민여성 나풀리 랑가(Napuli Langa)는 수단과 우간다 등에서 인권운동을 해왔으며, 2012년 경 독일로 이주한 후 베를린 난민 당사자 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다음은 2014년 8월 6일, 베를린의 ‘28개 문의 집’(House of the 28 Doors)에서 그녀가 발표한 글 I hear you asking yourself “What can I do?”을 옮긴 것이다.


▶ 한 인터뷰 영상 속의 나풀리 랑가. 수단 출신의 나풀리는 우간다에서 먼저 망명 신청을 했으나, 거부당하고 2012년 말에 독일로 왔다. “우리는 먼저 스스로의 두려움을 깨버려야 합니다.” (출처: Yoel Diaz Vazquez, Youtube.com)


우리에게 ‘이동의 자유’를 달라


독일에서 우리들 난민 당사자 운동이 처음 일어난 때로 거슬러 가보겠습니다. 2012년, 어떤 사람이 자살을 했습니다. 모하마드 라세파(Mohammad Rahsepar)라는 이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유럽의 난민 시스템과 인종차별주의에 질릴 대로 질린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모하마드는 ‘내가 살아서 뭐하나?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지? 나는 내 뜻대로 돌아다닐 수도, 이사를 갈 수도, 다른 나라로 갈 수도 없어. 친구를 만나러 가지도 못해’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난민인 당신에게 친구를 보러갈 수 없다고 합니다. 스스로 음식을 해먹을 수도 없다고 합니다. 그들 생각에 당신이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줍니다.


우리는 그가 자살한 것이 아니라고 얘기했습니다. 독일 정부가 그를 죽인 것이라고요. 친구들 몇몇, 생전 그의 친구였던 십여 명은 뭔가 하기로 했습니다. 우리 역시 그 살인 명단에 올라있고, 우리 중 하나가 언제든 모하마드와 같은 길을 갈지도 모르니까요. 사건이 일어난 곳은 독일 중남부 뷔르츠부르크(Wurzburg)였습니다. 우리는 숙소를 나와 다른 난민들을 만나러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숙소들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찾아다니기가 무척 어려웠어요.


그러다, 카라반(Caravan)이라는 단체와 연락을 했습니다. 카라반에 찾아가서 “저기요, 우리가 뭔가 일을 벌어야겠어요. 뭘 할 수 있을까요? 좀 도와주세요. 난민숙소 위치라도 좀 알려줘요. 그러면 친구들을 찾아가서 뭉칠 수 있어요.” 그러고 나서 우리는 한 가지를 결의했어요. 뷔르츠부르크에서 베를린까지 항의 행진을 해서, 독일 당국들에게 그들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알리기로 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난민들은 기본권, 이동의 자유를 박탈하고 있습니다.


베를린까지 가는 데는 여러 날이 걸렸습니다. 저를 비롯한 일부는 버스로 움직였습니다. 이동하면서 중간 중간 다른 난민 활동가들, 그리고 이주민과 난민들을 만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도보 행진팀과 버스팀은 포츠담에서 만나 이틀을 지내고 함께 베를린으로 갔습니다. 베를린에 도착한 것은 2012년 10월 6일. 거기엔 오라니엔 광장에서 텐트 농성(오라니엔 광장의 난민 장기 농성에 대한 기사 “그래, 나는 불법 난민이다!” 참조. http://ildaro.com/8287)을 시작하는 그룹도 있었습니다.


▶ 난민들에게서 인간의 기본권,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를 박탈하지 말라. ⓒ일다(일러스트: 두나)


‘거주의무 폐지’를 요구하며 단식 농성을 벌이다


거리에 나서 집회를 벌이며 당국에 말을 걸었습니다. 그들은 답하지 않았어요. 우리를 어린 애들처럼 다뤘습니다. “그래 좋다, 이 ‘애들’을 한번 시험해봐라, 우리는 여기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단식 농성에 돌입하자 어느 시점에 그들이 협상에 응했고, 우리 그룹에서 네 명이 의회에 갔습니다.


그러나 의회에선 별 소득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기본권을 말했습니다. “난민 집단 숙소가 무엇을 위한 것인가요? 나는 왜 사생활을 가지면 안 됩니까? 왜 내게는 아무 선택권이 없나요?” “나는 장애인이 아닙니다. 심지어 장애인들도 스스로 뭔가 할 수 있는 이들입니다. 나는 신체를 자유롭게 쓸 수 있고 스스로 걸을 수 있습니다. 당신들 돈은 필요 없습니다. 내게 기회를 준다면 자립할 것입니다.”


실로, 지금 난민들은 자기 다리로 걷지 못하는 처지, 숙소에 갇힌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 거주의무(Residenzpflicht)라는 법 규정 의해 난민들의 존재는 ‘40킬로미터’로 제한되었습니다. 40킬로미터 내에서만 돌아다닐 수 있다고 합니다. 평생 동안? 한 20년 쯤? 얼마동안이 될지 모릅니다.


운이 좋으면 체류 허가를 받는 ‘선택된 자들’ 안에 들 수도 있겠지요. 아주 재수가 좋다면. 그렇지 않으면 그냥 갇히는 겁니다. 언제까지가 될지는 신만이 아는… 거주의무 규정은 폐지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형태든 ‘강제 송환’은 일어나선 안 돼


강제 송환도 문제입니다. 전쟁의 희생자들은 어떻습니까? 예를 들어 다르푸르나 리비아에서 온 사람들이요. 폭격을 맞고 여기, 혹은 다른 곳으로 가까스로 피신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치적 사유’가 없다고 해서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건가요? 그리고 또 우리 같은 사람들을 분류하는 카테고리가 있습니다. ‘경제적 난민 신청자’라고 말하지요. 경제적인 이유로 왔다고 하는데, 큰 문제가 있는 용어입니다. 이렇게 말하자니 미안합니다만, 서구 세계가 모든 것을 다 조종하고 있습니다. 그게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드는 이유라는 것을 여러분도 사실 다 알지요.


