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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성폭력 재판에서 ‘진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위력’에 의한 성폭력과 ‘2차 피해’에 관한 긴급토론회 열려
지난 3월 5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한 피해자가 안희정 전 충남지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한 지 약 5개월이 지났다. 사건이 알려지자마자 도지사직을 사퇴하고 “모든 분들께 정말 죄송하다”며 “모두 다 제 잘못”이라고 했던 안희정 전 지사의 태도는 이제 사뭇 달라졌다.
뿐만 아니라 피해자는 ‘국민들이 나를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호소했지만, 사건이 공개된 후부터 지속적으로 피해자를 비방하는 거짓된 정보와 유언비어가 유포되었다. 재판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이를 보도한다는 명목으로 언론까지 가세해 피해자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등 이 사건은 본질을 알 수 없는 상태까지 몰고 갔다.
27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위력으로 타인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무너뜨리는 권력형 성범죄’라며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해 징역 4년을 구형했고, 재판 선고 기일은 다음 달 14일로 예정되어 있다.
법원의 결정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다시 한 번 이 사건이 가지는 성격과 주요 쟁점을 환기시키기 위해 약 350개의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긴급토론회를 개최했다. <위력에 의한 성폭력과 2차 피해- 안희정 전 지사에 의한 성폭력 사건을 중심으로> 긴급 토론회는 26일(목) 오전 10시, 서울 망원동 창비 서교빌딩에서 진행됐다.
▶ #미투운동과함께하는시민행동에서 제작 배표한 카드뉴스 중에서 (https://www.facebook.com/metooaction2018)
안희정 사건 경과와 쟁점
피해자와 연대하고 있는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이하 공대위)는 지금까지 9차례 성명을 발표했고 25차례 회의를 열었다. 공대위에서 활동 중인 배복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가 그간의 과정에서 생긴 문제들을 네 가지로 정리해 발표했다.
①피해자에 대한 허위 사실 유포 대응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밝힌 다음 날부터 바로 소위 ‘찌라시’라고 하는 것이 돌기 시작, 그 내용은 피해자 및 피해자 가족에 대한 사적인 정보로 보이는 허위 사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것이 인터넷 SNS를 통해 순식간에 유포되자, 공대위는 언론브리핑을 통해 허위 사실 유포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2차 피해를 제보 받는 메일을 개설했다. 이후에도 찌라시 생성과 유포는 줄어들지 않았고, 피해자가 그것을 중지해 달라는 호소의 자필 편지를 공개했다. 현재 공대위는 제보 받은 자료를 토대로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고발하였고, 수사가 진행 중.”
②검찰 조사, 진술의 진정성을 입증하기 위한 사투
“3월 9일 오전부터 검찰에서 피해자 진술 시작, 조사는 비공개로 진행되었으나 당일 오후에 안희정 전 지사가 일방적으로 검찰에 자진 출석하면서 진술이 잠시 중단됐다. 공대위 측에서는 가해자의 일방적인 출두에 대해 문제 제기하며 피의자를 돌려보낼 것을 요청하였으나, 법적인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검찰에선 피해자와 피의자를 동시에 조사.”
“피해자는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받기 위해 반복해서 상세하게 이야기를 해야 했고, 수사기관이 이해하지 못하는 업무의 내용을 지속적으로 설명해야 했다. 피의자가 ‘합의된 성관계’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기 위해, 수차례 입증 과정을 거치며 정말 사력을 다해 진술했다.”
③두 번의 구속영장 기각과 그 영향
“안 전 지사가 피해자와 찍은 사진이 있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제출한 바가 없는 점, 주변 사람들에게 회유와 협박을 하고 범죄 시 사용하던 폰은 제출하지 않고 다른 휴대폰을 제출한 점 등을 봤을 때 증거 인멸의 상황이 분명 있었다. 그럼에도 구속영장이 기각된 것은 매우 유감. 이 영장 기각은 ‘위력 행사의 지속’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④재판 과정의 문제
“피해자 진술은 비공개로 진행되었고 16시간의 법정 진술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일들에 대해 추궁 당했고, 스스로를 자책하게 되었다. 또한 피해자 증언 도중 피고인은 차폐막 뒤에서 헛기침과 인기척 소리를 지속적으로 냈다. 수행 기간 중 무언가 불편한 일이 있을 때 피고인이 헛기침을 하던 걸 기억하고 있는 피해자에게 정신적 압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후 피해자는 재판 방청을 하지 못했다.”
