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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시위’ 승리 이후, 폴란드 페미니즘도 부활했다

임신중단금지법안 철회시킨 풀뿌리 여성들의 힘



지난 24일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 위헌 소원 공개 변론이 열렸다. 한국에서 6년 만에 ‘낙태죄’가 다시 심판대에 오른 상황에서, 인구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인 아일랜드에서 국민투표를 통해 낙태금지 조항을 폐지하기로 했다는 고무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2016년, ‘검은 시위’라 불리며 전국의 여성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임신중단금지법안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던 폴란드는 결국 해당 법안을 철회시켰다. 이 시위는 전 세계로 확산되었고 한국에서도 대규모 검은 시위가 벌어졌다. 획기적인 성공을 거둔 폴란드 여성들의 운동에 대해, 당시 시위에 적극 참여한 셈초넥 마르타 씨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 검은 시위 참가자들. 왼쪽 끝이 셈초넥 마르타 씨다. 피켓에는 ‘여성을 구하라’라고 적혀 있다. (제공: 셈초넥 마르타)


-폴란드에서 20만 명 이상의 여성들이 임신중단금지법안에 항의하며 집회를 열었습니다. 어떻게 전국적으로 이런 시위가 일어날 수 있었나요?


“우선 집회의 경위를 말씀드리겠습니다. 2016년 10월 하순, 임신중단에 관한 두 개의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습니다. 하나는 임신 12주까지 중절수술을 합법화하고 재생산 권리를 보장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임신중단 규제완화 법안이었고, 다른 하나는 여당이 제출한 규제강화 법안이었습니다. 후자는 임신중단을 전면 금지할 뿐 아니라 해당 여성에게 무거운 형벌을 내리는 엄격한 법안이었습니다.


상하원 모두 과반수를 점하는 현재의 여당인 PiS(법과 정의)당은 만들고 싶은 법안이 있으면 국회에서 논의도 제대로 하지 않고, 관계자 자문도 얻지 않고, 법안 채택을 강행한 전례가 몇 번이나 있었습니다. 임신중단금지법안도 그렇게 될 것으로 예측이 되었기 때문에 여성들의 불안과 공포,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이때 유명한 배우 크리스티나 얀다 씨가 SNS에 쓴 글이 주목을 받았는데요. 1975년 10월 24일 아이슬란드에서 이뤄진 여성파업(전국의 여성들이 하루 동안 일, 가사, 육아를 하지 않음)에 대해 쓴 것이었죠. 우리 폴란드 여성들도 행동으로 보여주자는 아이디어가 급격히 확산되었습니다.


인터넷으로 막 소식을 접하게 된, 집회에 참여해본 경험도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서로 정보와 아이디어를 공유하면서 시위가 추진되었죠. 돈을 모금해 포스터와 전단지를 인쇄하고, 전국에서 관련 행사와 활동이 조직되기 시작했습니다. 법안이 제출되기 전인 2016년 10월 3일에 마침내 폴란드 여성 집회가 실현되었습니다.


법안이 도입된다는 소식을 듣고 줄곧 혼자서 공포와 분노, 절망에 빠져있던 제가 그 집회에서 얼마나 힘을 얻었는지,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습니다. 시위 참가자 중에는 집회 베테랑도 있고, 저 같은 초보자도 많았습니다. 폴란드에서는 성적인 이슈, 그 중에서도 임신중단이나 피임에 대해서는 일상적인 대화에서 금기시되어 있어요.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자 소극적인 여성들도 거리로 나와 큰 목소리로 성적 권리를 요구했습니다. 굉장히 해방된 분위기였죠. 의식을 바꾸는 경험이었습니다. 국내 150곳뿐 아니라 해외로까지 퍼져 대성공이었습니다.”


▶ 20만 명 이상의 여성들이 참여한 폴란드의 임신중단금지법안 반대집회. ⓒAgencja Gazeta 2016년 10월 3일, 인구 40만의 도시 슈체친


-획기적인 일이었네죠. 애당초 여당(PiS)는 왜 임신중단금지법안을 통과시키려 한 것이죠?


