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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되지 않기’를 선택한 나!?

[Let's Talk about Sexuality] 나의 섹슈얼리티와 ‘모성’


※ <일다>는 여성들의 새로운 성담론을 구성하기 위하여, 몸과 성과 관계에 대한 다양한 가치관과 경험을 담은 “Let's Talk about Sexuality”를 연재합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비혼 퀴어 여성인 내가 ‘모성’(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그 의미는 ‘여성이 어머니로서 가지는 정신적 육체적 성질, 또는 그런 본능’이다)에 대해 생각하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지금까지 나의 인생에서 모성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최대한 떨어지고 싶은 것이었다. 난 모성이 나와 가까워질까 봐 두려웠다. 누가 나를 ‘모성이 강한 사람’으로 보는 게 싫었다. ‘모성 따위에 엮이지 않는 쿨하고 독립적인 사람’으로 보이기를 원했다. 그게 날 더 강한 사람으로 만든다고 생각했다.


나와 모성의 관계는, 사실 관계랄 것도 없는 그 관계는 누가 누굴 밀어내는지 모른 채 그렇게 계속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 나는 이 관계를 제대로 들여다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나는 모성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에 저항감이 들었고, 최대한 모성으로부터 떨어지고 싶었다.


할머니를 사랑하지만 할머니처럼 되고 싶진 않아


나에게 모성이라는 말과 함께 떠오르는 사람은 우리 할머니다. 물론 엄마도 생각나긴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모성의 존재는 나의 엄마의 엄마인, 외할머니였다. 3년 전에 돌아가셔서 이제는 볼 수 없는 그는, 정말 버선 발로 뛰어나와 나를 반겨주는 그런 분이었다.


할머니는 첫 손주인 나를 정말 엄청 예뻐했고 아꼈다.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거의 바로 옆집에 살았던 탓에, 엄마한테 혼이 날 때면 언제나 달려가던 곳이 할머니 집이었다. 할머닌 그런 날 반기며 큰 소리로 나의 이름을 불러줬다. 고등학교 시절 한창 살이 쪘을 때, 주변의 모두가 나에게 살을 빼야 한다고 얘기했을 때도 유일하게 여전히 예쁘다며 날 치켜세워준 분이기도 했다. 수능 시험을 망치고 가출을 했을 때 달려간 곳도 할머니 집이었다.


할머니가 항상 큰 소리로 말했던 이유는, 그의 목소리가 컸기 때문이 아니라 귀가 잘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좀 더 젊었던 시절, 빚과 관련된 일로 어떤 이가 뺨을 때렸는데 그 때 귀를 다쳤다고 들었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을 거다. 한 친구가 ‘너네 할머니 귀 안 들리잖아, 귀머거리!’라고 놀려서 그 친구와 육체적 싸움을 벌인 일이 있다. 그 때가 내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육체적 싸움이었을 정도로, 내가 가지고 있던 할머니에 대한 애정도 컸다.


하지만 그때도 나는 무언가 직감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무한한 사랑에는 무한한 희생이 따른다는 걸. 언제부터인가 나에게 할머니의 모습은, 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 작디작은 자신의 세상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주변인들에게 쉽게 무시당했고 많은 이들의 화풀이 대상이 되기도 했다. 어쩌면 나도 때론 그것에 가담했을지도 모른다. 나의 할머니로서 그는 너무나 좋은 사람이었고 그를 사랑했지만 나는 그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모성이라고 하는 큰 사랑과 보호를 받았음에도, 난 그 무한한 사랑이 한편으론 두려웠다.


▶ 얼마 전, 장례식 이후 처음으로 할머니를 찾아뵈었다. 내 기억보다 젊어 보이는 그의 얼굴이 왠지 날 좀 슬프게 했다.


모성=희생, 엄마=무성적 존재라는 인식


‘모성=희생’이라는 공식이 모성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줬기 때문에 내가 모성과 멀어진 거라고 설명한다면, 그건 밖으로 말하기 쉬운 버전의 내용만 말하는 거다. 사실 오랫동안 ‘모성/엄마 되기’와 나의 섹슈얼리티는 지속적으로 서로를 거부하고 질투하며 충돌하고 있었다.


나의 ‘진짜’ 섹스 이후(‘진짜’라는 말을 붙인 이유는 그 전에 여러 번의 무의미한 ‘가짜’ 섹스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스스로 ‘성적인/섹슈얼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걸 표출하는 게 꽤 중요했다. 단순히 오르가즘이라는 순간을 느낄 수 있어서가 아니라 나를 ‘특별한 무언가’로 만드는 그 힘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난 나를 덜 섹슈얼하게 만드는 것들을 극도로 경계했다. 그리고 그 중 단연 1순위는 ‘엄마 되기’였다.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TV나 영화에선 종종 ‘어느 가족의 엄마인 여성이 아빠인 남성을 유혹하려고 하거나 다가가면 남성이 기겁하며 “가족끼리 왜 이래!”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화나지만, 그런 장면은 개그 코드로도 많이 쓰였다. 그런 장면들이 나의 사고 체계를 일부 장악하게 된 건, 슬프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엄마라는 존재는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무성적 존재라는 통념 말이다.


