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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교육’ 정말 준비됐나요?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 창립 1주년 기념 북콘서트



“이미 교과서 집필기준과 검정기준에 양성평등 관련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만, 초등학교 교과서에 가족 구성원의 역할 등이 나오는 수준으로, 명시적으로 성 평등 내용은 없습니다. 중고교에서는 도덕, 사회 등의 교과에서 다루고는 있지만 양적 질적으로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지난 2월 27일 국민청원 20만 명을 돌파한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요구에 대해,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11:50 청와대입니다」 국민청원에 답합니다” 영상을 통해 이같이 말했다. 이어 “페미니즘 교육과 인권 교육이 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며, “2011년 이후 진행되지 않은 ‘초중고 인권교육 실태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또 “학교 선생님들을 위한 교수, 학습 자료를 개발하고 보급하는데 교육부 예산 12억을 쓰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 2월 27일 발표된 “「11:50 청와대입니다」 국민청원에 답합니다” 영상 중에서


‘초중고 학교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원이 1월 6일부터 시작되어 약 21만 명이 넘는 청원 동의로 2월 5일 마감되기까지 시점은 국내에서 미투운동(#MeToo)이 시작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많은 여성들이 자신들이 겪었고, 겪고 있는 성폭력을 폭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무엇이 변화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를 끌어내며 성차별 문화를 바꾸고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하다고 외쳤다.


국민청원에 답하는 국민소통수석의 말처럼 성평등 교육, 인권 교육, 페미니즘 교육이 혼용되어 쓰이는 현재 상황 속에서, 과연 ‘페미니즘 교육’이란 정말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며 논의하는 일은 아직 많지 않다. 굉장히 범위가 넓어 보이는 이 교육의 ‘의무화’를 위한 과정으로 교육부 전체 예산인 68조2천322억 원 중 단지 12억의 예산이 쓰인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도 말이다.


창립 1주년을 맞이한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언급되기 시작한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이슈를 던졌다. 5월 18일(금) 서울시NPO지원센터에서 페미니즘 관련 교육의 현장 속에 있는 교육 주체들이 서로 목소리를 내는 자리를 마련했다. “준비됐나요, 페미니즘 교육?”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 행사는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 대화>(김서화 지음, 2018) 북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됐다.


1982년부터 실시된 성교육, ‘대체 뭘 배운 거지?’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 연구원인 김서화 씨는 자신이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 대화>를 쓰게 된 경위를 밝히고, 성교육이 페미니즘과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이야기했다.


“시작은, 단순한 저의 생각이었어요. ‘성교육, 당연히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런데 주위의 반응은 의외로 달랐다. “주변인들에게 ‘성교육 해야 하지 않아요?’라는 말을 꺼내면 극성엄마로 보거나 이상하게 보더라고요. 다른 교육에 대해서는 주변에서 필요 없는 조언도 많이 하고 하는데 ‘성교육’이라는 말만 꺼내면 대화가 단절되는 거예요.”


교육열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열정적인 대한민국에서 ‘교육’이 붙어있는데도 쉬쉬하는 몇 안 되는 분야인 성교육, 그 중에서도 “초등학생 남자아이를 대상으로 한 성교육엔 공백이 있다.” 김서화 연구원은 “요즘은 오히려 유치원에선 아동 대상의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성폭력 예방교육’을 하는데, 초등학교엔 남자아이를 대상으로 한 성교육이 부재하다”고 지적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아직 할 시기가 아니다(2차성징이 안 왔다)’, ‘오히려 빨리 알려주면 자극이 된다’는 핑계는 물론이고, ‘학교에서 시켜주잖아’라는 회피까지.” 김서화 연구원은 거기에 또 한 가지 이유를 지적했다. “남자아이들의 엄마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성폭력) 피해자가 될 일이 없다고 생각해요. 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죠.”


