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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하는 십대여성이 듣게 되는 말

[Let's Talk about Sexuality] 여성청소년의 성적 욕망 (이기)


※ <일다>는 여성들의 새로운 성담론을 구성하기 위하여, 다양한 여성들의 몸과 성과 관계에 대한 가치관과 경험을 담은 “Let's Talk about Sexuality”를 연재합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나의 가장 오래된 과거의 기억, 자위


‘당신이 떠올릴 수 있는 가장 과거의 기억은 무엇인가요?’


수업 시간에 나온 질문이다. 가족들과 갔던 제주도 여행을 회상하는 사람도 있고, 같은 아파트 단지 친구들 사이에서 어울리지 못했던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 속에서 말하지도 못하고 우물쭈물 거리다 결국 차례를 넘겼다.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은 자위를 하는 어린 나 자신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어린이집에서 수증기를 그리는 수업을 했을 때 의자 모퉁이에 아슬아슬하게 앉아 그림을 그리던 내 모습이 기억난다. 날은 더웠고, 내가 하고 있는 걸 뭐라 부르는 지도 몰랐다. 오묘한 기분에 계속 모퉁이에 꾹꾹 누르다가 결국 수업이 끝나버렸다. 그 후에 수증기를 잘 그렸다고 칭찬 받은 일까지 기억이 나니 제법 선명한 기억이다.


언제부터 했는지,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이 날 즈음부터 이미 자위는 내 일상의 동반자였다. 어쩌면, 나는 될성부른 자위 천재였는지도 모른다. 시도 때도 없이 하고 싶으면 자위를 했다. 의자에 매달려서 하는 자위는 해 본 사람 아니면 아무도 그게 자위인지 모를 정도로 감쪽같다. 그래서인지 한번도 들키지 않고 열심히 했다.


어렸을 적의 나는 성에 관심이 정말 많았다. 다른 사람들이 ‘너는 맨날 성이랑 관련된 책만 빌리냐’고 놀리면, 나는 베르사이유 같은 ‘성’인줄 알고 빌린 거라며 투덜거리면서도 열심히 읽었다. 책을 읽으며 ‘자위’라는 단어를 알게 됐다. 문제는 여성의 자위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는 거다. 남성의 자위는 숫자까지 매겨가며 정성스럽게 가르치는 반면, 여성의 자위 방법은 적혀있지도 않았다.


유일하게 여성 자위에 대해 적혀있던 내용은 ‘여성이 자위를 많이 하면 대음순이 늘어날 수 있다’는 문장뿐이었다. 그 문장을 읽으며, 덜컥 겁이 났다. 이유 모를 죄책감도 들었다. 혹시 너무 늘어나서 수술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면서도 자위는 계속했다. 하지만 그 후 나의 쾌락 속엔 오롯이 쾌락만 있지 못하게 되었다. 죄책감과 걱정이 불쑥불쑥 올라왔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그런 복잡한 감정 속에서 자위를 하고 있는데 엄마가 불쑥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자위할 때 참고한 야한 만화를 폴더에서 삭제하지 않은 걸 그제서야 깨달았다. 엄마는 나에게 화내지 않고 그대로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외로워서 그렇게 한거니? 이해할 수 있어.” 엄마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전혀 외롭지 않았지만, 기분 좋아서 했다고 말할 순 없었다. “맞아, 외로워서 했어. 미안해” 라고 말하며 울었다.


그렇게 눈물의 자위성사를 하고도 나는 자위를 멈추지 않았다. 단지 쾌락 속에 죄책감과 걱정의 부피가 더 커졌을 뿐이다. 한참이 지나 페미니즘 활동을 시작한 후로 여성도 성욕이 있고, 그걸 표출하는 게 당연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위는 나쁜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아직도 죄책감과 걱정을 떨쳐내는 건 버겁다.


부끄러워! 더러워! 감춰!


과거에 자위를 할 땐 죄책감, 걱정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성적인 행위임을 인식하자마자 죄책감과 걱정은 물밀듯이 밀려왔다. 이제는 이유를 안다. 나는 죄책감을 학습 받아왔다.


“다 큰 여자애가 어디 잠지를 훤히 내놓고 자고 있어!”