고로 나의 일부는 모성을 가진 존재가 된다는 건 어떤 ‘여성성’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 덜 섹슈얼한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난 ‘여자라면 태어날 때부터 누구나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모성’이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실패를 반복한 뒤 겨우 발견한 나의 ‘특별한 섹슈얼함’을 망가뜨리는 게 싫었다.


▶ 모성이라고 하는 큰 사랑과 보호를 받았음에도, 난 그 무한한 사랑이 한편으론 두려웠다. ⓒ일다


엄마가 ‘되고 싶지 않은/될 수 없는’ 나


성적 지향 혹은 성정체성이라는 말의 존재나 의미를 전혀 알 수 없었던 아주 어렸을 시절부터 난 결혼을 꿈꿔본 적이 없다. 이 말은 곧 엄마가 된다는 것을 꿈꿔본 적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성장하며 나에 대해 더 알아가게 되면서 그 생각들은 더욱 확고해졌다.


이 사회가 나에게 알려주고 강요하는 엄마가 되는 방법은, 오직 생식 기능이 있는 남성과 짝을 이루는 것뿐이었다. 그러니 퀴어(바이섹슈얼→레즈비언→판섹슈얼로 정체화하는 과정을 거친 후 스스로를 퀴어라고 부르는 게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하고 있다)인 내가 ‘정상적’ 결혼을 하고 아이를 출산하거나 혹은 양육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였다.


그러니까 난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지만, 될 수도 없었다. 난 오랫동안 스스로 ‘엄마가 되고 싶지 않은 나’의 삶을 ‘선택’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사실 이 사회에서 난 애초에 ‘엄마가 될 수 없는 존재’라는 걸. 그렇기 때문에 감히 꿈꾸지 않았던 것 아닐까. 나의 존재만으로 여러 꿈들이 벽에 부딪히는 상황에서, 또 다른 꿈이 좌절되는 걸 겪고 싶지 않으니까.


‘모성 따윈 없는 쿨한 나’라는 셋팅은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큰 혼란이 함께 밀려왔다. 일단 어떤 것이 나의 선택인지 알 수 없었고, 나의 감정들 속에서 정말 어느 게 진짜 감정인지, 나를 보호하기 위해 진짜인 척 주입한 감정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모성과 나, 그 관계 안에서 난 길을 잃었다.


선택과 가능성, 모성의 더 넓은 의미를 생각하며


이런 혼란의 과정을 겪으면서도 모성과 나의 관계를 들여다보게 된 건, 페미니즘을 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낙태죄 폐지’ 이슈가 가장 큰 계기였다. 사실 처음 ‘낙태죄’ 이슈를 접할 때만 해도 딱히 나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가임기 여성 지도를 만드는 정부와 주변의 많은 이들이 나에게 ‘자궁 있는 존재’을 상기시켜 주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낙태죄 폐지’가 단지 형법상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에 국한되지 않고, 국가로 대표되는 가부장제 권력이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어떻게 통제하고 있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나와 정말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문제란 걸 깨달았다. 가족을 이룰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 나에겐 엄마가 될 수 있는 선택지가 없듯이, 나의 모성 또한 국가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 나와 함께 사는 고양이. 처음 데리고 왔을 때부터 난 ‘엄마’라고 하지 않았고 여전히 이 고양이의 ‘누나’다. 왜 난 나를 반려묘의 엄마로 위치하지 못했을까? 그 이유를 이제 들여다보고 있다.


치열하게 나와 대화를 했다고 생각했음에도 여전히 모성은 두렵게 느껴진다. 내 안에 잠재된 혐오와 질투, 애증의 실타래가 풀리기 위해선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이젠 모성과 섹슈얼함이 충돌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엄마라는 존재가 다 같은 무언가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 안의 다양성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다. 할머니의 삶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몰랐던 그의 삶이 너무 궁금한데, 이제 물어볼 수 없다는 것이 슬플 뿐이다.


며칠 전, 거의 3년 만에, 한국에서 오래 거주 중인 외국인 친구를 만났다. 그리고 이제 곧 만 3세가 되는 딸도 처음으로 만났다. 딸이 태어났을 때부터 보고 싶었는데, 서로 다른 지역에 산다는 이유로 좀처럼 기회가 생기지 않았었던 탓에 이번 만남이 더 소중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는 것도 좋았지만, 그 가족을 본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또 어떤 가능성을 제시해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친구의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딸과 놀고 있는 나의 모습이 생소하기도 했다. 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데 굉장히 서툰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좀 덜했다. 나의 심경에 변화가 생겨서였을까?


무엇보다, ‘엄마가 둘’인 퀴어 가족을 보며 다시 한 번 나의 모성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나의 모성과 벽 없이 마주할 수 있으려면, 어떤 제약이나 규제 없이 엄마가 되거나 또는 되지 않는 것을 정말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어야 한다는 걸.


이제 난 모성과 나의 관계를 다시 차곡차곡 쌓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출산이나 양육 계획을 세우겠다는 말이 아니다. 모성을 나의 섹슈얼리티의 하나로 두고, 그에 대해 고민해보겠다는 의미다. 또한 ‘엄마 되기’ 이외에 모성이 가질 수 있는 더 넓은 의미를 찾아볼 생각이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그 모성을 지키기 위해 투쟁할 준비도 되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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