▶ “준비됐나요, 페미니즘 교육?” 북콘서트에서 발표 중인 김서화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 연구원 ⓒ일다(박주연)


성교육을 ‘성폭력 예방교육’으로 한정하고 여성을 대상으로 삼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김서화 연구원은 “근대에 들어오면서 여성들이 교육에 참여하게 되었을 때, 교육의 장이라는 공적 자리에서 여성들의 섹슈얼리티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서 각 가정의 어머니한테 딸한테 ‘(성)교육을 하시오’ 했거든요”라고 말했다. “여성들에 대한 교육이 곧 성교육”이었다는 것. 김서화 연구원은 “정절, 순결 교육이었던 성교육이 이젠 성폭력 예방교육이 되었고, 그 교육에선 결국 그 위험에 노출되는 게 누구인지 이미 정하고 배우는 형태”라고 주장했다.


이어 “1982년부터 성교육이 실시되었지만 오늘날 미투 운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면 ‘우린 대체 뭘 배운 거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며, “결국 성교육이 계속 여성교육으로 머무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아이들은 이미 ‘싸내’의 의미를 알고 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아들에게 ‘성교육으로 할 말 몇 마디를 알고 싶어서’ 시작된 김서화 연구원의 고민은 “하다 보니까 ‘아, 이게 성교육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서’ 더 찾게 되고 그러다 보니 ‘어, 이것도 문제네, 저것도 문제네?’ 하면서 점점 더 깊어져 갈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요즘은 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합리적이고 독립적이고 이성적’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에 반해 아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폭력적이고 무지하고 더럽고’ 이런 말이 나와요. 그러면 또 ‘이제는 여성 상위 시대’라던가 ‘거봐라, 역차별 있다’는 말이 나오죠.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에요. ‘여자니까 이렇다, 남자니까 이렇다’는 말을 하면서 여/남을 가른다는 거죠.”


특히 요즘 초등학교는 “굉장히 안정화된 방식의 젠더 역할이나 편견들을 잘 생산하는 공간이 된 것 같다”고 발언하며, “그렇게 ‘남자니까, 여자니까’로 성별을 나눠서 문제의 원인과 해결을 찾는 방식이 빠르고 쉽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성교육에서 시작했지만 “정말 성교육이 되려면 그 틀을 초과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힌 김서화 연구원은 “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아이들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권력에 대해서 어떻게 가르치냐고 물으시는데, 아이들은 직관적으로 그게 뭔지 알고 있어요. 아들이 3학년 즈음에 등에 멍이 들어서 온 거에요. 원래 엄살이 심한 앤데 저한테 말을 안 한 게 이상해서 물어보니까 여자애가 때렸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여자한테 맞고 우는 거 아니라고. 싸내는 그러는 거 아니라는 거예요.’ 제가 놀라서 ‘싸내’가 뭐냐고 물었더니 혼란스러워 하는 거죠. 그래서 그럼, 사내가 아닌 건 뭐냐고 물었어요. ‘그건 다른 애들이랑 못 노는 거야’ 하더라고요. 이미 아이는 남성성에 대한 이해를 직관적으로 하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아이들에게 권력을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김서화 연구원이 쓴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 대화>(미디어일다, 2018) 표지


충격적인 만남, 녹색어머니회와 ‘보이루’


김서화 연구원은 또 하나의 일화인 “녹색어머니회를 하면서 겪은 경험”을 털어놨다. “어느 날, 녹색어머니회 일 때문에 학교 앞에서 교통지도를 하는데 아들이랑 친구들이 ‘보이루’라고 인사하는 장면을 딱 본 거에요!”


“보이루(어느 남성 유명 유투버가 쓰기 시작한 말로, 해당 유투버의 이름 중 한 글자와 ‘하이루’를 합친 단어. 해당 유투버의 여혐 논란과 함께 이 말이 여성 성기와 하이루를 합친 말이라는 걸로 논란이 심해졌지만, 초등학생 사이에서 유행어로 쓰이고 있음)가 여혐 단어로 쓰이고 있는 맥락이 있으니까 충격이었죠. 이 남자아이들이 ‘한남’의 자질이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에요. 녹색아버지회가 아니라(녹색아버지회는 있지도 않지만) 결국 녹색어머니회가 ‘보이루’와 만나게 되는 이 상황, 너무 젠더적이지 않나요?”


