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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난민 혐오’…우리의 무지와 정부의 무능이 원인

여성난민 소식 전하는 하리타-난민인권 활동가 고은지 대담①


<우리 자신의 언어로 - 독일 여성 난민들의 말하기> 연재를 통해 여성난민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독일 및 유럽의 난민 이슈를 조명하고 있는 하리타님이 ‘제주 예맨 난민’ 사태와 관련해 난민인권센터 고은지 활동가와 나눈 이야기를 싣습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작년에만 난민신청자 1만인데, 뜬금없는 ‘난민 공포’


6월 20일은 ‘세계 난민의 날’이었다. 때마침 한국 사회는 제주도로 입국한 492명의 난민을 둘러싸고 갈등을 겪고 있었다. 한국은 1992년에 난민협약에 가입했고, 2001년에 첫 난민 인정 케이스가 나왔다. 낮은 난민 인정률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792명이 난민으로 인정받아 살고 있고, 작년 한 해만 난민신청서가 1만 건 가까이 접수됐다. 그런데 많이 사람들이 이제 와서 새삼 놀란다. “우리나라에도 난민이 있었어?”


무지 뿐 아니라, 낯선 이를 향한 불안과 적대를 서슴없이 드러낸다. 누군가가 낯설고 두려운 것은 ‘내’가 ‘상대’를 잘 몰라서다. 새로운 만남에선 ‘나’의 무지를 빨리 인정해야 편견 없이 상대를 바라볼 수 있다. 더군다나 그 편견이 부정적인 것이라면 더더욱. 불쾌한 편견과 추측과 소문에 계속 기대다가는 ‘내 안의 불안’이 점점 커져서 혐오와 차별이라는 괴물이 되어버린다.


우리,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판단하기 전에 질문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난민이란 대체 누구인지 궁금해 하고, 이들의 삶을 규정하는 국가 제도와 정책을 따져봐야 한다. 그리고 난민들의 얼굴을 다시 본다면, 그때는 가능할지 모른다. 함께 사는 앞날을 상상하는 일이.


2012년부터 난민인권센터(이하 난센)에서 활동해온 잔뼈굵은 활동가 고은지님을 화상전화로 만났다. 고은지님은 출생지가 일본이라는, 조금 다른 정체성이 차별의 이유가 되는 경험을 하며 자랐다고 한다. 이후 방글라데시 치타공 지역에서 살며 주류 사회의 탄압에 맞서는 소수민족들과 티벳 난민 이슈를 접했다. 이를 계기로 인도에서 난민 인권활동을 처음 시작하게 되었다.


한국에도 난민 인권운동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귀국해 난센에서 일해 온 고은지 활동가는 최근 난민에 대한 혐오 공격과 언론 보도에 대응하느라 매우 분주한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난민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정책을 제언하는 일에 특히 집중하고 있다. 지난 6월 20일 기자회견에서 배포한, 한국의 난민 제도의 문제점과 정책 제안을 담은 자료를 다음 링크에서 다운받아 볼 수 있다. https://drive.google.com/file/d/1M2_0E-IrED4Yv7NSS00KmiD4PJGLRq3J/view


▶ 7월 1일 제주시청 앞 광장의 모습. 제주도에 들어온 예멘 출신 난민들에 대한 적대와 편견이 드러난 현수막들이 걸려있다. (출처: 김서진)


무책임한 언론 보도가 ‘난민 혐오 정서’ 부추겨


하리타 한국에서 난민인권운동을 하는 활동가로서, 현재 예멘 난민 이슈를 어떻게 체감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활동을 펴나가는데 있어서 특히 힘든 점은 무엇인지?