“폴란드에 많은 신자가 있는 가톨릭에서는 원리적으로 ‘낙태는 살인’이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임신중단을 ‘어린이 살인’이라고 부르고 ‘태아’를 ‘잉태된 아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어린이’라고 부르는 등 감각이 없는 세포 덩어리를 어린아이 같은 이미지로 칭하죠. ‘사람의 목숨은 정자와 난자가 수정된 시점에 시작한다’고 호소하기도 합니다. 성당 미사의 설교에 나올법한 표현이 국회나 언론에도 종종 나타나 일반 사회에 침입하고 있고, 사람들의 생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칩니다.


이 정부는 전통적인 가족구성과 가치관을 중시하고 가정 내 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소극적입니다. 특히 강간 범죄에 엄격하지 않아서 재판에서는 대부분 집행유예에 그쳐 실제 처벌이 이뤄지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게다가 임신중단규제를 강화하려고 하면서 성교육, 그 중에서도 피임교육을 하지 않습니다. 의무교육에 포함된 가톨릭 수업에서는 요즘 ‘피임은 안 된되’ ‘중절은 살인이다’ 등 여성들이 아이를 낳는 선택지밖에 갖지 못하도록 움직이고 있어, 국민들의 여론을 무시합니다.”


-여성들의 대규모 집회로 법안이 부결된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이후 어떤 변화가 감지되고 있나요?


“이번 집회의 훌륭한 점은 여러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일반의, 게다가 정치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던 여성들까지 들고 일어난 풀뿌리 운동이라는 점이죠. 우리 안에 얼마나 큰 힘이 내재되어 있는지, 여성들도 정치권도 정부도 통감했습니다.


또한, PiS당이 정권을 잡은 후부터는 헌법재판 개악 등에 대해 몇 번이고 국민들이 대규모 집회를 열었지만 한 번도 저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성공한 것입니다.


검은 시위에서는 다양한 조직들과 운동들의 협력이 이뤄졌습니다. 집회의 노하우가 있는 조직은 그 정보를 나누고, 스피커를 빌려주는 등 여러모로 협력했습니다. 폭력 행사가 없는 평화로운 집회로 폭넓은 지지를 얻었죠. 많은 가게와 회사들이 여성들을 지지하며, 집회 참여를 희망하는 여성들이 하루 일을 쉴 수 있게 해주고, 가게 문을 닫는 곳도 많았습니다.


폴란드의 움직임은 해외 여성들에게도 영감을 주었습니다. 한국과 남미의 여성 집회나 2017년 세계 50개국에서 열린 세계여성의 날 집회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알아요.


폴란드 페미니즘도 부활시켰습니다. 각지에서 액티비스트가 많이 탄생했고, 한 번 만들어진 네트워크와 조직이 지금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2017년 임신중단규제완화법안은 2016년의 21만5천명을 크게 웃도는 40만 명 이상으로부터 지지를 모을 수 있었죠. 여성의 권리를 둘러싼 강연, 회의, 영화제 등도 늘어났습니다. 내년 폴란드는 여성참정권 100주년을 맞이하는데, 여러 행사가 기획되고 있습니다.


▶ 엘레니아 구라市에서 열린 임신중단금지법안 폐기를 위한 국제연대행동 (제공: 셈초넥 마르타)


-검은 시위 이후, 앞으로의 과제가 있다면요?


하지만, 우리 앞에 놓인 큰 과제도 있습니다. 임신중단을 금지하는 것 이상으로 엄격한 사회의 현실을 어떻게 바꿔나갈까 고민이 큽니다. 의사들이 임산부가 임신중단을 선택하지 않도록 출생 전 진단을 연기하거나, 혹은 거절하거나, 태아에게 이상을 발견해도 임신중단할 수 있는 기간 내에 알려주지 않기도 합니다. 의사에게는 종교적 양심에 근거하여 의료행위를 거부할 수 있는 ‘양심조항’이 있어서, 병원장이나 병동장이 병원 전체, 병동 전체에 임신중절수술을 금지시킬 수 있거든요. 게다가 피임은 ‘양심조항’에 해당하지 않는데도, 최근에는 양심조항이 적용되지 않는 약제사조차 피임구나 피임약 판매를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임신중단규제완화와 함께, ‘양심조항’의 재고를 정부에 요구할 생각입니다.


※ <일다>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무라타 모토미 님이 작성하고, 고주영님이 번역하였습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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