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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무엇도 해치지 않으니까

[Let's Talk about Sexuality] 7년 만에 긴 머리를 자르다 (물달)


※ <일다>는 여성들의 새로운 성담론을 구성하기 위하여, 20인의 여성이 몸과 성과 관계에 대한 다양한 가치관과 경험을 담은 “Let's Talk about Sexuality”를 연재합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그놈의 여성스럽다는 게 뭔지…


“그럼 자를게요.”


확인하듯 미용사가 말했다. “네, 그럼요.” 나는 경쾌하게 답했다. 삼십 센티가 넘는 머리카락이 시원하게 잘려나갔다. 이 무거운 걸 어떻게 달고 다녔을까. 바닥에 머리카락이 수북했다. 머리를 짧게, 그것도 아주 짧게 잘라달라고 했을 때 미용사는 “괜찮겠어요?”라고 물었다. 괜찮지 않을 건 또 뭔가. 괜찮다고 하니 “아깝다”고 했다. 나도 아깝다. 그동안 긴 머리를 위해 매일 삼십 분 넘게 들인 시간, 비싼 샴푸, 빨래와 다름없이 치열했던 머리감기 노동이 나도 너무 아깝다.


7년 전만 해도 나는 귀밑을 찰랑거리는 짧은 머리를 고수했다. 그 덕에 어딜 가나 남자로 오해받았다. 한 번은 찜질방에 갔는데, 한 여자가 나를 보고 “악” 소리를 질렀다. 알고 보니 계산대에서 받은 옷이 남자 옷(?)이었다. 심지어 여자 옷은 분홍, 남자 옷은 파랑이었다. 화장실에 갈 때도, 옷을 사러 갈 때도 그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기분이 상했다. 어릴 적부터 ‘터프 걸’이라느니, ‘남자 같다’느니 하는 소리를 수없이 들었지만, 칭찬인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놀리는 투면 그나마 양반이고, 대부분 말 속에 비난과 무시가 섞여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깟 머리 기르고 치마 입어서 ‘여자 노릇’ 한 번 해주면 그만이라 생각했지만, 그러자니 비난을 인정하는 꼴이 되는 거 같아 왠지 싫었다.


스무 살이 넘자 사람들은 ‘여성스럽지’ 못하다는 이유로 날 ‘덜 자란 존재’ 취급했다. ‘동안’이라는 칭찬(?) 속에는 묘하게 ‘여성스럽지 못해서 미성숙하다’는 뉘앙스가 담겨있었다. 제 나이에 맞는 얼굴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 걸까. ‘동안’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난 불쾌했다. 마치 나이에 맞는 정상적인 외모의 기준이 있는데, 나는 거기에 한참 못 미친다는 소리로 들려서다.


한 친구는 “화장은 예의”이기 때문에 “너도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어쩔 수 없이 화장하게 될 것”이라며, 비영리단체에서 팔 년 넘게 일한 나를 비(非)사회인, 비(非)성인 취급했다.


왜 헤어스타일 하나 내 맘대로 못할까?


끝도 없는 이런 에피소드의 하이라이트는 이십 대 초반에 만난 남자친구다. 그는 끊임없이 ‘여자답게’ 머리를 기르라며 요구했고, 호시탐탐 ‘여성스러운’ 옷을 사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짓을 하면 당장 헤어지겠다며 수도 없이 선전 포고했지만, 그는 결국 나를 속옷 가게로 끌고 갔다. 사람들이 안 보는 곳부터 바꿔가며 용기를 가지라는 남자친구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한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는 내가 아직 ‘덜 진화한 존재’라며, 원석은 정말 예쁜데, 가꾸지 않아서 그 미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진심으로 칭찬(회유)했다. 그의 말에 속이 왈칵 뒤집혀서 난 “그럼 대체 왜 나를 만나는 거냐!”고 소리 지르며 뛰쳐나왔다.


그의 소원대로 내가 여성스러워지진 않았지만, 내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남자들이 나를 볼 때마다 “남자같이 하고 다니는 이상한 애”라고 수군거릴 것 같았다. “예쁘지도 않은 게 착각한다고” 모욕당할까 봐, 성추행을 당해도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했다. 나는 너무 여성스럽지도, 너무 남자 같지도 않은 스타일을 찾기 위해 골몰했다. 적당한 수준을 찾아 외모 평가에 매일 노출되지 않을 만한 딱 그만큼의 스타일, 한마디로 평범해지고 싶었다.


▶ 긴 머리카락과 여성스러움의 관계는?