고은지 한국이 난민제도를 시행한 이래, 국내에 거주하는 난민 이슈가 이토록 많은 시민들의 관심을 받았던 적이 있었나 싶다. 거의 모든 언론에서 취재 요청 문의가 왔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한국에 거주하는 난민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며, 관련 운동을 해온 사람으로서 ‘중요한 시기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난민인권을 위한 활동에서 어려운 점을 꼽는다면, 첫째는 난민 정책 운영에 있어 정부의 올바른 관점과 철학의 부재다. 난민 정책이 국내에서 시행된 지 벌써 25년째다. 그간 권리 상담을 3천 건 넘게 해오며 각종 인권 침해 사례를 접했다. 난민을 잠정적 범죄자로 낙인찍어온 한국 정부가 현재의 상황에 내놓고 있는 대안들을 볼 때, 역시나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국내 난민 정책을 포함한 이민정책을 운용함에 있어 ‘관리’와 ‘통제’의 프레임을 벗어내지 못하는 한계를 또 다시 드러내고 있다.


두번째는 ‘가짜’ 난민이나 이슬람 등에 대한 왜곡된 정보들, 이를 보도하는 언론에 대항하는 어려움이다. 가령 이슈 초반에 연합뉴스는 “중동 예멘인 무더기로 제주도에 오는 이유는? 외국인 범죄율 1위로 등극” 등의 타이틀을 내세우며 “#꿀잼” 태그와 함께 난민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연관시킨 카드뉴스를 제작했다. 이는 파워블로거 등을 통해 빠르게 공유됐다. 이러한 잘못된 정보를 바로 잡기 위해, 난센은 정부에 정보공개를 요청해 얻은 통계를 기반으로 언론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노력한다. 언론에 인권보도지침을 준수하도록 요구하고, 난민 관련 언론보도 가이드라인을 제작하여 배포하고 있다. 취재와 보도 과정에서 인권침해도 심각한 수준이다. 난민 당사자의 ‘동의 없이’ 사진을 이용하거나 발언을 인용하는 것에 문제점에 대해, 해당 언론에 수정 요청을 하고 있다.


하리타 잘못된 뉴스 보도 문제는 그 사례가 정말 많다. 다른 예로 6월 18일 SBS 뉴스 pick 코너에 게재된 기사 <“예멘 난민숙소로 변한 제주도?”…반대 여론에 ‘케냐 젓가락 살인사건’ 재조명>, 6월 25일자 조선일보 기사 <일단 신청하면 최대 5년 체류… 난민 심사의 ‘빈틈’>도 있다. 사실과 현상을 다루는 보도라고 해도, 인터넷 상에 떠도는 내용이라든지 극히 예외적인 제도 악용 사례를 지금과 같이 난민에 대한 여론이 부정적인 시점에서 보도한 것은, 언론으로서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지 않나. 사람들이 난민의 개념이나 관련 제도나 정책 전반을 잘 모르고 있는 현실에서, 언론은 우선 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보호가 필요한 특수한 지위라고 규정한 ‘난민’에 대한 기본 개념이나 통계를 소개하는 일이 시급한데, 그런 기사는 오히려 찾아보기 어렵다. 답답한 상황이다.


고은지 그뿐 아니라 요즘 욕설 댓글과 전화가 잦아져 활동가들이 실질적인 위협을 느끼고 있다. 난민 개인의 페이스북 계정에 ‘칼로 찌르겠다’라는 협박 메시지가 오고, 인터넷 상에 난민을 죽이러 가자는 이야기가 서슴없이 나오고 있다. 자신이 혐오 발언을 하는지도 분간 못한 채 ‘우리는 난민을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반대할 뿐’이라는 주장을 떳떳하게 내세우는 사람들을 보며 답답하다. 문제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이러한 혐오 표현과 공격에 대해 제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성범죄자? 테러리스트? 실제론 범죄율 한참 낮다