7살 때 대자로 누워 잤다고 들은 소리다. 사람들은 내 보지와 나에게 수치를 가르치려 안달복달해왔다. 아주 옛날부터, 어쩌면 내가 여자아이로 태어난 순간부터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짧은 치마를 입으면 다리를 가리라고 했고, 목이 늘어진 상의를 입으면 스카프를 매주고는 했다.


TV를 켜면 나오는 섹스나 자위는 자극적이고, 폭력적이기만 했다. 혀를 얽고, 보지에 자지를 넣고, 신음 소리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를 지르는 섹스들을 보며 더럽다고 생각했다. 내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섹스 이야기를 꺼내면 첫 마디가 “더러워~”였다. 어느 순간부터 성적 행위는 더러워졌고, 성적 행위를 하는 몸은 부끄러워졌다. 세상이 나에게 수치를 가르친 순간들이었다.


그 수치는 불쑥불쑥 올라왔다. 야한 생각을 할 때, 성욕을 느낄 때면 요동치기도 했다. ‘이런 생각을 하다니 나는 더럽혀졌다’며 우울해하기도 했다. 수치의 잔재는 아직도 내 몸 안을 돌아다닌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브라를 안 한 티가 날까 봐 어깨를 굽힌다.


‘꽃봉오리’는 꽃이 다 필 때까지 기다려라


나의 성욕으로 비롯된 행위들은 더럽고 수치스러운 행위인 동시에, ‘내 몸을 아끼지 않는 행위’로 인식된다. 왜냐면 나는 ‘덜’ 자란 몸을 가지고 있는 청소년이기 때문이다.


▶ 흔히 여성의 몸은 꽃으로 비유된다. 여성청소년의 몸은 꽃봉오리에 묘사된다. 활짝 피기 전까지는 성행위를 해선 안 된다는 암묵적인 강요를 받는다.


사람들은 청소년의 몸-특히 여성청소년-을 꽃봉오리에 묘사하곤 한다. 필 듯 말 듯하지만 완전하지 않은 꽃봉오리인 나는 성적 행위를 할 수 없다. 성적 행위를 할 수 있는 기회는 다 핀 꽃들에게만 주어진다.


처음 월경을 시작했을 때였다. “네 몸은 아주 아름답고 소중한 거야.” 엄마는 케이크와 장미꽃을 사와 내게 안겨주며 말했다. 이제 몸을 막 굴릴 수 없는 진정한 여자가 되었다고, 앞으로는 외박은 되도록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사람들은 나에게 수치를 가르치려 안달할 때는 언제고 태세를 바꿔 ‘내 몸의 아름다움’을 설교했다.


내 자위는 내 몸을 망치는 행위가 되었다. 엄마는 내가 자위를 할 때마다 나를 혼냈고, 나는 숨어서 자위를 했다. 사람이 없는 시간, 사람들이 자는 시간만 골라서 자위를 했다. 그때마다 죄책감이 들었다. 내 몸을 아끼지 않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나는 내 몸에 대한 수치와 죄책감을 학습 받았다. 학습 받았기 때문이란 걸 잘 알면서도, 떨쳐버리기 힘들 정도로 몸에 배어버린 감정들 속에서 내 성욕을 긍정하기란 힘들었다.


임신에 대한 두려움은 ‘나만의 몫’이었다


나의 섹스는 로맨스 소설처럼 은은한 불빛 아래 무드를 잡으며 하는 섹스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포르노 속 섹스처럼 더러운 땅바닥에서 신음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를 지르며 하지도 않았다. 모텔 주인의 눈치를 보며 겨우겨우 결제해서 들어간 낡은 모텔에서 첫 섹스를 했다.


만화처럼 피가 배어 나오지도, 미칠 듯이 아프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눈앞에서 폭죽이 터지지도 않았다. 물론 흥분한 상대방을 보는 건 색다른 기분이었고, 내가 남을 흥분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도취되기도 했다. 맞닿은 피부의 온도는 따뜻했고 살결은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 섹스에서 나는 남을 흥분시킬 수 있는 나 자신에 도취되었을 뿐 그 외의 쾌락을 느끼지는 못했다.


