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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영원한 타자와의 대화

[Let's Talk about Sexuality] 나에게 쾌락은 무엇인가


※ <일다>는 여성들의 새로운 성담론을 구성하기 위하여, 20인의 여성이 몸과 성과 관계에 대한 다양한 가치관과 경험을 담은 “Let's Talk about Sexuality”를 연재합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입도 벌릴 줄 알고, 혀도 내밀 줄 알고


첫 키스는 열일곱, 같은 반 A였다. A는 인기가 많았다. 추종자도 여럿이었다. A는 내가 좋다고 했다. 세실극장에서 연극을 보고 명동에 가서 돈가스를 먹고, 그렇다. 우리는 데이트를 했다. 단, A에게는 조건이 있었다. 데이트 사실을, A와 내가 사귄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거였다.


A의 키스는 돌연했다. 야자 시간, 나란히 앉아있던 운동장 벤치에서였다. 나는 벤치 끄트머리를 잡고 상체가 뒤로 젖혀지지 않도록 안간힘을 썼다. 키스를 마치고 A는 이렇게 말했다.


입도 벌릴 줄 알고, 혀도 내밀 줄 알고, 참


그렇다. 내 첫 키스는 A에게 품평 당했다. 나는 A에게 그런 권한을 준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내 섹스는 줄곧 평가 당했다. 나에게든 타인에게든 줄곧.


-왜 피가 안 나와?


첫 섹스는 열아홉, 소개팅으로 만난 B였다. 그 섹스를 하자고 월미도씩이나 갔다. 놀이기구는 하나도 안 타고 소주병만 깠다. 참이슬 몇 병에 바이킹 열 번쯤 탄 기분이 되어 방을 잡았다. 퀸 사이즈 베드 왼쪽에 킹 사이즈 거울이 붙어 있었다.


한 달 전에 합의하고 실행한 일정이건만 방에 들어선 순간부터 아니 인천행 전철을 잡아탄 순간부터 아니 전날 두 손을 꼭 잡고 내일 만나, 하며 헤어진 순간부터 아니 한달 전 섹스하자고 약속한 순간부터 이 순간을 지연시키고 싶었다.


싫은데, 싫은데, 입 속 말은 혀끝으로 나오지 못했고 옷을 벗었고 침대에 누었고 사타구니가 찢어질 것 같은 통증에 B를 팔로 밀어냈다. 그런데도 B는 제 물건을 어찌어찌 내 몸 속에 쑤셔 넣었는지 짧은 탄식 후 침대위로 몸을 부렸다. 그러고는 침대 시트, 하얀 그 시트를 이리저리 들추며 말했다.


피, 안 묻었네. 왜 피가 안 나와? 응?


사람이 아니라 개새끼랑 첫 섹스를 했다.


-우리 사랑하던 사이야


스물 셋, 다른 여자의 남자 C와 사랑에 빠졌다. 상황을 눈치 챈 다른 여자는 나를 카페로 불러내 이것저것 물었다. 다른 여자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밤이 찾아오자 C가 찾아왔다. 그날 알았다. C가 사랑하는 건 내가 아니고 자신의 테크닉이라는 걸. 화려한 신기술을 적용하고 그것을 감탄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


C와 헤어지고 5년이 지나 대학로 무대에서 다시 만났다. 마지막 공연을 하루 앞 둔 뒤풀이 자리, C는 나를 가리키며 어린 후배들에게 말했다.


우리 사랑하던 사이인데, 어쩔 수 없이 헤어졌어.


개새끼들의 착각은 한결같다. 그에겐 추억이 나에겐 악몽이다. 그 새끼를 사랑했다고 믿었던 시간에 황산을 뿌리고 싶다.


-니가 너무 착하고 거절을 못해서 그래


D는 C의 후배였다. 정말 엿 같은 얘기지만 C는 D에게 나를 양도한 모양이었다. D는 나를 정중히 승계하였으나 C에 대한 경계심을 어쩌지 못했다. 개새끼들이 권력을 양도하는 과정 속에서 당사자인 나는 철저히 배제되었다.