고은지 최초로 난민 혐오를 선동하고 현재도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세력은 지난 5월 31일 제주에서 난민 혐오 기자회견을 개최했던 이들이다. 바른나라세우기국민운동(대표 정형만) 등이며 “지금 막지 않으면 제주도는 테러에 시달리게 된다” 식의 표현을 사용하며 난민에 대한 혐오를 선동했다. 사실 이들은 난민뿐만 아니라 성소수자와 HIV감염인, 무슬림, 이주민 등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꾸준히 퍼뜨려온 보수 세력이다. 제주 4.3사건에 대해서도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혐오하게 만드는 거짓말 생산지”라고 선동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기자회견 현장에서는 연명 의사를 밝히지 않은 타 단체의 명칭을 무단 사용하여 항의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31개 연대체 중 17개 조직의 활동 기록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워 배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 세력의 선동에 함께 동조하는 이들은 이전부터 반(反)다문화, 반(反)이슬람을 주장해온 사람들, 성소수자 또는 HIV감염인에 대한 혐오 세력, 그리고 여성에 대한 혐오를 일삼던 이들이기도 하다. 여기에 “한남(한국 남성)도 벅찬데 난남(난민 남성)까지 들어왔다”며 남성 난민들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인식하고 유입을 반대하는 여성들도 있었다.


하리타 마지막에 언급한 일부 여성들의 난민 혐오는 새로 나타난 현상이다. 난민, 예멘, 무슬림이라는 세 가지 낯선 요소를 가진 ‘남성’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 같다. 살면서 남성들에게서 입은 성폭력 등 여러 피해와 남성중심 사회에서 느껴온 전반적인 피로와 불안이 이번에는 낯선 정체성을 가진 새로운 남성집단에 전가된 것이 아닌가 싶다. 남성 난민에 대한 여성들의 불안과 공포, 혐오의 원인은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고은지 그렇다. 난민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 중 왜 여성들이 있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무슬림’ ‘남성’ ‘난민’들이 ‘사회에 갑작스레 침투한 위험세력’으로 머릿속에 상징화돼 버린 것 같은데, 이런 프레임은 어디서 누가 왜 퍼뜨렸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난민혐오를 선동하는 세력이 유포한 메시지에 편승하여, 일베 등에서 여성혐오의 한 방편으로 ‘성폭력을 일삼는 무슬림 남성들이 떼로 나타났으니 여성들 큰일났다’는 식의 공포를 조성하며 여성들을 자극했다는 분석도 있다. 미러링을 하는 여성 커뮤니티에서 ‘예멘 남성 난민들의 입국으로 인해 여성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가 또 하나 늘었다’는 얘기가 급속히 퍼졌다는 관찰도 있다.


난민 혐오 프레임이 어떻게 퍼졌는지는 다 파악하기 어렵지만, 결과적으로 이에 동조한 여성들이 있다는 건 확실하다. 사실 많은 여성들이 그동안 자신의 안전과 관련해 한국 정부에 큰 불신을 갖게 되지 않았나. 임신중단권, 성폭력, 불법촬영 이슈 등에 대한 정부의 미온적 대응을 지켜보며 이미 일상적인 불안이 가중되어 있는 상황에서 타자인 ‘남성’, ‘난민’이 여성들에게 두려움의 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던 부분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혐오로 전이되는 과정은 경계해야 한다. 두려움이 누군가의 권리를 배제하는 논리로 적용될 수는 없다. 사회에서 여성의 권리가 난민의 권리를 배제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획득될 수 없다. 여성(소수자)과 난민(소수자)의 권리는 두 쪽으로 나누어지는 게 아니다. 소수자의 인권은 톱니바퀴와 같이, 서로 맞물려 지지대가 되어 함께 굴러가며 확장해야 한다.


▶ 7월 1일 제주시청 앞 광장, 예멘 출신 난민 혐오를 조장하는 현수막들. (출처: 김서진)


하리타 난민들 때문에 여성 대상 범죄가 늘 것이라는 예측이나, 이들이 범죄자가 될 거라는 주장은 상당히 억지스럽다. 대다수 난민들은 체류권이 불안정하고 생활이 어려운 상황이라서 물의를 일으킬 만한 행동을 더욱 자제하지 않나. 실제 범죄자 중 난민인 사람은 있을 수 있지만, 난민이기 때문에 더 쉽게 범행을 저지르거나 그럴 의도를 갖는다고 보는 것은 부당한 낙인이고 차별적인 시선이다.