상대방이 못했던 걸 수도 있다. 어쩌면 내가 못했던 걸 수도 있다. 이제 와서 딱히 상관 없는 일이다. 그렇게 첫 섹스를 하고 난 이후부터, 나는 참 섹스를 좋아했다. 어떤 상대와 하든 항상 상대방보다 덜 느끼고는 했고,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섹스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동안 못한 섹스를 채우기라도 할 듯이 열심히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섹스를 좋아했던 게 아니라 섹스를 할 수 있는 나를 좋아했던 것 같다.


최근의 일이다. 상대방을 만나서 카페에 들러 수다를 떨다가 모텔에 들어갔다. 이번에도 모텔 주인의 눈치를 보며 나는 그의 뒷 편에 섰다. 섹스를 하다가 콘돔을 끼우고 그가 삽입을 했다. 문제는 콘돔을 끼우는 손에 정액이 묻어있었다는 사실이다.


삽입을 하고 몇 초 후에 그 사실은 번갯불처럼 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나는 화들짝 놀라며, 당장 빼달라고 했다. 상대방은 당황해 하며 몇 번 피스톤 질을 더 하더니 그제서야 뺐다. 내 안에서 그가 성기를 빼는 순간이 굉장히 길게 느껴졌다. 빼는 순간부터 나는 우울해졌다. 벗은 그의 어깨에 기대서 그저 누워있기만 했다.


그는 다시 나에게 삽입하진 않았지만, TV를 켜고 야한 영화를 보며 자위를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기대서 한숨만 쉬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던 그는 애무를 해 달라고 했다. 나는 그럴 기분이 아니라고 하고 애써 웃으며 씻으러 갔다. 나에게 다시 삽입하지 않은 것만도 감사해야 할 일인지 모르겠지만, 그 순간 나는 그가 너무 미웠다.


나는 모텔 밖으로 나와서 줄담배를 피웠다. 한 자리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반 갑을 한꺼번에 피웠다. 담배를 피우는 내내 손이 떨렸다. 난 안으로 들어가서 이제 집에 가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가 나를 위로해 줄 거라는 기대에 가득 차, 그의 어깨에 기댔다.


하지만 바로 내 믿음은 다 깨져버렸다. 그는 부모가 빨리 오라고 재촉한다며, 나에게 돈을 빌려줄 수 있냐고 물었다. 진이 빠진 나는 그에게 버스비 몇 천원을 건네고 헤어졌다. 툭툭툭 배에서 계속 소리가 났다. 주먹으로 내 배를 내리치는 내 손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래도 그는 양호한 편에 속했다. 내가 계속 걱정하자 나와 같이 근처 병원에 응급 피임약을 받으러 다녀와 주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이미 그의 태도와, 의사의 시선과, 응급 피임약을 산 돈-4만원이나 한다-에 지쳐버려서 그저 그를 떠나 보냈다.


그날 버스를 타고 돌아오며 나는 울었다. 우는 순간에도 배를 치는 건 멈추지 않았다. 차를 타고 오는 동안 계속 휴대폰을 뒤졌다. 정자는 화학약품에 닿는 순간 죽는다는 글을 읽고 나서야 나는 괜찮다고 자위할 수 있었다. 다행히 다음 달에 월경이 시작되었다. 그때만큼 살면서 월경이 시작되는 것에 감사한 때가 없었다.


남성들과 몸을 섞을 때마다 그들은 나에게 묻곤 했다. “없이 해도 될까? 기분이 좋아서…” 나도 분위기에 취해 잠깐이라면 괜찮다고 허락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어김없이 그 상황이 끝나고 난 뒤에 나는 공포에 떨었다. 섹스를 하고 난 후 끝없는 질염과 공포 속에서 살았다. 생리가 나오면 ‘다행히 임신은 안 했네’ 라고 안도하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화장실 변기에 앉아 생리컵을 욱여넣으며 깨달았다. 두려움은 나의 몫이란 걸.


‘걸레’는 누구인가?


이런 이야기들을 나는 단상에 서서 자주 말해왔다. 청소년의 성욕은 눈 가리고 아웅하거나, 문제라고 손가락질한다고 끝날 일이 아니라고 말하기 위해서였다. 같이 활동하는 활동가들은 나한테 맨날 여성청소년 섹슈얼리티에 대해서만 발제를 한다며 놀리기도 한다.