“피고인 측은 피해자 측 증인을 모해위증죄로 고소함으로써 피해자를 지지하는 이들의 입막음을 시도했다. 또한 피고인 측의 증인은 특수한 관계의 사람인 피고인의 배우자를 증인으로 세웠는데, 재판부는 이 증인을 채택 했다 하더라도 비공개로 진행했어야 했다. 이 증인의 발언은 언론에 거의 생중계 되다시피 보도되었고, 결과적으로 ‘이 사건의 최대 피해자는 피고인의 아내’라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다.”
▶ #미투운동과함께하는시민행동에서 제작 배표한 카드뉴스 중에서 (https://www.facebook.com/metooaction2018)
성폭력 재판을 ‘경주’처럼 다룬 황색 저널리즘의 폐해
김수아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는 “현재 미디어 보도에 의한 2차 피해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특히 “재판 보도는 보도의 신중함이 더 요구되는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고민 없이 재판에서 증언된 내용을 선택하여 선정적인 제목을 붙이는 것, 재판 자체를 경주처럼 중계하는 사태가 일어났다”고 비판했다. “피고인 측 증인 발언의 의미에 대한 고민 없이 앞 다퉈 그 말을 ‘인용’하여 자극적인 기사 제목으로 쓰는 따옴표 저널리즘이 문제적”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언론학자들 또한 ‘감정적인 인용구를 쓰면 안 된다, 전반적으로 요약하는 제목을 써야 한다’고 제언해왔고 <성폭력 사건 보도 가이드라인>이 이미 존재하고 있음에도 지켜지지 않은 것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또한 김수아 교수는 “이번 사건에서 기자들에게서 2차 피해에 대한 고민이나 언론이 성폭력 보도를 왜 해야 하는지 고민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기사의 댓망진창(댓글이 엉망진창인 상황)을 자연스럽게 유도했다. ‘댓글이 문제냐, 피해자에게 피해가 되는 거 말고 무슨 영향이 있냐?’고 생각이 들겠지만, 조사에 따르면 댓글로 인해 생각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70% 정도, 그리고 그 댓글들이 여론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40% 정도 된다”고 발언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또한 언론의 보도 행태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현재 언론의 안희정 관련 재판보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애초에 피해자 측 증언은 비공개로 진행되었고 피고인 측 증언은 공개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언론이 정말 공정하고 상세한 정보를 제공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중계성 보도는 국민들로 하여금 자신이 거의 모든 정보를 균형 있게 듣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고 있다.”
▶ 민주언론시민연합 모니터링 결과 중 <7월 3일~13일 안희정 재판 관련 보도 대담 제목 비교> ⓒ민언련
재판이 없는 날까지도 시간을 할애하며 재판 내용을 반복적으로 보도한 것뿐만 아니라 “재판에서 나온 개인적 정보가 보도된 점”을 더 큰 문제로 꼽았다. 김언경 사무처장은 “개인의 진료 기록은 사생활 정보에서도 가장 내밀한 자료임에도, 피해자가 재판을 위해 진료 기록을 법원에 제출하고 관련 내용이 언급되었다는 이유로 마구잡이로 보도해도 된다는 생각을 애초에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폭력 사건 보도 가이드라인>에 담긴 철학과 개념을 기자들이 파악해야 하지 않는가? 언제까지 일일이 알려줘야 하는가?”라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또한 “장삿속으로 보도한다는 생각이 든다. 반성폭력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고민은 하나도 없다”고 따끔한 말을 던졌다.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제대로 인정하느냐가 쟁점
이번 재판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건, 이 사건이 ‘업무상 위력간음’으로 인정되고 그에 대한 처벌이 내려질 것인지에 대한 부분이다. 장임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위력은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세력을 말하고, 유형적이든 무형적이든 묻지 않음으로 폭행 협박뿐 아니라 행위자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인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는 것을 포함한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현행 형사법상 강간 등 성폭력 범죄의 행위 수단이 폭행 협박 또는 위계 위력으로 한정되어있는데, 그동안 미성년자 또는 장애인 대상 위력간음 사건에서의 위력 유무 정도만 인정할 정도로 위력을 협소하게 해석해 왔다”고 지적했다. “업무상 위력간음의 판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반성폭력 운동계와 여성운동계에서 이 사건을 중요한 지표로 보는 것이다.
