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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여성은 ‘아이 낳는 사람’이 아닙니다
[Let's Talk about Sexuality] 나의 몸은 누구의 것인가?
※ <일다>는 여성들의 새로운 성담론을 구성하기 위하여, 다양한 여성들의 몸과 성과 관계에 대한 가치관과 경험을 담은 “Let's Talk about Sexuality”를 연재합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이번 칼럼의 필자 레티마이투 님은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사무국장입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나는 베트남의 북부 한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어릴 시절부터 학교에 다니면서 가족의 농사일을 도우며 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에서 갑작스럽게 국제결혼이 사람들의 주 관심사가 되었다. ‘한국에 가면 더 잘 살 수 있다’, ‘한국 남성들은 아내를 잘 대해준다’,‘농사일을 해도 기계로 하기 때문에 베트남처럼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된다’ 등의 말들과 함께 한국에 대한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서 퍼져나갔다.
한국을 그저 영화 속에서만 접했던 젊은 층에서는 한류스타 열풍 이후, 한국은 꼭 가보고 싶은 곳이 되었다. 더구나 내가 사는 동네는 이미 오래 전부터 미국, 캐나다 등으로 전쟁 이후 생계가 어려워져 이주를 통해 자리를 잡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이 보내온 외환으로 일부 가족들이 부유하고 더 나은 삶을 살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주에 대해서 좋게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국 남성과의 국제결혼에 대해서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도 국제결혼을 통해 2005년에 한국에 왔다.
▶ 이주여성 그림전에 출품되었던 한 베트남 여성의 고향을 그린 작품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다른 나라, 다른 세대 사람과 ‘중개’로 결혼한다는 것
국제결혼을 선택하게 된 이유를 물어보면 대부분 이주여성들은 “더 나은 삶을 찾아가기 위해 ‘약속의 땅’을 찾으러”라고 답한다. 잘 모르는 나라로 가서 살겠다고 결심하다니 참 용감한 여성들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한편으로는 조금 무모한 감도 없지 않았나 싶다. 한국말도 모르고, 한국 문화도 잘 모르며, 모르는 사람과 짧은 시간에 만나 결혼하고 한 집에서 산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혼을 ‘할 수 있지만’ 결혼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한국 초기 적응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대부분 여성들은 상상하지 못 한다. 물론 나도 그랬다.
결혼까지의 과정도 쉽진 않다. 두 사람이 만나 결혼을 결정하고 나면 양쪽 나라에서 혼인신고를 한 후 한국 남편이 초청서류를 보내야 아내가 비자를 발급 받아 한국으로 올 수 있다. 남편의 초청이 있어야 한국에 입국할 수 있기 때문에, 결혼을 했다가 남편의 변심으로 한국으로 오지도 못 하고 이혼도 못 한 채 혼인 상태로 남는 경우도 종종 있다.
또 결혼중개업을 통해 결혼을 하다 보니, 서로에 대해서 잘 모르기도 하고 말도 통하지 않아서 중개업체와 그곳에서 제공한 통역의 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배우자에 대한 거짓 정보 문제가 많이 생겼다. 법적으로 규정이 없었던는 탓에,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는 남성을 만나 일정한 거주지 없이 떠돌거나 고시원 등에서 사는 여성도 있었다.
때론 자신의 의지로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나 형제들의 권유로, 성인이 되었으며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아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떠밀려 결혼하는 사례도 있다. 같은 나라에서, 같은 문화권에서 살았어도 두 사람이 부부가 되어서 사는 것이 성격 차이, 생활 방식 차이 등으로 인해 갈등이 생기기 마련인데, 다른 세대 다른 나라에서 살아온 사람이 한 집에서 사는 것은 더욱더 쉽지 않은 일이다.