머리를 기르니 남자로 오해받는 일이 사라졌다. ‘레즈비언이 아니냐’는 혐의(?)에서도 자유로웠다. 사람들이 얼마나 틀 하나로 상대를 재단하는지 알게 됐다. 긴 머리 하나로 ‘정상인’이라는 특수를 누리는 대신, 매일 빨래와 다름없는 치열한 머리감기 노동을 해야 했다. 내 머리는 숱이 많아 대충 감으면 금방 비듬이 덕지덕지 붙었다. 대야에서 머리를 빨듯이 감는 데 매일 삼십 분. 한 달에 15시간, 일 년이면 180시간, 지난 7년간 꼬박 두 달을 화장실 대야에 머리를 처박고 보낸 거나 다름없다.


여름이면 더 고역이었다. 매년 8월, 땀띠 나는 긴 머리를 자르겠다고 벼르고 별렀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여자친구와 사귀는 지금, 머리까지 자르면 자동 커밍아웃이 아닐까 걱정이 됐다. 엄마는 가장 예쁠 때 왜 아줌마처럼 짧은 머리를 하냐며, 머리를 자르면 죽어버리겠다는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머리 짧을수록 티 쪼가리 입으면 안 되는 거 알지?”하는 친구의 말에는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여성 코너’에서 옷을 사는 것 이상의 어떤 노력을 해야 ‘여성스러움’에 도달할 수 있는 걸까. 아, 내 성염색체는 나 모르게 내 머리와 옷 스타일까지 미리 정해둔 걸까?


아닌 척 모른 척 무관심한 척 사랑을 숨기다


내 성염색체가 정해둔 게 또 하나 있었으니, 그건 연애 상대였다. 중학교 때 반 친구가 물었다. “너 수업 시간에 왜 나 쳐다봐?” 나는 “내가 언제?” 하며 얼버무렸다. 여중에서 동성애는 암암리에 존재했지만, 수면 위로 떠오르는 순간 곧 왕따를 의미했다. 간혹 나를 좋아한다며 고백하는 동성 친구들이 있었지만, 난 두려움에 휩싸여 “그건 남자랑 여자끼리 하는 말”이라고 답했다. 당연히 고백은 꿈도 못 꿨다. 짝사랑은 내 전문 분야가 되었고 아닌 척, 모르는 척, 관심 없는 척, 나는 사랑을 숨기는 방법을 배웠다.


이십대 중반부터 기른 긴 머리는 나름의 ‘위장술’이었다. 가능하다면 난 평범해 보이고 싶었다. 단 1초라도 누군가로부터 ‘저 사람 좀 봐’ 하는 눈빛을 받으면 며칠은 바늘로 콕콕 심장을 찔리는 듯했다. 연애 5년 차인 난 아직도 여자친구가 길거리에서 “자기야, 저것 좀 봐.”하며 부르면 누가 쳐다보지 않는지부터 살핀다. “아무도 우리 신경 안 써.” 늘 고개를 빼 주변을 살피는 나를 그녀는 ‘미어캣’이라고 부른다.


“우리 서로 이름으로 부르는 건 어떨까?” 그녀는 언젠가부터 나를 ‘자기’라고 부른다. 나는 서로를 동일시하는 ‘자기’보다는 고유한 이름을 불러주는 게 좋다며 거창한 이유를 댔지만, 바라는 건 따로 있었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우리를 그저 친한 친구 사이로 봐주는 거.


“나 근처인데 잠깐 들릴게.” 친구들과 같이 있을 때 그녀에게 이런 문자가 오면, 난 혼란스럽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내겐 자동 커밍아웃이기 때문이다. 늘 솔직하지 못한 게 탈이다. 나는 그녀가 연락한 시간보다 빨리 왔다고, 또는 늦게 왔다고 짜증을 낸다. 사실은 그녀를 숨기고 싶었던 내 마음을 들킬까 되레 화내는 거다.


이런 나와 달리 그녀는 거리낌이 없다. 엄마하고 밥 먹다가 “나 OO이랑 사귀어”라고 커밍아웃했던 그녀다. 그 장면이 상상이 가지 않아 나는 “엄마가 정말 받아들인 거 맞아?” 하고 묻는다. 그녀는 “그럼~ 자기랑 먹으라고 반찬도 싸주던데?” 하며 무심하게 말한다. 얼마 전에 “퀴어 퍼레이드 나갔냐?” 라며 화내던 엄마의 전화는 뭐냐고 묻고 싶지만, 난 일상의 평온을 지키기로 한다.


