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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새지평

‘민주노총의 위기’ 야기한 일상의 문화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09. 4. 1. 11:10
▲ 새 지도부 선출을 앞두고 변화를 이야기한다 
  

필자 김은아씨 (증권노조 교육선전실장, 신흥증권 위원장 역임)

민주노총은 지난 달 12일 혁신대토론회를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민주노총은 정규직 조직노동자들의 이익을 실현하는 대변자로 전락’했고, ‘성폭력 문제는 민주노총의 인권의식과 성인지감수성 부재가 원인’이라는 등의 지적이 나왔습니다.

 
성폭력사태와 재정, 인사비리 등으로 표출된 민주노총의 위기는 몇몇 간부들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민주노총은 성폭력 사건을 책임지고 지도부가 사퇴한 후, 새로운 임원을 선출하기 위해 4월 1일 오늘 선거를 실시합니다. 혁신의 책임을 지게 된다는 지도부 선출을 앞두고, 민주노총 상층과 산하 노동조합, 노조간부를 포괄한 일상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일상적인 사례를 통해 짚어보는 노동조합의 문화
 
이야기 하나. 민주노총 산하 조직들 중에는 손님접대를 위한 차 심부름, 전화 받기, 도서정리, 청소 등의 업무를 위해 아르바이트나 상근간사를 채용하는 곳이 있습니다. 이 노동을 하기 위해 채용된 사람은 대부분 여성입니다. 주로 여성이 가사노동을 담당하고 있듯, 직장 내에서 가사노동과 유사한 형태의 노동 역시 여성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현장에서 노조상근을 하기 위해 올라온 여성간부들에게는 주로 회계업무가 주어집니다. ‘살림살이는 여성의 몫’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노조의 여성간부들은 회사에서 하위 직급에 편재되어 있다가 노조간부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 경우 여성간부들은 회사에서의 지위와 노조 내에서의 지위가 높은 남성간부들에 비해, 하위적 지위로 인식되며 부차적인 일을 하게 됩니다.
 
이야기 둘. 회사에 사장실과 임원실이 있듯이,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노동조합 사무실에는 위원장실이 따로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업무나 소통을 위해 자리를 배치하기보다는 권위를 중심으로 자리가 편재됩니다.
 
또한 노동조합에서는 흡연이 자유로운 경우가 있습니다. 회사 건물전체가 금연빌딩이어도 노조사무실만 흡연이 허용되는 사례도 많습니다. 노동조합의 특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으며, 그 자리에 앉아서 함께 끽연을 하는 조합원들은 대부분 남성입니다.
 
이야기 셋. 노동조합들간에도 권력과 서열이 있습니다. 조합원이 많은 노조, 조합비를 많이 내는 노조, 정규직 노조는 상대적으로 권력을 가집니다. 반면 작은 노조, 비정규직 노조는 영향력이 별로 없거나, 정규직 노조의 눈치를 봐야 합니다.
 
이야기 넷. 노동조합과 상급조직들 중에는 선출된 임원들이 노조에 채용돼 활동하는 상근자들의 인사에 대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노동자에게 노동력의 대가로 임금을 지급하면서 권력을 휘두르는 자본가를 비판하면서도, 노동조합 임원들은 비슷한 모양으로 상근활동가들의 인사에 관한 권력을 행사하기도 합니다. 이로 인해 노조 안에서 다양한 줄서기가 이루어집니다.
 
이야기 다섯.
각종 회의나 뒤풀이에서는 의견이 다른 개인이나 그룹에게 인신공격, 누명, 위협, 욕설, 물건 파손 등의 심리적 폭력이나 신체적 폭력이 가해지기도 합니다. 폭력은 일상화된 문화이고, 권력의 그림자입니다.

 
물리적 폭력뿐 아니라 언어적 폭력을 목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때문에 노동조합 활동과정에서 부당한 처우를 겪게 되는 사람들이 많으며, 특히 다수와 의견이 다른 개인이나 소수그룹, 상대적 약자들은 이러한 상황에 더 노출됩니다.
 
폭력의 피해자는 여성만이 아닙니다. 채용상근, 낮은 직위, 나이, 다른 정파가 그 사유가 되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남성들이 겪는 피해는 남성적 조직문화 속의 피해자로 인식되지도 않고 묵살됩니다. 일상의 폭력은 조직을 위한 것이고, 전체를 위한 것이라고 포장됩니다.
 
노동조합의 일상이 이런 방식으로 위계적으로 편재되고, 상대적 약자와 성별에 따른 권력관계가 자연스럽게 여겨지기 때문에 성폭력도 발생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성폭력을 포함한 모든 폭력은 불평등한 권력구조에서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노동조합에서 발생하는 세 가지 윤리적 문제들
 
조금 다르지만 같은 이야기입니다. 민주노총 등 노동조합에서 발생했던 대표적인 세 가지 윤리적 문제들도 이런 권력관계와 유사합니다.
 