많은 사람들이 2016년 독일 퀼른의 새해 축제에서 있었던 집단 성폭력 사건을 난민 반대의 근거로 드는데, 이 사건의 전말은 아직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정식 조사를 통해 진위 여부를 파악하기도 전에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온갖 인종차별적, 난민혐오 유언비어가 퍼졌다. 거기에 언론이 이를 옮겨 실으면서 걷잡을 수 없이 이슈화가 먼저 되어 버렸다. 결론적으로는 접수된 1천여 건의 피해 신고 중 소수만이 아랍계, 북아프리카계 이주민 혹은 난민 남성과 관련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그렇다면 나머지 다수의 성폭력은 누구에 의한 것이었을까? ‘성범죄자 난민’ 낙인이 너무 큰 나머지 중요한 이 질문이 생략돼버렸다. 불특정 다수의 집합, (음주를 동반한) 공공장소의 대규모 행사가 있을 때마다 여성들은 성폭력 위험에 노출된다. 이 보편적인 성차별과 성폭력 행위를 저지르는 건, 마찬가지로 보편적인 가해자들이다.


우리는 언론의 선택적 보도에 영향을 받아 현실의 극히 일부만을 접하는데, 이를 과장해서 받아들이기 쉽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외신 보도를 통해 접한 일부 난민에 의한 탈선과 범죄 행위는 절대적 숫자로도, 시민권을 가진 주류 사회 구성원들의 범죄율 일반과 비교해서도 한참 낮다. 또 자국 시민들에 의한 방화, 폭행, 사기 등 난민을 대상으로 한 혐오 공격 역시 매일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고은지 독일 연방 범죄 경찰청(BKA)이 발표한 자료가 있다. 독일의 난민 수는 2014년과 2015년에 440%나 증가했지만 난민에 의한 범죄율 증가는 수적 팽창에 정비례하지 않는 79%였고 난민 유입이 전체 범죄 증가율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난민 관련 범죄 중 성범죄는 1%에 그친다.


난민 급증은 세계적 추이, 지금이라도 시스템 갖춰야


고은지 지금의 난민 혐오 사태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 제공자는 ‘정부’라고 본다. 한국정부는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방식으로 국내에 거주하는 난민을 유령 취급해왔기 때문이다. 1992년 OECD에 가입하기 위해 유야무야 난민협약에 가입하고 제도를 시행하긴 했지만, 막상 난민인정률은 올해 5월 기준 4.1%다. 세계 190개국의 평균 난민인정률인 29.9%에 한참 못 미치는 비율이다.


우선 정부는 난민 신청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난민 신청 절차 등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에 대한 고지도 제대로 안 되는 실정이다. 그래서 난민신청자들은 첫 단계에서부터 난항을 겪는다. 겨우 신청 절차를 알아내고, 출입국 외국인청을 방문하지만 급작스레 15장 분량의 신청서를 받아들고 당황한다. 대부분 언어와 문화적 한계를 안고 난민 요건에 대한 충분한 이해나 법적 조력도 없이 작성하다 보니 신청서가 불완전하다. 심사 과정의 문제 또한 많다. 2015년 난센이 한겨레신문과 진행한 난민인정자 추적 조사에 따르면, 최초의 난민인정자는 현재 한국에 없다. 난민 인정을 받아도 생활이 어려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리타 난민으로 인정받은 이들을 위한 제도는 따로 없나?


고은지 난민의 정착과 관련한 컨트롤타워는 따로 없다. 법무부가 작년 3차까지 시범 시행한 재정착 난민 제도가 있는데, ‘난민어울림마당’, ‘재정착난민 아동 연극’ 같은 프로그램들은 재정착 난민, 특히 아동과 여성을 전시하는 방식이다. 재정착이 필요한 이들에게 난민 정체성을 계속 강요하며, 제도 운영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이익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단순노무 직종에 주로 취업을 연계하기도 한다. 이처럼 정부가 난민을 잠정적으로 ‘국민의 이익을 해치는 자’로 분류하고 ‘관리, 통제’의 프레임을 고집한다면, 난민이 사회에 적응해서 구성원으로 잘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은 0%다. 제도의 미비와 정책 실패는 대중의 난민에 대한 무지와 편견을 부채질할 뿐이다.