“여자야, 남자야?”


FTM(Female-to-Male)인 트랜스젠더 친구는 이런 수군거림에 익숙하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친구가 여자일지 남자일지 내기를 걸고는 직접 와서 물어보기도 한단다. 대부분 가슴을 유심히 쳐다보고 돌아선다고.


젠더 ‘패싱’(Passing, 자신의 생물학적 정체성을 숨기고 겉으로 보여지는 젠더로 위장하는 것, 원래 흑인과 백인 사이 태어난 혼혈인들이 백인 행세를 하는 것에서 유래한 말)이 되냐, 아니냐는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다. 일자리를 구할 때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교통사고 나서 응급실에 실려 가는데 ‘아래가 없는데 위에도 없네?’ 이러면 어쩌지?” (그는 가슴 절제 수술만 했다.) 그의 이런 농담을 나는 격렬하게 공감한다.


나도 집에서 강도, 강간, 살인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면 그 자체도 두렵지만, 사생활이 까발려질 것이 더 두렵다. 생명이 위급할지도 모르는 사고 앞에서도 정체가 탄로 날까 걱정한다. 누군가는 “그깟 정체 까발려진다고 무슨 일이 일어나냐?” 라고 말할지 모른다. 나는 일단 엄마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진다. 자식 잘못 키워 고개 못 들고 다닌다고 난리 날 게 분명하다. ‘정상’으로 돌려놓겠다고 발 벗고라도 나서면?


할 맘도 없지만 정치는 다했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 사람들이 뒤에서 ‘섹스는 어떻게 하냐’며 낄낄댈까 무섭다. 행여나 일할 때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수만 가지 걱정이 떠오르는 데 1초도 걸리지 않는다. 실제가 어떠하든 내가 먼저 알아서 위축된다. 그래서 애인이 “아무도 우리 신경 안 써.” 라고 말하면 난 “내가 신경 쓰잖아.” 라고 답한다.


▶ 나는 언제까지 미어캣처럼 주변을 경계하면서 살아야 할까?


‘비밀연애’를 비밀에 부치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이십 대, 처음 내가 남자도 좋아한다는 걸 알았을 때 난 봉인이 풀린 듯 애정 표현을 했다. 당당히 고개를 들고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황홀했다. 불가능할 것만 같은 일들이 일어났다. ‘내’가 애인과 당당히 손을 잡고, 뽀뽀를 하다니. 그것도 사람들 보는 앞에서!


이성애의 특권을 만끽했다. 누군가는 남부끄러워하는 모텔 가는 일도 나는 자랑스러웠다. 여기 보세요, 이렇게 우리가 사랑하고 있답니다. 심지어 그것이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아요! 당연히 거짓말을 할 필요도, 사실을 얼버무려 말할 필요도 없었다. 4년 전 내 마음의 빗장을 풀어버린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내 나이 서른에서야 지금의 여자친구를 만났고 영화 속에서만 보던 ‘동성연애’가 시작되었다.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그녀와 밤새 통화하고 하루 종일 문자를 주고받는 나를 발견했다. ‘나랑 그녀 빼고 사람들만 모르면 되지 않을까? 그럼 이 달콤한 행복을 지속할 수 있지 않을까?’ 라며 나 자신을 어르고 달랬다. ‘사귀자는 말만 안 하고 연애 비슷한 것만 해보면 안 될까?’ 이런 비겁한 생각도 들었지만, 책임감이 강한 내 성격상 용납이 안 됐다. 사귐과 동시에 그녀와 나의 ‘비밀연애’가 시작됐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그 비밀은 반 토막 났다. 애인이 버젓이 있는데도 ‘넌 연애 안 하냐?’는 질문을 받는 것이 서러워 친구들에게 애인이 있다고 말해버렸다. 이어지는 질문에 난 최대한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해 직업과 사는 곳을 다 곧이곧대로 말했다. 그녀의 성별만 쏙 빼놓고. 그날 이후 친구들이 “남친은 잘 지내?” 할 때마다 뜨끔했지만, 그냥 “잘 지내”라고 했다. 잘 지내는 건 사실이니까. ‘연하남’을 만난다고 능력 있다며 놀릴 때도 헤헤 웃고 말았다.