나를 괴롭히는 말들 ‘아이가 왜 없냐, 병원은 가봤냐’
한 7년~8년 쯤 전이었다. 내가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일한지 어느 정도 되자 외부 회의, 교육 등에 참석할 기회가 많이 생겼다. 어느 날, 한 연대회의에 참석했다. 갑자기 누군가가 날 ‘어머니, 어머니’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나를 부르는 줄도 모르고 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알고 보니 한 여성사회복지사가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저요?’ 라고 놀라면서 대답을 했다. 결혼이주여성은 누구의 아내, 며느리일 뿐만 아니라 당연히 ‘어머니’여야 했던 것이다. (보통 이런 회의 자리에서는 참석자들을 직책으로 부르거나 ‘선생님’이라고 칭한다.)
당시 난 한국어를 잘 몰랐기도 했지만 아이가 없는데 왜 나를 어머니라고 부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그 사회복지사는 물론이고, 대부분 사람들이 결혼이주여성들은 당연히 아이를 출산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즘 젊은 한국 사람들 사이에 1인 가구가 많아지고 있고, 결혼을 했어도 자녀를 출산을 하지 않은 부부들도 꽤 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결혼이주여성들은 그런 상황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 같다. 결혼을 해서 한국에 왔으면 아이를 낳아야 하고, 어떠한 이유로 아이가 생기지 않거나 혹은 낳지 않으면 ‘정상가정’이 아니라고 의심을 받기 십상이다. 나도 아이가 없었기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아이가 왜 안 생기느냐, 아이를 낳아야지, 병원에 가봤나? 병원에서 뭐래?’ 등의 질문을 받곤 한다. 그럴 때마다 너무나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저 방어적으로 ‘아직 안 생겨서요. 천천히 가지려고 합니다.’ 라고 답하면 또 다른 ‘친절한 조언’들을 듣는다. 어디에 가면 아기 잘 생기게 해 주는 보약 가게가 있다는 둥, 이런 저런 약을 먹으라는 둥. 그런 얘기를 들을 때면 ‘내가 아이가 없는 것이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내가 그들의 조언을 듣지 않을 때는 그들로부터 낯선 시선을 받게 된다. 내 앞길을 천천히 걸어가든 빨리 걸어가든 어떤 방향으로 걸어가든 내 마음인데, 왜 주변 사람들로부터, 특히 처음 얼굴 본 사람들로부터 그런 ‘관심’을 받게 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이주민이어서 관심을 가져주는 건 고마운 일이지만 ‘정말 이런 관심은 가져주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그렇게 정확하게 내 마음을 표현하긴 어렵다. 사람들이 처음 본 나에게 사적인 질문들을 쏟아낼 땐 어찌 할 바를 몰라 당황하게 된다.
아이 없는 이주여성은 국적 취득에도 불이익 받아
이런 시선만이 다가 아니다. 나는 물론이고 다른 이주여성들도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한국 국적을 신청하는데도 불이익을 받았다. 한국 남편과의 사이에 자녀가 있는 경우엔 국적을 신청하고 늦어도 평균 1년 정도면 귀화 허가 통지서를 받아 주민등록 신청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30개월이나 걸렸다.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아이 없는 부부가 위장결혼을 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2007년부터 한국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지만 2012년에야 한국 국적을 받아 연금보험에 가입할 수 있었다.