한편, 난민 심사 과정은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문제가 크다. 통역과 기록이 원활하지 못해 오해와 왜곡이 생기고, 면접관과 심사관들이 신청자에게 폭언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심사 과정을 밟으며 난민신청자들은 적어도 3-5년 간 한국에서 살게 되는데, 이 기간에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지원이나 가이드라인이 없다.


▶ 법무부가 내놓은 향후 대책을 정리한 표. 난민 심사 기간 단축, 제도 악용 방지 등 반대 여론을 의식한 듯한 내용이 눈에 띈다. (출처: 이로운넷)


난민 심사의 ‘신뢰성’ 확보하려면 어떻게?


하리타 독일의 경우에도 난민 심사 과정에 문제가 없지 않다. 난민 신청자로 입국할 때 지문을 채취하는 EU시스템(EURODAC; 유로닥)부터가 인권침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또한 경비가 삼엄하고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집단 숙소에 격리 수용되면서 난민 당사자들은 지속적인 모멸감을 견딘다.


다만 다른 점은 2015년의 난민 위기 전후로, 연방정부가 대규모 난민 수용을 국가 기조로 발표하고 일련의 제도와 정책을 시행했기 때문에 거기서 일차적으로 충격이 흡수되었다는 것이다. 개별 난민들에 대해 혐오나 반대로 쏠리기보다는 난민 정책에 대한 찬반 논쟁을 할 시간과 기회가 있었다. 앞서 말한 난민 심사 과정에서의 문제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고은지 난민 정착의 경우엔 복지부, 여가부, 행안부, 고용부, 교육부 등의 정부부처 및 지방정부의 역할이 확대되어야 한다. 이주민을 포함한 난민 정착의 컨트롤타워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1차 심사의 경우, 면접관 개인의 인권과 젠더 감수성 등의 역량 강화도 필요하지만 우선 인력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 작년만 해도 난민 신청이 9천 건이 넘는데 전국에 38명밖에 심사관이 없고, 이는 지역 당 1-2명 수준이다. 난민 신청자의 개별 사유를 봄과 동시에 출신국가의 상황도 체크해야 하는데 이런 것을 일일이 하기 어렵다. 호주의 경우, 1차 난민 심사에서 ‘불인정’이 떨어지면 불허사유서가 200장에 달하는 등 보고서 수준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복사-붙여넣기 한, 천편일률적이고 분량도 A4 절반인 무성의한 불허사유서를 받게 된다. 게다가 국문으로만 작성되어 있어 신청자 당사자가 이해하지 못한다.


2차 심사의 경우, 변호사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위원회를 구성해 이의 신청서를 검토한다. 그런데 이의 신청서가 각 지역에서 접수될 때, 먼저 개별 사무소에서 A4 1장 이내로 이를 요약해서 올린다. 그러면 소위원회에서 이 문서를 보고 한차례 거른 뒤에야 본 위원회로 간다. 공정하고 면밀한 심사가 되기에는 이미 단계적으로 정보가 너무 많이 누락된 상태인 것이다. 지난해 위원회는 6회 진행되었고 총 4천542명을 심사했다. 1회당 757명의 대상자를 심사한 셈이다. 실제로 이의신청 과정에서는 대부분의 난민신청자가 면접의 기회를 갖지 못하기 때문에 사실상 위원회가 유명무실한 것이다.


심사의 독립성이 없다는 문제도 크다. 각 지역의 출입국 외국인청, 출장소 등과 연계된 8개의 거점사무소가 전국에 있는데, 거기서 심사를 하고 위로 올리면 최종적으로 법무부 장관 승인이 있어야 개별 케이스가 인정되는 구조다. 난민 인정률이 매우 낮은 상황에서 하나라도 인정 승인 요청이 올라가면, 면접관 당사자에게 상부의 관심이 쏟아지기 때문에 면접관 입장에서 인정 사례를 만들기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출입국 외국인청은 외국인의 체류와 출/입국 등을 주로 ‘관리’하는 부처이므로 난민 심사 업무를 하기에 사실상 적합하지 않다. 별도의 기관이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난민 심사를 위한 예산과 인력을 확충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며, 유엔난민기구와 ‘Quality Initiative’를 진행하여 현재의 제도 운영을 객관적으로 평가 받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라고 주장해왔다.