하지만, 허구한 날 단상에 서서 이야기하는 나는 집안 거실 바닥에 서서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르며 쉴 한숨 소리들과 폭언들이 눈 앞에 훤히 보이기 때문이다. 집에 들어갈 때마다 듣는다. “누가 상의 탈의 시위를 했다는 데 너 아니지?” “페미니즘 시위에 너 안 나갔지?” 엄마는 항상 나에게 묻고 의심스런 눈초리로 쳐다본다. 이러는데 내가 어떻게 섹슈얼리티에 대해 말하겠는가.


바깥에서 나는 성욕이 있다며, 나는 내 보지가 좋다고 외치다가도 집에 들어오면 당장 콘돔 한 피스라도 걸리면 난리가 나는 삶을 반복했다. 나는 베드로도 아닌데, 나의 성욕을 긍정했다 부정했다를 반복했다.


▶ ‘나는 처녀가 아니다’라는 프롤로그로 시작하는 책 <연애와 사랑에 대한 십대들의 이야기> 표지 이미지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학교에서는 어쩌면 여학생들 모두가 자신의 성욕을 부정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걸레’나 ‘까진 년’은 되기 싫었을 테니까. 나는 여학교를 다녔다. 학교에 다니며 내가 가장 좋아했던 시간은 친구들과 음담패설을 하는 때였다.


남성의 성기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자신이 본 야한 동영상의 내용을 공유하기도 했다. 또는 서로 팬픽을 추천해주고 같이 보던 때도 있었다. 이번엔 도서관에 어떤 야한 책이 들어왔다며 웃기도 했다. 나도 같이 웃었다. 나는 야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나도 웃을 수 없는 때가 있었다. 바로 ‘걸레’ 이야기를 할 때였다.


바닥을 닦는 걸레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더럽다며, 몸을 함부로 굴리는 여자를 칭하는 거다. 이야기는 한도 끝도 없이 나간다. 체육관에서 섹스를 했느니, 보건실이 문 닫은게 거기서 누가 섹스해서 그렇다느니, 그러다 결국 임신해서 자퇴를 했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나도 성욕이 있는데, 섹스도 하는데, 자위도 하는데’ 라고 말했다가 어색해질 분위기와, 내가 ‘걸레’ 이야기의 다음 타자가 될 것이 너무나 투명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항상 연기를 했다. 걸레를 싫어하는 깨끗한 여자아이를 연기해야만 했다. ‘내가 생각해도 그건 아니네, 완전 걸레네’ 라며 입방아 속 주인공의 삶을 참견하고 있으면 그 시간은 빨리 지나갔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때도 그러했다. 자신의 연애관계를 이야기하며 상대편의 여자를 ‘걸레’라고 욕하는 이들이 있었다. 욕하며 우는 그 사람을 앞에 두고 나는 그저 ‘걸레’라는 말 대신 ‘정말 나쁜 사람이네’ 하며 어색하게 돌려 말할 뿐이었다. ‘몸을 막 굴리는 걸레년’이라는 욕을 들어주며 속으로 ‘미안해, 내가 그 걸레야’ 라며 안타까워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사람들 중 내가 정말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정말 아끼고 좋아하기에, 나는 내가 그 ‘걸레’라고 말하지 못했다. 섹스를 하고 나서 고민이 있을 때도 나는 털어놓지 못하고 계속 인터넷을 뒤져봤다. 인터넷 속에는 나 같은 사람들이 꽤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비록 활동명일지라도 내 이름을 걸고 내 성욕을 긍정하려 한다. 나는 섹스하고 자위하는 성욕이 있는 청소년이다. 그런 나를 세상은 ‘걸레’ 아니면 ‘정에 굶주린 안타까운 아이’라고 부른다. 안타깝지만, 나는 정에 굶주리는 아이가 아니다. 내가 자위하는 이유도 외로워서가 아니다.


성욕을 긍정하는 나를 학교에서는 ‘걸레’라고 불렀다. 성욕을 긍정하는 것만으로 걸레가 된다면 기꺼이 걸레가 되어주겠다. 그렇게 욕을 해왔던 그 걸레는 여기에 있다. 세상에 당당히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나만이 아닐 것이다. 당신 옆에도 있다. 어쩌면 당신의 친구일 수도 있고, 당신일 수도 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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