아들이 어떤 남성성을 표출하는지 장면을 목격하게 되는 건 “항상 녹색어머니회를 하는 엄마뿐이며, 교정을 할 수 있는 것도 엄마 뿐”인 이 상황. 여기서 “단순히 ‘보이루’를 쓰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상황이나 조건 자체가 이렇게 젠더적으로 놓여있다는 것”에 주목을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서화 연구원은 “더 크게 봐야 한다”며 “아들이 (딸과) 다르니까 이렇게 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벗어나 “아들이 ‘남성’이라는 특권을 가지고 태어나 구조맹(성차별 구조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의미)이 되기 쉬운 현재의 상황을 고려해서, 어디에 초점을 맞춰서 말해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성교육 자체에 페미니즘 관점이 들어가야 된다고 책을 썼는데, 페미니즘 교육이 청원으로 올라와서 놀랐다”고 밝힌 김서화 연구원은 다만 “페미니즘이 교육과 어떻게 결합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페미니즘이 교육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등의 논의로 가야 페미니즘 교육이 의미 있어지지 않을까 싶어요.”


시작은 단순했던 ‘어떻게 아들 성교육을 할까?’의 질문이 산 넘고 강 건너 결국 페미니즘으로 왔다. 자신의 고민을 깊게 파고 들어간 경험을 풀어낸 김서화 연구원이 ‘자신의 책을 양육서로만 봐 주면 서운할 것 같다’고 말한 의미를 알 수 있는 발제였다.


▶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에서 주최한 “준비됐나요, 페미니즘 교육?” 북콘서트 발표자와 패널들. (왼쪽부터 신그리나 연구원, 김서화 연구원, 최기자 부소장, 김수자 제천간디학교 교사, 정소연 경희대학교 학생) ⓒ일다(박주연)


페미니즘 교육, 정말 준비되었나요?


이어진 패널토의에서는 각 분야의 교육 주체들이 ‘페미니즘 교육’을 둘러싼 고민과 과제를 이야기했다.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의 최기자 부소장은 “현재의 ‘폭력예방통합교육’이 ‘젠더’를 사라지게 하는 지점”을 지적했다. “개개인의 성평등 의식 개선, 성평등한 문화 확산에 방점을 둔 폭력예방통합교육이 (실질적으로) 젠더 권력구조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지기 어려운 점”이 고민이라는 것이다. 또한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가 교육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교육만능주의로 이어지지 않을지에 대한 우려”도 언급했다.


학교에서 ‘성교육’, ‘여성학 입문’ ‘남학생을 위한 페미니즘’ 등의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제천간디학교 김수자 교사는 “풀이과정 없이 ‘정답’만 존재하는 교육, ‘안돼요, 싫어요, 하지마’가 아닌 무엇이 성폭력이며,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우리는 무엇을 사과 받고 무엇을 반성해야 하는가에 대한 교육이 논의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인 페미니즘의 인식론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희대학교에 재학 중인 정소연 학생은 학창 시절에 해야 했던 ‘양성평등 글짓기’ 경험을 토로했다. “여성의 힘든 점은 말할 게 너무 많았는데 ‘균형’을 위해 남성의 힘든 점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게 너무 힘든 거예요.(웃음) 근데 여튼 그걸 맞춰서 쓰면 항상 상을 받았어요.” “기계적인 평등을 강요” 받는 현실에 대한 지적이다.


정소연 학생은 “대학에서 마주한 성차별과 성폭력에 대한 절망과, 가이드라인 없는 이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결국 개인적인 노력을 통해 페미니즘을 찾아감으로써 해결했다”고 말했다. 이어 “조금이라도 빨리, 더 어렸을 때 페미니즘을 접할 수 있는 사회”를 희망한다며 페미니즘 교육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국민청원 20만 명 돌파로 청와대의 응답을 들을 수 있었지만, 그것이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원의 최종 목표는 아닐 것이다. 초중고 인권교육 실태조사는 정말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예산을 들여 어떤 교육 자료를 만드는지 지켜보고 끼어들어 목소리를 내야 한다. 페미니즘이 교육과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페미니즘 교육’에 대한 왕성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박주연 기자)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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