난민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이 사회를 안전하게 한다


하리타 설명을 듣다보니 한국은 난민 유입이 증가하는 상황에 준비가 덜 된 것 같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입법, 행정에서 난민이 주된 관심사가 못 된 탓이다. 난민 인구의 급증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며 계속 늘어갈 전망 아닌가. 20세기 일어난 전쟁의 후유증이자 불평등한 세계화의 결과이다. 즉, 한국에서도 여론이 난민을 반대한다고 해서 유입을 막거나 줄일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는 대외적으로는 이미 난민 이슈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나. 은지님도 서두에 한국이 유엔난민기구에 2천만불 이상 내는, 주요 공여국이라고 언급했다. 이제 대내적으로도 난민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며, 앞으로 늘어날 것임을 받아들일 때다. 지금부터라도 그로 인한 사회 변화나 충격을 시민사회, 고등교육기관, 민간과 공공 부문이 서로 대화하며 단계적으로 소화해가면 된다. 그러면서 인프라 부족, 예산 압박과 같은 현실적 한계를 극복할 혁신적인 방안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난민 혐오 사태의 근본 원인이 제도와 정책의 미흡함이라면, 해결책 역시 또 하나의 사회적 약자 계층인 난민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을 제대로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2014년에 독일에 왔고, 2015년 경 또 한 차례 ‘유럽 난민 위기’가 왔었다. 그 때 지역(남부 바덴부르크주 프라이부르크 시)에서 직접 목격한 인상적인 사례들이 있다. 집 근처에 잡초만 무성한 공터가 있었는데, 작은 시민 조직이 주민들과 난민 가족들이 함께 텃밭으로 개간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예산이 적기 때문에 주변에서 모은 폐자재로 벤치와 울타리를 만들고, 방치됐던 농기구를 고치고, 옆 개울에서 물을 끌어오는 도구를 직접 만들고, 캠프파이어 공간에 세울 문 디자인을 결정하는 투표를 하는 등 자잘한 협동이 모여 나중에 작물이 풍성히 맺힌 농장이 생기는 것을 1년에 걸쳐 지켜봤다.


▶ 이주민들, 난민들과 지역주민이 함께 텃밭을 가꾸는 프로젝트 zusammen gartnern 웹사이트 (출처: zusammen leben e.V.)


매달 열린 ‘액션 데이’(Aktionstag)에 참여하는 인원도 점차 늘어났다. 난민들 입장에서 독일의 기후와 토양, 작물에 대해 자연스레 습득하고 손작업의 보람도 느꼈을 것 같다. 수많은 회의를 통해 함께 결정하고 천천히 진행시키는 독일식 풀뿌리 민주주의에 참여하는 경험도 되지 않았을까.


1년 간 난민 위기에 대응하는 사회 거버넌스 각 구성원들이 ‘합동 간담회’를 열었던 일도 기억난다. 시장이 나와서 난민과 관련한 시정부의 활동을 발표하고, 대학 측에서는 학생 및 학부, 교직원 차원에서 새로 시작한 난민 지원 프로젝트나 연구 내용을 공유했다. 시민사회 발표자들이 가장 다채로운 활동을 보고했다. 모금이나 기부, 문화교류와 독일어 강좌, 공간 및 정보 나눔 등 수많은 소규모 프로젝트가 자발적으로 일어났다. 민간 부문은 직접 나서기 보다는 정부와 계약을 맺고 용역, 서비스(주로 건설, 숙박, 의료업체)를 제공하는 형태로 지역에 할당된 난민 인구(비율할당제에 따라 인구 22만여 명 규모의 도시에 5천명이 들어옴) 수용에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 이어지는 두 번째 대담 기사에서는 ‘가짜 난민’ 논란에 대해 집중 다루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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