D는 자기 선배들이 내게 찝쩍대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E의 집에서 옷을 말끔히 벗고 E와 나란히 누워있던 장면을 목격한 순간, D는 달랐다. E가 여자였기 때문이다. 꽃병을 집어든 D는 부정의 근간을 잘라내겠다는 듯 화장대 거울을 향해 그것을 던졌다. E의 비명이 꽃잎과 함께 부서졌다. D는 누워있던 내 손목을 부여잡고 잠금장치를 설치하듯 손수 옷을 입혔다. D는 E를 비난하며 말했다.


저 마녀 같은… 니가 너무 착하고, 거절을 못해서 그래.


D는 틀렸다. 나는 E와 나란히 누워있는 것이 싫지 않았다. 물론 E에게도 잘못은 있었다. E는 나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 얼마 전 틀어진 자신의 연애를 만회하기 위해 대체물로 나를 선택한 것일지도 몰랐다. E는 나보다 스무 살 나이가 많았다. 스무 살 차이의 힘은 셌다. 그러나 나는 E의 혀를 받는 것이 불쾌하지 않았다. E의 입술이 내 젖꼭지를 무는 것이 싫지 않았다.


내 잘못이라면 내 욕망에 이름을 붙여주지 못했다는 거였다. 내 욕망은 소유주 D의 것이었다. 내 욕망이란 애시 당초 없는 거였다. 나는 내 욕망이 부정 당하는 줄도 모르고 동의 절차를 무시한 E를 뒤늦게 책망하며 D와 함께 그 자리를 떴다.


▶ 글, 그림: 가운뎃손가락_ 가운뎃손가락을 쭉 뻗으면 힘이 솟는다.


섹스, 영원한 타자와의 대화


F가 있었다. 그리고 G가 있었다. F를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어느 새 G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였다. 아니 사랑은 움직이는 동시에 머물기도 하는 거였다. ‘폴리아모리’라는 언어를 몰랐던 스무 해 전 나는 두 번 양다리를 경험했다. 한 번은 발각됐고, 한 번은 내 쪽에서 스스로 포기했다. 발각이 아닌 포기의 경우, 내 행동 기준이 도덕이거나 윤리였기 때문은 아니었다.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섹슈얼한 관계에서 자발적 주도권을 누려본 적 없는 나는, 권력의 맛을 누리기는커녕 그 자리에 앉아본 적이 없는 나는, 양다리라는 고도의 균형 감각이 요구되는 긴장감을 감당하지 못했다.


첫 키스 상대 A에게 돌아가자. 국사시간이다. 나와 A는 책상서랍 아래 손을 맞잡고 있다. A의 왼쪽에 앉은 나는 오른손에 펜을 들고 왼손으로 엑스 자를 그리듯 A의 손을 잡는다. 내 손과 A의 손이 축축해진다. 손바닥 사이로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것만 같다. 아, 하는 낮은 탄식이 오고 간다. 그렇다. 내가 A를 기억하는 방식은 첫 키스가 아니라 수업 시간 책상 아래로 부여잡았던, 평평하게 맞잡았던 나와 A의 손과 손이다. 그러나 A는 그 평평함을 견디지 못했다. 나를 관리했고, 자신의 추종자를 잃지 않기 위해 몸부림쳤고, 종국에는 나와 A만의 키스까지 평가했다. A는 대체 어디서 그런 태도를, 몸짓을, 눈빛을 배운 것일까.