알고 보니 거짓말은 옳고 그름을 떠나 정말 힘든 일이었다! 우선 뛰어난 기억력이 필요했다. 처음 친구가 애인의 나이를 물었을 때 난 당황해서 “동갑이야.” 라고 말했다. 사실대로 말했다가는 연하남(?)을 향한 과한 관심을 받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놓고는 다음에 만났을 때 “나보다 세 살 어리다”고 말했다. 기억력 좋은 친구가 “동갑이라며?” 하기 전까지 난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 뒤로는 말할 때마다 멘붕이었다. 내가 또 뭘 잘못 말하는 건 아닐까. 애인의 성별이 드러나는 키, 몸무게를 실수로라도 말할까 봐 각별히 신경 썼다. 이건 정말이지 할 짓이 못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이런 건 곤란 축에도 못 꼈다.


‘사진 보자!’ 한 마디면 모든 노력이 허사였다. 무지 못생겼다고도 해보고 애인 사진이 없다고도 했지만 의심만 샀다. 내가 생각해도 궁색한 변명이었다. 요즘 세상에 애인 사진 한 장 없는 사람이 어딨는가! 급기야 친구가 ‘여자 아니냐?’ 라고 했을 때, 내 표정을 보진 못했지만 이미 들킨 거나 다름없었다. 이 지경에 오니 무얼 지키기 위해 그녀를 숨겨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대체 사랑이 거짓말보다 나쁠 게 뭔가?


▶ 사랑이 나쁠 게 뭔가?


사랑을 숨기지 않는 이유를 알았다


머리를 짧게, 그것도 아주 짧게 자르고 싶다고 말했을 때 여친은 의외로 고심했다. “둘 다 머리 짧으면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그녀를 나는 눈만 껌뻑이며 쳐다봤다. 길거리에서의 작은 스킨십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던 내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며 다독이던 그녀가 아닌가. 웃음이 터졌다. “너도 그런 걱정하는구나.” 막상 내뱉고 나니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느껴졌다. 의심하라지. 의심이 다 뭐야, 사실인걸.


머리를 자르게 한 결정타는 FTM(Female-to-Male)인 친구의 말이었다. “여자화장실 갈 때마다 사람들이 놀라잖아요. 그럼 미안하면서도 속으로는 기분 좋은 거예요. 날 남자로 봐주는 거잖아요.” 뒤통수를 한 대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누구에게나 기분 나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그럼 나는 왜 기분이 나빴을까? 내가 여자라서? 아니, 난 내가 성별이 모호한 이상한 존재로 보이는 게 싫었다. 화장실에서 사람들이 놀랄 때마다 가까운 사람들도 사실 그런 눈으로 날 보고 있는 건 아닐까 신경 쓰였다. 그래서 정작 내가 무얼 원하는 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와의 대화 이후 칠 년 만에 긴 머리를 잘랐다.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느라 머리 길이 하나 스스로 정하지 못하는 수동적인 나를 벗어나고 싶었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 무슨 상관인가.


내친김에 친구들을 만나 십삼 년만의 커밍아웃을 했다. “남친은 잘 지내?” 라는 말에 “여자야” 라고 말했다. 친구들은 그 뜻을 바로 이해했다. “그래서 남자도 사귈 수 있다는 거지?” 라고 확인하는 친구 말에 뜨끔했다. 커밍아웃하면서 내가 강조하고 싶었던 것도 바로 그 지점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남자도 만날 수 있는 범성애자, 즉 이성애자/정상인이기도 한 거지. 그런 말을 하고 싶던, 그러니까 어떻게든 정상성의 끄트머리라도 붙잡고 싶던, 그 최후의 선 안에 어떻게든 발 디디며 살고 싶던 내 마음을 들킨 것만 같았다. 아! 이 욕망도 머리카락처럼 잘라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커밍아웃은 생각보다 싱거웠다. 한 친구는 날 걱정하며 속상해했고, 한 친구는 말해줘서 고맙다 했다. 변한 관계는 하나도 없었다. 나는 그제야 나로 숨 쉬는 것만 같았다.


연애 초기에는 그녀로 인해 내 삶을 망치는 게 아닐까 두렵기도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내가 누구인가?’ 싶을 만큼 나는 달라져 있었다. 삼십 년을 숨겨온 내 안의 무언가가 깨어난 느낌, 그 이질감이 두려웠다. 대나무숲이 있다면 가서 ‘내가 여자랑 껴안고, 뽀뽀한다!’ 라고 외치고 싶었다. 무섭고, 이상하고, 두려운 데도 행복했다. 사람들이 사랑을 숨기지 않는 이유를 알았다. 그럴 이유가 없었다. 사랑은 무엇도 해치지 않으니까.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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