장임다혜 연구위원은 “피해자와 행위자 간에 존재하는 ‘피해자를 종속시킬 수 있는 우월적 지위’를 위력 판단의 객관적 기준으로 제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월적 지위의 개념은 업무 및 고용 등의 관계에서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수위를 넘어선 부적절하거나 부당한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는 정도의 지위와 세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행위자와 피해자의 업무 등 관계에서 부당하고 부적절한 요구와 이로 인한 근로권 및 인격권 침해가 반복 또는 지속적으로 존재했는지, 행위자의 부당한 요구를 피해자가 감내할 것이라는 행위자의 인식이 있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무형적인 위력 행사의 증명이 설사 어렵다 해도 “이번 사건의 경우에도 분명 피해자가 강력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거부 의사 표시를 분명히 했고, 몸을 꽉 껴안았다는 등의 육체적 위력 행사가 있었다”는 점도 덧붙였다.
▶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주최한 긴급토론회 <위력에 의한 성폭력과 2차 피해- 안희정 전 지사에 의한 성폭력 사건을 중심으로> 발표자들의 모습. ⓒ일다(박주연)
“이 용기를 또, 언제 만날 수 있을 것인가”
오랜 기간 반성폭력 운동을 해 온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는 “이것이 성폭력이 아니라면 무엇이 성폭력인가?”라는 무거운 물음을 던지며, “이 사건과 재판 과정은 굉장히 많이 기울어져 있다”고 말했다.
“데이트 관계가 아니었고, 그것이 한 번도 증명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안 전 지사 측은 피해자를 순수한 피해자가 아닌 ‘믿지 못할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피고인 증인들의 증언이 주관적인 생각으로 이루어졌음에도 언론들은 그것을 받아쓰기하기 바빴다.”
권김현영 연구활동가는 “지금 방향이 잘못되었다”며 “피해자의 거짓말 유무가 아니라 ‘안 전 지사는 자신의 행동이 무엇이라고 생각한 건지, 자신의 권력을 남용했는지 아닌지, 그것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등 질문의 초점을 안 전 지사에게로 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유엔여성차별철폐협의에서 수차례 권고한 바 있는 ‘폭행 혹은 협박’을 동원하여 의사를 제압한 경우에만 강간으로 인정하는 ‘강간최협의설’ 폐지”를 언급하며, 단지 이 사건에서의 업무상 위력간음 인정 유무 뿐만 아니라 “강간의 구성 요건이 ‘명시적 동의 여부’로 변화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권김 활동가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마주해야 하는 질문도 던졌다. “피해자는 굉장히 일관적으로 증언하고 있고, 또한 어마어마한 2차 피해를 견디고 있다. 이런 용기를 또 언제 만날 수 있을 것인가?” 이 말은 ‘이제는 이런 용기를 만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이 용기에 대해 정당한 응답을 해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그 선택은 재판부나 언론, 공대위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달렸다. 두려움 속에서 어렵게 말한 수많은 미투(#MeToo)와, 차마 외치지 못한 미투(#MeToo)를 아직 가슴에 품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괜찮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우린 함께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응답할 수 있는 사회를 희망한다.
※ 130개 성폭력상담소들의 협의체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위력에 의한 성폭력’ 제대로 된 판결을 촉구하는 탄원서> 연명을 7월 30일까지 받고 있다. http://muz.so/S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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