첫 섹스는 또 어떤가. 그 날 나와 B는 모텔로 들어가 씻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집에서 각자 씻고 오자는 약속을 했다. 어쩌면 상대방이 욕실에 들어가 샤워하는 동안 객실에 앉아 있는 시간을 감당할 재간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일부러 씻지 않고 B를 만났다. B에게 반발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씻지 않는 것’이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마치 내가 씻지 않고 가면,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권리를 내가 행사하기만 하면, 약속 자체를 파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나의 권리는 간단히 무시되었다. 애초에 권력이 나에게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여자의 남자 C를 사랑한 일은 여러모로 악질적인 행위였다. 꽃뱀은 있는데 꽃뱀에게 물린 사람이 사라졌다. 꽃뱀에게 물렸다고 일컬어지는 자, C의 대리인으로 다른 여자가 등장했고 나를 심판할 권력은 다른 여자의 것이 되었다. 수많은 구경꾼이 다른 여자의 편에 서서 나에게 돌을 던졌다. C는 겁먹은 얼굴을 한 채 사라졌다가 5년 후 다시 나타나 나에 대한 소유권이 여전히 자신에게 있음을 후배들 앞에서 천명했다.


D는 이중 잣대를 어쩌지 못했다. 나를 승계함으로서 선배와의 호모소셜을 공고히 하는 한편, 나와 E에 대한 호모포비아를 구축하는 것으로 호모소셜에 쐐기를 박았다. 어쩌면 그를 압도했던 것은 C에게 나를 다시 상납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긴장감과 경계심이었을 것이다. 만에 하나 그런 경우가 발생했다면 D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E에 대해 덧붙이자면, 나는 나이 많은 사람으로서 스스로 선취한 E의 위계에 굴복한 면이 없지 않다. E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십분 발휘했고 그 순간 나를 전유했다.


자유롭지도 평등하지도 않은


첫 키스를 나눈 A도, 첫 섹스를 한 B도, 테크닉 시연에 안달이 난 C도, C와 바통 터치한 D도, 새로운 성적 지향의 지평을 열어줄 수 있었던 E도, 그리고 F와 G사이에서 처음으로 섹슈얼 파워게임을 맛본 나까지, 우리는 모두 주고받은 게 있었다. 사랑은 아니었다. 손아귀에 딱 들어맞는, 그래서 좀처럼 놓아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의 이름은 ‘권력’이었다.


나를 제외한 그들은 각자의 역량만큼 그 권력을 부렸다. 여성이었지만 남성으로 자신을 정체화했던 A나, 여성성을 포기하지 않았으나 위계에서 우위를 차지한 E도 그 점에선 마찬가지였다. 상대적으로 늘 하위에 있던 나는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아도 감당하질 못했다. 손아귀에 쏙 들어온 권력이라는 공을 F와 G에게 몇 번 던지다가 바닥에 스르르 놓아버렸다. 테니스공이 가질만한 경쾌함과 밀도가 나에겐 점점 버겁고 무겁게만 느껴졌다.


나는 자위를 즐긴다. 클리토리스를 자극하는 가벼운 마찰로도 충분히 자극되고 흥분한다. 그러나 남편과 섹스할 때 그의 등을 어루만지며 그의 허벅지에 내 사타구니를 문질러 이미 아랫도리가 축축해졌음에도 나는 결국, 그의 페니스가 내 몸에 들어오길 간절히 원하고야 만다. 팽팽한 긴장감이 유발한 다른 세계로 인도되지 못하고 익숙한 피학의 세계로 길을 트고야 만다.


정작 나는 이때마다 길을 잃는다. 나에게 쾌락은 무엇인가. 내가 주체적으로 원한다는 것은 영원한 환상인가. 혹은 피학의 이 순간은 영영 굴욕인가. 나는 언제쯤 권력이라는 공을 편안하게 주고받을 수 있을까. 그것은 정말 가능한 일이기는 할까. 내가 아닌 다른 이와의 섹스는 영원히 평등할 수 없는 것일까. 타자성을 기본 값으로 삼지 않는 섹스란 정녕 자위뿐일까. 평등하지도 자유롭지도 않은 영원한 타자와의 대화, 그 대화 속에서 나는 조금씩 더 외로워진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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