어떤 형태든 강제 송환은 일어나선 안 된다고 우리는 주장합니다.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문을 열어야 합니다. 난민 신청자들이 유럽으로만 오는 것도 아니라는 점도 지적해야겠네요. 당신들만 난민을 받고 있는 게 아닙니다. 아프리카나 아시아에 가면 수천 수백만 난민들이 있습니다. 전체 난민의 1/3 정도만이 여기 유럽으로 옵니다. 정 난민을 원치 않는다면, 분쟁 지역에서 당신들이 벌이는 그 모든 짓을 안 하면 됩니다. 그만두세요! 그러면 누구도 유럽에 와서 살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 독일의 어느 난민숙소(Schwabisch Gmuend) 앞에서 항의 집회가 열리는 모습. (출처: thevoiceforum.org)


자, 아까 이야기로 돌아가서, 우리는 그런 활동들을 했습니다. 단식 농성을 했고요. 집회를 자주 열었는데, 거기서 에너지를 많이 받았습니다. 우리 스스로에게 말했어요. 당국이 우리를 여기 붙들어둔 시간들은 낭비된 게 아니라고, 우리는 저항을 통해 힘을 얻으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그렇게 오라니엔 광장에서 사람들을 알아가고, 서로를 알아가고, 많은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이주난민 당국과 시 정부에게 말했습니다. “법을 바꾸지 않으면 당신들에게 상황은 더 나빠질 겁니다.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당신들도 이제껏 변한 게 없다고는 못하겠죠.”


저는 6월과 7월 사이에(2013년으로 추정) 있었던 버스 투어에 참여했고, 다른 난민들을 만나러 6개국을 다녀왔습니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등. 무엇보다 이 나라들의 난민 시스템에 공통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보려고 갔습니다. 그래야 함께 연대해서 유럽연합을 대상으로 싸울 수 있으니까요. 보통 시 관할청에 가면 “아, 이건 우리 소관이 아닙니다.”라고 하고, 국가 기관에 가도 똑같은 말을 하거든요. 어딜 가나 사람들은 자기네 책임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럼 대체 누구 책임입니까? 당신들은 거기 왜 있는 거요? 권한이 없다면 거기 있으면 안 되지. 책임과 권한이 있는 다른 사람더러 앉아 있으라고 하세요.


유럽연합에는 더블린 조약 II(Dublin II)라는 게 있습니다. 난민 신청자가 첫 번째로 도착한 유럽연합 회원국에서 지문을 채취하고 그 국가에서 머물러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그 나라에서 망명 신청을 거부당하고 다른 나라로 가면, 사람들은 지문 채취를 한 최초 도착국으로 돌려보냅니다. 그렇게 송환을 반복하다 결국엔 본국으로 보내집니다. 우리는 여기 반대합니다.


6주간의 난민 행진, ‘우리는 평등한 존재입니다’


투어에서 돌아오고 난 후, 조직을 재정비해서 그 사이 합류한 여러 나라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브뤼셀로 걷기 집회를 떠났습니다. 행진에는 6주가 걸렸어요. 독일 남부 프라이부르크에서 프랑스 스트라스부르크로, 거기서 독일로 다시, 독일에서 룩셈부르크로, 그리고 브뤼셀로요. 왜 브뤼셀이냐고요? 유럽연합이라는 기관의 중심부이기 때문이었어요.


유럽의회 건물 앞에서 우리는 모든 사람의 권리인 ‘이동의 자유’를 찾기 위해 왔다고 외쳤습니다. 당장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당신들이 바로 우리의 목적이라고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정부나 기관뿐만 아니라 A, B, C 사안에 투표하는 유권자, 당신 또한 바뀌어야 한다고 했어요. 국경은 누가 만들었나요? 왜? 자본주의 같은 것들 때문이죠.


이곳저곳 계속 옮겨 다니면서 불안감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내가 거주의무를 지키지 않으니 경찰이 쫒아올지도 몰라. 베를린에 있으면 원래 안 되는데.” 그러다가도 동료들과 같이 또 그랬습니다. “이 인종차별 시스템을 우리가 깨야 돼.” 나는 나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 시스템을 존중하지 않습니다. 시스템이 공정해야 존중할 것입니다.


우리가 평등한가요? 왜 나는 당신과 다른 대우를 받습니까? 내가 여러분과 달리 더 심한 통제를 당해야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나의 형제, 자매, (평등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왜 여러분은 스스로 밥을 해먹을 수 있고, 내게는 그게 허락되지 않나요? 여러분은 자유로이 걸어 다닐 수 있고, 나는 왜 못하나요? 여러분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스스로에게 묻는 소리가 들립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스스로도 아시지요. 심지어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이 많습니다. 변화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옵니다. 뭔가 생각해내고, 행동하고, 그리고 자유를 누리세요. 누구나 뭔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난 너무 나이가 많아, 시간이 없어” 라고 하지 마세요. 아직 안 끝났습니다. 죽어 묻히기 전에 뭔가 바꿔야지요. 안 그래요?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 다음 편에서 국제여성공간에서 나풀리 랑가를 인터뷰한 내용이 이어집니다.


나풀리 랑가가 2015년에 발표한 에세이(영문). 2012년부터 독일과 유럽에서 이어져오고 있는 난민 인권운동 이야기를 자세히 접할 수 있다. (발행처: Journal fur kritische Mirgrations- und Grenzregimeforschung) 

https://asylstrikeberlin.files.wordpress.com/2015/11/napuli-langa-refugee-movement-kreuzberg-berlin.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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