아이가 없는 것이 의심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국제결혼’이 한국에서 저출생으로 인한 고령화 문제와, 농촌에서 결혼 상대를 찾지 못해 결혼 적령기를 놓친 농촌의 노총각을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결혼이주여성을 위한 정책도, 한국에 들어와서 자신들의 역량을 강화하여 삶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이 아니다. 한국 사회와 한국 문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아내, 며느리, 가정주부로서 집안일 잘 하고 가족을 잘 돌볼 수 있게 지원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정책은 결혼이주여성이 가족이란 제도 안에 갇히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제도와 사회적 시선 속에서 나처럼 아이가 없는 국제결혼가정은 위장결혼이 아니냐고 의심을 받고, 무엇인가 ‘정상적’이지 않은 가정이 된다. 그리고 국제결혼을 했는데 아이가 없고, 한국 국적을 받기 전에 합의이혼을 한 경우는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무급 노동력, 자궁으로 취급되는 이주여성의 몸
내가 일하고 있는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지난 5월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 폭력 피해 여성들의 생존 분투기>를 발간했다. 통제, 경제적 착취, 물리적 폭력, 양육권, 자립, 체류권과 성폭력 총 7개 주제로 다양한 사례들이 소개되어 있다. 결혼이주여성들이 가사노동과 경제활동을 하고 있지만, 정작 그 노동에 대해 인정을 받지 못하고 그저 결혼이민자로만 인식되며 온갖 폭력과 차별에 시달리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발간한 책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 폭력 피해 여성들의 생존 분투기>
결혼이주여성을 인격체가 아닌 ‘노동의 도구’로만 인식하는 경우도 있다. 기본적인 권리인 언어를 배울 권리를 박탈하고 “밭에서 같이 일하려고 데려왔다. 한국어 배우러 다닐 시간에 농사일이나 하라”며 무시한 사례도 있었다. 이주여성이 경제활동을 통해 얻은 수입을 스스로 관리할 기회를 박탈하기도 한다.
이주여성의 몸, 과연 누구의 것일까? 이런 질문을 하면 대부분 사람들이 이렇게 답할 것이다. “사람의 몸은 자신의 것이고, 한국 여성의 몸이든 이주여성의 몸이든 그 사람의 것이다” 라고 말이다. “왜 그렇게 당연한 질문을 하나요?” 라고 오히려 질문이 되돌아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상담을 통해 만난 사례들을 보면 이주여성의 몸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주여성의 몸, 정확히 얘기하자면 이주여성의 자궁이 남편과 시집가족의 것이 되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를 시끄럽게 한 ‘현대판 씨받이 사건’이라 불리는 일도 있었다. 남편이 과하게 성관계를 요구하거나, 포르노를 보여주며 똑같은 성관계를 요구해서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이혼을 결심한 사례들도 있었다. 형부, 시아버지 등 시집가족에게, 결혼중개업자한테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도 있었다.
‘돈 주고 사왔다’는 인식이 문제
나는 여성이든 남성이든, 이주민이든 선주민이든 모두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으며 한 명 한 명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결혼이주여성이 ‘결혼을 목적으로 이주해 온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무시를 일삼고, 성적 대상화하며 함부로 해도 되는 존재라고 인식하는 문제는 꼭 바뀌어야 한다.
이런 인식에는 일부 한국인 남편과 그 시집가족도 한 몫을 한다. 대부분 한국남성이 결혼에 따른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결혼이 이루어져서(여성들이 현지 국제결혼중개업체에 지불하는 경우도 있다), 일부 가족들이 ‘이주여성을 돈을 주고 사왔다’고 잘못된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다.
결혼비용이란, 남성이 비행기를 타고 현지에 가서 여성을 만나 결혼식, 결혼서류 등에 드는 비용을 중개업자한테 지불한 것일 뿐, 여성에게 주는 것이 아니다. 이런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결혼을 통해 부부와 가족이 되는 사람들 사이에 불신과 무시와 차별이 시작된다. 이주여성을 통제하고, 폭력과 폭언 등으로 이어지며 때로는 목숨을 빼앗아가는 사례도 발생한다.
결혼이주여성, 시작을 국제결혼으로 했지만 모두 존엄성이 있는 사람이다. 이주여성도 본국에 가족이 있고, 그 가족한테는 소중한 딸이고, 언니, 누나, 동생이다. 한국 가족들로부터 이주여성이 존중받으며, 한국 사회에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와 지지, 응원이 필요하다. 그것이 이주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편, 자녀, 시집가족과 이 사회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여성도 남성도 선주민도 이주민도 ‘내 몸의 주인은 나’
이주여성들의 몸은 남편, 시집가족, 국제결혼 중개업체 혹은 주변인들의 소유가 아니라 이주여성 그 사람의 것이다. 자신이 관심이 있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서 이주여성의 몸과 결혼, 임신, 출산 여부 등 개인의 삶에 대해서 서슴지 않고 질문하는 것을 조금 조심해주었으면 한다. 물론 많은 분들이 이주여성에게 관심을 가져준다고 친절하게 다가오지만, 그 친절도 상대방의 입장에서부터 생각했으면 한다.