첫째, 인사개입, 인사청탁입니다. 노동조합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 중에 “노사는 대등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용자에 비하여 약자인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이라는 단체를 통해 사용자와 대등한 위치에서 교섭할 권리가 있고, 투쟁을 통해 권리를 쟁취하는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힘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등한 노사관계라는 힘의 균형은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돌파점에 의하여, 자본의 일시적 양보에 의하여 주어집니다. 사용자들은 노동조합과 주고받기를 통한 평화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조합에게 일정 정도 권력을 이양합니다.
 
사용자가 아주 조금 양도한 권력에는 노동자들의 고용 핵심인 ‘인사권’이 있습니다. 노조가 이 권한을 조금이라도 확보한다면, 그 권한은 자본에 대한 노동의 종속을 완화하는 것으로 쓰여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노조들은 이 권한을 인사권에 대한 노조의 권력행사로 이해하곤 합니다. 이것이 남용되면 인사채용비리, 인사청탁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조합원이 사용자가 아닌 노조에 눈치를 봐야 하기도 합니다. 권력은 늘 상대적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재정비리입니다. 노동조합의 인적, 재정적 자원은 사회운동단체들에 비교할 때 적지 않은 수준입니다. 큰 노조일수록 이러한 권한은 매우 막강합니다. 조합비를 집행하는 과정이 투명하고 체계적이지 않으면서, 조합비 집행에 대한 결정권을 간부들이 남용하기 시작하면 조합비는 쉽게 부적절한 용도에 사용됩니다. 과도해지면 횡령, 금품수수 등의 재정비리가 생깁니다.
 
관리감독 시스템도 허술합니다. 집행부가 조합원들에 의해 민주적으로 결정된 사항을 집행하는 단위가 아니라, 노동조합 조직운영과 조합원에 대한 권력이 있는 사람이나 조직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성폭력입니다. 100인 위원회의 운동사회 내 성폭력 공개 이후, 민주노총 내에는 성폭력 관련 규약과 교육이 생겨났습니다. 다른 측면에서는 여성할당제가 도입되면서 여성노동자들의 의사결정기구 참여가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개발되지 않은 채, 일상적인 폭력상황에 노출된 노동조합에서 성폭력은 지속적으로 발생해왔습니다.
 
아직도 노동조합 내에서 여성의 지위는 부차적이며, 노동운동 내 여성에 대한 차별과 배제는 일상화되어 왔고, 성적 차이가 어떻게 위계화되고 차별적이 되는지 성찰한 적이 없습니다. 어쩌다 선거나 주요 이슈에 여성간부들이 끼워 맞추기 용으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무엇이 달라졌나?
 
이 대표적인 세 가지 유형의 사건이 발생하면, 항상 조직보위가 수면으로 떠오릅니다. 정권과 자본이라는 상대방이 있는 투쟁하는 조직에서, 적에게 우리의 약점과 비리가 알려지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전체와 조직을 위해 개인의 인권은 조용히 자리를 비켜야 합니다. 조직을 위해서는 너무 예민해서는 안됩니다. 피해자가 조직보위를 거스르고 목소리를 내면, 피해자는 조직에 대한 가해자로 변신하기도 합니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이 민주노총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 어느 곳에서나 존재하고, 가부장적인 운동사회에 만연한 문제일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폭력이 일상화되고, 인권과 성인지감수성이 부재한 현실이 위로되지는 않습니다.
 
민주노총은 성폭력사건을 계기로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성폭력과 관련하여 규약에 따라 조사하고, 가해자를 처리하고, 예방교육을 실시하는 것, 지도부가 물러나고 선거를 다시 하는 것이 달라진 모습일까요? 민주노총의 조합원들은 과연 이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민주노총이 성폭력 사건을 통해 확인해야 할 것은 이번 사건을 통해 규약 개정, 가해자 처벌, 사건의 정리나 일부 공개 방식의 논리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작동구조와 폭력성을 아주 세밀하고 민감하게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성폭력은 권력에서부터 기원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하고, 민주노총과 산하조직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과 권력이 작동되는 방식을 예민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회나 조직 구성원들이 성폭력을 포함한 폭력의 문제, 위계의 문제를 자각할 수 있는 인지능력이 업그레이드되어야 문제는 해결될 수 있습니다. 느리고 어렵고 힘들어도 조합원들과 함께 다른 조직, 다른 관계, 다른 대안을 만드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아래로부터의 치유의 힘을, 다양한 개인과 세력들과 함께, 통념과 구조를 바꿀 수 있는 토론과 교육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레오 톨스토이는 “모두가 세상을 변화시킬 생각은 해도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우리사회에서 세상을 바꾸겠다는 대표적인 운동조직인 민주노총과 사회변혁이나 변화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말입니다.
김은아| 전국증권산업노동조합 교육선전실장, 신흥증권 위원장을 역임하였으며, 일다의 편집위원입니다. 일다는 어떤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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