요즘 개인정보보호가 더 중요해진 시기에 한국여성, 한국남성들에게도 결혼과 출산을 물어볼 때 조심스러운데, 길에서 모르는 이주여성에게 단지 내가 관심이 있다고, 궁금함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이 좋지?’ ‘남편이 잘 대해주지?’ 묻거나, ‘남편이 몇 살이고, 아이가 있는지, 몇 명인지, 아이가 없으면 왜 없는지’ 등 질문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서 ‘왜?’ ‘그럼 뭐 물어보란 말이냐, 아예 안 물어볼 테니, 관심을 안 가질 것이야’ 하며 서운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결혼을 했어도 아이가 안 생길 수 있고, 아니 안 가질 수도 있고, 이혼을 했을 수도 있다.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남편이 잘 대해주느냐고 묻고, 힘들게 노력했는데 아이가 안 생기는 것도 서러운데 왜 안 생겼냐고 이상한 눈빛을 보내며 병원을 소개해준다면, 그것은 관심이 아니라 상처를 주는 행위가 될 수 있다. 결혼이주여성도 임신, 출산을 선택할 권리와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다.
이주여성은 당신과 ‘같은’ 존엄성을 가진 존재다
한국 사람도 해외로 많이 나가듯이 한국에도 이주민들이 많이 들어와 함께 일하며 살아가고 있다. 내 입장에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로 시작하는 것. 동남아시아에서 왔다고 ‘아이고 불쌍한 것’ 한두 마디를 듣고, 영혼 없는 칭찬인 ‘한국말을 잘 하네’ 소리를 듣는 것보다는 잘 왔다며 반가워해주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선주민과 이주민의 연대. 불신하거나 연민하지 않고 환대해주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나의 인권이 소중한 만큼 남의 인권도 소중히 생각하는 내가 되는 것. 이 작은 것부터 실천하기 시작해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고 싶다. 이주여성이 어느 나라에서 왔든, 피부가 무슨 색이든, 그 나라가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더 어렵거나 혹은 더 여유가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가진 배경과 외모로 판단하고 평가하지 않았으면 한다.
물론 이런 노력이 한 개인이 한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이주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 무시, 폭력, 성을 상품화하는 온라인 국제결혼광고 등이 사라지기는 어렵다. 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한국여성과 이주여성들의 연대가 필요하다. 그리고 정부의 결혼이주여성 지원정책이 ‘저출산 해소’와 ‘가족 돌봄’ 정책이 아닌 이주여성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온라인에서 이주여성의 성을 상품화하는 국제결혼중개업 광고를 단속하고 규제할 필요가 있다. 학교 교육에서부터 진정한 ‘다문화’인 다양한 나라에 대한 이해와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배울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나는 이주여성 당사자 활동가로서, 더 많은 이주여성 당사자 인권활동가들이 생겨서 이주여성의 목소리를 내며 이주여성의 현실을 알릴 수 있길 바란다. 결혼이주여성들은 가정주부로서 남편과 자녀와 시집가족을 돌보는 존재거나 출산하는 도구가 아니라는 것. 우리도 사람이며 존엄성이 있다는 솔직한 목소리를 냈으면 한다. 이주여성이 존중받고, 당당하게, 가족에 속한 사람이 아닌 이주여성도 꿈이 있고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존재라는 걸 알리고 싶다. 이주여성이 편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가 되길 희망하며 나는 지금도 이주여성들의 인권 현장에서 뛰고 있다. (레티마이투)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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